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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총을 소지했다고?

꾸벅꾸벅 졸던 예은은 옆자리에서 버럭 들려온 고함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출동 준비해총 가진 놈 있다니 무장하고.
전화를 내려놓은 두진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총이라고요?
평소 표정에 거의 변화가 없는 예은이지만이번만큼은 놀랐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니미오늘의 운세가 어째 그 모양이더라니, 2출동 준비.” 
두진이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강력반 내부에 긴장감이 감돌았다총기 소지라니대한민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건은 아니다믿기지 않는 신고 접수에 다들 놀라워하며 총을 챙겼다

“아직 사고 난 건 없지?
“어바로 신고했나 봐.

앞서 달려가던 양진명과 유동우가 잔뜩 긴장한 채 대화를 주고받았다.
예은은 급히 차량 뒷좌석에 올라탔다대체 얼마나 맛이 간 놈이기에 도심 한복판에서 총을 들고 있단 말인가상상이 되지 않았다예은은 다급히 두진을 뒤쫓아 나갔다
 
수철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달아나는 여자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골목이 어두워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분명 마지막에 휴대폰을 꺼내 
“여보세요경찰이죠여기 초…… 총이!라고 외치는 소리는 들었다

“니미망했네너 때문인 거 같은데동의하냐?
수철은 잔뜩 인상을 쓰며 멱살을 쥐고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움찔대며 떨고 있는 남자는 비쩍 마른 체격에 지저분한 옷을 입고 있었다수철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김경자 사모의 집을 나온 이후수철은 한준의 사인에 따라 담벼락을 돌며 이상한 흔적이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지금까지 미남당을 운영하며 여러 사람들을 겪어온 결과기묘하다며 벌어지는 일들의 대부분은 사람이 원인인 경우가 많았다하지만 간혹 과학의 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일도 있음을 역시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김경자 사모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 초자연 쪽이면 무조건 튀는 거다.

한준과 수철은 초인종을 누르기 전 그렇게 합의했다
도둑이 침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수철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길가를 유심히 살폈다한준이 보낸 신호대로 바깥을 확인해보니앞쪽 담장의 넝쿨들에는 찢겨진 흔적이 없었다버젓이 길가에 나와 있는 데다 방범 장치까지 설치되어 있어서정문으로 뭔가가 침입했을 가능성은 없었다수철은 곳곳을 살피며 혜준에게 지형을 송출했다

─오빠가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 없냐는데뒷마당 쪽 하수도관이 오빠가 서 있는 쪽 하수구와 연결되어 있어서그쪽으로 탈출했을 가능성이 높대

무심코 담배를 입에 물던 수철은 눈앞에 뚜껑이 반쯤 열린 하수구를 보았다아까 김경자 사모 댁에 들어가기 전한준과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며 담배를 버렸던 곳이었다그때도 하수구 뚜껑은 열려 있었다

“찾아볼게.
수철은 담배를 귓가에 꽂은 뒤 하수구 뚜껑 근처로 다가갔다진흙 발자국이 검은 아스팔트 도로 위에 찍혀 있었다수철은 차가운 밤공기를 뚫고 발자국을 향해 걸었다수철의 맞은편에서 외투 옷깃을 꼭 여민 채 종종걸음으로 뛰어오는 여자가 있었다술을 좀 마셨는지 걸음걸이가 살짝 흔들렸다수철은 괜한 오해를 살까 싶어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수철을 본 모양인지어느 순간부터 여자의 발걸음이 빨라졌다수철은 딴청을 피우며 바닥에 찍힌 진흙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조금만 더 있으면 여자가 그대로 수철을 스치고 지나가려던 순간담벼락에 바짝 몸을 붙인 채 김경자 사모의 집 쪽을 주시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수철의 감이 강렬하게 말을 걸어왔다저 새끼라고수철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한준이가 인상착의도 설명해줬어?” 
─하수구 관을 통과해 빠져나간 걸 보니 심하게 말랐을 거래냄새도 날 거고.

그러고 보니 사내가 있는 쪽에서 묘한 하수구 냄새가 났다허공을 적시는 썩은 내를 맡으며 수철은 남자를 향해 몸을 틀었다

남자는 위기를 느꼈는지 골목 바깥으로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뛴 방향이 여자가 있는 쪽이었다여자는 꺄악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수철은 곧장 남자를 쫓아 달렸다

수상한 자가 아니라면 저렇게 달아날 이유가 없다혹시 위험한 흉기라도 가지고 있어 여자를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수철은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뭔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지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남자는 운동 신경이 좋지 않았다뛰쳐나온 그 순간만 빨랐지달리는 모양새도 엉망이고 속도도 느렸다덩치와 다르게 백 미터를 십 초 안짝으로 끊는 수철은 금세 남자의 뒷덜미를 움켜잡을 수 있었다

“잡았다이 새끼너 왜 달아났어?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난 남자의 얼굴은 꽤 어려 보였다제대로 씻지도 못했는지 머리와 얼굴에는 오물과 더러운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수철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여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혼이 나간 얼굴로 부들부들 떨더니길바닥을 향해 천천히 손가락을 뻗었다수철은 여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최대한 다정하고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그러고는 여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총이 떨어져 있었다배송받자마자 금이야 옥이야 아끼며 어루만졌던 신상 콜트가은은한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바닥에 놓인 총비쩍 마르다 못해 한 대 치면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남자의 멱살을 쥔 채 사악하게 웃고 있는 수철의 모습여자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뻔했다여자는 천천히 입을 벌리더니있는 힘을 끌어 모아 소리쳤다

“꺄아아아아아아악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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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4-14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애와 하수구를 ... 통과해 범행이라니... 으힛~

rainy22 2018-04-16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묘사가 잘 되어 있어 제법 읽기 수월하군요.

