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귀님 > 2006 서울국제도서전...

"서울국제도서전"은 이제 그냥 국내 도서 전시 및 할인 판매 행사로 전락한 모양이다. 하긴 뭐, 게임 전시회니 캐릭터 전시회 같은 것만 열리지 말고 "책"에 관련된 행사가 하나라도 더 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냥 "출판계 연합 책 할인판매" 행사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보통 외국의 도서전은 향후 출간될 도서를 도매상이나 외국 출판사 등의 "고객"에게 선보이기 위해 열리는 것이고, 나머지 이런저런 이벤트는 그 부대행사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그렇게 보면 솔직히 프랑크푸르트 "주빈국" 어쩌구 해서 떠들었던 작년의 이벤트 역시 사실은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닐까.) 이노무 서울 도서전은 다들 부담없이 "책 갖고 나와서 파는" 행사가 되어버렸고, 심지어 일부 단행본 출판사에서도 커다란 계산대며 카드결제기까지 마련해 놓고 책 "판매"에 열성이었다. 파는 것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외국의 도서전 같은 경우에도 샘플로 가져간 책을 굳이 다시 들고올 것 없이, 경우에 따라선 행사 마지막 날에 싼 값에 일반인에게 매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다만 애초부터 "전시" 목적보다는 "판매"를 목적으로 할 것이라면 좀 더 "확실하고 떳떳하게" 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거다. 가뜩이나 사람들이 책을 안 사서 난리이니, 아예 이번 기회에 "출판계 연합 책 할인판매"라고 해서 꿩 먹고 알 먹고 하자는 거다. 물론 그렇게 되면 출판사를 제외한 기존의 온/오프라인 서점들은 다들 항의를 하고 나서겠지만.

매 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최측인 "조직위원회"이나 주관사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참으로 한심하다. 정말로 행사의 "취지"가 무색해질 만큼 썰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저 "겉치레"에만 정신이 팔려 있지 않은가. 단적인 예로, 이곳에서 나눠주는 행사 홍보물에 나온 "국내관 참가사 리스트"를 보면, 국내 업체는 모두 150개소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이중에는 단독 부스를 갖지 않고 "역사학 카페"니, "좋은 출판사 도서전" 같은 공동 부스에 자사의 책만 진열해 놓은 출판사가 무려 37개소나 되고, 한 출판사에서 아동물과 성인물 자회사가 같은 부스에 있으면서 이름만 두 군데처럼 기재된 곳도 있다. 그러니 실제로 단독 부스를 설치한 출판사는 110개소에 불과한데, 그중에는 무슨 정보통신이니, 시스템이니 하는 이름이 들어가는 전자책 관련사며, 간행물 윤리위원회니 출판경영자협회니 잡지협회니 하는 "비(非)출판사" 참가사도 상당수 된다. 따라서 아무리 많이 잡아봤자 실제로 "참가"했다고 할 수 있는 출판사의 수는 100개도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아동, 어학 및 기타 "정체불명"의 업체를 제외하면 일반 단행본 쪽은 50개사 정도밖에 나오지 않은 것 같다.(심지어 그 50개사 안에는 몇 군데의 기독교 관련 출판사도 포함되어 있다.) 국제관 참가사 리스트에는 모두 26개사가 올라와 있는데, 그중에는 한국문학번역기금이나 미대사관, 그리고 이코노미스트와 타임/포춘 등의 잡지사와 대만도서전 조직위원회 등도 있었으니, 결국 따지고 보면 "순수한" 출판사의 수는 훨씬 적을 것이다.(그중에 내가 이름을 아는 곳이라곤 분게이슌주(문예춘추) 한 곳뿐이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머지는 다 뭐 하는 곳일까?) 그러니 이처럼 "초라한" 구색에 그야말로 참가사 목록을 실제보다 50퍼센트 가량 "뻥튀기"해 가면서까지 이 행사를 "국제행사"급으로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 갈수록 회의가 든다. 과연 내년에는 또 어떤 모습이 펼쳐질런지?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 행사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쪽이 더 낫다. 일단은 여기저기 부스를 기웃거리며 나름대로 "책 구경"을 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한 바퀴 돌기만 하면 각 출판사에서 발행한 비매품 카탈로그를 한 보따리 얻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다른 사람들(특히 애기 엄마들)은 이런저런 출판사 카탈로그를 가지고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출판사 카탈로그조차도 유용한 자료로 사용한다. 이미 나와 있었는데 미처 몰랐던 책을 카탈로그에서 찾아내는 재미도 있을 뿐더러, 곧 나올 책에 대한 정보를 미리 얻는 것도 무척이나 재미있다. 게다가 근간 예정으로 카탈로그에 실린 정보와 나중에 실제 책이 간행되었을 때의 정보가 다른 경우에는 흥미로운 근거 자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한 보따리 짊어지고 온 카탈로그를 식탁 위에 죽 펴놓고 하나하나 집어들고 읽어나갔는데, 그것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그중 몇 가지 흥미로운, 혹은 새로 깨달은 사실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한길사 : 별도로 도서목록을 만들지는 않은 듯, 2005년에 펴낸 "한길북리뷰"라는 잡지 판형의 간행물을 갖다 놓았다. 이전에 "한길출판소식"인가를 내다가 "리브로"로 제목을 바꾼 부정기소식지가 있어서 그 뒤에 자사의 도서목록을 붙여놓곤 했는데, 신국판 크기의 정식 도서목록은 1999년에 나온 것이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한길북리뷰" 2005년 판을 보니 그레이트북스를 소개하면서 "한길 그레이트북스는 엄격한 원칙 아래 만들어집니다. (1) 동서양 고전을 시대와 나라, 사조와 분야별로 균형 있게 선별합니다. (2) 가능하면 한 사상가의 전집 출판을 고려해서 전체 기획을 구성합니다."라고 써 놓았다. 그런데 솔직히 여기서 (1)과 (2)의 주장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 현재 그레이트북스로 출간된 책을 보면 그야말로 "균형"도 잡히지 않았고, 한 사상가의 "전집"이라 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단 현재까지 나온 76권과 앞으로 나올 몇 권을 더해 모두 81권까지의 목록을 살펴보면 이중에서 한 저자의 책이 여러 권 포함된 경우는 모두 21권이다. 홉스봄(3), 리쩌허우(이택후)(3), 아렌트(3), 후설(2), 레비스트로스(2), 엘리아스(2), 플라톤(2), 하이데거(2), 엘리아데(2). 결국 이들 아홉 명 저자의 저술이 전체 81권 가운데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 샤르댕의 <인간현상>,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브루노의 <무한자와 우주와 세계>,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같은 국내 유일본 같은 경우에는 그 가치가 분명히 있겠지만, 홉스봄이나 프라이, 토크빌의 저서처럼 기존에 "오늘의 사상신서"에 포함되었던 것을 "재활용"한 것이나, 루소의 <에밀>,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최부의 <표해록>, 헤겔의 <정신현상학>, 일연의 <삼국유사>처럼 기존에 한 번 출간되었던 책을 다시 번역해낸 것도 적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처음 대여섯 권이 출간되었을 때만큼의 "신선함"이 날이 갈 수록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과연 광고 문구마냥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을 집대성하는 경이로운 기획"이 될 수 있을지? 글쎄, 내가 보기엔 쉽지 않을 것 같다.

