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발생 3시간 08분 경과 
2호선 강남역 부근



귀를 때리는 폭음과 함께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갔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포탄이 연이어 날아왔다. 우리는 아예 바닥에 엎드렸다. 포탄은 우리 뒤편, 역삼역 방향에서 진격해 오는 괴물들에게 날아가 꽂혔다. 괴물들에게서 기괴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포탄이 날아온 쪽을 보자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우리가 있는 강남역 승강장으로 전진해 오고 있었다. 교대역 방향에서 나타난 군인들이었다. 군인들을 보자 일순 마음이 놓였다. 얼마 만에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난 것인가! 

그러나 군부대의 공격은 괴물들을 더욱 흉포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괴물들은 여태껏 들은 것 중 가장 크게 포효하며 우리가 있는 쪽으로 무섭게 달려왔다. 괴물들은 쿵쿵대며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뛰어왔다. 강남역 선로에 엎드려 있는 우리는 괴물 군단과 군부대 사이에 낀 형세가 되었다.  

우리가 바닥에서 일어나 군인들 쪽으로 도망가려고 하는데, 날개가 달린 괴물들이 키에에에엑! 괴성을 지르며 벽과 천장을 타고 날아 단번에 우리의 머리 위를 넘어갔다. 괴물들은 천장에서 뚝 떨어지듯 군부대 위를 덮쳤다. 군인들은 깜짝 놀라 날개 달린 괴물들에게 기관총을 갈겨댔다. 소낙비처럼 총탄이 쏟아져 나왔지만 괴물이 아닌 동료 군인들이 맞고 쓰러졌다. 날개 달린 괴물들은 날쌘 짐승처럼 군인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대오를 흐트러트렸다. 어떤 군인은 겁에 질려 달아나다가 괴물에게 머리를 물어 뜯겨 죽었다. 질서정연하던 군부대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뒤를 돌아보니 거인 같은 괴물들이 무서운 속도로 우리가 있는 강남역 승강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대오가 완전히 흐트러진 군부대는 다급해져선 마구잡이로 포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엎드려 있는 우리 위로 굉음을 내며 포탄이 날아가더니 괴물뿐만 아니라 터널 벽과 천장에 꽂혔다. 터널 곳곳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화약과 터널 붕괴로 인해 피어 오른 매캐한 연기와 먼지가 코와 입속에 밀려 들어와 기침이 터졌다.  
나는 강남역 선로에 엎드린 채 어떻게 이 아수라장을 벗어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렸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옆쪽에 딱 우리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동그란 구멍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동그란 구멍 안쪽으로 비상시에 대피할 수 있는 승강장 아래 빈 공간이 보였다. 일단 저곳에 들어가 몸을 숨겨야겠다!  

“저기 저 안으로 들어가자! 셋까지 세고 나서 다 같이 일어나서 달리는 거야!” 

나는 승강장 아래 동그란 구멍을 가리키며 옆에 엎드려 있는 연아와 지태에게 소리쳤다. 둘은 내가 가리킨 구멍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두울! 셋!” 

외치자마자 나는 벌떡 일어나 동그란 구멍을 향해 달렸다. 내 뒤로 지태와 연아가 따라왔다. 그때 갑자기 퍼퍼퍼펑! 하는 폭발 소리와 함께 옆쪽에서 뜨거운 바람이 확 밀려왔다. 우리는 거센 바람에 밀려 순간 공중에 붕 떴다가 바닥을 뒹굴었다. 동시에 나의 귀는 청각 능력을 상실한 듯 삐— 소리만 들렸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폭발이 일어난 뒤쪽을 돌아봤다. 신분당선 개구멍이 있던 벽이 완전히 폭파되어 무너져 있었다. 개구멍에 몰려들어 아귀다툼을 벌이던 사람들은 팔다리가 잘려 나가 괴로워했다. 그나마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라진 개구멍 앞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하지만 그들의 방황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터널 천장이 무너지며 그들을 깔아뭉개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 내 교복 옷깃을 잡아끌었다. 지태였다. 나를 보며 뭐라고 소리치는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귀에선 여전히 이명만 날카롭게 울렸다. 귀가 고장나버린 것 같았다. 지태 옆에서 연아가 나에게 빨리 일어나라는 듯 손짓을 했다.  

