그 여자의 자서전
김인숙 지음 / 창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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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 지난 두 달 여 동안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은 이 책 한 권이 고작이다. 새롭게 시작한 일은 조금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머리 속은 복잡했다. 차분히 정리하고, 판단하고, 따져보기도 전에 상황은 결정되어버렸고, 상황이 결정되자 눈 앞에 일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하나하나 일을 처리해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매일매일 처리해야 하는 일들은 많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것들을 더 많았다. 책상에 앉아 있기보다는 늘 밖으로 돌아다녀야 했다. 책상이 정리된 후에는 좀처럼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일을 쌓아둔 채 걱정도 하지 않고 며칠을 보냈다. 고백하자. 그 며칠 동안, 아니 두 달 여 동안 방치된 건 이 블로그가 아니라, 내 자신이었다.  

그런 나날 중 하루, 나는 김인숙의 새로운 소설집을 읽는다. 머리도 몸도 피곤한 어떤 날이었다. 표제작인 <그 여자의 자서전>을 읽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처 몇 편의 소설들을 읽는다. 또 그 내용이 그 내용이라고 신경질을 내지 않고, 상투적인 우울이 지겹다고 짜증도 내지 않고, 책장을 넘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한숨이 나오고, 가슴이 무거워진다.

눈물을 거두어버린 한쪽 눈은 이제 한 사람의 죽음 이외에는 더이상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또한 기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러나 남아 있는 눈은, 눈물을 거두어버린 눈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보다 더 흉하고 끔찍한 것들을 평생 목격하게 되리라. 한쪽 눈의 마지막 기억을 비웃으면서, 더 지독한 것들을 담아내리라.

<그 여자의 자서전>에서 김인숙이 그려내는 세상은, 한쪽 눈을 실명하게 만든 충격적인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낭만적인 꿈을 꾸었던 이들은, 비루한 현실을 그저 근근이 살아낸다. 소설가는 정치에 입문하고자 하는 땅부자의 자서전을 써야 하고, 은밀한 혁명의 땅 중국은 천박한 자본에의 욕망과 비루한 인간 삶의 땀내가 가득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조선족 처녀는 날개를 찢기는 아픔을 모른 척 하며 한국으로 향하고, 온전한 휴식을 원했던 남편은 부재중이다. 순간의 고통은 한쪽 눈을 거두어갔지만, 남은 한쪽 눈은 감지도 못한 체 더욱 지독한 것들을 감당해야 한다. 80년 변화에 대한 열기로 가득한 캠퍼스에서 홀로 도서관을 지켰던 청년은 그럼에도 눈부신 멀리뛰기를 보여주었지만, 졸업 후 노동쟁의의 선봉에 섰던 그는 머리가 벗겨진 보험외판원이 되어 헐벗은 머리보다 더 안쓰럽게 제자리뛰기를 할 뿐이다.

지금의 '나'와 '나'들이 고통스럽고 불행하니, 그들의 과거는 아름다운가. 김인숙 역시, 그저 혁명의 열기와 젊음의 낭만이 가득했던 한 때의 과거에 집중하고 있는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는, 과거의 꿈과 지금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균형 때문이었다. 김인숙은 현재가 비루하니 과거가 아름다웠다고 말하지 않고, 과거에 꾸었던 꿈과 그 때 가졌던 열정 때문에 현실이 남루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은 과거의 절망적인 고통이나 눈부신 환희로 인해 한쪽 눈을 잃고도, 남은 한쪽 눈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트럭 운전수의 삶은 그가 질주하는 고속도로의 밤풍경과 다르지만, 그 꿈이 현실에 대한 변명이 되지 않고, 그 현실이 과거를 윤색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집의 풍경은 더욱 고통스럽고, 삶은 더 절망적이다.

