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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슬픔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폭염이 물러갈 기미를 보인다는 어느 여름날, 반가운 소식 뒤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서 미처 그 기미를 알아차리지도 못했는데, 마음 한 구석이 그저 싸할 뿐이었는데, 뒤늦게야 그게 슬픔이란 걸 알아차린다. 마음이 알아차리기 전에 먼저 몸이 아프다. 신물이 넘어오고, 소화가 되지 않고, 가슴께 통증이 느껴진 후에야, 슬픔이란 걸 알아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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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묻는다. 더운데 괜찮으냐고, 일이 많은데 괜찮으냐고, 혼자서 괜찮으냐고.

그들의 질문이 괜찮다는 답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나는 괜찮지 않다고 대답한다. 더운데 괜찮겠느냐고, 일이 많은데 괜찮겠느냐고, 도대체 혼자서 괜찮겠느냐고. 전화기 너머에서 무안해 하며 머뭇거리는 그들에게, 쐐기를 박듯 말한다. 하나도 괜찮지 않다고. 나에게 괜찮다는 말을 듣고, 이 순간을 넘기고 싶겠지만, 나는 그럴 용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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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마추픽추의 사진을 붙여 놓고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높은 곳에 흔들의자를 놓고 앉아 시간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가 살았던 순간들을 오래오래 기억하면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고. 또다시 마추픽추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깨닫는다. 오래오래 기억할 무언가가 내게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혹시 마추픽추에서 돌이켜보기에 나의 시간들은 지나치게 남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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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봄바람도 아니고, 쓸쓸한 가을바람도 아니고, 좀체 느껴지지도 않을 여름바람에 혼자서 앓고 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고 나면 폭염은 물러갈 것이다. 더위가 사라지면 불면도 없어질 것이다. 조금만 편안하게 자고 나면, 가시처럼 돋은 못된 감정들도 잦아들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시간이 가는 것을 지켜볼 밖에.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 외에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런 책들.

 

김애란의 소설이 늘 좋았던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해 <두근두근 내인생>은, 그 책에 쏟아진 상찬에도 불구하고 크게 마음을 울리지 않았다. 조로증에 걸린 그 아이의 마음이 너무 조숙해서, 나는 그 삶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신간소식을 듣고도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이 책의 표지가, 이 책의 제목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흔든다.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슬픔이 출렁거린다. 어쩌면 나는 김애란을 좋았했던가 보다. 그 소설 속 인생들이 나를 위로하고 있었나 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미워해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어쩌면 조금은 편안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모난 소리를 퍼붓지 않는 것은, 마음이 넓어져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어져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이 가족이라면 나는 아직 대책이 없다. 여전히 포기는 되지 않고, 여전히 방법은 모르겠다. 표지에 담긴 이 배우들의 얼굴은 그래서 참 슬프다.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면서 이런 책들을 주문했다. 그러니까 좀처럼 책을 읽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시간은, 겨우겨우 이 책들과 보내고 나면, 여름은 이제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 속에 출렁이는 것들도 잠잠해져, 나는 다시 아무 것도 아닌 이 시간들을 평화롭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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