우리는 승강장 아래 동그란 구멍 속으로 서둘러 뛰어 들어갔다. 구멍 안쪽 공간은 어두웠다. 하지만 동그란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승강장의 불빛으로 공간의 구조를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 공간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우리 앞쪽으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중간중간 옆에 동그란 구멍이 나 있어 바깥의 불빛이 들어왔다. 이 공간을 따라 계속 가다가 제일 끝에 있는 구멍으로 나가면 강남역 승강장을 지나 교대역으로 가는 터널이 바로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천장이 낮아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이동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 뒤로 몇몇 사람들이 따라 들어왔다. 우리가 구멍 속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고 따라온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밀치고 공간 앞쪽으로 달려갔다. 우리도 뒤따라 달려가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또 구멍으로 들어와 우리를 밀쳤다. 기찬이와 주댕이, 헐크였다. 나를 보면서 뭐라고 소리치는데, 귀가 고장난 탓에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아까 엄마와 통화한 이후엔 기찬이 패거리의 존재를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왜 자꾸 우리를 쫓아오는거지? 

기찬이 일행 뒤로도 계속 사람들이 들어와서 우린 서둘러 공간 앞쪽으로 이동했다. 낮은 천장에 맞춰 상체를 잔뜩 수그리고 달렸다. 목표 지점은 제일 끝에 있는 구멍이다. 귀에선 계속 이명만 날카롭게 울릴 뿐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중간중간 옆쪽에 나 있는 구멍을 통해 승강장의 상황을 살폈다. 군인들과 괴물들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마치 음소거한 전쟁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바로 앞의 동그란 구멍에서 무언가가 휙 들어오더니 앞쪽에서 달려가던 남자를 낚아챘다. 남자는 손 쓸 틈도 없이 빠른 속도로 낚아채져 짓이겨지듯 몸이 접이면서 작은 구멍을 통해 바깥으로 빨려 나가듯 사라졌다. 깜짝 놀란 우리는 구멍을 통해 바깥을 봤다. 괴물이 남자의 몸통을 물어뜯고 있었다. 괴물이 구멍에 길쭉한 팔을 넣어 남자를 낚아채 간 것이다.  

그 광경을 본 구멍 안쪽 공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선 미친 듯이 제일 끝에 있는 구멍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도 뒤따라 달리려는데 또 괴물의 길쭉한 팔이 구멍 안으로 들어와 앞에서 달려가던 여자를 낚아채 갔다. 여자는 순식간에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내 바로 뒤쪽에서도 누군가가 괴물의 길쭉한 팔에 붙잡혀 구멍 바깥으로 빨려 나갔다. 마치 두더지 게임을 하듯, 괴물들이 구멍들 속으로 손을 넣어 사람들을 하나하나 잡아가고 있었다.  

나는 빨리 이 공간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발에 접착제를 붙여놓은 것처럼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구멍 옆을 지나가다가 괴물에게 잡힐 것만 같았다. 심장이 터져 나갈 것처럼 쿵쾅거렸다. 옆에서 지태와 연아, 기찬이, 헐크, 주댕이가 서로 쳐다보면서 뭐라고 소리치더니 동시에 앞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무슨 신호를 주고받은 것 같은데 내 귀에선 여전히 이명만 울려서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한 박자 늦게 아이들의 뒤를 따라 달렸다. 그때 내 바로 앞에 있는 구멍에 괴물의 길쭉한 팔이 들어와 나를 향해 날아왔다. 깜짝 놀란 나는 비명을 지르며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멈춰서서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괴물의 손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내 앞을 스쳐 지나가며 나 대신 바로 앞에서 달리던 주댕이의 허리를 낚아챘다. 주댕이는 구멍으로 빨려가듯 날아가면서 나를 향해 살려달라는 듯 손을 뻗었지만, 내가 어떻게 해볼 틈도 없이 몸이 접히면서 작은 구멍 바깥으로 튕겨 나가버렸다. 나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주댕이를 보면서 두뇌회로가 정지된 것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단아!” 

어디선가 연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아의 목소리가 뾰족한 창처럼 내 귀에 꽂혔다. 동시에 끊임없이 귓속에서 울리던 이명이 걷히고, 갑자기 TV 볼륨을 올린 것처럼 포탄 소리, 비명 소리 등 온갖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빨리 와!” 

