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 김개미 동시집
김개미 지음, 최미란 그림 / 토토북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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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똥 냄새를 맡는 것도 싫고/똥 싸는 소리를 듣는 것도 싫어./누가 똥 싸냐고 떠드는 소리는 더 싫어./문밖에 아이들이 줄을 서 있으면/나오던 똥도 도로 쏙 들어가.//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혼자 똥 싸는 게 좋아./수업 시간에 똥 싸는 게 좋아./눈치 안 보고/마음껏 똥 싸는 게 좋아.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

시를 읽다가 너무 공감이 가서 큰 소리로 웃어 버렸다. 우리 집은 화장실이 한 개라 유난히 쟁탈전이 심하다. 남편이 먼저 들어간 화장실도 싫고, 진지하고 싶은데 아이들이 수시로 문을 열어대는 것도, 화장실에서 빨리 나오라는 말도 싫다. 그래서 정말 웃지 못 할 일들이 많다. 오죽하면 심각하게 화장실 두 개인 집으로 이사 가면 안 되냐는 말을 했을까? 아이들이 어릴 땐 엄마가 화장실만 가도 울어대는 통에 화장실 문을 열어놓는 건 기본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기저귀를 차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경쟁 상대(?)는 남편 뿐이었다. 그런데 큰 아이가 기저귀를 떼면서부터 경쟁 상대가 둘로 늘어났고, 서로 가겠다고 우겨(생리 현상이 조절이 안 되는 것에 화를 낼 수도 없다) 싸울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화장실 가는 횟수를 체크하게 되어서 가장 기분 나쁜 말이 ‘먹고, 싸고, 먹고 싸고’가 되어버렸다. 정말 화장실에서만큼은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나는 이상하게/선생님이 말을 시키면 부끄러워진다./특히 일어서서 말하라고 하면/입술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그렇다고 선생님이 질문할 때/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애들 모두 손을 드는데 혼자 안 들면/선생님이 꼭 나를 쳐다본다.//선생님은 선생님이니까 모를 거다./선생님 앞에서 말하는 게 어떤 건지./대답을 하고 자리에 앉아서도 나는/대답할 말을 한참 생각한다. <대답>

나는 중학생 때까지 앞에 나가서 말하는 걸 너무 힘들어 했다. ‘입술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는 말에 공감을 넘어 심장이 내 귓가에서 뛰는 것 같아 머릿속이 하얘지곤 했다. 다른 사람의 눈을 못 마주치고 다른 곳을 보며 겨우 발표를 마치고 들어오면 한참동안 ‘이렇게 말해야 했는데, 왜 못했지?’라며 후회하곤 했다. 그러다 서서히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면 부끄러움이 더 커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튀지 않고 군중에 묻혀 있고 싶은 마음, 발표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 내연한 척 하는 아이의 마음이 어른인 내게도 전해져 괜히 찡해졌다.

“이빨 닦았어?/안 닦았으면 얼른 닦아.”/“닦았어.”/“요게 누굴 속이려고?/차라리 귀신을 속여라.”//엄마 잔소리 듣기 싫어/닦은 이를 또 닦는다./이러다 정말/이가 다 닳아 없어지겠다./내 이가 홀랑 다 없어지면/엄마가 내 말을 믿을까?//그럴 리가 없다./엄만,/내가 이가 하나도 없어도/이빨 닦으라고 할 거다. <잔소리 ①>

충치로 고생을 하진 않았지만 6년 동안 교정하면서 양치질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아이한테 자기 전에는 양치질을 꼭 하라고 한다. 내가 해보니 너무 귀찮고, 힘들다는 걸 알아서 아이한테 잔소리가 덜 해지는 편이다. 대신 아빠가 꼬박꼬박 하지만 치아도 어느 정도 타고 난다는 걸 알게 된 터라 좀 포기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엄마 잔소리에 못 이겨 닦은 이를 또 닦으며 이빨이 홀랑 다 없어진다는 아이의 말에 어쩔 수 없는 헛웃음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나이가 들어)이가 하나도 없어진 다음에도 엄마가 이를 닦으라고 잔소리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엄마의 잔소리도 들을 수 있을 때가 행복하다는 표현이 다르게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을 때마다 시인의 시선은 정말 다름을 느낀다. 동시지만 쓰는 이는 어른(아이의 과정을 거쳐 왔더라도)인데 어쩜 이런 시선과 표현을 할 수 있는지 늘 경이롭다. 이 동시집을 읽으며 웃다가, 그리워하다, 씁쓸해하다, 행복한 마음을 모두 느꼈다. 또한 시심은 우리의 마음에도 충분히 자리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 마음을 드러내는 게 서툴러 동시를 읽을 때 조금씩 들춰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마치 이렇게 내 마음을 대신 드러낸 시들을 만나면 그저 즐겁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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