그러니 이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진실'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작가조차 작품 속 소설가의 입을 빌어, 진실은 소설의 주인공에게나 가능하다고 고백하는 마당에. 고통스런 삶의 복판에서는 사랑의 본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못하는 그이의 몸이 주는 무게 때문에 숨이 막히고, 한 사람의 존재는 다른 이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책 속에 나 있다는 삶의 길은, 은밀한 출세욕에 불과하다. 끝을 알 수 없는 바다를 생날개 찢어가며 날아야 하는 나비처럼, 우린 내 앞에 펼쳐질 내일도, 지금 내 삶에 감춰진 진실도 알지 모른체 퍼득퍼득 날개짓을 할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단하게 날개짓을 한다고 해도,  육지에 도달할 수가 있을까.

그리하여 이런 세상에서 무언가에 대한 믿음조차도 가질 수 없는 나는 불행하니. 오늘 밤 나는 머리끄덩이 잡아채 싸울 시어머니가 없어, 하루밤 내 정신을 맡길 엑스터시 같은 건 구할 수도 없어, 살아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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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사스 2005-09-07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의 글, 반갑네요. 사막에 매.우. 현.실.적.인. 단비가 내리길 바랍니다.

hanicare 2005-09-07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가을이군요.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어요. 사실은 내게 시간은 흐른다기 보다 실패에 감긴 실처럼 그저 둘둘 감긴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긴 바람이 거세고 비가 많이 옵니다. 거긴 어떤가요.

치니 2005-09-07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

비연 2005-09-07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선인장 2005-09-07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훈성님 > 오랫만입니다. 단비라... 태풍이 지나가길 그렇게나 기다렸는데, 이 곳의 하늘은 너무 쾌청해요. 현.실.적.인. 단비라, 참 좋겠네요...

하니케어님 > 그 곳은 바람이 거세고, 비가 오는군요. 태풍은 제 바램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를 비켜가나 봅니다. 하긴 이 거대한 도시는 모두 가졌으니, 잠시 비바람이 피해간다고 해서 내가 큰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되겠죠. 어제는요, 구름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을 봤어요. 저녁에는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노을색을 보기도 햇지요.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내 마음에 오래 남질 않아요. 시간이 참 잘도 가네요. 도대체 어떻게 보내는지도 모를 만큼요...

치니님 > 아주 오랫만에... 그렇네요... 너무 오랫만이에요...

비연님 > 감사합니다.... 잘 지내시죠?

바람구두 2005-09-07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 T
보고 싶었다...

Volkswagen 2005-09-07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오랜만입니다.
선인장님의 다른 사이트 주소를 알긴 하지만 혹시 폐가 될까봐 인사를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잘 지내시나요? ^^

선인장 2005-09-08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 고마워라, 반가워라... 저도 보고 싶습니다.

폭스바겐님 > 정말 오랫만이지요? 그리고 폐라뇨... 그 곳에서 님이 알은 체 해 주신다면, 저야 더욱 반가울 텐데요... 님도 잘 지내시죠?

hanicare 2005-09-11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 포근하게 보내시길..
 
동경만경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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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일식'은 로마의 신층 주택지에 세운 모던한 맨션의 한 방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흑벽영화지만 이미 아침이 밝았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아침까지 계속된 듯한 기나긴 이별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린 채, 남자와 여자는 방의 끝과 끝에 완전히 지쳐 앉아 있다.

"널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 남자가 말한다.

"그렇지만 난 행복하지 않았어." 모니카 비티가 대답한다.

"언제 사랑이 끝난 거야?"

"...... 정말, 모르겠어."

"널 위해서라면 뭐든 할 거야."

"부탁이야, 이제 마음 쓰지 마."

"남자가 생긴 거니?"

"몇 번이나 말했잖아. 그런 게 이유가 아니라고."

"그럼, 무슨 이유지?"

"...... 모르겠어."

모니카가 방을 나간다. 이른 아침, 아직 아무도 걷지 않은 신흥 주택지의 잘 정비된 도로. 지나치게 말끔하게 정돈되어 오히려 살풍경한 길을 천천히 걸어간다.

휴일 오후, 학교는 한가하다. 도시의 무더위를 살짝 피해 찾아간 곳,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읽던 책을 내처 읽는다. 료스케와 료코의 뒷이야기가 내내 궁금해,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나 무언가 책장을 넘기는 손을 부여잡는다. 료스케가 머뭇거릴 때마다, 료코가 머뭇거릴 때마다, 나 역시 주저한다. 그들 감정의 결을 따라 도꾜만을 배회한다. 료코가 있는 오다이바와 료스케가 있는 시나가와 사이의 거리는 좁혀들 듯, 좁혀들 듯 좁혀지지 않아 나를 애타게 한다.