연아가 소리쳤다. 그녀는 제일 끝에 있는 구멍에 거의 도착해 있었다. 나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주댕이가 잡혀 나간 구멍만 지나면 제일 끝에 있는 구멍에 닿는다. 괴물은 주댕이를 뜯어 먹느라 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연아를 향해 달렸다. 연아는 구멍 밖으로 나가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연아의 손을 잡고 구멍을 빠져 나갔다.  

예상대로 강남역 승강장 끄트머리로 나왔다. 지태와 기찬이, 헐크 모두 이미 빠져나와 있었다. 바로 앞에 교대역으로 향하는 지하 터널이 펼쳐졌다. 강남역 승강장에선 군부대와 괴물들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뒤늦게 주댕이가 죽은 것을 알게 된 기찬이는 주댕이의 시체라도 찾아야 한다며 달려가려고 했지만, 헐크가 말렸다. 주댕이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본 나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해줄까 하다가 관뒀다. 지태는 계속 빨리 도망가자고 재촉했다. 나는 실랑이를 벌이는 기찬이와 헐크를 놔두고 지태, 연아와 함께 교대역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퍼퍼퍼펑! 우리 바로 뒤쪽에서 또 다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뜨거운 바람이 우리 등을 때렸다. 우린 또 한 번 공중으로 붕 떴다가 바닥을 뒹굴었다. 대체 몇 번째 폭발인가. 군인들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몸을 추스르며 일어났다. 옆쪽에 연아가 힘겹게 일어나고 있었다. 

“괜찮아? 다친 데는?” 

나는 연아를 일으키며 물었다.  

“괜찮아. 너무 많이 굴렀더니 정신이 없네.” 

연아가 대답했다. 연아의 얼굴이 지쳐 보였다.  

“빨리 와! 얼른!” 

벌써 일어난 지태가 앞쪽에서 소리치며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연아의 손을 잡고 지태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단아! 잠깐만! 잠깐만!” 

연아가 나를 멈춰 세웠다. 연아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달리려는데, 연아가 내 손을 놔버렸다. 나는 연아에게 소리쳤다. 

“왜 그래? 여기서 죽고 싶어?” 
“아니, 저기…….” 

연아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나는 할 수 없이 연아가 가리킨 곳을 봤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날개 달린 괴물이 누군가를 뜯어 먹고 있었다. 헐크였다. 조금 전의 주댕이처럼 온몸이 뜯겨 죽어가는 중이었다. 구하기엔 이미 늦었다. 지금 구하러 갔다간 나까지 죽고 말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연아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은 헐크 옆쪽이었다. 기찬이가 서 있었다. 기찬이가 뜯어 먹히는 헐크를 구하려는 것인지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양손에는 커다란 콘크리트 조각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저 자식, 설마 저걸로 괴물과 싸우려는 건가? 자세히 보니 기찬이는 두 눈의 동공이 풀린 채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찬이의 온몸이 덜덜 떨렸다.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둘 다 뭐해! 죽고 싶어?” 

지태가 달려와 나와 연아를 붙잡고 소리쳤다.  

“아니, 저 새끼…….” 

내가 기찬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새끼 뭐? 그냥 내버려둬!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우리가 뭐 저 새끼랑 챙겨주는 사이였냐? 너희들도 저 꼴 나고 싶어?” 

지태가 괴물에게 물어 뜯기는 헐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래. 지태 말이 맞다. 어서 도망가지 않으면 우리가 저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냥 가자. 어차피 기찬이랑 친한 것도 아니다. 내 알 바 아니다. 그냥 가자, 그냥 가! 

나와 연아, 지태는 다시 교대역 방향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나는 몇 발짝 가지 않아 멈춰 섰다. 연아가 설마,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지태는 제발,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미안. 나 저 새끼 두고 그냥 못 가겠다.” 

나는 뒤돌아 기찬이에게 달려갔다. 더 이상 내 주위의 누군가가 죽어가는 걸 방치할 수 없었다. 뒤에서 지태가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찬이는 여전히 벌벌 떨면서 헐크를 뜯어 먹는 괴물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기찬이 뒤로 달려들어 목을 감아 끌고 왔다. 놀란 기찬이가 끌려오면서 손에서 콘크리트 조각을 떨어뜨렸다.  

