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뒤두 사람은 연희동에 있는 김경자 사모 주택 앞에 서 있었다.

페라리 할배는 이제 그만 보내드리시지.”

수철의 놀림에도 불구하고 한준은 흔들리지 않았다전화를 끊자마자 급히 친애하는 파트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미남당에 들러 필요한 물건들을 대략 챙겼다이동은 택시로 했다.

출장비 단단히 받을 거야.”


간만에 마음에 드는 와인을 발견하고 병을 땄던 찰나라한준은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취하지는 않았으니 다행인가 싶으면서도병째로 딴 와인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은 불행이었다한준은 사무실에서 제일 먼저 챙겨온 뿔테 안경을 추어올리며 인상을 썼다

다짜고짜 귀신이라니뭔 소리야?”


수철이 택시 뒷문을 닫으며 물었다

?”


한준이 되물었다택시 안에서는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 사모가 귀신 봤다며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데?”

수철이 인상을 쓰며 눈을 위로 치켜떴다그 모습을 백미러로 본 택시 기사는 조용히 볼륨을 줄였다

요즘 밤마다 부엌 쪽에서 뭔가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나서 쥐가 있나 생각했는데방금 전 사람 형체를 봤대.”
그럼 도둑 든 거 아냐?” 
그래서 CCTV도 돌려보고 그랬는데사람은 코빼기도 안 찍혔대며칠 동안 감시해도 갑자기 나타났다가 너무 홀연히 사라지니까김 사모가 사람 아닌 거 같다고 겁먹었어.” 


한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택시가 목적지 앞에 멈춰 섰다연남동과 연희동은 바로 맞붙어 있어서 그다지 멀지는 않았다막상 대화가 흥미진진해지려던 찰나에 끊긴 탓인지택시 기사는 노골적으로 아쉬워했다한준은 택시비를 지불한 뒤 내렸다.

자세한 건 나도 모르겠어김 사모한테 이야기 들어봐야지.”


한준과 수철은 눈앞의 커다란 저택을 쳐다보았다
김경자 사모의 집은 길고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대략 세 발자국 간격으로 심어진 키 큰 나무들이 위협적으로 방문자들을 굽어보는 중이었다넝쿨 식물들은 담장을 감싸 안은 채 사선으로 길게 뻗어 있었고정문에는 CCTV로 짐작되는 카메라가 보였다

집 죽이네이런 데서 살려면 대체 얼마를 벌어야 돼?” 

수철이 담배를 물었다.

몇 년 정도만 더 고생하자고.”

김경자 사모의 저택을 쳐다보는 한준의 눈빛이 야심으로 번뜩였다.

퍽이나.”

수철은 비웃듯 입술을 이죽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어둠 속에서 빨간 점 하나가 번쩍 눈을 떴다가 화르륵 소리를 내며 사그라졌다한준은 도도한 눈빛으로 턱을 치켜들었다

“4년 전하고는 달라이제 이런 꿈 꿔도 된다고.”

한준은 눈을 뜨고 있는 건지 감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일하는데도버는 돈은 쥐꼬리만 하던 4년 전을 생각하면 그저 눈물이 앞을 가렸다한준은 그런 과거와 작별한 자신이 기특하다는 듯 몸에 걸친 정장을 쓰다듬었다무려 샤맛의 맞춤 정장이다반년 전이탈리아로 날아가 스케줄 맞추기 빠듯하다며 거절하는 디자이너에게 웃돈까지 주어가며 맞춘 옷이다이탈리아에서 직접 맞춘 정장이라니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한준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쭉 폈다

두고 봐나중에 나라님 정도는 혓바닥 위에 올려놓고 스리런 홈런 한 방 칠 거니까.”


훗날 그는 눈앞에서 벌어진 믿기지 않는 사건들 속에서 허우적대며 말이 씨가 됐어라고 후회하게 되지만이건 달력 하나로 세기에는 부족할 만큼 먼 미래의 일이다지금의 한준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그 누구도 자신이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에게 쫓기며 목숨의 위협을 받는 미래를 꿈꾸지는 않는 법이니까

안 들어가냐?”

수철이 근처 배수구에 담배꽁초를 버렸다탁 소리와 함께 담배가 배수구에 부딪치더니옆에 반쯤 열린 하수구 뚜껑 사이로 굴러 들어갔다담뱃재 사이에 드문드문 섞인 빨간 불티가 한준을 향해 날아들었다한준이 정색하며 손을 휘저었다

이게 얼마짜린데조심해줘.” 
좀팽이처럼 굴지 마.” 