요즘 한길사에서 나오는 것 중에서 또 하나 탐나는 시리즈는 학술진흥재단의 서양명저번역총서인데, 역시나 카탈로그에 "출간예정도서"로 적힌 것을 보니 몇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2005년 자료여서 그런지 이미 출간된 것도 적지 않았는데, 그중에서 눈에 띈 "물건"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권의 옹호>, 루소의 <신엘로이즈>, 디드로의 <달랑베르의 꿈> 등이다. 그 외에 매슈 아놀드의 <교양과 무질서>, 칼라일의 <의상철학> 등은 이전에 번역본이 한 번씩 나왔던 것인데 이번에 새로 번역되어 나오는 모양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책으로는 라블레의 <팡타그뤼엘> 가운데 제3부와 제4부인데, 이건 지난 달에 두 권으로 막 출간되었다. 을유문화사 판에서는 모두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나중에 문지판에서는 제외된 부분을 같은 번역자가 한길사에서 출간하나보다. 기왕에 그럴 것이라면 한 군데서 한 권으로 출간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한쪽에서는 1000페이지가 넘는 소설도 툭툭 내놓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멀쩡한 소설(물론 후대의 위작이니 가필이니 하는 혐의는 있다 해도)을 이렇게 난도질해서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여러 권으로 나눠 낸다는 건 좀 불합리해 보인다. 그리고 출간예정도서 중에서 한 가지 이상하게 보이는 건 이용철이란 이가 옮겼다는 루소의 <에밀>이다. 이건 이미 그레이트북스로 완역본이 나온 것 아닌가? 같은 출판사에서 똑같은 책을 서로 다른 역자가 번역해 낸다니,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2) 김영사 : 김영사 카탈로그는 무척이나 산만하다. 눈에 잘 들어오지가 않는다. 죽 훑어보기만 해도 이 출판사가 얼마나 "상업성" 짙은 곳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대표작이라 내세울 만한 것이 선뜻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먼 나라 이웃 나라>도 있고 <일곱 가지 습관>도 있고 <쥬라기 공원>도 있지만, 아무래도 "간판도서"로 내세우긴 약하다. 물론 상업출판에 강한 것도 요즘에는 무엇보다도 좋게 여겨지는 자질일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규모나 인지도에 비해 "카탈로그를 만들어 놓았을 때 별로 볼 것이 없는 출판사"라고 하면 김영사가 으뜸인 것만 같아 아쉽다. 그래도 카탈로그를 뒤적이다 보니 전38권짜리 <고은전집>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솔직히 이런 게 나와 있는지도 몰랐다. "준비기간 3년, 편집기간 2년, 편집인원 1백여 명, 원고지 12만 매, 2만 4천여 쪽의 방대한 문학의 세계!"인 이 책은 2002년 10월에 나온 "한정소장본"이며 가격은 190만원이다. 권당 5만 원짜리 전집이라. 결국 웬만한 사람은 소장할 엄두도 내지 말라는 이야기다. 차라리 헌책방을 뒤져 고은 저서의 "초판본"만을 골라 모아도 그것보다는 더 싸게 먹히지 않을까?