“뭐, 뭐야? 이거 놔! 놔, 이 새끼야!” 

기찬이가 나를 거칠게 밀치며 소리쳤다. 나는 기찬이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미친 새끼! 짜증나게 하지 말고 따라와! 죽으려고 환장했냐!” 
“이 씨발 놈이! 헐크 데려가야 된다고! 너희들은 너희들 갈 길이나 가!” 
“아까부터 보고 있었어! 새끼, 겁나서 덤비지도 못하고 있던게 어디서 개소리야!” 
“이 새끼가! 내가 지금 바로 저 괴물 새끼 밟…….” 
“야, 야! 잠깐만! 잠깐만!” 

기찬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태가 우리에게 다가와 소리쳤다. 나와 기찬이는 지태를 봤다. 지태는 우리가 아니라 우리 뒤쪽에 있는 괴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새끼…… 헐크 다 먹었어. 가만히 있어.” 

지태가 말했다. 
등골이 오싹했다. 우리는 얼음이 된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기찬이도 방금 전까진 괴물에게 바로 덤벼들 것처럼 허세를 부리더니 숨도 못 쉬고 가만히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연아가 손으로 입을 막고 우리 셋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태가 조심조심 뒷걸음질 쳤다. 천천히, 천천히. 괴물을 도발하지 않을 조용한 발걸음으로. 나와 기찬이도 천천히,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지태를 따라갔다. 차마 뒤돌아볼 순 없었다. 우리를 마주하고 뒷걸음질 치는 지태의 표정에서 내 뒤통수 너머의 상황을 짐작할 뿐이었다. 지태가 뒷걸음질을 멈추더니 말 
했다. 

“망했다. 저 새끼, 고개 돌렸어.” 
“뭐?”  
“튀어!” 

지태가 소리쳤다.  
나와 지태, 기찬이는 총알같이 달려갔다. 연아도 뒤돌아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넷은 교대역 방향으로 죽어라 달렸다. 바로 뒤에서 괴물이 쫓아오고 있을 것이다.  

으아아아아!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괴물의 포효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제기랄! 대체 얼마나 가까이 있는 거야!  
으아악! 비명이 들리더니 멍청한 기찬이 새끼가 넘어져서 바닥을 뒹굴었다. 이 새끼는 왜 또 넘어지고 지랄이야!  

나와 지태는 어쩔 수 없이 달리다가 멈춰서서 서둘러 기찬이를 일으켰다. 덕분에 뒤에서 쫓아오던 괴물을 보게 됐다. 놈과의 거리는 불과 10미터 남짓! 너무 가깝다. 이대론 잡히고 말 것이다! 

“으아아아! 빠, 빨리!” 

나와 지태, 기찬이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바로 뒤에 놈이 있었다. 텅. 텅. 텅. 텅. 놈이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죽음이 달려오고 있다. 이 거리에 이 정도 속도면 곧 붙잡힐 것이다. 안 된다……!    

그때 앞쪽에 갑자기 꼬맹이가 나타났다. 꼬맹이는 터널 벽 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기! 저쪽! 저쪽!” 

꼬맹이가 가리킨 곳엔 자그마한 쪽문이 있었다. 그야말로 개구멍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릴 법한 문이었다. 기껏해야 무릎 높이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가장 앞서 가고 있던 연아가 방향을 틀어 쪽문을 향해 달렸다. 가장 먼저 쪽문에 도착한 연아가 뒤를 돌아봤다.   

“빨리 들어가!” 

꼬맹이가 연아에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나도 달리면서 연아에게 빨리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어디로 가는 문인지는 몰라도 일단 살고 봐야 한다. 연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쪽문으로 몸을 날렸다. 그다음엔 내가, 그다음엔 지태, 그리고 기찬이가 차례로 쪽문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꼬맹이가 들어와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괴물이 주둥이를 들이미는 바람에 닫을 수 없었다.   

콰쾅! 쾅! 쾅! 쾅! 괴물이 쪽문 안으로 들어오려고 발버둥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괴물이 들어오기엔 쪽문이 너무 작았다. 놈은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우리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좁고 어두운 통로로 끝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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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do 2017-10-26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화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잘 보았습니다.

박지은 2017-10-31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밌어서 순식간에 다 읽었습니다! 얼른 뒷내용도 읽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