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 - 장석주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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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변하지 않는 것은 밥, 돈, 잣대에 매이지 않은 마음이다. 무엇에도 매이지 말아라. 매이지 않은 마음이야말로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고, 행복이 깃을 접으며 내려앉을 곳이다. (107쪽)


시를 한 토막씩 읽어가는 게 영 익숙지 않았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것보다 이렇게 몇 줄의 시가 보다 많은 사람에게 다가는 게기가 된다면 다행이지만 개인적으로 익숙해지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하이쿠처럼 짧은 시가 아니라 시 한 편에서 저자가 골라낸 시구와 그에 따른 느낌이 적힌 글을 읽어가다 보면 내가 시를 제대로 읽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다 읽어가는 쪽수가 늘어감에 따라 한 토막씩 읽는 시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입 안에서 서걱거리던 시가, 어느 순간 내 입안에 착 감겨 넓고 넓은 세계를 누빌 수 있게 되었다.

라일락이나 은행나무보다 높은 곳에 살지 않겠다 / 초저녁 별빛보다 많은 등을 켜지 않겠다

김경미,『밤의 입국 심사』

나는 이미 라일락과 은행나무보다 더 높은 곳에 살고, 초저녁 별빛보다 많은 등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밝아 보이는 스탠드 아래서 이 시를 읽었다. 그랬기에 ‘벌이가 시원치 않고, 누추한 집에 산다고, 살이 밋밋하다고 상처받지 말라.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날의 삶에 자족하고 범사에 기뻐하며 웃어라.’고 말하는 장석주 시인의 조금은 빤한 충고가 공감이 갔다. 저 시를 쓴 시인처럼, 그 시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시인처럼 조금만 주의 깊게 둘러보면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과 뿌듯함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가난한 우리 식구들, 늦은 저녁 날벌레 달려드는 전구 아래 둘러앉아 양푼 가득 삶은 감자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송찬호,『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마치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을 바라보는 듯 울컥했다. 식구도 많고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늘 간식거리로 배가 고팠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숙명 같은 식탐을 지녀버렸다. 삶은 감자를 배불리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백열전등 아래 날벌레를 쫓으며 형제들과 경쟁하듯 간식을 먹던, 잊고 있던 순간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기적인 생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 우리 안에는 당신이라는 모든 매미가 제각기 운다

이규리,『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이런 시는 어떤가! 내 안의 이기적인 마음들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님에서 오는 안도와 ‘사랑한다는 말은 곧 내 안의 사람이 아프다는 뜻이다. 당신이라는 매미가 내 안에서 그치지 않고 우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사랑은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이타적인 것이다.’ 라 말하는 장석주 시인의 말에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사랑(가족의 의미가 가장 크다)이 많이 아팠지만, 아픔이 없는 것보다 내 안의 매미가 쉬지 않고 우는 것은 아직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자 마음이 평안해졌다.

시가 내게 들어온 순간, 내 삶의 의미도 달라짐을 느꼈다. 늘 고만고만하던 마음의 어지러움을 사랑의 아픔으로 받아들였고, 각박한 세상에서 작은 소망을 품는 법도 배웠다. 꼭 시 전체를 읽어야만 더 깊은 이해를 하거나 의미를 제대로 부여할 수 있는 게 아님을, 그러므로 시인들이 얼마나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쓰고 있는지를 몸소 체험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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