(3) 범우사 : 내가 알기로 출판사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카탈로그를 만드는 곳은 범우사가 아닐까 싶다. 절판본이라고 해서 빼먹지도 않고, 잘 팔린다고 해서 맨 앞에 내놓지도 않고, 지금까지 출간한 책을 분야별, 총서별로 열거한 뒤, 부록으로 출판사 연혁과 주요 저자 및 역자의약력, 그리고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발행된 개정판 및 신간도서의 목록, 그리고 정가표와 색인을 망라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무려 50여 페이지나 되는 "저자 및 역자 약력"이며, 그야말로 서두에 수록된 김병철 교수의 말마따나 "이 어찌 내 사랑을 받지 않겠느냐" 싶을 정도로 충실하고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아마도 고서수집가이자 서지학자인 발행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은데, 모든 책의 서지자료를 포함하다보니 두께도 점점 늘어나서 1994년의 창립 28주년 종합도서목록은 287쪽, 1998년의 창립 32주년 목록은 349쪽, 2006년의 창립40주년 목록은 무려 522쪽으로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이다. 현재 단행본 업계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는 민음사조차도 1996년의 창립 30주년 도서목록과 1997년의 마지막 "전체" 도서목록 이후에는 현재 간행 중이거나 스테디셀러인 책들만 수록한 얇은 도서목록을 만들고 있는데, 범우사의 경우와 무척이나 비교가 된다. 물론 인터넷 시대가 되었으니 도서목록이야 별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 기존의 인터넷 서점 역시 사람이 일일이 타이핑을 하는 것이므로 잘못된 경우가 적지 않고, 이는 각급 국립 및 대학도서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장 확실한 기본 정보를 줘야 하는 쪽은 결국 출판사라고 쳤을 때, 범우사의 도서목록이야말로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까.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요즘 범우사의 경우엔 "책"보다도 "도서목록"이 더 마음에 든다고 할 수 있다.(민음사나 다른 출판사들의 경우는 대개 그 반대고 말이다.) 도서전 때 부스에 가보니 종합목록 외에 "비평판 세계문학선" 전용 홍보물을 비치해 두었던데,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의 이름 옆에 웬 이마 훤한 남자의 "사진"이 있어서 좀 당황했다. 자일스 "밀턴"의 사진이라면 몰라도, 존 "밀턴"의 사진이라니! 그때 사진술이 발명되었던가? 알고보니 편집상의 실수인 듯, 뒤쪽의 A. J. 크로닌의 사진이 엉뚱하게도 밀턴의 자리에 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플루타르코스의 "사진"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있는 석상은 내가 알기론 "키케로"의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도 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지. 그리고 개정된 비평판 문학선의 목차를 볼 때마다 한 가지 좀 황당한 것은 57번으로 등재된 "김현창"이라는 "작가"의 경우다. 이 시리즈의 57-1는 서울대 서반아어과 교수인 김현창의 <스페인문학사>인데, 솔직히 이게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제임스 조이스까지의 주요 "작가"들의 "문학작품" 망라한 시리즈 가운데 "문학사"가 끼어있다는 건 아무래도 구색이 맞지 않아 보인다.

(4) 열린책들 : 지금 나오는 도서목록 가운데 가장 "예쁜" 것은 열린책들/미메시스의 도서목록이다. 내용은 이전 것을 바탕으로 새로 나온 책들을 덧붙였으니 크게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래도 판형이나 디자인이 무척이나 세련되었다. 열린책들에서는 최근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장 독주에 딴지를 걸기 위해서인지 "Mr. Know 세계문학"이라는 페이퍼백 시리즈를 내놓았는데, "열린책들 20년 간의 성과"라는 나름대로는 대단한 자부심을 지닌 말을 뒤집어 보자면, "지난 20년간 출간한 책들을 재활용해 만든 비빔밥"이라는 표현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한동안 절판되어 있었던 칼비노나 스타인벡의 소설을 다시 만나는 것은 반갑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두서없이" 펴낸 책들을 "시리즈"라고 주장하기만 하면 그만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카탈로그의 설명에는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가 참여해 전용 책꽂이와 심벌을 제작했다"고 하는데, 도서전 부스에 있던 그 구슬 세 개씩을 작대기에 꿰어놓은 것 같은 책꽂이는 솔직히 좀 "별로"였다. 그리고 그걸 제작해서 뭐 어쨌단 말인가? 전집을 사면 책꽂이를 선물로 주기라도 할 것인가? 그건 아닌 듯한데.

다만 열린책들에서 간행한, 그리고 간행 예정인 각종 "전집"은 무척이나 반갑기만 하다. E. M. 포스터의 소설 전집이 일곱 권으로 일단 완간된 모양인데, <전망좋은 방>, <하워즈 엔드>, <인도로 가는 길>, <모리스>를 제외한 나머지 세 권은 이것이 초역이 아닐까 싶다.(물론 단편집 중 일부는 이전에 나왔을지도.) 또 한 가지 놀라운 소식은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이다. 고려원에서 나온 열네 권짜리를 바탕으로 해서 기행문과 에세이를 비롯한 국내 미번역본을 더해 모두 스물네 권으로 완간할 예정이라고. 카잔차키스야 물론 "그리스어"로 책을 썼겠지만,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책은 모두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옮긴 중역본으로 알고 있다. 고려원의 경우에는 안정효와 이윤기가 주축이 되어 번역을 하고 중간중간에 다른 번역자들(그중 한 사람은 이윤기의 지인으로 "생계가 어려운 찰나에 이윤기 형의 덕분으로 번역을 하게 되었다"고 후기에서 술회하고 있다.)이 몇 사람 참여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존에 출간된 것 중에서 <크노소스 궁전(미노스 왕의 궁전에서)>, <수난(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 <돌의 정원> 등은 새로 번역하는 모양이다. 에스파냐어 번역가인 송병선이 <스페인 기행>의 번역가로 참가한 것이 흥미롭다.

