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영국의 시골길을 걷다 - 조금씩, 천천히, 동화 속 풍경에 젖어들기
기타노 사쿠코 지음, 임윤정 옮김 / 북노마드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언제 읽었는지 정확히 기억한다. 둘째를 낳기 전날, 새벽에 읽었던 책이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편하게 읽고 싶은 책을 찾아 책장을 서성였다. 그러다 이 책이 눈에 들어왔고 조금만 읽고 잔다는 것이 늦게까지 다 읽고 잠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둘째의 격한 태동을 느꼈었는데 몇 시간 뒤에 잠에서 깨니 태동이 없어 병원에 가서 응급으로 둘째를 낳았었다.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때 새벽에 바로 병원으로 갔더라면 아이가 좀 덜 힘들었을 거란 잔상이 여전히 남아 있다. 내 예상처럼 이 책은 굉장히 편하게 볼 수 있었음에도 이런 이유로 조금은 아프게 기억되고 있는 책이다.


  내 책장의 수많은 책들이 읽히기까지는 분명 많은 시간이 필요할거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한 권의 책이 선택되어 읽기까지는 우연이든 필연이든 필요에 의해서든 어떠한 동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도 책장에서 수없이 봤으면서도 읽기를 미루고 있었는데 목차를 보다가 <피터 래빗 이야기>의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흔적도 등장하고 애거사 크리스티의 고향도 나온다고 하기에 꺼내들게 되었다. <피터 래빗 이야기>도 다 읽었고 애거사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호칭으로 익숙하기에 궁금했다.


  영국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런던의 암울한 분위기에 익숙해서인지 영국의 시골을 좋아하고 찾아다니는 저자가 조금은 별나 보였다. 굳이 외국에까지 가서 시골을 돌아다닐 필요가 있을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런 생각이 지배했었다. 그런데 <피터 래빗 이야기>가 탄생된 배경을 둘러보니 베아트릭스 포터가 인세로 그 마을의 땅을 구입해서 내셔널 프러스트에 기부하고 보존을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 번 훼손되면 절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는 자연의 특성을 알고 베아트릭스 포터는 자신의 창작물이 발생된 그곳을 보존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결정은 현명했고 여전히 아름다운 마을을 구경하면서 <피터 래빗 이야기>가 탄생한 것도, 저자가 영국의 시골에 빠진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피터 래빗 이야기>를 워낙 좋아해서인지 저자가 직접 둘러보고 이야기해주는 배경들이 참 좋았다. 사진은 소박했지만 그렇기에 영국 시골 곳곳을 직접 걷고 좋아하는 저자의 마음이 전해졌던 것 같다. 디자이너 모리스가 머물렀던 곳도 아름다웠고 그런 곳에서 산다면 없던 창의력도 마구 생겨날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게다가 곰돌이 푸의 고향이 영국이란 것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곰돌이 푸를 제대로 읽고 싶어 책을 장바구니에 담을 정도로 관심이 갔다. 또한 이렇게 유명한 창작물의 배경이 되었던 영국의 시골 말고도 영국의 시골에서 만난 음식, 꽃, 차(茶)에 관한 것들과 음식을 만드는 방법까지도 실려 있다. 저자가 발품을 팔아서 애정을 가지며 영국 시골을 돌아다녔다는 사실이 여실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밤늦게 책을 펼쳤음에도 순식간에 읽어버릴 정도로 부담 없고 소박하고 아담한 책이었다. 깊은 밤보다 요즘 같이 날씨가 좋은 날에 차 한 잔 하면서 야외에서 읽어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꼭 영국의 시골이 아니더라도 내 주변에 있는 자연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런 곳을 산책하면서 말이다. 봄은 이미 사라지고 여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서인지 야외에서의 독서가 간절해지고 생각났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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