선명한 화상 자국만큼 선명한 사랑의 기억을 안고 사는 료스케. 한 때 진실이라, 영원이라 믿었던 사랑을 잃어버린 그는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미팅 사이트에서 만난 료코에서 어떤 떨림을 감지했으면서도 몸에만 열중한다. 밤새 전화기를 붙잡고 보내지 못할 메시지를 지웠다 썼다 하면서도, 제 마음의 떨림 같은 거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료코에 대한 마음을 뜨거운 몸으로만 전할 뿐이다.

사랑 따위, 애초에 믿지도 않았던 여자 료코. 사랑 때문에 울고, 사랑 때문에 자기의 본모습을 잃는 것이 어리석다고 믿는 그녀는 애초 사랑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녀는 처음부터 스스로를 숨기고 료스케를 만나고, 몸에만 집착한다. 스스로 몸만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질 정도로. 그래서 처음으로 사랑의 느낌을 경험하고도 약속 장소에 나가지 못한다. 료스케에 대한 마음을 이성적으로 재단하며 방어할 뿐이다.

사랑에 대해 알지 못했던 여자 료코가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낀 날, 가슴에 화상 자국이 선명한 료스케는 진실한 사랑이란 없다고 말한다. 어긋나는 사랑의 순간. 그러나 둘 사이에 감정이 공유되었든, 그렇지 않든 사랑을 몰랐던 여자가 사랑을 알게 될 때 그녀 삶은 변한다. 사랑을 믿지 않았던 남자가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는 순간, 그의 삶 역시 변한다. 그래서 료스케는 도쿄만을 헤엄쳐 그녀에게 다가가고 영원한 사랑을 묻는다. 료코가 처음으로 미오라는 본명으로 호명되는 순간, 그녀는 보이지도 않는 어딘가에서 도쿄만을 헤엄쳐 오는 그의 존재를 깨닫는다. 핸드폰과 문자 메시지와 메일과 몸으로만 소통하던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움직이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순간을 확인하고도 영화 "일식"의 마지막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약혼자와 헤어진 모니카 비티는 알랭 드롱을 만나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 특별히 아름다울 것 없는 일상의 풍경을 새롭게 느끼게 하는 새로운 사랑. 그러나 내일도, 모레도, 다음 날도, 그 다음 날에도 만나자고 약속한 이들 연인은 그 날 밤 약속장소에서 만나지 못한다. 아무도 오지 않는 그 약속 장소를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과 잠시 멈추었다 가는 버스...... 그 쓸쓸한 풍경이 가슴에 남아 나는 료코 아니 미오를 향해 다가오는 료스케의 몸 아닌 어떤 것을 마음으로 느끼면서도 못내 불안하다.

사랑이 언제 끝난 걸까,라는 남자의 물음.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한채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고, 언제 끝이 났는지 알지 못한채 사랑은 끝난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끝이 나고서야, 비로소 이게 사랑의 끝이구나 짐작할 뿐이다. 누가 말해 줄 수 있을까, 사랑의 시작과 끝을, 사랑의 이유를, 사랑의 목적을.

꿈에 보았던 세상 끝의 풍경이 눈 앞에 다시 펼쳐진다. 그 때 느꼈던 그 영원한 공포가 아직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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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5-06-10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달기가 망설여집니다. 회복기환자의 퀭한 눈에 어린 그늘이랄까, 늦은 햇살이 시든 잔디에 비스듬히 비끼는 가을 오후같은 쓸쓸함. 그런 것이 어려 있어서 말걸기가 조심스러웠어요, 그런데도 비어있는 공간이 안쓰러워 잠시 공기를 흔들고 갑니다. 별 일 없으시지요...또 여름이 오겠군요.나처럼 나이를 먹어가는 나무도 해마다 새 꽃을 피우고 여름은 작년처럼 늠름하게 당도하겠지요.계절은 늙을 줄도 모르는군요.