박미정 2018-04-17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어요 ㅎㅎ

cho8028 2019-03-1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제목만 봐도 구미가 당기네요....꼭 읽어 봐야 겠 습니다
 


김경자 사모가 놀라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이고역시 선생님이세요!
“귀신이 어느 쪽에 있었어?
“부엌 저쪽 끝이요.

김경자 사모는 무서운지 한준의 뒤쪽에 섰다한준은 부엌을 둘러보았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봐.
“새벽에 목이 말라서 물 마시러 내려왔는데저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어요.

김경자 사모가 손가락으로 냉장고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슨 소리?
“달그락 소리도 나고부스럭 소리도 났어요.
“어떤 형체인지 봤어?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못 봤어요그냥 새까만 게 있었는데제가 부엌에 들어오자마자 쏜살같이 튀어 나갔어요.뭔가 묵직한 게 부딪친 것처럼 쾅하고 넘어지는 소리도 났고요.

김경자 사모가 설명하는 내내 한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펼쳤다가 접었다가 허공에 팔을 뻗는 둥 기묘한 동작을 취했다놀란 김경자 사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생님뭐 하세요?
“신령님께 여쭙는 중일세부정 타니 더 이상 묻지 말도록.

김경자 사모는 황급히 두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한준은 팔짱을 끼고 부엌 안으로 들어섰다고급스러웠지만 구조 자체는 평범했다기역 자 모양의 싱크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가운데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아일랜드 식탁이 놓여 있었다식탁 의자 하나는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김경자 사모가 말한 뭔가 넘어지는 소리의 정체는 이 의자인 듯했다.

“요즘 들어 계속 소리가 났다고 했지?
“네선생님.
“시간대는?
“거의 새벽 시간이었어요.
“정확히 몇 시쯤?
“그건 잘 모르겠어요저희 식구들은 보통 열한 시면 잠들어요.
CCTV는 확인해봤어?
“네아무것도 안 찍혀 있었어요.

한준은 휘파람을 불며 허리를 쭉 폈다

“에그머니선생님오밤중에 무섭게 그러지 마세요.

김경자 사모가 질색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한준은 코를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이상한 냄새가 희미하게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비 오는 날 하수구 오수가 역류할 때처럼 역한 냄새였다한준은 부엌 안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들어갔다부엌의 오른쪽 벽면에 흰색 나무문이 달려 있었다손잡이를 돌려 여닫는 종류였는데밑에는 대형견 한 마리가 드나들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작은 덧문이 따로 달려 있었다.

“김 사모저 문 뭐야?

김경자 사모는 여전히 부엌 입구에서 쭈뼛대고 있었다

“뒷마당으로 나갈 때 쓰는 문이에요.
“저 밑에 달린 덧문은?
“딸애가 개 한 마리를 데려왔었거든요뒷마당 가서 놀라고 따로 달아준 거예요.

하지만 집 안에 개를 키우고 있는 흔적이 없었다한준은 김경자 사모를 돌아보았다.

“개는 어디 있어?
“다른 데로 보냈어요털도 너무 많이 빠지고 시끄러워서.

한준은 흐음소리를 내며 문가로 발걸음을 옮겼다뒷문 너머에는 앞마당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널찍한 마당이 있었다작은 창고가 하나 놓여 있는 걸 제외하고는 휑뎅그렁했다한준은 고개를 들어 건물 벽과 담장을 살폈다이 저택에 들어올 때 정문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걸 확인했는데뒷마당에는 CCTV가 보이지 않았다대신 이곳에도 방범 장치가 있었다누가 담을 타고 외부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담장 벽에 엉켜 있는 넝쿨 식물들 역시 끊기거나 짓밟힌 흔적이 없었다한준은 바닥을 훑어보았다그의 시선이 뒷마당 끄트머리에 설치되어 있는 하수구에 멈췄다집 벽에 붙어 있는 하수도관과 연결된 곳이다한준은 고개를 숙여 하수구 주변을 살폈다뒷마당에 깔려 있는 잔디들 중하수구 주변의 잔디들만 납작하게 쓰러져 있었다한준은 휴대폰을 들고 플래시를 켰다잔디 위에 축축한 진흙이 찍혀 있었다작은 발자국 모양으로아주 선명하게

한준은 손가락 끝을 진흙 위에 살짝 갖다 댔다찍힌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물기가 많았고 물컹했다한준은 뒤를 돌아보았다김경자 사모는 여기까지 따라오지 않았다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한준은 넥타이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속삭였다.

혜준아, 지금 이 하수구.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해줘.


그때 담 너머에서 여자의 비명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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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4-14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준의 매력은 , 최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한 지능 수사라는거 ..

lilycoffee 2018-04-15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황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네요.
 


한 시간 뒤두 사람은 연희동에 있는 김경자 사모 주택 앞에 서 있었다.

페라리 할배는 이제 그만 보내드리시지.”