(5) 민음사 :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는데, 내 생각엔 민음사에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싶다. 국내 1위의 단행본 출판사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번역이나 편집 등의 "기본"적인 부분에서 실수가 잦아서 독자들의 원성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음사는 민음사"인 것도 사실이다. 최근 서점가의 "고전" 분야를 거의 평정하다시피 한 "세계문학전집"만 봐도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리즈야말로 민음사의 양면, 즉 장점과 단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장점이라면 작품 선정과 번역, 디자인 면에서 기존의 다른 출판사들을 거뜬히 능가한다는 것이고, 이는 이미 서점가에서 확고한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해주는 바이다. 단점이라면 솔직히 지금 민음사 정도 되는 "덩치"를 지닌 출판사가 그까짓 "세계문학전집"에 연연한다는 것이 한심스럽다는 거다. 그 정도 규모면 차라리 "괴테 전집," "헤세 전집," "셰익스피어 전집"처럼 개별 작가의 작품 전집을 낼 정도의 배짱은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고 일단 "잘 팔릴 만한" 작품을 위주로 해서 선정하고 출간한다는 것이야말로 출판사로서의 "자존심"보다는 "잇속"을 앞세우는 것인 듯 여겨져서 문득 "덩치 값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민음사 판 세계문학전집의 가장 큰 문제는 (1) 작가와 작품 선정 상의 형평성 문제 (2) 기존 번역서 및 자사 간행서의 재활용 문제 (3) 교정교열 등의 편집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요약하자면 우선 현재까지 130권(연말까지 20권 가량이 더 나온다고 한다) 가량 출간된 이 시리즈 가운데 약 40퍼센트가 주요 작가 15명의 작품에 치중되어 있으며, 시리즈 가운데 절반 이상은 이전에 민음사에서 출간된 책이거나,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기존의 번역본을 "재간행(재활용)"한 경우이며, 숫자 채우기에만 전념을 하는 까닭인지 출판 편집의 기본인 교정교열 등의 문제에 있어 실수가 잦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몇 가지 문제를 제외하면 이 시리즈에는 국내 초역본도 있고, 유일 번역본도 있어서 적어도 "이름값"은 어느 정도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길사의 그레이트북스와 마찬가지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역시 점차 작품 선정에 있어 지극히 "안전한," 그러니까 "잘 팔릴 만한" 작품 위주로 갈 위험이 없지 않은데, 독자의 한 사람인 나로선 이들의 애초의 의도대로 뭔가 좀 "새롭고," "고집스러운" 작품의 발굴과 출간에 힘써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민음사는 이번에 세계문학전집 전용 도서목록을 별도로 제작했는데, 맨 뒤에 나온 "2006년도 출간 예정 도서"를 보면 반가운 책도 몇 권이 보인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On the Road)>. 미국 히피 세대의 바이블로 추앙되었던 작품으로, 내가 알기로는 1960년대에 나온 신구문화사의 <세계전후문제작품집> 가운데 미국 편에 번역 소개된 이래 두 번째로 나오는 번역본이 아닐까 싶다. 마침 그 책을 도서관에서 보던 중이라서 더욱 기분이 묘했다.(조금만 더 기다릴 걸!) 또 하나의 반가운 책은 저지 코진스키의 <거기 있으므로(Being There)>이다. 이 제목은 약간 "오역"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데, 일찍이 같은 작품이 <정원사 챈스의 외출>이니 <챈스 가드너, 거기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적도 있었지만, 여기서 Being There 의 뜻은 안정효가 일찍이 <하녀 볼기치기>란 묘한 제목의 중편집에서  "뭐든지 다 아는 사람"이란 뜻의 관용어구로, 우리말로 옮기자면 "박통(博通)"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라 밝혀놓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워낙에 재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면서, 내겐 피터 셀러즈와 셜리 매클레인이 주연한 영화로 더욱 기억에 남는 소설이다. 하여간 다시 나온다니 반갑다. 또 하나 반가운 작품은 <연초 도매상>인데, 저자인 존 바스는 18세기 미국을 소재로 해서 당시의 말투를 최대한 살린 이 작품이 일찍이 일본에서는 역시나 그게 어울릴 만한 "18세기 일본어투"로 번역되었다며 저자가 감탄한 바 있다.(김성곤 교수와의 대담 중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 과연 우리나라의 번역본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그 외에도 이전에 한 번 이상 번역본이 나왔던 책들 가운데 <플로스 강의 물방아>, <분노의 포도>, <시르트의 바닷가>, <성역>,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 <시와 진실>, <주홍글자>, <지상의 양식>, <순수의 시대>, <에덴의 동쪽>, <모든 것이 무너진다> 등이 새로이 번역되는 모양이고, 로렌스의 <무지개>,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 사르트르의 <말>,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 핀천의 <제49호 품목의 경매> 등은 이전에 나왔던 자/타 출판사의 번역본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인 듯하다.

(6) 시공사 : 표지는 말끔하니 만들었지만, 막상 카탈로그를 뒤적이다 보면 별로 볼 만한 게 없다.(물론 어디까지나 내 기준으로.) 차라리 시공주니어 카탈로그가 좀 더 다채롭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브랜드의 인지도 면에서는 거의 최고 수준이지만(출판 때문이건, 아니면 그 외의 요인 때문이건 간에), 이곳의 성인 단행본 가운데 대표작을 꼽으라면 솔직히 "디스커버리 총서"밖엔 없지 않나 싶다. 카탈로그를 뒤적이다 보니 문득 "그리폰북스"라는 시리즈 리스트가 눈에 띄는데, 이전의 라인업은 거의 다 없어지다시피 하고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것들만 실려 있다. 엘러리 퀸 시리즈가 포함되어 있던 "시그마북스"는 아예 카탈로그에도 나오지 않는다.

