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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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같은 책을 읽은 타인과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이 쓴 리뷰를 모두 다 들여다볼 수 없듯이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을까 해서 블로그에 리뷰를 올리고 있지만 일방적으로 긴 수다를 떠는 느낌이라 부끄러울 때가 더 많다. 그러다 같은 책을 읽고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쉽게 흥분하고 만다. 나만 이렇게 읽은 게 아니라는 동질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이 이렇게 본격적으로 묶여져 나오면 긴장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 책에 실린 책들을 적어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듯이 내가 한 번 밖에 읽지 않은 책들을 어떤 시선으로 들려줄지 궁금했다. 또한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해 어떤 흥미를 불러일으켜줄지 설렘으로 이 책을 펼쳤다.


 

  책을 펼치기 전 목차를 이토록 오랫동안 들여다본 적이 얼마만인지! 스물세 편의 소설 목록을 보면서 내가 읽은 책은 여덟 권, 읽다 만 책은 한 권, 읽진 않았지만 소장하고 있는 책은 세 권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내가 읽은 책들 이야기도 궁금했고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서 어떤 책을 먼저 꺼낼지도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소개되었던 오에 겐자부로의『아름다운 애너밸 리 싸늘하게 죽다』를 꺼냈고, 다소 이야기의 중심을 못 잡아 집중력이 흩어질 수도 있었는데 줄거리를 먼저 알게 되어서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 내가 읽지 않은 책 내용을 먼저 알아버리는 걸 누구보다 싫어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직접 읽지 않고는 그 느낌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개의치 않아 하면서도 맛깔난 소개글이 있으면 더 구미가 당기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내가 읽은 책임에도 저자의 글을 읽고 있으면 새로운 책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똑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저자의 시선에서 좀 더 자세히, 그리고 다른 시각으로 듣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읽은 책에 대해서는 뭔가 친근했고, 읽지 않은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다. 저자도 한 사람의 독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듯 소개를 해주어서인지 편안하다 못해 내가 직접 읽은 것처럼 빨려 들어갔다(다만 ‘그녀’를 멋스럽게 표현한다는(주로 소설에서) ‘그미’라는 표현이 익숙지 않아서 계속 걸리긴 했다.). 그래서 책 속의 주인공들 이야기에 일희일비하고 아직도 내가 만나보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에 먹먹한 행복감과 동시에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만날 수 없지만 나를 거쳐 가는 이야기는 앞으로 얼마나 될지를 가늠할 수도 없기에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지금 이 세상 구석구석에 넘쳐나는 삶의 모습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슬픔은 단순히 멀리 두고 극복할 대상이 아닙니다. 슬픔보다 기쁨이 훨씬 좋다고 강조해서도 안 되고, 기쁨에 관한 밝은 책들만 읽혀서도 안 됩니다. (36쪽)


 

  그러다『플랜더스의 개』소개글을 읽다 이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현대문학이 아닌 고전을 읽는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던 나인데 ‘단순히 멀리 두고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니! 저자는 ‘슬픔’이라고 했지만 내가 피하려고 했던 것이 현실의 ‘슬픔’임을 알고 있었기에 도피행각을 하다 예기치 않게 그 대상과 맞닥트린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나의 ‘슬픔’은 과연 무엇인지, 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랫동안 피하려고만 했는지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문학을 읽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란 의문과 함께 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려버렸던 것 같다. 내 안에 무엇을 담고 있었기에 나는 피하고 있었고 문학을 방패삼아 우연히 혹은 서서히 극복하려고 했던 것일까? 조금이나마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슬픔’이라는 실체를 알게 되자 이 책을 만난 것이, 그리고 그동안 수많은 책들을 만나왔던 시간들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일이 내게 주어진 숙제 같았다.


 

  책을 좋아하던 초장기에는 책을 읽는 게 좋아서 다음에 나도 글을 써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멋진 작품들을 만나면서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며, 책을 좋아하는 것과 글 쓰는 것은 별개다란 누군가의 말처럼 쉽게 품을 수 있는 꿈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10년 잡고 써보면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열리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소설들을 만날 때마다 그리고 그런 소설을 재미나게 들을 수 있는 책을 만날 때마다 내 꿈과는 무관하게 그냥 고마움을 느낀다. 어쩌다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되고 책에 빠졌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할 순 없지만 책이 내 곁에 있어서 고맙다는 생각은 늘 하게 된다. 나의 모습이 어떻든지 간에, 내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가던지 간에 문학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내가 읽어주길 기다리고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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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은 2015-08-17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남의 책 이야기를 읽는 일을.. 이제껏 꽤 자주 했던 것 같아서, 무엇이든 이젠 남을 통해 읽지 않고 내가 직접 읽겠단 요상한 고집이 맘 속에 자리잡던 차에 안녕반짝님 리뷰를 보게 됐네요.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남의 책 이야기도 결국은 책이구나 하구요. 읽어둘 만한 생각과 고민이 그 안에 있지, 그렇지.. 하고 갑니다.

안녕반짝 2015-08-17 22: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이 책을 읽고, 제가 읽은 책도 있었지만 결국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읽지 않은 책 이야기를 알아버리면 김이 새버리곤 했는데 요즘엔 결과를 알아도 내가 직접 읽고 느끼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읽기가 아니다란 생각에 오히려 미리 아는 것도 꽤 흥미롭더라고요. 특히 애너밸 리~는 줄거리를 알려주어서 읽는 데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