수철의 놀림에도 불구하고 한준은 흔들리지 않았다전화를 끊자마자 급히 친애하는 파트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미남당에 들러 필요한 물건들을 대략 챙겼다이동은 택시로 했다.

출장비 단단히 받을 거야.”


간만에 마음에 드는 와인을 발견하고 병을 땄던 찰나라한준은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취하지는 않았으니 다행인가 싶으면서도병째로 딴 와인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은 불행이었다한준은 사무실에서 제일 먼저 챙겨온 뿔테 안경을 추어올리며 인상을 썼다

다짜고짜 귀신이라니뭔 소리야?”


수철이 택시 뒷문을 닫으며 물었다

?”


한준이 되물었다택시 안에서는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 사모가 귀신 봤다며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데?”

수철이 인상을 쓰며 눈을 위로 치켜떴다그 모습을 백미러로 본 택시 기사는 조용히 볼륨을 줄였다

요즘 밤마다 부엌 쪽에서 뭔가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나서 쥐가 있나 생각했는데방금 전 사람 형체를 봤대.”
그럼 도둑 든 거 아냐?” 
그래서 CCTV도 돌려보고 그랬는데사람은 코빼기도 안 찍혔대며칠 동안 감시해도 갑자기 나타났다가 너무 홀연히 사라지니까김 사모가 사람 아닌 거 같다고 겁먹었어.” 


한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택시가 목적지 앞에 멈춰 섰다연남동과 연희동은 바로 맞붙어 있어서 그다지 멀지는 않았다막상 대화가 흥미진진해지려던 찰나에 끊긴 탓인지택시 기사는 노골적으로 아쉬워했다한준은 택시비를 지불한 뒤 내렸다.

자세한 건 나도 모르겠어김 사모한테 이야기 들어봐야지.”


한준과 수철은 눈앞의 커다란 저택을 쳐다보았다
김경자 사모의 집은 길고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대략 세 발자국 간격으로 심어진 키 큰 나무들이 위협적으로 방문자들을 굽어보는 중이었다넝쿨 식물들은 담장을 감싸 안은 채 사선으로 길게 뻗어 있었고정문에는 CCTV로 짐작되는 카메라가 보였다

집 죽이네이런 데서 살려면 대체 얼마를 벌어야 돼?” 

수철이 담배를 물었다.

몇 년 정도만 더 고생하자고.”

김경자 사모의 저택을 쳐다보는 한준의 눈빛이 야심으로 번뜩였다.

퍽이나.”

수철은 비웃듯 입술을 이죽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어둠 속에서 빨간 점 하나가 번쩍 눈을 떴다가 화르륵 소리를 내며 사그라졌다한준은 도도한 눈빛으로 턱을 치켜들었다

“4년 전하고는 달라이제 이런 꿈 꿔도 된다고.”

한준은 눈을 뜨고 있는 건지 감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일하는데도버는 돈은 쥐꼬리만 하던 4년 전을 생각하면 그저 눈물이 앞을 가렸다한준은 그런 과거와 작별한 자신이 기특하다는 듯 몸에 걸친 정장을 쓰다듬었다무려 샤맛의 맞춤 정장이다반년 전이탈리아로 날아가 스케줄 맞추기 빠듯하다며 거절하는 디자이너에게 웃돈까지 주어가며 맞춘 옷이다이탈리아에서 직접 맞춘 정장이라니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한준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쭉 폈다

두고 봐나중에 나라님 정도는 혓바닥 위에 올려놓고 스리런 홈런 한 방 칠 거니까.”


훗날 그는 눈앞에서 벌어진 믿기지 않는 사건들 속에서 허우적대며 말이 씨가 됐어라고 후회하게 되지만이건 달력 하나로 세기에는 부족할 만큼 먼 미래의 일이다지금의 한준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그 누구도 자신이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에게 쫓기며 목숨의 위협을 받는 미래를 꿈꾸지는 않는 법이니까

안 들어가냐?”

수철이 근처 배수구에 담배꽁초를 버렸다탁 소리와 함께 담배가 배수구에 부딪치더니옆에 반쯤 열린 하수구 뚜껑 사이로 굴러 들어갔다담뱃재 사이에 드문드문 섞인 빨간 불티가 한준을 향해 날아들었다한준이 정색하며 손을 휘저었다

이게 얼마짜린데조심해줘.” 
좀팽이처럼 굴지 마.” 

한준은 한 손에 쇠방울을 움켜쥔 채김경자 사모의 집 정문 초인종을 눌렀다

선생님!”

문을 열어주는 김경자 사모의 안색은 평소보다 유달리 어두웠다한준을 보고 잠시 안도하는 표정을 짓더니뒤따라 들어오는 수철을 보고는 
에그머니나!” 소리치며 노골적으로 놀라고 말았다

선생님이분은 누구세요?”

김경자 사모가 미심쩍은 눈길로 물었다수철은 나름 서비스업의 애환이라고 생각했는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김경자 사모는 히익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다.

내 신아들일세.”
신아들이요그동안 뵌 적이 없는데.” 

김경자 사모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철과 한준을 번갈아 보았다.

자네가 내 안사람도 아닌데 일일이 다 소개시켜줘야 해?” 


한준이 호통을 치자 김경자 사모는 얼른 눈을 내리고 어깨를 움츠렸다.

에구 아닙니다선생님.” 


한준은 수철을 돌아보며 뿔테 안경 모서리를 추어올렸다.

