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면, 오늘 낮에 미남당을 찾아왔던 머리 반 벗겨진 아저씨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 한준은 아저씨가 미남당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정확하게 맞췄다. 회삿돈을 들고 도망간 내연녀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는 상황을, 아주 귀신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읊어댄 것이다. 당연히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 혼비백산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점의 지읒 자도 모르는 한준이 남자가 처한 상황을 어찌 알았느냐? 단서는 이 남자가 전화를 걸어 예약을 요청한 순간부터 시작된다. 

고객들은 보통 한준이 있는 점집에 직접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접수는 한준과 연계된 협력업체─라 쓰고 소규모 흥신소라 읽는다─에서 담당한다. 요즘 전화기는 발신자의 전화번호가 뜬다. 그러면 협력업체는 번호를 토대로 신속하게 예약자의 최근 신상을 파악, 혜준에게 단서를 제공한다. 

혜준은 여러 단서들을 토대로 인터넷에 남아 있는 고객의 개인 정보를 수집해오거나 여러 사진, 문서들을 모아 분석한다. 필요하다면 관련 사이트도 아낌없이 해킹한다. 이 정보들을 토대로 한준은 최종 분석을 한다. 그 후 고객의 이름과 기타 문제 등을 달달 외운 뒤, 상황에 맞춰 그럴 듯하게 알아맞히는 연기를 한다. 미남당은 오직 예약제로만 운영하므로 스케줄 조절만 잘 하면 숙지할 시간은 충분하다.  

그냥 말만 하면 뭔가 심심하니, 다 된 국에 조미료 넣듯 쌀을 뿌리거나 접신한 것처럼 표정 연기를 하며 점을 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오늘 찾아온 아저씨에게는 특별히 소리를 질러주었다. 남에게 명령 내리는 일이 익숙한 이들은 되레 자기가 호통을 들을 경우 당황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선제압이다.  

이차저차 하여 ‘나는 지난밤에 네놈이 한 일을 알고 있다’적 상황을 만든 뒤, 부적을 쓰라고 강권하여 일주일에서 이 주 정도의 시간 여유를 번다. 오늘처럼 뭔가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의 친애하는 파트너인 협력업체 사장에게 의뢰한다. 너무 복잡한 건수일 경우 한준도 함께 움직일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점집에 찾아오는 이유는 거의 뻔하다. 저 언제 결혼할까요, 제 반려자가 바람난 것 같아요, 사업이 잘될까요, 어떻게 해야 일이 풀릴까요, 기타 등등. 전부 다 비슷한 이유다. 한준이 직접 나서야 할 만큼 복잡한 일은 거의 없으므로 그는 주요 VIP에게만 심혈을 기울여 관리를 한다. 

미래에 관한 질문은 어떻게 하느냐. 그 사람에 관해 조사한다. 생활 습관, 어떤 책을 읽는지, 무슨 영화를 좋아하는지, 노래는 뭘 듣는 지 등등. 아주 사소한 정보까지 싹 쓸어 모은다.  

어떻게 이런 것들로 미래를 알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사소한 요소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격체와 삶을 형성한다. 세세한 면모들을 잘 파악해두면, 신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한준이나 당신이나 똑같이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타인의 앞날을 예측하고 자신의 기준을 토대로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는 점에서 지구상의 모든 이들은 점쟁이인 셈이다. 단지 한준의 분석이 일반인들보다 예리하고 날카로울 뿐. 

어떤 이들은 단순히 전화번호 하나로 이 모든 사실을 어떻게 알아내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기 일쑤니까. 그런 이들에게는 조용히 되묻고 싶다. 중국의 보이스 피싱 범죄자들은 피해자의 식구들 이름이나 근무하는 회사명을 무슨 수로 알았을까?  

보이스 피싱 범죄자들과 미남당 팀원들의 실력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모욕이지만 관대하게 넘어가기로 한다.  

그렇다면, 점괘가 틀린 경우는 어떻게 하느냐? 좋은 질문이다.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가, ‘네가 그런 식으로 해서 안 된 거야’라고 면박을 주면 대부분 수긍한다. ‘이렇게 될 거다’라고 이야기해주면 그와 무관한 상황이 발생해도 알아서 점괘에 자신의 사정을 끼워 맞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나름 정당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도출한 결과를 이야기해줄 뿐인데, 혜준은 한준이 하는 일을 싫어했다. 어떤 말로 포장해도 이건 사기라면서. 각종 인터넷 해킹 및 컴퓨터 프로그램 기술로 일을 도우며 꼬박꼬박 월급을 타가는 혜준이 할 말은 아니라고 한준은 생각했다. 하지만 전에도 이런 식으로 한 번 따졌다가 십 원짜리 한 푼 못 남기고 통장 계좌를 털린 전적이 있으므로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기만 했다.  

혜준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욕실로 들어갔다. 이내 물줄기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씻는다는 개념은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한준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정산을 마무리했다. 장부는 서류 가방에, 돈은 한준의 방에 있는 비밀 금고에. 