(7) 책세상 : 최근에 시리즈나 전집류에서 가장 강한 면모를 보이는 곳은 바로 "책세상"이 아닐까 싶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언제부턴가 "카뮈 전집"을 슬금슬금 간행하더니, 나중에는 "밀리터리 클래식," "릴케 전집," "니체 전집," 심지어 이번에는 "비트겐슈타인 선집"까지 내기로 작정하고 말았다. 솔직히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정도 "뚝심"을 가진 출판사가 하나쯤 있어주는 것이 그저 반갑기만 할 뿐이다. 이에 비하면 민음사는 정말 x 잡고 반성해 마지않을 일이다. 기껏 남의 출판사에서 열세 권짜리 "릴케 전집"이 나오는 판에 지들은 끽해야 너댓 권짜리 선집을 내면서 "릴케 전집"을 냈다고 우기고 있으니... 다만 이번 책세상 카탈로그에서는 기존에 간행되던 "카뮈 전집"이나 "비트겐슈타인 선집"의 근간 내용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어서 좀 아쉬웠다. 특히 비트겐슈타인 선집의 경우, 해당 페이지의 사진에는 가제본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책등의 제목이 언뜻 엿보이긴 하는데, 목록에는 현재까지 나온 단 세 권의 제목과 서지사항, 내용 요약밖엔 없었으니까. 그 외에 내가 특히나 열광하는 "위대한 작가들" 시리즈는 16권 <투르게네프>가 나온 이래 아직 속간된 것이 없다.

(8) 을유문화사 : 그간의 관록을 보여주는 듯, 진한 고동색 표지 위에 을유문화사 마크가 금박으로 찍혀 있는 고급스러운 카탈로그를 펴냈다. 집에 갖고 있었던 가장 최근의 카탈로그인 2002년도 목록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내용이 있다면 바로 "을유문고" 리스트가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드디어 "을유문고"도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날이 된 것인가? 물론 서점에서야 훨씬 일찌감치 사라져 버린 책이지만, 그래도 2002년도 목록까지는 하다못해 "제목만"이라도 적어놓았는데.(그 "제목만" 적어도 무려 20페이지는 되었으니까.) 출판사 내의 세대교체를 상징이라도 하듯, 2006년 카탈로그는 비교적 최근작, 그러니까 <삼국유사>와 <원 페이지 프로포절> 등의 "간만의 베스트셀러"를 낸 전후로 간행된 신간들 위주로 꾸며져 있다. 새로운 을유문화사의 기획물 가운데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것은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이다. 지금 집에 갖고 있는 <히치콕>은 그중 제8권으로 무려 1376면이나 되는, 마치 그 전기의 주인공 히치콕 본인마냥 "육중한" 책이다. 앞으로 쳇 베이커, 빌리 할러데이, 조지아 오키프의 전기가 속간될 예정이라니 기대가 된다.

(9) 돌베개 : 카탈로그 표지에는 신영복의 글과 그림이 들어 있고, 서문을 대신해 나온 출판사 연혁에는 "돌베개"라는 이름이 장준하의 책에서 따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 궁금한 것이, 이 출판사의 이름이 과연 장준하의 책에서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이광수의 에세이에서 가져온 것인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춘원의 에세이는 뭐 어디 산책을 나갔는데 베개로 쓰기에 안성마춤인 돌이 있어 가져다가 써 보았더니 어떻더라, 저떻더라는 약간 신변잡기 위주의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몰라도 장준하 선생의 수기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춘원의 에세이가 사실 더 유명하지 않았을까 싶다. 돌베개는 이해찬 전 총리(출판인 출신으로 가장 높은 관직에까지 올라간 인물. 나중에 강금실이 대통령이라도 하면 모를까.)가 발기인 중 한 명이었던 사회과학 출판사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문화, 역사, 고전 쪽으로 선회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지금 이 출판사의 대표 작가는 바로 "신영복"이다. 그래도 카탈로그의 뒤쪽에 보면 한때 돌베개에서 출간되었던 사회과학책들의 목록과 해제가 줄줄이 들어있어서 이채로운데, 가령 "마르크스 레닌주의 고전문고"도 이 출판사의 초기 시리즈 가운데 하나였다. 카탈로그에는 다들 "절판"이란 표시가 없고 가격이 적혀 있는데, 글쎄,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비롯한 몇몇 스테디셀러를 제외하면 지금은 다들 절판되지 않았을까 싶다.