자네나는 안쪽을 둘러볼 터이니 자네는 밖에서 잡귀들이 못 들어오게 막고 있어.”
네이이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십시오.”

졸지에 신아들이 된 수철은 불효자식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나갔다김경자 사모는 한준의 안경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선생님안경도 쓰세요처음 보네.”
그런가?”

한준이 헛기침을 했다그때 한준의 귓가에서 혜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빠안경 잘 잡아안 보여!
  

혜준은 시선이 묘하게 아래쪽으로 쏠린 왼쪽 모니터 화면을 보며 소리 질렀다한준이 방금 전까지 바라보고 있던 지점이 고스란히 모니터에 비치고 있었다혜준이 있는 방에는 커다란 책상이 있고그 위에는 고성능 컴퓨터 세 대와 노트북 두 대스탠드 마이크 한 개가 놓여 있다벽면에는 커다란 모니터 두 개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는데왼쪽 모니터로는 김경자 사모의 집 내부가 보이고 오른쪽 모니터로는 집 바깥쪽 상황이 보인다모두 다 실시간이었다

한준의 안경에는 초소형 카메라가 붙어 있고 넥타이에는 마이크가 장착되어 있다뛸 때 불편하다고 하여 수철은 목 칼라 부근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달았다남들이 볼 때는 영락없이 평범한 단추일 뿐이지만두 사람이 현장을 둘러보며 영상을 송출하면혜준은 그 자료를 지켜본다그러다 한준이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특정한 손짓으로 관련 정보를 요청하는 신호를 보내면혜준은 재빠르게 실시간으로 찾아 정보를 제공한다보통은 메시지를 보내거나 말을 해준다한준과 수철 둘 다 귓속에 음향 수신기를 부착하고 스마트 워치를 찬 상태이므로 정보를 수신하기 용이했다평소에는 생존 여부 확인을 위해 빗자루로 찔러봐야 할 만큼 게으른 혜준이지만일을 할 때만큼은 자타가 공인할 만큼(그래봤자 한준과 수철이 전부지만) 재빠른 속도를 자랑했다하지만 지금은 현장을 지켜보는 일 외에는 할 게 없다혜준은 하품을 하며 벽시계를 쳐다보았다오빠들이 후딱 일을 끝내길 바라며,혜준은 책상 구석에 놔둔 도넛 상자를 열었다
  
한준은 요란스레 쇠방울을 흔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김경자 사모가 한준의 기세와 쇠방울 소리에 긴장한 틈을 타재빠르게 흔적을 찾았다

주방 쪽으로 다가가자눈에 띄는 게 있었다한준은 날카롭게 풍경을 훑었다깨끗하게 정리된 다른 공간에 비해 밥솥 뚜껑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창문은 살짝 열려 있으며무엇보다도 이상한 냄새가 났다한준은 쇠방울 흔들기를 멈춘 채김경자 사모를 홱 돌아보았다

여기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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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스트리 2018-05-0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님이 누구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슴
 

시계가 째깍대며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예은은 차가운 표정으로 두진을 쳐다보았다두진은 애써 시선을 피해보려 했지만바로 옆자리인 탓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두진은 시선을 허공에 던지며 딴청을 피웠다.

아까 잡아온 놈은 처리 다 끝났어?” 
보고서 다 써놨습니다결재 바로 올릴까요?”

두진의 얼굴 한쪽이 일그러졌다

내일 올려.”
그럼 업무 이야기 좀 해요.” 

예은의 말투는 단호했다두진은 결국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글쎄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사건이 몇 개야지금 이거 매달리고 있을 때야?” 
그냥 넘어가기에는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나는 네가 신경 쓰여서 뒷골이 당긴다아냐?”

두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예상했다는 듯 예은은 그의 앞을 막아선 채프린트물에 인쇄된 앳된 여성 사진과 CCTV에서 캡처한 사진 두 장을 번갈아가며 짚었다.

두 달 전 도화동에서 실종 신고 접수된 강은혜 말입니다이 CCTV에 찍힌 위치로 보아 마포역 쪽으로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그 일대를 탐문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주 김전일 납셨네.”

두진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기다리라고 몇 번을 말했어?” 
두 달이나 지났습니다.” 
기다리는 가족 입장에서는 두 달이나지만가출한 입장에서는 두 달밖에인 경우도 많아남자 친구 때문에 가출한 게 뻔하다니까.”

두진은 손가락으로 프린트물을 톡톡 건드렸다

하지만선배님.” 
아씨그 하지만 좀 하지 말라니까 진짜!” 

두진은 손으로 뒷골을 잡으며 삿대질을 했다

이 꼴통 새끼말 진짜 안 듣네봐봐강은혜 얘 열여덟 살이지이 나이 때 애들이 얼마나 어마무시하게 가출하는지 알아 몰라?” 

예은은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문 채 묵묵히 두진의 말을 들었다

네가 그 난리 안 쳐도 얼마 안 있으면 돌아올 가능성이 구십 프로야우리가 괜히 일하기 싫어서 이러는 거 아니니까소년 탐정 씨는 오늘 당직이나 무사히 끝내.” 

두진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두진을 가만히 쳐다보던 예은은 의자를 빙글 돌려 책상에 바로 앉았다그 모습을 본 두진은 에이 씨하면서 가느다란 한숨을 쉬었다.

