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777-17번지에는 빨간 대문 집이 하나 있다. 요사스런 기운을 풍기는 대문 색깔만큼이나 <미남당>이라고 쓰인 간판과 주소지 역시 요상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일 찾아오는 이들로 인해 문지방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분주하고 시끌벅적하다. 매일같이 예약이 미어터져 자신의 순번이 돌아오기까지 한 달이 넘는 일도 부지기수이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이곳을 찾아오려고 아우성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창호지가 덧발라진 장지문을 드르륵 열고 방 안에 들어오는 순간─.
라고 귀청이 떨어져라 고함을 지르는 이가 있는데, 다짜고짜 욕 들어먹은 당신이 항의할 틈도 없이 일갈이 이어질 것이다. 헌데 그 내용이 기가 막히다.
“딱 보니까 마누라 버리고 딴 년이랑 뒹굴다가 뒤통수 맞았구먼. 그년이 네 돈 먹고 토꼈으면 아이고, 천벌 받았구나, 하고 벽보며 반성할 일이지. 뭘 잘했다고 여길 꾸역꾸역 기어들어와?”
이렇게 상황을 바로 맞춰버리고 마니, 쩍 하고 벌어지는 입을 무슨 수로 말리겠는가? 당신은 어벙벙한 얼굴로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다. 얼굴을 보자마자 상황을 훤히 꿰뚫어 보는 신묘함도 그렇거니와, 일반적으로 ‘박수무당’하면 떠오르는 모습과 전혀 상관없는 남자의 차림새 때문이다.
간혹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분위기가 바뀔 때도 있지만, 종이를 갖다 대면 베일 듯 똑 떨어지는 맞춤 정장 차림에, 머리에는 포마드를 듬뿍 발라 아무나 소화할 수 없다는 8:2 가르마를 스타일리쉬하게 소화한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밀라노 패션 위크에 참석 중인지 점집에 와 있는지 헷갈리겠지만 점을 보러 온 본래의 목적은 잊지 않도록 한다.
그의 서늘한 눈빛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맞은편 미남자의 용함을 문득 깨달은 당신은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으며,
“아이고,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 돈 없으면 회사 쓰러집니다. 어디 가서 찾을 수 있습니까?”
하며 엉엉 울음을 터트릴 것이다.
여기서 끝나느냐? 아마추어처럼 섭하게 왜 이래. 물론 아니지.
처음에는 흥흥대며 콧방귀를 줄기차게 뀌어대던 박수무당도 방문객이 간절하게 빌고 또 빌면,
무심하고 시크하게 한 마디 툭 할 터이니, 이 순간을 대비해 절대적 불문율 하나를 암기하도록 한다. 마음속에서 ‘아니, 왜? 굳이 부적까지는 필요 없는데?’ 라는 의구심이 오래 삶은 달걀 옆구리처럼 튀어나온다 하더라도 감히 입 밖에 표출해서는 아니 된다. 그딴 말을 해봤자 돌아오는 건─
“감히 어디서 부정 타게 왜는 왜야? 돈 찾기 싫은가보지? 썩 안 꺼져?”
라며 박수무당이 들고 있는 쇠방울로 사정없이 정수리를 두드려 맞게 될 테니까. 그깟 방울, 이렇게 치부하지 마시라. 그랬다가는 쇠방울 흔들릴 때 나는 소리가 내면에서도 울리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될 테니.
여기까지 오면, 지금까지 박수무당을 붙잡고 사정한 사람도 당신이거니와 사람 심리가 또 묘해진다. ‘아아, 이 사람은 돈 따위가 중요하지 않은가 보다. 그래, 내가 지금 중한 게 뭣인데!' 하며 박수무당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게 된다. 허나 이미 심사가 뒤틀린 박수무당은 결코 순순히 부적을 내어주지 않을 터.
그럴수록 당신은 애가 닳겠지. 그게 사람이니까.
당신의 바지 무릎단이 반들반들해질 정도로 바닥에 엎드려 빌어도 부적을 써주고 안 써주고는 박수무당의 마음이니, 괜히 심기 거스르지 말고 부적 쓰고 가랄 때 냉큼 “네, 알겠습니다” 해야만 한다는 걸 명심하도록.
이 말을 듣는 데 성공했다면?
냉큼 현찰을 꺼내 복채를 지불한 뒤 썩 물러가라. 참고로 여기 복채는 평균 오만 원하는 다른 점집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싸니, 돈 없고 현찰 없으면 애초에 이 집 근처도 오지 마시라. “카드도 돼요?” 라든가 “요즘 카드 안 되는 데가 어디 있어요?” 따위의 토는 꿈속에서도 달지 말 것. 얼굴 어딘가에 방울 하나 박힌 채 쫓겨날 테니까.
이 불문율만 잘 지킨다면, 일주일 후 당신이 운영하는 회삿돈 들고 튄 내연녀가 어디서 딴 놈과 빌붙어 먹고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된다. 이런 각고의 인내의 시간을 거쳐 당신은 이 박수무당을 거쳐 간 수많은 이가 그러했듯 ‘팬. 입. 덕’의 길로 들어설 게 뻔하다. 정장이 잘 어울리는 차갑고 도시적인 남자,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던 전무후무한 스타일리쉬한 무당! 바로 그가 연남동의 명물 남한준이다.
나이는 청춘과 성숙이 동시에 무르익어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발한다는 서른 넷. 키는 행운의 숫자인 백 칠십칠인데다 눈도 똘망똘망하고 신수도 훤하다. 좋아하는 건 인테리어 분위기 죽이는 레스토랑에서 비싸고 고급지고 양 적은 음식 먹기, 달달한 디저트, 예쁜 아가씨, 신사임당이 그려진 현찰. 특히 <현찰> 부분은 고딕 이탤릭체로 진하게 표기 후 밑줄을 쳐둘 것.
싫어하는 건 매운 음식, 화장실 더러운 식당, 왜 카드 안 되냐고 난리 피우는 진상 손님. 취미는 ‘힙’한 ‘핫 플레이스’ 찾아가기며 이상형은 숏 단발이 잘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이목구비에 허리는 쏙 들어가고 골반 넓은 고양이 상의 여자다. 그의 신묘한 점괘에 반해 쫓아다니는 미인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는 일에만 몰두하는 프로페셔널한 사람이고 눈은 저 하늘에 달려 있어 웬만한 여자에게는 흔들리지 않는다. 고로 김치국은 각자의 집에서 마시도록.
자, 여기서 질문이 하나 나올 법하다. 연남동 박수무당에 대해 어찌 그리 잘 알고 있느냐고?
그거야 쉬운 일이지. 그 박수무당─
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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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 4월 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