선인장 2005-06-10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빗길을 뚫고 공항에 다녀왔어요. 한 달 동안 집에 와 있던 동생이 다시, 시카고로 날아갔지요. 오는 길은 차가 너무 막혀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다리가 아팠어요. 자꾸만 몸이 까라앉네요.
여전히 이 방 공기가 흔들리고 있어요. 님 덕분이에요. 오랫만이에요...
 
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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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죄인처럼 살아간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생활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인격도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가난한 작가일 뿐.

가난하여 '이 땅 어디에도 삶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고

떠도는' 유랑민처럼

나 또한 가난한 '유랑작가'일 뿐.

 

공선옥의 책 두 권을 연달아 읽고, 나는 누군가에게 고백했다. 지금부터 조금 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누군가 나에게 네 인생의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 읽은 공선옥의 두 작품을 이야기할 꺼라고. 불과 며칠 전의 이야기지만 참으로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고백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그 고백을 반복한다. 이 소설이, 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그리고 이 작가가 지금의 나는 반성하게 하고, 돌아보게 한다고.

이 소설 <유랑가족>은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세상에 몸 누일 곳 하나 없어 떠돌아야 하는 사람들, 혹은 고향에 발을 붙이고도 마음이 떠돌아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고단한 한 세월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소설은 많이 서글프고,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많이 애처롭다.

산업화가 본격화되고, 농민들이 도시로 모여들면서, 빈민촌이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빈부의 격차는 날로 커져서 눈부신 경제성장의 이면에서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가난한 이들이 존재하고... 맹목적인 경제 발전, 한 길만을 고집한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지독한 불평등이야 모르는 이 없겠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이 뻔한 가난에 눈을 돌리고 살았다. 70년대, 80년대 소설 속에서 지난하게 이야기되던 사회 구조의 모순 대신에 정체성을 상실한 현대인에 대한 사유가 소설의 주제로 자리잡은 것이 이미 십여 년. 그저 세월이 변했고, 절대적인 빈곤은 해결되었다는 안일한 착각 속에서, 작가들은 물론 대부분의 독자들 역시 그저 자신의 내면에만 집중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사이 가난은 추억이 되었다. 못 입고 못 먹던 시절의 안쓰러운 이야기는 그리운 추억 한 토막으로 포장되었고, 길거리에서는 위생상태 불량하다는 추억의 먹거리가 비싼 가격으로 팔려 나갔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난곡의 재개발 소식을 보도한 한 프로그램에서는, 달동네 사람들의 정겨운 삶의 모습이 더 부각되었다. 이따금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난은 과거의 일에 불과했다. 그래서 지독한 가난을 배경으로, 비록 가난했지만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던 그 시절이 아름답게 그려졌다. 그렇게 가난은 현실이 아닌, 어렴풋한 추억이 되어갔다. 먼지 묻은 흑백사진이 모두 아름다운 것처럼, 가난 역시 현실의 옷을 버리니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직도 가난한 사람들은 죄인이었다. 길거리에 마주치는 노숙자들은 언제 폭력을 행사할지 모르는 예비 범죄자들이었고, 도심의 미관을 해치는 사람들이었다. 공무원들은 노숙자들의 잠자리를 없애기 위해 공원 안 의자에 말뚝을 박았다. 가난한 아이들은 예의도 없고, 염치도 없는 쓰레기들이었다. 그들은 어디서나 소란을 피우고, 삶에 대한 의지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그래서 멀리 하는 게 그저 최고인 그런 존재들이었다.

그러니, 지금 가난은 그저 피해야 할 것. 달동네가 없어졌으니, 이제 가난한 사람들 역시 없어졌으며, 그래도 가난한 사람들은 적당히 격리해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 두면 될 터였다.