한귀.” 

예은은 여전히 고집스러운 눈빛이었다

…… 열심히 하고 집요하고 이런 거 형사로서 백 점인데그래도 이 짓 오래 하려면 적당히 하고 넘어갈 줄도 알아야 돼혼자 일하는 거 아니잖아.” 

나 화낸 거 아니다하고 두진은 멋쩍게 예은의 어깨를 툭 쳤다

알겠습니다.” 

예은은 마뜩잖은 얼굴로 대답했다.

에이너 때문에 담배 한 대 더 피워야겠다진명이랑 동우가자.” 

두진은 강력반 2팀의 막내 라인인 양진명과 유동우를 데리고 나갔다예은과 두진의 책상 맞은편에 앉아 있던 같은 팀의 김재우이홍식 형사가 슬쩍 예은 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선배장 선배도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너무 마음 상하지 마.”
알아.” 

김재우가 예은의 어깨를 툭 쳤다

재경부에서 그러는데장 선배 지난달에 대출 또 받았대형수님 병원비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은 거 같아.” 
차도가 좀 있으신 줄 알았는데.”

예은은 눈썹을 치켜떴다
두진의 아내는 지난달에 급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쓰러진 상태였다딱히 내색하지는 않았지만두진은 부쩍 눈에 띄게 스트레스를 받아했다예은은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였다

아이 씨그러면 내가 또 미안하잖아.” 

예은은 툴툴대며 두진의 책상을 보았다
여느 형사들의 책상이 그렇듯처리해야 할 파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예은은 가벼운 경범죄 파일들을 자신의 자리로 옮긴 뒤업무를 시작했다

좀 도와줘?” 

김재우가 넉살 좋게 물었다예은은 눈을 가볍게 흘겼다

됐습니다요즘 결혼 문제로 엄청 싸우고 있다며가서 여자 친구랑 통화나 한 번 더 하고 와.”

그 말에 김재우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연애만 하면 될 줄 알았더니현실이 만만찮네요박봉 월급 때문에 차이게 생겼어.” 

그러고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
  
한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건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한준은 수철과 함께 오겹살을 거나하게 해치운 후, 2차로 연남동의 캐주얼 다이닝 바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이런 데는 불편해.”

수철이 투덜댔지만한준은 개의치 않았다.

“1차는 네 취향으로 갔으니, 2차는 내 취향으로 가야 형평성이 맞지.”

대꾸 대신 수철은 길게 트림을 했다소리가 어찌나 컸던지주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한 번씩 돌아볼 정도였다

너 인마…….”

한준이 한마디 하려는 순간테이블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그의 개인 번호를 아는 사람은 혜준이맞은편에 앉아 흡사 소인을 잡아먹는 거인처럼 카나페를 해치우는 중인 친애하는 파트너 수철이그가 VIP로 생각하는 몇몇 고객들뿐이다한준은 와인 잔을 내려놓고 발신자를 확인했다익숙한 이름이 떠 있었다

연희동 김 사모.

잔뜩 굳어 있던 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김경자 사모는 VIP 중에서도 상위 VIP어디 얼마나 잘 맞추기에 그리 비싼 돈을 받느냐지금 내가 무슨 상황인지 맞춰봐라이러면서 도도하게 코끝을 치켜세우고 들어왔다가 한준에게 눈물 쏙 빠지게 혼난 게 김 사모와의 첫 만남이었다

남편 영수증 잘 확인해봐. ‘김밥전국이란 곳에서 꽤 긁었을 거야거기 마담한테 아주 홀랑 빠졌어.” 

김경자 사모가 오게 된 연유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결정타까지 몰아치자김경자 사모는 아이고를 연발하며 부적 두 통을 써 갔다들리는 후문에 의하면 그 후 남편은 김밥전국에 발걸음을 끊었다고 한다이 아름다운 결말에 감격한 김경자 사모는 한준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다미남당에서 한 일은 별로 없었다마담을 부둥켜안고 있는 남편의 투 샷 사진 한 장을 찍어 스캔한 뒤, ‘다음번에는 당신의 회사 전 직원들이 보게 될 겁니다라는 정중한 안내 문장과 아내와 이혼하게 될 경우 지급해야 할 위자료 액수를 함께 적어 당사자에게 이메일로 보냈을 뿐이다

이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김경자 사모는 무슨 일만 났다 하면 연남동 점집을 찾아와 울고 불며 하소연을 했다어찌나 자주 왔는지나중에는 조사도 필요 없을 정도였다미남당 팀원들 모두 김경자 사모의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었으니까가진 건 돈뿐인지라한준을 향한 신뢰도가 쌓일수록 그에게 건네는 봉투도 점점 두둑해져가던 상황이었다그런 이의 전화이니 안 받을 이유가 없다한준은 속으로 하나셋을 센 뒤 전화를 받았다

오밤중에 전화라니대체 무슨 일이야들어보고 별일 아니면 내 크게 호통을…….”
선생님.

김경자 사모는 떨고 있었다

무슨 일 있구나.”

한준은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었다

선생님저 어떡해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나한테 말하려고 전화했잖아.”
그게……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김경자 사모는 머뭇거렸다성미가 급해서 따발총처럼 쏘아대던 평소와 너무 달라 당혹스러울 지경이다한준은 빨리 말하라고 소리치려다 참았다

나 같은 사람은 시간이 돈인 거 알지빨리 말해!”