(10) 대학출판부 : 각 대학의 출판부들이 연합해서 만든 부스가 매번 도서전에 하나씩 설치되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맨 앞에 각자의 도서목록을 수북히 쌓아두었다. 집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하나씩 챙긴 것은, 간혹 그중에서 미처 몰랐던 보물을 발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학출판부의 책이라는 것이 대개는 언제 나왔느냐 싶게 절판되어 사라지는 것들이라서, 꼭 필요한 것은 미리 서지정보를 알아놓지 않으면 나중에는 찾아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대중적인 책이 아니다보니, 대부분은 서평도 받지 못한다.) 물론 지금은 지식의날개(방통대출판부), 글빛(이대출판부)처럼 대중서 임프린트를 만드는 곳도 있긴 하지만, 관료도 뭣도 아닌 교수들이 관계하는 대학 내의 산하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기존의 대중서 출판사와 경쟁이 될 리 없다. 고대출판부 카탈로그에서는 이전에 세계사에서 출간되었던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가 옛날 번역 그대로 재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김인환 역주판 <주역>도 이전에 나남에서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다들 출판사를 옮겨갔는지 궁금하다. 사전류로는 <정지용 사전>, <염상섭 소설어사전>, <이광수 문학사전>등이 특이해 보인다. "서양문학의 향기"라는 제목으로 나오는 고전 시리즈 중에는 횔덜린의 <히페리온의 노래>가 눈에 띤다. 가톨릭대학출판부의 카탈로그는 무척이나 예쁘장하다. 여기서 나온 단행본의 표지 가운데에는 고운 파스텥톤으로 물들인 한지의 질감을 고스란히 살린 것들이 있는데, 무척이나 특이하면서도 예쁘다. 그런 디자인 면에서는 여타의 대학출판부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이곳의 대표적인 간행물은 역시나 <라틴-한글사전>이며, 중세철학 관련 단행본들도 다수 있다. 오늘 카탈로그에서 발견하고 흥미로워 한 것은 2001년에 나온 <교황사전>이었다. 이대출판부는 일찍이 이화문고라는 시리즈로 상당히 무게 있는 책들을 많이 펴냈다. 가령 로렌츠의 <공격성에 관하여>나 칸트의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 츠베탕 토도로프의 <러시아 형식주의> 같은 것이 그랬고, 그 외에도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와 비트겐슈타인 선집 같은 것도 있었으니까. 디자인 면에서도 나중에는 정병규디자인에서 몇몇 책의 디자인을 맡아서 웬만한 상업출판사 못지않은 모양새를 갖추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이번에 새로 만든 "글빛"이란 임프린트에서 나름대로는 야심차게 내놓은 첫 시리즈가 이른바 "사랑의 글모음"이라고 해서 세계 작가들의 러브레터 선집이라니, 이건 오히려 80년대의 이화문고 시절에 비해 "퇴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진 않았다. 카탈로그를 뒤적이다보니 내게도 무척 익숙한 책이 하나 보였다. 바로 <(증보판)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인데, 솔직히 이거야말로 이대출판부 최고의 스테디셀러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우리 집사람만 해도 가끔 뭔 "요리"를 해야 할 때마다 꺼내 펼쳐보는데, 무슨 요란뻑적지근한 사진이 자세하게 들어간 책은 오히려 못 보고 꼭 "텍스트"만 들어있는 이 책을 봐야만 뚝딱뚝딱 만든다. 그것 참... 활자중독증 마누라가 아닌가. 연대출판부 도서목록의 서두에서 <담원 정인보 전집>(전6권)이 정가 8만 원이라는 걸 보고 약간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면 헌책방에서 파는 가격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 싼 셈이니까. 어쩌면 옛날 가격을 수정하지 않아 그런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령 같은 출판부에서 나온 <백낙준전집>(전10권)은 28만 원, <한결 김윤경 전집>(전7권)은 13만 5천 원, <홍이섭 전집>(전11권)은 25만 원이니 말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책은 <슈팅학>이라는 농구 슈팅 기법서였다. 역시 농구로 유명한 연대출판부에서 나올 법한 책이 아닌가. 단대출판부는 황패강 선생을 위시한 국문학, 민속학, 국사학 관계 자료집이나 연구서가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최근에는 또 다른 "스테디셀러"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바로 천병희 선생의 그리스-라틴 고전 번역 선집으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만 해도 정말 앞으로 수십 년은 더 건재할 만한 확고부동한 스테디셀러가 아닐까 싶다. 그 외에도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선집과 크세노폰, 아리스토파네스, 이솝, 메난드로스의 작품들이 있다. 이후 천병희 선생은 "숲"이라는 출판사를 통해 <아이네이스>, <아폴로도로스 신화집>, <세네카 인생론> 등을 간행했는데, 솔직히 편집 면에서는 단대출판부보다 월등이 뛰어나기 때문에, 과연 천병희 선생의 번역서가 언제까지 단대출판부에 남아있을지는 미지수이기도 하다. 그 외에 헤르더의 <언어기원론>이 눈에 띄고, <박은식 전서>과 <장지연 전서>도 이곳을 대표하는 개인 전집이라 할 수 있다. 카탈로그 중에 <이십오사초> 항목에는 해설이 잘못 나와 있는데, 확인해 보니 맨 처음에 나온 황패강 선생의 저서 해설문이 잘못 끼어든 것이었다. 숭실대출판부에서는 역시 이준오 번역의 <랭보 시 전집>이 눈에 띄긴 했는데, 솔직히 표지가 무척이나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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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주식교실
이원복.조홍래 지음, 그림떼 그림 / 김영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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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올 초에 아주 약간의 목돈이 생겨서 이걸 어떻게 굴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주식을 함 해보자!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고로 전 경제과 재테크에 관한 한 정말 거의 '문외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직장생활 5년을 꽉 채우고 6년째에 접어들었는데도, 그 좋았다던 '비과세 근로자 우대저축'  뭐 이런거 하나 들어놓지 않았었고(다들 아시다시피 이상품 몇 년 전에 없어졌습니다!), 주택청약 통장 하나 없었으며, 심지어 작년 초까진 적금 하나 들어둔 것도 없었습니다......-.-;;;;;

네, 매우 창피합니다. 뒤늦게서야 이게 창피한 일인 줄 깨닫고 작년에서야 정신좀 차려보려고 적립식 펀드를 충동적으로 하나 들었고, 별로 알아보지 않고 창구 직원 권유대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긴 합니다.