그런데 작가 공선옥은 말한다. 가난은 아직도 추억이 아니라고. 눈 돌리고 싶은 현실을 꾸역꾸역 찾아다니며, 그 삶을 명징하게 복원해 낸다. 남쪽 바다, 푸른 나라로 떠난 영주가 그냥 잘 살 것이라는 믿음으로 위안을 주는 대신에, 그 곳에서 정착하지 못한 그 아이의 불확실한 미래를 끝내 상기시켜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아,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한데 하는 순간, 작가는 이게 현실의 다가 아니라고, 마지막까지 제대로 보라고 강요한다. 징그럽고, 지독하다. 수몰될 고향에서 마지막 보상금을 꿈꾸며 국화모종을 심었던 종만은 끝내 목숨을 버리고, 노래방 도우미로 전락한 조선족 명화는 길거리에서 강도를 만나 죽임을 당한다. 건실하게 삶을 꾸려가던 경수는 끝내 병을 얻는다. 어설프게 희망을 꿈꾸는 것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생. 그 생을 엿보는 사진작가 "한"은 자신의 위선과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인식하며 절망한다. 그리고 그 절망은 작가 공선옥의 것이기도 하고, 이 책을 읽는 독자의 것이 되기도 한다.

반복되는 지독한 절망 속에서, 나는 가슴이 답답하다. 그들이 맺어가는 또다른 관계 속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찾을 수 있기를, 그들이 도착한 또 다른 땅에서 그들의 삶이 재건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건 그저 내 맘 편하라고 하는 위안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제 어찌할 것인가. 그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이며, 나는 또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가슴에 슬픔을 가득 안고, 정답을 찾지 못할 고민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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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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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아무리 무섭고 험난하다 하더라도

그래도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은 살아야 하고

살 수 있어야 하고 살 수 있도록 도우며 살아야 하는 것이

생명 가진 사람의 의무이다.

 

고백하자면 작가 공선옥에 대한 나의 애정은 당위적인 것이었다. 그녀의 고향은 나의 본적지이고, 그녀는 80년 광주를 경험했고, 그녀는 고단한 노동의 현장에 있었으며, 그녀는 농촌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소설에는 소외 받는 사람들이 나와 고단한 삶을 살아냈고, 그녀의 소설에는 낯뜨거운 현실에 대한 생목소리가 존재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공선옥의 소설에 매혹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습관처럼 책을 샀고, 여러 권 산 책 중에 가장 먼저 그녀의 책을 손에 들었다. 그건 의무감에서 비롯된 행동이기도 하고, 내 삶에 대한 변명이기도 했다. 그저 그녀의 작품을 읽는 것으로, 그 작품에 나오는 어떤 삶에 아주 작게 반응하는 내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나는 이기적인 내 시간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위로받음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해서, 나는 공선옥의 작품을 빨리 읽어냈고, 동시에 빨리 잊어버렸다. 그녀의 언어는 섬세하기보다 투박했고, 그녀 작품에 나오는 삶은 눈 돌리고 싶은 비루한 현실 그 자체였다. 나는 그녀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 되기 싫었고, 그런 주인공을 만들어내는 그녀 같은 작가는 더더욱 되기 싫었다. 그저 그런 작가가 있다는 것, 그런 작가의 작품을 외면하지 않고 읽고 있다는 것, 공선옥은 그런 의미로 내게 존재했다.

그녀의 새로운 산문집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를 읽으며, 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물을 쏟는다. 그녀가 관심을 기울이는 삶이 그 전과 특별히 다르지 않음에도, 그 삶을 대하는 관점이 특별히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그렇다고 삶에 대한 나의 인식이 특별히 깊어지지 않았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눈물이 나는 좀 당황스럽다. 여성작가들의 산문집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떨림 같은 건 고사하고 촌철살인의 적확한 비유 하나 없이 당위적인 소리들을 내뱉고 이 산문집. 그런데도 나는 조용히 울다가, 울다가, 문득 그녀에게, 그리고 이 책 속에 나오는 많은 이들에게, 그리고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열 몇 살 먹었을 그녀의 딸에게 편지 한 통을 쓰고 싶어졌다.  