김경자 사모는 한숨을 쉬었다.

저희 집에 귀신이 있는 거 같아요선생님.

하는 소리와 함께 다이닝 바 벽에 붙어 있던 빈티지 벽시계가 열두 시를 가리켰다
  






-연재 이벤트-
<미남당 사건수첩>연재기간 동안 
캐비넷 서재를 즐겨찾기해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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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 4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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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do 2018-04-1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 사모와의 첫만남에 이은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하네요

스파이스트리 2018-05-0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귀신추가라 ㅎㅎ 앞으로의 전개가 몹시 기대되오
 

준은 친애하는 파트너이자 협력업체─소규모 흥신소─ 수장인 수철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수철을 만나려면 서둘러야 했다. 

곧 있으면 퇴근 정체가 시작되고 도로가 막히기 때문이다. 급히 차에 올라타 액셀을 밟았다. 대한민국의 좁은 도로 위에서는 별 소용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페라리 360 스파이더가 굉음을 토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설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조선 시절만큼이나 오래된 연식이지만 어쨌든 페라리 아닌가. 중요한 건 클래스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품격.  

“진짜 미친 허영의 끝이다, 남한준. 맨날 돈만 잡아먹는 저 고물, 당장 갖다 버리시지?” 

혜준은 오라비의 로망을 손톱만큼도 이해해줄 생각이 없었다. 언제 한번은 중고차 딜러를 데려온 적도 있을 정도다. 들어가는 돈에 비해 속도도 안 나고 연식도 오래되어 멋있지도 않으며 최종적으로는 왜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때 한준은 페라리 앞에 드러누워 소리쳤다.  

“갈 거면 나를 밟고 가.”  

창피하지 않느냐, 실용성도 없는 차 때문에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 그걸로 다른 차를 타고 말지라는 말은 한준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가슴속에 로망 하나쯤은 품고 사는 것 아닌가.  

결국 혜준은 중고차 딜러를 돌려보냈다. 한준이 사랑하는 여동생에게 승리를 거둔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오라버니의 마음을 드디어 이해한 건지, 동네 사람들이 전부 창가로 얼굴을 내밀며 무슨 일이냐고 수군대는 게 창피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소중한 건 지켰다.  

최근 들어 밟을 때마다 미세하게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엔진 소리가 마음을 간당간당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닦고 조이고 기름 친 덕에 아직까지는 쓸 만했다. 부디 다음 모델로 차를 바꿀 때까지 스파이더가 무사하기를 기원하고 있노라니 어느새 수철의 아파트가 보였다. 
수철의 집 앞에 도달한 한준은 자연스럽게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오늘은 무슨 고기…….” 

한준이 집으로 들어서며 말을 건네는 순간 ‘철컥’ 하는 소리가 났다. 뭔가가 날아오고 있음을 직감한 한준은 재빨리 몸을 숙였다. 이윽고 퍽 소리가 들리더니, 방금 전까지 한준의 머리가 있었던 위치에 으깨진 파란 물감이 흘러내렸다. 한준은 그대로 현관에 쭈그려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황은 아무리 겪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수철은 거실 끝에 서 있었다. 오른쪽으로 머리를 살짝 기울인 채 한준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은 상태였는데, 손에는 검은 콜트 총이 들려 있었다.  

수철은 집 안에서 사격을 하는 취미가 있었다. 액션 영화를 보다가 필 받으면 총 쏘는 장면을 흉내 내며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껴보는 게 그의 삶의 낙이었다. 수철의 아파트는 남자 혼자 살기에는 과도한, 백 미터 달리기 경주를 해도 될 만큼 넓은 평수의 집이었는데 이는 순전히 그 때문이었다. 수철의 이웃들은 한 번씩 항의하러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수철의 위협적인 몸을 보고는 “이웃이라 인사드리러 왔어요.”라며 꽁무니를 내빼곤 했다. 덕분에 그의 취미는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존중받고 있었다.  

“총구 좀 치워줄래?” 
“쫄기는.” 
“한두 번도 아니고 뭘 쫄아. 또 샀어?”  

한준이 거실로 들어오며 물었다. 자신의 유일한 관심사에 대한 질문을 받자, 수철은─제 딴에는─환한 미소를 지으며 붙박이로 된 거실 장 문을 열었다.  

“글록 18 신상이랑 M9A1도 샀어. 보여줘?”  
“아니.” 

한준은 거절했다. 하지만 인간은 듣고 싶은 말만 듣기 때문에, 수철은 신경 쓰지 않았다. 한준은 약 십오 분가량 삼십 개도 넘는 수철의 전동 총 컬렉션에 관한 설명을 들어야만 했다. 
수철의 총들은 진짜 총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고가품들이다. 그래봤자 쏠 수 있는 건 서바이벌용 물감이나 비비탄이 고작인 장난감 총에 왜 그리 돈을 들이느냐고 물으면, 수철의 대답은 딱 한마디뿐이다.  

“멋있지 않냐?”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준의 머릿속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밀려들지만, 세상은 넓고 인간은 다양하므로 무리하면서 억지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이런 놈이 있으면 저런 놈도 있겠거니 하고 살자, 생각하며 애써 떨쳐내곤 했다.  

“오늘은 오겹살 먹자고.” 