이후 지금까지 적립식 펀드를 한두계좌 더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이래저래 귀동냥+나름대로의 아주 약간의 공부를 해보니...직접투자도 함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투자사에 내는 수수료도 좀 아깝고...^^;;;;;;)

그래서 일단 알라딘에서 초보를 위한 주식 가이드책들을 좍~ 훑어보고 서너 권을 샀습니다.

이원복 교수의 책은 그 옛날 <먼나라 이웃나라>만 보더라도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내용을 아주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게 풀어나가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게다가 경제 관련 서적은 90년대에 나온 <자본주의 공산주의>를 필두로 일련의 여러 권의 책들이 있습니다. 그 책들 모두 상당한 내공을 발휘하는 책이었기에 이 책은 주저하지 않고 골랐고, 한 번 다 읽은 후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일단 이 책의 최대의 장점은, 읽기 쉽고 재미있습니다. 저처럼 경제관념 전혀 없고 평소에 경제기사 별로 관심있게 읽지 않던 사람도 크게 지루해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상황에 빗대어서 설명을 하는 이원복 교수의 특기가 잘 발휘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닙니다. (사실 다른 책을 안읽어봤으니 가벼운 내용이 '아닌 듯'합니다 라고 써야 맞겠지요...) 왼쪽 페이지엔 만화를, 오른쪽 페이지에는 만화에서 나온 내용을 좀 더 설명하는 구성을 취하여 내용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관점이 건전합니다(라고 생각합니다...왕초보 입장이니 좀 자신이 없네요~ ^^;;;;;;).주식투자가 '투기'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주의를 주고 있고, 쉽게 돈을 벌 생각을 경계하도록 계속 강조하며, 단기간에 많이 버는 법보다는 장기적으로 꾸준한 투자와 적게 잃을 수 있는 길을 좀 더 중시하고 있습니다.

여튼 저처럼 주식투자는 도대체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조차도 알지 못했던( <- 이건 말 그대로 '어떻게', 즉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돈을 지불하고 주식을 사는거지??? 하는 수준입니다...--;;;) 제게 최소한의 개념을 불어넣어준 책입니다. 물론 이 책을 다 읽었다고 주식의 고수가 되지는 못하겠지요! 그렇지만 제 수준의 왕초보 분들이 도대체 주식이라는게 뭐야~ 하는데 대한 대략의 개념을 잡는 데에는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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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keback Mountain - O.S.T. - 브로크백 마운틴
Various Artists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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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하면 울려나오는, 그 기타소리, 그건 스크린과 함께 볼때나 이어폰에서 흘러나올때나, 언제나 덜컥 하면서 마음을 후벼 판다. 너무 슬프로 애절한 얘기에 눈시울을 적시다 엔딩 타이틀과 함께 흘러나오는 He was a friend of mine을 들으면서, 가사 정말 훌륭하다, 고 생각했는데, 그게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 아니라 밥 딜런의 노래를 다시 부른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산타올라야의 선곡안에 혀를 내둘렀다.

OST에는 확실히 보컬 트랙들이 많다. 글재주가 없어서 제대로 쓰질 못하니 씨네 21 리뷰를 일부 소개하자면,

 "......아르헨티나 록 뮤지션 출신이며 흥행력있는 음반 프로듀서 산타올라야의 재주는 확실히 보컬 트랙쪽에서 강세다. 그럼에도 <브로크백 마운틴> O.S.T는 밥 딜런, 스티브 얼 등 포크계의 전설적 뮤지션들이 남긴 명곡들을 루퍼스 웨인라이트, 윌리 넬슨 등이 완벽히 커버했다는 사실만으로 덮어버릴 음반이 아니다. 보컬 트랙들 사이에 감질나게 낀 애절하고도 맑은 언더스코어 테마들. 슬라이드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 검소한 스트링 세션에서 배어나오는 이 서정적인 브리지가 없었다면 이 앨범은 브로크백 산자락의 자유로움과 풍요로움의 정서를 다 담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음악가 산타올라야의 진짜 재주는 바로 이 전체를 보는 눈이다. 보컬 트랙 중심의 앨범에서 스코어는 균형을 깨지 않고, 전체 트랙 배열은 영화 속 삽입 순서보다 영화 밖에서의 감상의 흐름을 더 중시했다. 감상용으로 만들어진 최적의 O.S.T다......"

라고 한다.