대걸레를 가져와 물걸레를 끼운 뒤, 아까 비듬이 쏟아져 내리던 동선을 쫓아 열심히 바닥을 닦았다. 한참을 청소에 열중하고 있노라니, 욕실 문이 열리며 혜준이 나왔다.  

“아침에 청소하지 않았어?” 

혜준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물었다. 방금 전 오븐에서 꺼낸 찜기처럼 몸에서 부연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있었다.  

“지금은 저녁이잖아.”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사실 아닌가. 왜 저런 질문이 나오는지, 한준은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혜준은 엑 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게 깔끔 떠는 것도 병이야. 결벽증 아니냐?”  

그러고는 휭하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내가 결벽증인 게 아니고 네가 너무 더러운 거다’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한준은 동생을 사랑하는 자상한 오빠이므로 오늘도 참는다. 혜준을 화나게 했다가 힘들게 번 오늘의 수입이 낯선 계좌로 빨려 들어갈까 봐 두려워서 이러는 건 결코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한준은 마른걸레질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한 후, 쓰레기도 몽땅 내다 버리고 왔다. 집 안에 존재하는 더러운 이물을 용인하느니 눈에 흙을 뿌리고 말겠다는 게 한준의 입장이었다. 내친김에 혜준의 방도 청소하고 싶었지만, 혜준은 자신의 사생활 보안을 목숨처럼 중히 여기므로 애써 참았다. 

갈증을 느낀 한준은 냉장고를 열었다. 얼마 전 마트에서 사온 프랑스제 탄산수가 일렬종대로 늘어서 있었다. 그 밑으로 각 잡힌 채 반듯하게 자리한 반찬통들도 보였다. 한 치의 어긋남 없는 깔끔한 정렬들을 보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탄산수를 한 통 꺼내 마시는데, 혜준의 방문이 열렸다. 그쪽으로 흘깃 시선을 던지던 한준은 입에 머금고 있던 액체를 전부 뿜어냈다. 

그곳엔 웬 모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연한 자줏빛 원피스에 진갈색 울 코트 차림이었는데, 소맷단과 치맛자락 끝부분에 달린 주름 장식이 그녀의 우아함을 돋보이게 했다. 깨끗한 흰 피부에 발그레하게 물든 볼, 장밋빛 입술, 이국적으로 느껴질 만큼 투명하고 맑은 갈색 눈동자는 지나가던 이들이 한 번쯤 뒤돌아볼 만큼 화사했다.  

한준은 격하게 두 눈을 부빈 뒤, 여자의 정체를 깨닫고는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미친, 또 속을 뻔했네.”  

너무 오랜만에 본 모습이라 혜준의 대외용 얼굴을 잊고 있었다. 혜준은 현관 벽에 붙어 있는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덧발랐다. 살짝 진하다 싶을 만큼 붉은 입술을 보며 한준은 얼굴을 찌푸렸다. 

“어디 가는데?” 
“데이트.”  
“또 어떤 불쌍한 놈에게 사기를 치려고…….” 

한준은 혀를 쯧쯧 찼다.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저녁 먹어. 늦게 들어온다.” 

혜준은 이 한마디를 남기고 문 너머로 사라졌다. 욕실에 들어가기 전후가 어찌 이리 다를 수 있단 말인가. 한준은 한껏 치솟은 닭살을 쓸어내리며 심호흡을 했다. 그렇잖아도 며칠 후에 구의원 한 명이 점을 보러 온다 하니, 사기의 범주를 좀 더 넓히는 법안을 발의해보라고 조언을 해 봐도 좋을 것 같았다.  

한준은 거실에 놓인 전화기 앞에 섰다. 우리의 친애하는 파트너─흥신소─에게 전화를 걸까 말까 약 삼 분가량 고민했다. 흉흉한 이 세상에 여동생이 어떤 놈을 만나고 다니는지 정도는 알아두는 게 오빠로서 당연한 도리가 아닐까 싶었지만, 자신의 사생활을 캐고 다닌다는 걸 알면 통장 계좌 하나 날리는 정도로 끝내지 않을 혜준이었다. 한준은 여동생의 의사를 존중하는 너그러운 오빠이므로 결국 수화기를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  

이건 여동생을 걱정해서 하는 행위가 아니다. 혜준의 마수에 걸려들 그 순진한 남자가 같은 종족으로서 걱정되어 그럴 뿐이다. 나중에 속았다며 한준 앞에서 울기라도 하면 곤란하잖은가.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한준은 친애하는 파트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동생 데이트 나갔어. 어디서 뭐 하고 사는 놈인지, 혜준이 떡볶이만 먹이고 다닐 놈은 아닌지, 다른 여자는 없는지, 인성은 됐는지, 싹 다 조사해줘.”  

친애하는 파트너는 존중의 의지를 담아 한준에게 말했다.  

─미친 놈, 작작해. 너 그거 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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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 4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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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loe 2018-04-14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외용얼굴ㅋㅋㅋㅋㅋ현실경험이 녹아있어 즐겁게 몰입할 수 있네요 유쾌한 플롯을 따라 가다보면 금세 결말에 닿아있을 것 같아요

스파이스트리 2018-05-01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차혁명을 이용하다니...이정도면 드라마제작도 시간문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