신상 총에 관한 설명을 마친 뒤, 수철은 흐뭇한 얼굴로 방금 전까지 들고 있던 콜트 총을 허리에 찬 권총집에 집어넣었다. 한준은 뜨악했다. 

“좀 더 평범하게 밥 먹으러 가는 건 어때?” 
“장난감 총인데 뭐 어때? 멋있잖아.”  

장난감 총을 찬 수철의 모습은 실제 기관총을 든 군인을 어린애처럼 느껴지게 했다. 한준은 수철의 멋이 누군가에게는 공포가 될 수 있음을 이해시키느니, 다른 시공간에 존재할 얌전한 수철을 이 세계로 데려오는 편이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준이 께름칙해서 물었다.  

“점퍼 걸칠 거지?”  
“아니. 차 타고 갈 건데 뭘.”  

이거면 됐다는 듯 수철은 두꺼운 후드를 걸쳤다. 밑단이 짧아, 허리춤에 끼워놓은 총이 도드라져 보였다. 한준은 흰색 롱패딩을 꺼냈다.  

“너 지금 그 콜트 총에, 이거 입으면 완전 빈 디젤이야.” 

그 말이 싫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수철은 투덜대면서도 롱패딩을 입었다.  

“빈 디젤 말고 제이슨 스타뎀으로 해줘.” 
“왜?”  
“그 양반 여자 친구가 내 이상형이야.”  

수철이 최대한 멋있는 표정으로 씨익 웃어보였다.  

오겹살이 치익 소리를 내며 익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수철의 눈빛이 사납게 번득였다. 덕분에 고작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은 수능 시험 볼 때나 발휘했을 법한 집중력으로 고기를 굽고 있었다.  

“정슬기 고객은 예약일 확정.”  

옷은 전부 비닐에 꽁꽁 싸서 별도 보관한 뒤, 앞치마 두 개를 앞뒤로 두른 채 서류를 검토하던 한준이 말했다.  

“벌써?” 

수철이 반문하자 으르렁대는 듯한 그의 말투에 놀란 아르바이트생이 몸을 움찔 떨었다.

“길게 끌 필요도 없어. 그 여자 결혼하면 안 돼.” 

정슬기는 궁합을 보겠다며 오 일 전 미남당에 예약 신청을 한 고객이었다. 입금을 확인한 뒤, 혜준이 인터넷을 뒤져 각종 자료를 긁어모아왔다. 두 사람의 생년월일 및 데이트 성향, 주로 다니는 여행지, 선호하는 관심사. 수철은 고객과 그의 남자 친구가 내다 버린 쓰레기봉투 내용물을 뒤졌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 내부도 촬영했다.  

“이번 건 왜 이렇게 결론이 빨라?”  

수철이 의구심을 내비쳤다. 고기가 다 익은 것을 확인한 한준은 아르바이트생을 올려다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이제 저희가 알아서 먹겠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은 오 분 후에 전역하는 말년 병장 같은 표정으로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한준은 아이패드를 꺼내 사진 몇 장을 띄웠다. 전부 수철이 찍어온 것들이었다. 첫 번째 사진에는 고객의 애인 방이 찍혀 있었다.  

“봐봐.” 

수철은 고개를 숙이고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평범하다 못해 조금 심심한 방이었다. 눈에 띌 만한 가구는 무채색의 침구류, 커다란 전신 거울이 전부다. 작은 책상에는 컴퓨터 한 대만 놓여 있고 활짝 열린 옷장에는 옷이 그득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전신 거울 옆에 비치한 행거에도 옷이 가득 걸려 있었다.  

“책상에는 볼펜 한 자루 없어. 책도 없고.” 

한준의 손가락이 옷장 쪽으로 이동했다. 그의 손가락이 화면에 닿을 때마다 사진이 확대되었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며 디테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의 규모나 가구들에 비해 옷이 지나치게 많아. 고급 브랜드 옷들도 심심찮게 보여. 옷 사이즈들도 엄청 작은 걸 보니 마른 체격의 소유자야. 타고나게 말랐을 수도 있지만, 일부러 체중에 신경을 쓰고 있을 가능성도 커.”  

사진이 빠른 속도로 넘어갔다. 한준은 쓰레기봉투 속에서 꺼낸 증거물들을 확대했다.  

“내용물들 봐. 음식과 관련된 게 없어. 치킨 상자조차 없단 말이야. 화려한 옷을 좋아하고 체중 관리를 하는 걸 보니 타인의 시선을 즐기고 자기애 성향도 강해. 싫증도 잘 내고. 별 하자 없는 양말이나 물건, 액세서리들도 쉽게 버렸어. 결정적으로 이거.” 

한준은 사진 한 장을 손가락 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페이지가 넘어가자, 영수증만 따로 모아 촬영한 사진이 나타났다.  

“이 남자의 거주지, 건물 형태, 그 안에 갖춰놓은 가구들에 비해 지출이 과해. 소득 수준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데 수입 대부분을 외적인 요소에 쓰고 있어. 영수증 내역들도 보면 제법 비싼 식당이나 카페에서 지출한 게 대부분이야. 허세지.”  

한준은 혀를 쯧쯧 찼다.  

“너도 그런 거 좋아하잖아.” 

수철의 지적에 한준은 도도한 눈빛으로 손가락을 흔들었다. 

“비교급이 잘못됐어. 나는 잘 버니까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 얘처럼 못 벌면서 이러는 건 허세. 오케이?”  