한준은 한 손에 쇠방울을 움켜쥔 채김경자 사모의 집 정문 초인종을 눌렀다

선생님!”

문을 열어주는 김경자 사모의 안색은 평소보다 유달리 어두웠다한준을 보고 잠시 안도하는 표정을 짓더니뒤따라 들어오는 수철을 보고는 
에그머니나!” 소리치며 노골적으로 놀라고 말았다

선생님이분은 누구세요?”

김경자 사모가 미심쩍은 눈길로 물었다수철은 나름 서비스업의 애환이라고 생각했는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김경자 사모는 히익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다.

내 신아들일세.”
신아들이요그동안 뵌 적이 없는데.” 

김경자 사모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철과 한준을 번갈아 보았다.

자네가 내 안사람도 아닌데 일일이 다 소개시켜줘야 해?” 


한준이 호통을 치자 김경자 사모는 얼른 눈을 내리고 어깨를 움츠렸다.

에구 아닙니다선생님.” 


한준은 수철을 돌아보며 뿔테 안경 모서리를 추어올렸다.

자네나는 안쪽을 둘러볼 터이니 자네는 밖에서 잡귀들이 못 들어오게 막고 있어.”
네이이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십시오.”

졸지에 신아들이 된 수철은 불효자식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나갔다김경자 사모는 한준의 안경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선생님안경도 쓰세요처음 보네.”
그런가?”

한준이 헛기침을 했다그때 한준의 귓가에서 혜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빠안경 잘 잡아안 보여!
  

혜준은 시선이 묘하게 아래쪽으로 쏠린 왼쪽 모니터 화면을 보며 소리 질렀다한준이 방금 전까지 바라보고 있던 지점이 고스란히 모니터에 비치고 있었다혜준이 있는 방에는 커다란 책상이 있고그 위에는 고성능 컴퓨터 세 대와 노트북 두 대스탠드 마이크 한 개가 놓여 있다벽면에는 커다란 모니터 두 개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는데왼쪽 모니터로는 김경자 사모의 집 내부가 보이고 오른쪽 모니터로는 집 바깥쪽 상황이 보인다모두 다 실시간이었다

한준의 안경에는 초소형 카메라가 붙어 있고 넥타이에는 마이크가 장착되어 있다뛸 때 불편하다고 하여 수철은 목 칼라 부근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달았다남들이 볼 때는 영락없이 평범한 단추일 뿐이지만두 사람이 현장을 둘러보며 영상을 송출하면혜준은 그 자료를 지켜본다그러다 한준이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특정한 손짓으로 관련 정보를 요청하는 신호를 보내면혜준은 재빠르게 실시간으로 찾아 정보를 제공한다보통은 메시지를 보내거나 말을 해준다한준과 수철 둘 다 귓속에 음향 수신기를 부착하고 스마트 워치를 찬 상태이므로 정보를 수신하기 용이했다평소에는 생존 여부 확인을 위해 빗자루로 찔러봐야 할 만큼 게으른 혜준이지만일을 할 때만큼은 자타가 공인할 만큼(그래봤자 한준과 수철이 전부지만) 재빠른 속도를 자랑했다하지만 지금은 현장을 지켜보는 일 외에는 할 게 없다혜준은 하품을 하며 벽시계를 쳐다보았다오빠들이 후딱 일을 끝내길 바라며,혜준은 책상 구석에 놔둔 도넛 상자를 열었다
  
한준은 요란스레 쇠방울을 흔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김경자 사모가 한준의 기세와 쇠방울 소리에 긴장한 틈을 타재빠르게 흔적을 찾았다

주방 쪽으로 다가가자눈에 띄는 게 있었다한준은 날카롭게 풍경을 훑었다깨끗하게 정리된 다른 공간에 비해 밥솥 뚜껑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창문은 살짝 열려 있으며무엇보다도 이상한 냄새가 났다한준은 쇠방울 흔들기를 멈춘 채김경자 사모를 홱 돌아보았다

여기렷다!” 





-연재 이벤트-
<미남당 사건수첩>연재기간 동안 
캐비넷 서재를 즐겨찾기해주시고
덧글 + ♥ 를 남겨주시는 
3분에게 
<미남당 사건수첩>출간본,
10분에게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30분에게
 <엿츠 미니세트>  드립니다.
( 발표: 4월 16일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스파이스트리 2018-05-0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님이 누구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