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_연금술사


 

 

요즘 파블로는 어떻게 지내요?”


디에고 모레노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뚱뚱한 남자에게 물었다. 그는 구운 닭고기를 썰어 입안에 집어넣었다. 두꺼운 입술이 닭기름으로 번들거렸다.


나도 몰라. 우리보단 잘 지내겠지, 언제나처럼.”


사내는 게걸스럽게 닭고기를 씹으며 말했다. 축 늘어진 볼살이 좌우로 흔들렸다. 퍽퍽해 보이는 흰 피부에 잔주름이 지문처럼 새겨져 있었다.


이 세상에 연금술사가 모르는 것도 있어요?”


연금술사라 불린 사내, 에르난도 가차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가 파블로한테 위치 추적기라도 붙여놓은 줄 알아? 그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어.”


그는 현재 카르텔의 보스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연락이 닿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현상수배범인 파블로는 호화로운 도피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연금술사에게 카르텔의 재정 현황을 보고받고, 그를 통해 휘하의 조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연락 받은 게 언제예요?”

“3주 정도 됐어. 몬테리아에 있다더군. 서핑이나 하면서 좀 쉬고 있겠대. 현상수배범이 서핑이라니, 웃기지 않아?”


디에고가 피식 웃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현상수배범이라는 것도 웃기지만, 현상수배범이 된 경위도 만만치 않게 웃겼다. 모든 건 라 카테드랄(La Catedral, 대성당)에서 시작됐다. 라 카테드랄은 파블레 에스코바르가 자신을 위해 만든 감옥이다.


경쟁 조직인 칼리 카르텔과 격렬한 전쟁을 치른 메데인 카르텔은 전쟁을 승리로 장식했다. 두 조직은 강화 협정을 맺었고, 칼리 카르텔은 본거지인 콜롬비아 남부의 칼리로 쫓겨났다. 메데인 카르텔은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와 제2의 도시 메데인을 장악하고 사실상 유일무이한 거대 마약조직으로 자리매김했다. 콜롬비아 정부조차 메데인 카르텔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세사르 가리비아 대통령은 미국과 콜롬비아 양국간에 범죄자 인도 조약을 체결해 메데인 카르텔의 수뇌부를 처리하려고 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외세의 힘을 빌리고자 한 것이다. 미국 법정에 서게 되면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비롯한 카르텔 수뇌부는 빼도 박도 못하고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미국 법정은 콜롬비아처럼 돈으로 매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메데인 카르텔은 정부를 상대로 결렬한 저항을 시작했다. 한동안 콜롬비아 전역에서 암살, 납치, 폭탄 테러가 끊이지 않았다. 정부도 반격에 나섰다. 경찰특공대 서치 블록(Search Bloc)을 결성해 마약상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고, 여의치 않으면 현장에서 사살했다.


혼란이 가중될수록 죄 없는 민간인의 피해는 늘어만 갔다. 가리비아 대통령은 미국과의 범죄자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도, 메데인 카르텔을 힘으로 찍어 누르지도 못한 채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렸다. 결국 가리비아 대통령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협상을 맺었다. 도처에서 자행되는 테러를 멈추는 대신, 파블로가 스스로 설계한 대궐 같은 감독에서 몇 년간 수감 생활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라 카테드랄이었다. 이 건물은 감옥이라기보다는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휴가를 보내는 별장에 가까웠다. 라 카테드랄에는 주기적으로 술과 음식, 창녀들이 제공되고 부하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카르텔의 사업에 관해 의논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감옥에 앉아서 여전히 메데인 카르텔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라 카테드랄에 들어간 후, 카르텔의 수입을 조금씩 빼돌리는 쥐새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형식적인 수감이기는 하지만 보스가 감옥에 들어갔으니 그 틈을 타 비행을 저질러도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감옥 안에서도 카르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콜롬비아 전역에 그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정보원들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쥐새끼들을 라 카테드랄로 유인해 손수 처단했다. 그는 부하들을 시켜 그들을 은밀히 암매장했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는 법이다. 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콜롬비아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가리비아 대통령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그는 라 카테드랄에 군대를 보냈다. 어떻게든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체포해 미국에 보내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양측의 교전이 벌어졌고,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유유히 탈옥했다. 그에게 매수된 군부의 유력 인사가 퇴로를 알려주었다는 풍문이 돌았다. 그렇게 해서 탈옥수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현상수배범이 됐다.


디에고는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재개발이 한창인 구시가지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그와 에르난도는 오래된 호텔 카사 메디나 보고타 최상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이 있었다. 근방에 있는 건물 중 가장 높았기 때문에 이곳에 서면 보고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뭐가 보이나?”


에르난도가 물었다.


폐허가 보이네요.”


디에고가 말했다. 부서진 건물들과 파헤쳐진 도로. 공포영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뿌연 분진 속을 서성이는 포크레인과 불도저. 이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폐허가 유일했다. 에르난도는 못마땅한 듯 포크로 접시를 툭툭 쳤다.


폐허라니. 저건 희망이야 희망.”


에르난도는 이 폐허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환갑이 지날 무렵, 그는 카르텔의 일선에서 물러나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마약 산업에서 손 떼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내가 왜 이 맛없는 레스토랑에 왜 만날 죽치고 있는지 아나? 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싶어서 그래.”


에르난도가 기름기 묻은 나이프로 폐허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 눈엔 그냥 폐허일 뿐이에요. 재개발이니 뭐니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제가 관심 있는 건 그 늑대라는 놈뿐입니다.”


디에고의 말에 에르난도가 포크를 내려놓았다.


수소문해봤지만 건진 게 없어. 늑대라는 단어 하나 가지고는 곤란해. 뒷골목 양아치 새끼들도 제가 보고타의 늑대니 뭐니 하면서 폼 잡는다고. 정보가 더 필요해.”


웨이터가 접시를 치우고 음료를 내왔다. 디에고는 차가운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도 답답한 마음은 시원해지지 않았다. 에르난도가 커피잔을 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늑대란 놈은 자네에 대해 어떻게 알았을까? 자네도 알다시피 동물농장에 대해 아는 건 나와 파블로, 자네…….”

, 저도 알아요. 우리 셋뿐이죠.”

더 있지.”


에르난도가 말했다.


우리 조직원들을 의심하는 겁니까?”


디에고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로마가 왜 무너졌는지 아나? 외세의 침입 때문이 아니야. 스스로 망한 거야.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갔거든.”


에르난도는 무심하게 커피를 들이켰다.






 <슬픈열대>

  7월 14일 출간예정


  [연재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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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표: 7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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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do 2017-07-12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분하게 읽어보니 재미있네요. 곧 출간이군요.

믹스 2017-07-12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벌써 출간이라니 기대가 되네요! 제목이랑 글 분위기가 잘 어울려요 뒷내용이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