어떻게 읽으면 이 산문집은 그녀 스스로 인정하듯이 상투성, 구태의연함, 계몽성 글에서 풍기는 매너리즘이 가득한지도 모르겠다. 공선옥은 산동네의 오밀조밀한 채송화, 시금치 화분에 대해, 오래 전 시골길의 추억에 대해, 그저 단어만으로 상투적인 인권에 대해, 너무나 투박하게 이야기한다. 시골길을 추억하는 그녀의 문장들은 왼쪽 가슴 아래께를 간지럽게 하는 미사여구 하나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문장들은 당위를 넘어서는 구호와 같다. 동화적 발상과 같은 "나눔의 철학"을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천연덕스럽게 제시한다. 그러나 그 상투성과 구태의연함과 매너리즘이 가득한 글 안에는 삶의 가장 밑바닥을 들여다볼 줄 아는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존재한다.

공선옥은 어지러운 간판이 난무한 도시의 거리를 비판하지 않고, 그런 간판을 내걸어야 하는 현실을 이해한다. 불 밝힌 네온사인과 그저 상호만이 커다랗게 적힌 현란한 간판 너머의 사연을 바라본다. 그런 작가의 눈길을 의식하는 순간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고, 지나치게 상업적인 간판들이 천박해 보인다고, 보다 깨끗한 거리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오던 나의 짧은 생각이 부끄러워진다.

공선옥은 화학조미료의 해악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미원의 달디 단 맛에 대해 말한다. 다시마와 멸치와 버섯을 갈아 천연조미료를 만들 만큼 삶이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맛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그저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 것이 조금 더 인간에게 이롭지 않겠느냐고만 생각해 왔던 나는 미원의 달디 단 맛에 위로받는 사람들의 입맛에 마음이 시큰해진다.

친구와 다투고 들어 온 아이에게서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고,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그 아이가 당당한 이탈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 당당해져야겠다고 다짐하는 이 엄마에게서 나는 그저 당위적인 관점에서만 교육문제를 비판해 온 내 관점의 한계를 깨닫는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가 이왕 먹고 살기 어렵다면 먹고 살기 어려운 속에서도 살아보려고 한번 애쓰는 것, 내가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가지고 있는 '존엄한 인간'이라는 자존심은 지니고 살자, 책 한 권 손에 드는 것은 바로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의 사람들이 그나마 버릴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챙기는 것의 일종이 아니겠는가"하고 역설하다가도, 금방 책 한 권 읽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며 그런 생각 자체도 오만임을 인식하고 자신의 말을 뒤짚는 작가의 인식에 동의하고 만다.

구걸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주머니를 뒤질 때,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저런 사람들에게 돈을 주면 안 된다고. 그러면 저 사람은 평생을 저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금 당장 돈을 주는 것보다 그들이 살 수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 말에 나는 언제든 동의한다. 그렇지만 지금 내 삶이 전부인 나는, 누군가가 구걸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 사회의 구조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혹 그걸 안다고 해도, 오늘 하루 구걸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어떤 이에게 그 구조가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내 주머니를 뒤져 몇 푼의 돈을 그들에게 건네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가치들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 그것 뿐이다.

사회의 모순에 대해 지적하고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무척 쉬운 일이기도 하다. 분노하고 비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삶에 손을 내미는 것. 우연히 떠난 버스여행에서 만난 고단한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주고, 이주노동자의 아이를 초대해 주고, 그 삶에 귀 기울여 주는 것.

작은 실천이라는 상투적인 대안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것인지, 공선옥은 참 낮은 목소리로 전하고 있다. 삶의 주변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너무나 섬세해서, 타인의 삶에 손을 내미는 그녀의 손길은 너무나 고와서, 투박하고 강건하기만한 그녀의 문장들은 조금씩 가슴을 흔들고, 끝내 눈물을 쏟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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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5-10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인장님, 너무 좋은 리뷰예요.
저도 지금 저 책 오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선인장 2005-05-10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 칭찬, 감사해요...^^ 이 책, 참 좋더라구요. 님도 이 책과 더불어 좋은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꺼에요...

hanicare 2005-05-1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선인장 2005-05-1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하니케어님 ............
 
불의 검 12 - 완결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좋아…. 어쩌지도 못할…
사람, 사랑, 삶…. 계속 부르면 같아져 버리는저 몇마디 때문에-
이 빌어먹을 세상이 그래도 참 예뻐….
예쁜 것들은 왠지 눈물이 나고 눈물은 왠지 노래가 되지!
창도 꽃도 될 수 없었던 내 노래.
지켜보는 것밖엔 할 수 없었던 내 두 개의 사랑.
 
