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시계가 째깍대며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예은은 차가운 표정으로 두진을 쳐다보았다. 두진은 애써 시선을 피해보려 했지만, 바로 옆자리인 탓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두진은 시선을 허공에 던지며 딴청을 피웠다.
“아까 잡아온 놈은 처리 다 끝났어?”
“보고서 다 써놨습니다. 결재 바로 올릴까요?”
두진의 얼굴 한쪽이 일그러졌다.
“내일 올려.”
“그럼 업무 이야기 좀 해요.”
예은의 말투는 단호했다. 두진은 결국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글쎄,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사건이 몇 개야? 지금 이거 매달리고 있을 때야?”
“그냥 넘어가기에는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나는 네가 신경 쓰여서 뒷골이 당긴다. 아냐?”
두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했다는 듯 예은은 그의 앞을 막아선 채, 프린트물에 인쇄된 앳된 여성 사진과 CCTV에서 캡처한 사진 두 장을 번갈아가며 짚었다.
“두 달 전 도화동에서 실종 신고 접수된 강은혜 말입니다. 이 CCTV에 찍힌 위치로 보아 마포역 쪽으로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일대를 탐문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주 김전일 납셨네.”
두진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기다리라고 몇 번을 말했어?”
“두 달이나 지났습니다.”
“기다리는 가족 입장에서는 ‘두 달이나’지만, 가출한 입장에서는 ‘두 달밖에’인 경우도 많아. 남자 친구 때문에 가출한 게 뻔하다니까.”
두진은 손가락으로 프린트물을 톡톡 건드렸다.
“하지만, 선배님.”
“아씨, 그 하지만 좀 하지 말라니까 진짜!”
두진은 손으로 뒷골을 잡으며 삿대질을 했다.
“이 꼴통 새끼, 말 진짜 안 듣네. 야, 봐봐. 강은혜 얘 열여덟 살이지? 너, 이 나이 때 애들이 얼마나 어마무시하게 가출하는지 알아 몰라?”
예은은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문 채 묵묵히 두진의 말을 들었다.
“네가 그 난리 안 쳐도 얼마 안 있으면 돌아올 가능성이 구십 프로야. 우리가 괜히 일하기 싫어서 이러는 거 아니니까, 소년 탐정 씨는 오늘 당직이나 무사히 끝내.”
두진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두진을 가만히 쳐다보던 예은은 의자를 빙글 돌려 책상에 바로 앉았다. 그 모습을 본 두진은 에이 씨, 하면서 가느다란 한숨을 쉬었다.
“야, 한귀.”
예은은 여전히 고집스러운 눈빛이었다.
“거…… 열심히 하고 집요하고 이런 거 형사로서 백 점인데, 그래도 이 짓 오래 하려면 적당히 하고 넘어갈 줄도 알아야 돼. 혼자 일하는 거 아니잖아.”
나 화낸 거 아니다, 하고 두진은 멋쩍게 예은의 어깨를 툭 쳤다.
“알겠습니다.”
예은은 마뜩잖은 얼굴로 대답했다.
“에이, 너 때문에 담배 한 대 더 피워야겠다. 야, 진명이랑 동우. 가자.”
두진은 강력반 2팀의 막내 라인인 양진명과 유동우를 데리고 나갔다. 예은과 두진의 책상 맞은편에 앉아 있던 같은 팀의 김재우, 이홍식 형사가 슬쩍 예은 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선배, 장 선배도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너무 마음 상하지 마.”
“알아.”
김재우가 예은의 어깨를 툭 쳤다.
“재경부에서 그러는데, 장 선배 지난달에 대출 또 받았대. 형수님 병원비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은 거 같아.”
“또? 차도가 좀 있으신 줄 알았는데.”
예은은 눈썹을 치켜떴다.
두진의 아내는 지난달에 급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쓰러진 상태였다. 딱히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두진은 부쩍 눈에 띄게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예은은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였다.
“아이 씨, 그러면 내가 또 미안하잖아.”
예은은 툴툴대며 두진의 책상을 보았다.
여느 형사들의 책상이 그렇듯, 처리해야 할 파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예은은 가벼운 경범죄 파일들을 자신의 자리로 옮긴 뒤, 업무를 시작했다.
“좀 도와줘?”
김재우가 넉살 좋게 물었다. 예은은 눈을 가볍게 흘겼다.
“됐습니다. 요즘 결혼 문제로 엄청 싸우고 있다며. 가서 여자 친구랑 통화나 한 번 더 하고 와.”
그 말에 김재우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연애만 하면 될 줄 알았더니, 현실이 만만찮네요. 박봉 월급 때문에 차이게 생겼어.”
그러고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
한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건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한준은 수철과 함께 오겹살을 거나하게 해치운 후, 2차로 연남동의 캐주얼 다이닝 바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이런 데는 불편해.”
수철이 투덜댔지만, 한준은 개의치 않았다.
“1차는 네 취향으로 갔으니, 2차는 내 취향으로 가야 형평성이 맞지.”
대꾸 대신 수철은 길게 트림을 했다.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주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한 번씩 돌아볼 정도였다.
“너 인마…….”
한준이 한마디 하려는 순간, 테이블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의 개인 번호를 아는 사람은 혜준이, 맞은편에 앉아 흡사 소인을 잡아먹는 거인처럼 카나페를 해치우는 중인 친애하는 파트너 수철이, 그가 VIP로 생각하는 몇몇 고객들뿐이다. 한준은 와인 잔을 내려놓고 발신자를 확인했다. 익숙한 이름이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