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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독서록을 뒤져보니 2001년 12월에 읽은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때는 독서록에 회의를 느껴 느낌은 하나도 없고 단지 말 그대로 기록만 남아 있었을 뿐이였다.
지금처럼 예쁘게 양장본으로 나온 책도 아니였고 기억도 잘 안나지만 번역가는 같았다. 그래서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책을 다시 꺼내보기 위해 책장 귀퉁이에 꽂혀 있는 GO를 꺼냈다.
가네시로 카즈키의 전작을 읽었지만 기억이 안난다는게 조금은 무안했다. 책을 왠만해서는 두번 읽지 않는데 이렇게 두번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이끌어냈다. 설레였다. 단순히 기억의 재생이 아닌 2001년 12월의 추억도 따라서 올 것 같은 느낌이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사소한 부분들이 '이 책에서 이 말이 나왔구나'라고 기억을 추스려주었을 뿐 굵직한 줄거리는 정말 생각이 안났다. 약 5년전에 읽었던 것이니 그럴수도 있겠다 수긍하며 재미있게 읽었지만 책의 내용은 레볼루션 NO.3나 플라이 대디 플라이처럼 가볍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였다. 책 속에는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자 사회문제 더 나아가 국제적 차별까지 여러 문제들을 두루 두루 다루고 있었지만 차분하게 그리고 솔직함을 뒷받침해 저자의 문체로 정리를 잘해가고 있었다.
저자는 재일 한국인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지만 중학교때까지 조선학교를 다녔다. 일본의 식민지였을때도 조선을 그렇게 핍박했는데 일본의 한가운데 조선학교를 다녔을 저자의 고충은 훤하다.
그러나 대부분 덤덤히 넘기고 있다. 자신의 고충을 시시콜콜 늘어놓고 아버지의 세대와 같이 행동했더라면 나도 스기하라처럼 아버지한테 '당신 시대는 끝났다'라고 당돌하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처와 방어를 동시에 가지고 살면서도 스기하라는 당당하다.
이런 머리아픈 문제는 다루려는게 아니라 이 책은 자신의 연애애기라며 밝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본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스기하라는 친구가 없다. 남들이 뭐라고 비난하든 말든 스기하라는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길을 닦아 나간다. 남들은 희망이 없다라며 짓눌러 버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미국계 한국안이였다면 미국에서도 그다지 불편함 없었을테고(스기하라와 여러 외국인들과 비교해 보았을때..)한국에서도 앞의 예보다 더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대접을 받거나 부러움의 시샘의 비난을 들을지라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그러나 일본을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인들처럼 순수한 자기네 혈통에 빠져 우월주의의 극은 미국보다 더하다.
물론 한국이 일본보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급으로 인정하기에는 관용이 뒷따르지 않는다. 이런 세계에서 같은 재일 한국인도 아니고 (같은 재일이더라도 연애, 결혼은 재일 대 일본 만큼이나 까다롭다.)일본인과 어떻게 연애를 할 것인가...
스기하라는 자신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는 사쿠라이를 만나 좋아한다.
그러나 사랑을 나누기 전 자신이 재일이라는 걸 밝히자 사쿠라이는 겁을 먹는다.
그렇게 헤어진 두사람.. 그러나 스기하라는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중이다. 여전히 거친 세상에 거칠게 맞대응하며...
그리고 아버지에게 '당신 시대는 끝났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새로운 세대를 열어간다. 그 세계속에는 국적은 필요없다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쿠라이의 마음도 한 몫한다.
상처와 고달픔 억울함이 뒤범벅이 되어 있더라도 스기하라는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문제아에 거칠긴 해도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라면 선택과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도망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왜 가네시로 카즈키의 소설을 읽으면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분명 주인공들의 삶보다 내가 나아 보인다는 우월감을 갖고 있었는데 헛된 망상이였다.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는 기준 자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보다 우월하게가 아닌 동등함을 위하여 살길 바랬는데 이런 말장난이나 하고 있는 모습이란.. 동등함은 또 무어란 말인가.. 쯧....
겉표지의 찬사의 한부분처럼 '재일 문학 속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가벼이 넘기면 좋으련만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가볍게만은 넘길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스기하라의 행동이나 생각처럼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왠지 그런것들에 짓눌리다 보면 나의 미래도 답답하게 짓눌려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박차고 나올 것이다.
그리고 스기하라처럼 당당히 숨쉬며 살 것이다.
당신들의 시대는 끝났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