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의 행운
매튜 퀵 지음, 이수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10년이 넘도록 나는 서태지 골수팬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팬레터를 보낸다거나 콘서트에 가 본적이 없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을 때 난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듣는 게 전부였다. 중학생이 되어 용돈이 생기면서 테이프를 구해 닳도록 듣고 고요한 시간에 기도를 하듯 내 모든 걸 털어놓는 대상이 되었으면서도 여태껏 먼발치에서나마 본 적이 없다. 이 책을 읽고 잠든 어느 날, 꿈에 서태지가 나왔다. 아직도 그런 꿈을 꾸냐는 핀잔이 들려올지 모르지만 수년 전부터 내 유년시절을 수놓았던 서태지란 인물에 무관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참으로 오랜만의 등장이었다. 내가 오랫동안 바래왔던 것처럼 꿈에서 서태지와 나는 단 둘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생뚱맞게도 종이에 쓰인 어떤 글에서 오탈자를 찾아보라는 말을 듣고 열심히 찾는 꿈이었지만(다행히 오탈자를 찾아냈다!) 아직도 꿈속에서나마 이런 애틋함이 남아 있었냐며 의아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잠재의식 속의 남아 있는 팬심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것 같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에게 쓴 편지로 채워져 있다. 39년 간 함께 했던 엄마가 돌아가시고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다 리처드 기어에게 붙이지 못한 편지를 보고 바솔로뮤는 대신 편지를 쓴다. 편지 속에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왜 이런 편지를 쓸 수밖에 없는지, 바솔로뮤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뚱뚱하고 못 생기고 직업도 없고 연애도 한 번도 못해보고 친구는 오로지 엄마뿐인 바솔로뮤가 엄마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뭔가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바솔로뮤는 엄마마저 돌아가시자 그야말로 혼자가 되었다. 엄마가 생전에 좋아했던 리처드 기어에게 편지라도 쓰지 않으면 그 슬픔은 온전히 바솔로뮤 내면에 고여 한 발짝도 앞으로 내디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엄마가 좋아했던 배우라고 하더라도 왜 하필 리처드 기어에게 이런 편지를 쓰는 것일까? 그 이유는 소설의 말미에 드러나는데 편지 속에 쓰인 내용들은 너무나 사소하고 바솔로뮤를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묘한 감정이 들게 하는 내용들이었다. 지극히 수다스럽고 알고 싶지 않은 내용까지 시시콜콜 일러대는 모습을 보며 순간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리처드 기어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가 티베트를 위해 여러 일들을 하고 달라이 라마의 사상을 수용하는 것을 보며 자연스레 바솔로뮤에게도 그런 영향력이 들어온다. 엄마와 함께 매주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리면서도 불교의 사상이, 어쩌면 달라이 라마라는 인물에서 나오는 영향력이 바솔로뮤에게 묘하게 얽혀들어 가고 있었다.

 

그나마 바솔로뮤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해 준 인물은 맥내미 신부님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식사를 함께했고 집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많은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미사를 드리다 갑자기 신부직을 관두고 바솔로뮤 집으로 들어오고 거의 매일 술을 마시다시피 한 것만 빼면 바솔로뮤 곁에 맥내미 신부님이라도 있어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바솔로뮤를 평범하게만 볼 수 없었던 것처럼 맥내미 신부님도 괴짜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함께 있으면 그렇게 나쁜 일(엄마가 돌아가신 것만큼 나쁜 일은 더 생기지 않겠지만)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 맥내미 신부님이 소개해 준 심리치료사를 역으로 폭력의 구렁텅이에서 빼내오는 시도를 하는가 하면, 심리치료 모임에서 고양이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나온 숫자 18을 입에 달고 다니는 맥스를 만나더니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던 도서관 사서녀의 오빠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에게서 외계인 설을 듣는가 하면, 그의 생일에 고양이 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타와까지 동행하면서도 그 모든 걸 칼 융의 동시성의 원리라고 읊어댄다.

 

세상에는 정상적이지 않은 우리 같은 사람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정도로 평범함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바솔로뮤, 맥내미 신부, 맥스, 사서녀이자 맥스의 여동생 엘리자베스의 등장. 맥스가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혹은 엄마를 잃은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쓰기 시작한 기묘한 편지는 지금껏 자신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을 조금이나마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발돋움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정상의 기준을 누가 정하는지 모르겠지만). 때론 중언부언하는 이야기를 쏟아냄으로써 엄마를 잃은 슬픔을 이겨냈고 자신 안에 갇혀 있던 바솔로뮤 자신을 끄집어냈으며 상처받은 사람들을 껴안으며 비로소 엉켜가는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스스로를 잘난 것 하나 없는 사람이라고 칭했지만 위장 속에서 항상 나쁜 말만 하는 조그만 사람이 아닌 리처드 기어가 영화 속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따뜻하고 진솔하고 낭만적인 면모가 심심치 않게 드러났다. 그런 따뜻함이 바솔로뮤를 비로소 알에서 깨게 만들었고 때론 엄마와 리처드 기어의 환영을 보기도 하고 자신의 곁에 오래 있어주었던 사람이 아버지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지만 그 모든 일을 이젠 혼자서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은 정상적이지 못한, 다 큰 어른들의 성장소설 같았다. 맥내미 신부님, 맥스, 엘리자베스와 함께 캐나다로 떠나는 여행이 그 모든 과정의 정점이었다. 자칫하다간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작가는 그 모든 이야기들을 감각적으로 잘 엮어냈다. 글을 쓴다면 이렇게 감각 돋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가 특유의 문체에 반해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불편한 내용들이 종종 등장했음에도 전혀 불쾌해지지 않는 좀 특별한 성장 이야기. 오랜만에 좋은 소설을 읽은 기분이 들어 뭔가 마음이 뿌듯해지기까지 한다. 뿌듯함 가운데 하나는 나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게 지금 이 순간의 행운이라고 믿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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