그러나 정말이야, 산마로. 가슴이 뜨거운 사내여-
나도 약속을 지키고 싶어.
정말… 지키고 싶어….
 
- <불의 검> 중 붉은 꽃 바리의 대사
 
 
 
고등학교 시절 나는 교과서보다 더 열심히 만화책을 읽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나오던 <댕기>와 <르네상스>를 교과서 밑에 숨겨두고 참 열심히도 읽었다. 참고서 따위 사물함에 넣어두고 다니면서도, 나는 그 무거운 만화책들을 가방에 넣고다니며 다음 책이 나올 때까지 읽고 또 읽곤 했다. 이따금 툭 터져버린 눈물 때문에 책을 빼앗기기도 했다. 한승원의 눈물 겨운 단편들, 먼 이국의 혁명과 간절한 사랑을 그린 황미나의 엘 세뇨르, 지루하기만 했던 국사책 대신 고구려사를 흥미롭게 그려낸 김진의 바람의 나라, 그리고 불의 검...
 
십몇 년 만에야 완간된 불의 검을 다시 읽다. 퇴색한 몇몇 유물들로만 기억되는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를 살았던 그네들의 인생에 금세 마음을 빼앗겨, 나는 피곤한 줄도 모른다.
 
아라, 산마로, 소서노, 천궁과 바리... 이름도 고운 그네들은 하나 같이 문명 이전의 자연을 닮았다. 몸은 단단히 땅에 두고도 하늘을 바라볼 줄 아는 생을 온전히 살아간 그네들. 바람의 냄새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고, 공기의 움직임으로 하늘의 뜻을 이해하고, 사람과 삶, 사랑이 서로 다른 말이 아님을 피비린내 나는 전쟁 속에서도 깨닫는 그네들. 곧은 의지를 지녔지만 유연하고,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 열망때문에 타인을 괴롭히지 않고, 제 삶의 내용에 대해 끊임 없이 고뇌하지만 그로 인해 어두워지지 않는 그들. 옛날 옛적에 살았던 아름다운 사람들...
 
어느 누구 하나 미운 이 없고, 어느 누구 하나 정이 가지 않는 이 없지만, 가장 안타까운 이는 바리. 산마로에 대한, 아라에 대한 사랑을 온전히 보여주며 피를 토해내던 바리. 그이의 애처로운 웃음과 서글픈 노래는 너무도 생생해서 책장을 넘겨도 지워지지가 않는다. 아무르족도 아니면서, 그저 아무르의 노래를 사랑해서, 아무르족을 위해 몸을 파는 바리. 지극하게 아라를 사랑하고, 지극하게 산마로를 사랑해서,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온전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바리. 온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었던 바리, 바리...
 
이제, 다시 생각해 보면 이들의 삶은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삶. 소서노가 눈물을 통해 예감한 먼 미래, 하늘을 잃어버린 우리에게는 그저 당위적이기기만 한 삶. 그러니 불의 검은 아득한 옛날 옛적에 있었던 아름다운 이야기 한 토막, 꿈결에서야 들을 수 있는 바리의 애달픈 노래 한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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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4-28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의검...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싸아해집니다....ㅠ.ㅠ

mannerist 2005-04-29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시절, 야자시간에 도망친적이 딱 두 번이에요. 그 한 번을 만화방에 갔더랬는데 열혈강호와 용비불패를 보는 애들 사이에서 갑자기 땡겨 불의 검을 읽다가 쪽팔린줄도 모르고 펑펑 울어버린게... 벌써 아홉 해 전이네요. 갑자기 선인장님이 얘기하는 바리 이야기를 들으니 그때 생각나면서 가슴이 먹먹해져요. 이거. 질러야겠어요.

선인장 2005-04-29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 그렇죠? 그저 가슴 한쪽이 싸해져요...

매너님 > 열혈강호와 용비불패, 아 그것도 또 다른 재미지요... 애장판은 아직 완결이 안 나왔는데, 애장판 나오면 지르시지...

2005-05-03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