그렇지만, 눈을 감고 들었을 때 브로크백의 산자락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가슴을 덜컥 울리는 그 기타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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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사 1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오카노 레이코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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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음양사'라는 단어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생때 해적판으로 읽던 클램프의 <동경 바빌론>에서였다. 음양사...음양사...뭔가 우리의 무당 비슷한 직업(?)인가...? 퇴마사인가...? 그런건가보군...하던 차에, 어디에선가 이 책에 대한 추천 리뷰를 보고 만화방을 뒤져뒤져(당시엔 만화를 '사서' 읽기까지의 열정은 별로 없었다...김진의 <바람의 나라> 정도가 사모은 유일한 책...) 이 책을 탐독했다. 당시엔 정식 라이센스판도 아니었고, 일본 역사에 대해 완전무지한데다 워낙에 대사가 많은 책이라 정말 한 권당 한시간 훨 넘게 걸린 (시간제 만화방은 정말 손해였다...T.T) 책이었지만,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일본문화에 대해서는 일본 만화와 영화로 얻은게 99%이고 정식(?)으로 접한 경험은 거의 전무하지만, 이 책을 보다보면 여기 나온 일본의 헤이안 시대 배경이나 분위기, 복식 같은 것들을 얼마나 세세하고 정교하게  소개하는지 절절하게 느끼게 되고, 음양사라는 존재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사실 이런 생각은 정식 소개서 하나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의 인상만으로 내려진 것이라 이 또한 부정확한 느낌일 뿐이다.) 든다. 게다가 그 이후 이래저래 접한 지식으로는, 이 책에 나오는 아베노 세이메이는 일본 역사에서 아주 유명한, 끊임없이 여기저기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만들어지는 인물이며 이런저런 다른 작품에서도 종종 인용되는 인물이었다. (일례로 교고쿠 나츠히코의 <우부메의 여름>을 읽을 때 세이메이가 어떤 존재인지 몰랐다면 교고쿠도의 신사 분위기를 조금 덜 느꼈을듯.)

이 책 또한 유메마쿠라 바쿠라는 작가의 원작 소설을 오카노 레이코라는 만화가가 만화로 각색한 것인데, 난 아직 소설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소설과 만화를 모두 접한 다수의 의견에 따르면 오히려 소설보다 만화가 더 재미있다는 것이 중론인 듯 하다(비교적 원작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하니, 원작이 떨어진다기 보다는 만화화가 매우 잘 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8권까지인가밖에 보지 않았는데 별로 대중적 취향에 맞을 만한 작품이 아니라서 그런건지 절판이 되버렸고, 이후 다시 못보겠구나 하고 포기하던 차에, 몇년 전 영화화된 덕분인지(영화는 참...별로라고들 한다...안봤지만...남의 의견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나...음음...-.-;;;) 정식 라이센스판으로 재출간되어 반갑기 그지없다.

예전판의 기억을 되살려 비교해 보면, 기본적인 표지나 분위기 등등은 별 차이 없고, 권말에 헤이안 도읍과 궁궐의 지도라던지, 천황 가계도라던지, 작가 후기 등등을 실어주어서 읽는데 도움을 줬다는 차이는 있다.

이번엔 부디 완결편까지 제대로 나오면 좋겠다. 한 권씩, 한 권씩 나올 때마다, 사 모으고 있다. 이제 5권, 앞으로 얼마나 남았나...부디 세이메이의 이야기의 완결을 나에게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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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세트 - 전2권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이승수 옮김 / 서교출판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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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처음 읽은건 그러니까 언제냐...내가 성당에 열심히 다녔을 때이니 아무리아무리 최근으로 잡아도 91년일거고, 아마 그 전일 거라고 생각이 든다. (물론, 정확히 '이 책'을 읽은게 아니라, 이제는 절판된, 출판사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그맘때쯤 나온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을 말하는 거다.) 열심히 다니던 성당에서 미사보러 갈 때마다 놓여있던 신문 비스무레한 찌라시(?)에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이라는 제목의 4컷 만화가 실려 있었고, 거기에 나오는 빼뽀네라는 무지 이상한 이름의 등장인물에 도대체 이건 뭔가- 하고 의아해할 무렵, <돈 까밀로와 빼뽀네> 라는 책이 있다는걸 당시 우연히 알게 되었고, 냉큼 샀었다...(그때 기껏해야 초등 고학년 내지는 중학생이었을텐데...돈이 어디서 났을까...???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군...)

한 권을 읽고, 너무나 재미있어서, 또 한 권을 샀고, 역시나 재미있어서, 그때까지 나온 시리즈 다섯 권을 모두 샀다. ( 그 다섯 권, 지금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알 수가 없다. 애석하게도, 여러 번의 이사중에 사라진 듯 하다...권마다 색깔이 다른,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로서는 상당히 괜찮은 책이었는데...)

그래서 나에게는, 이탈리아 작가 내지는 소설 하면 움베르토 에코보다는 '신부님' 시리즈가 먼저 생각이 나고, 뽀 강이 먼저 생각나버린다.

기억 속에서만 자리잡고 있던 책이, 재출간된걸 보고, 냉큼 사버렸고, 다시 읽으면서도 여전히 데굴데굴 구르면서 봤다. 신부님은 여전히 깡패같았지만 존경스러웠고, 빼뽀네는 여전히 불한당이지만 순진하고 착한 읍장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예수님'이 있다. 그들이 자리잡은 마을은 늘상 싸우는 사람들로 가득찼지만, 세상에 이런 마을이 어디 있어 할만큼 오히려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들로 가득찬 마을이기도 했다.

서로의 사상이 어떻고 이념이 어떻고 종교가 어떻든간에, 결국에는 서로를 배려하고 감싸안는 사람들의 모습을, 작가는 목소리를 높여 얘기하지도 않고, 진지한 척 심각한 척 하지도 않으며, 매우 따뜻하지만 눈물을 쥐어짜지도 않으며, 이리도 유쾌하게 풀어놨다. 개그 프로에 나오는 것과 같은 파안대소를 할 수 있는 웃음은 없지만, 낄낄거리면서 웃을 수 있는 이야기들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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