그러면서 사진을 또 넘겼다.  

“그에 비해 정슬기 고객은 관계 지향적인 성격이야. 애인,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벽에 잔뜩 붙여두었잖아. 전체적인 톤도 밝고 따뜻해. 곳곳에 본인이 직접 뜨개질을 하거나 퀼팅한 물건들이 많이 보여. 책장에는 밝고 희망적인 내용의 연애 소설이나 에세이가 잔뜩 꽂혀 있고.” 

수철은 목을 빼고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쓰레기봉투에서는 주로 청소기 필터나 생활 쓰레기, 빈 소스 병, 음식 재료 겉봉투가 나왔어. 책상에는 타로 카드도 한 벌 있고. 소소한 일상생활을 즐기고, 작은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야. 읽는 책이나 붙여놓은 사진 분위기를 보니 낭만적인 성향도 짙어.” 

한준은 상추를 반으로 잘라 고기를 얹어 작은 쌈을 만들었다.  

“둘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  
“정반대라 더 잘 살 수도 있는 거 아냐?”  

한 입 크기로 쌈을 만들어 우아하게 먹는 한준에 비해, 수철은 흡사 산적처럼 입안에 고기를 우겨넣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코브라가 커다란 알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모습 같아 한준은 진저리를 쳤다.  

“결정적으로 이 남자, 다른 여자 있어.” 
“뭐? 쓰레기봉투에서 속옷이나 스타킹은 못 봤는데.”  
“그런 일차원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큰 틀을 못 본다니까.” 

한준이 날렵한 손짓으로 화면을 넘겼다. 다시 남자의 영수증 사진이 떴다. 한준은 가운데에 놓인 영수증 하나를 골라 크게 확대했다. 백화점에서 발행한 영수증이 보였다. 수철은 214,000원이라는 가격을 보더니 수북한 눈썹을 꿈틀거리며 인상을 썼다. 

“뭐가 이렇게 비싸?”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어?”  

한준이 물었다. 수철의 표정을 보아하니, 영수증에 적힌 백화점 이름과 샤넬이란 단어가 바람 여부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찾아내지 못한 듯했다.  

“이게 뭔데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거야?” 
“날짜를 봐. 그 남자, 일주일 전에 향수를 구입했어.” 

수철은 눈을 희번덕대며 사진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아무리 봐도 ‘샤넬(화장품)’이라고만 쓰여 있을 뿐, 어떤 물품을 구입했는지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그 밑에 바코드 번호 찍혀 있잖아.”  

수철은 우물거리던 입을 멈추고 기함했다. 

“무서운 새끼. 바코드 번호까지 다 외우고 다녀?”  
“미쳤어? 바코드를 어떻게 다 외워.” 
“그럼 향수인지 어떻게 알아?” 
“혜준이가 찾아줬어. 바코드 번호를 구글에 치면 무슨 물건인지 바로 뜨거든.” 

수철은 화등잔처럼 눈을 크게 뜨고 사진과 한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래도 완전히 수긍한 눈치는 아니었다.  

“애인한테 선물하려고 한 거 아니야? 자기가 뿌리려고 했거나.” 

한준이 냉담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남자가 구입한 건 No.5 향수야. 남자들이 흔하게 뿌리는 향은 아니지. 혹여 본인이 뿌리려고 했다면 방 안에 향수병이 놓여 있었을 거야. 하지만 없었잖아? 여자에게 선물하려고 샀을 가능성이 높아. 정슬기 고객의 방 인테리어 분위기를 보면 그녀가 좋아할 만한 향도 아니고.”  

한준은 사진을 넘겼다. 고객의 방을 찍은 사진이 나타났다. 한준은 화장대 부분을 확대했다. 

“구석에 향수 따로 정리해놓은 거 보이지? 네가 이 사진 찍어온 게 엊그제야. 향수를 구입한 건 일주일 전. 선물 받았다면 여기 있어야지. 그런데 없잖아.”  

그의 말대로 화장대 위에는 수수한 계열의 색조 화장품 몇 개와 기초 화장품, 머스크와 우드 계열의 향수병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고로 향수는 다른 사람에게 갔다, 이 말씀.” 

순간 칙 소리와 함께 아이패드 액정 위에 기름이 튀었다. 한준은 경악하며 재빨리 아이패드를 가방에 넣었다.  

“가방에 들고 다녔을 수도 있잖아.”  

수철이 말꼬리를 잡았다. 한준은 코웃음을 쳤다.  

“가격대를 보니 백 밀리리터를 샀어. 정슬기 고객의 꼼꼼한 성격상 따로 덜어서 들고 다닌다면 모를까, 이 큰 걸 통째로 들고 다닐 가능성은 별로 없어.” 
“숨어서 지켜봤을 때는 사이가 좋아 보였는데.”  
“사람 일 모르는 거지.” 

수철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기할까?” 

한준이 물었다. 수철은 고기를 집다 말고 동작을 멈췄다. 승부욕 하나만으로 자웅을 겨룰 수 있는 대회가 있다면, 챔피언은 따 놓은 당상일 수철의 두 눈이 흥분으로 빛났다.  

“투 뿔 한우 걸어.” 

한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싫을 이유가 없다. 고급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식당 목록을 떠올리며, 한준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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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스트리 2018-05-0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안만들면 이상할 지경이오^^ 엄지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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