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을 보고 너무나 쉽게 반응해 버리는 내 체질 탓이라고 해도, 사람은 아무래도 자신의 글을 닮아버리는 모양이다.
아무리 읽어도 시는 나에게 높은 벽이다. 그래도 이따금, 오래오래 손에서 떠나지 않는 시집이 있다. 잠들지 못한 밤, 누구의 말도 상처가 되는 시간, 천천히 떠오르는 시들이 있기는 하다.
책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는 선물은 흔하지 않다. 이따금 전에 읽었던 책들을 넘겨보다가, 누군가의 이쁜 글씨가 속지에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아마도 내가 적어준 축하와 위로의 말들이 그들의 책장에도 숨어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라면, 그들의 영악한 눈빛까지도 서글프다. 세상이 뭔지도 아직 모르면서, 세상을 잔뜩 노려보는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은 더욱 서글프다. 그러나 그 서글픔을 통과하고 나면, 그 아이보다 더욱 어린 내 영혼은 조금 자라있다.
매일 읽기 쉬운 책들에만 먼저 손이 가지만, 어쩌다 삶이 막다른 길에 몰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그 때 나보다 먼저 벼랑에 서서 존재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 주인공들의 삶은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