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길이 되다
이원식 지음 / 두란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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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가 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고, 그 후 성경을 그 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선교사의 역사에서는 일반적인 일.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이미 번역된 한글 성경을 들고 이 땅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정식으로 선교를 시작한 땅도 아닌데 말이다. 도대체 그 한글성경은 누가 번역했으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17쪽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역사도 자세히 몰랐지만 이런 엄청난 과정으로 기독교가 들어왔다는 사실도 몰랐다. 또한 ‘1885년, 미국에서 요코하마를 거쳐 제물포로 들어와 선교 사역을 시작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스크랜턴 모자’가 들고 온 한글성경과는 다른 버전의 한글성경이 이미 한양에 퍼져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들어왔을 때 세례를 기다리는 조선인들을 만나고 오히려 당황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나님은 한반도에 어떤 계획이 있는 걸까?

의주 사람들이 처음으로 한글성경 번역에 참여했으며, 그들이 곧 한국 최초의 세례자들이었고, 그들에 의해 한국 최초의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평양이 부흥의 땅이라면, 의주는 그 부흥을 잉태하기 위해 예비된 어머니 같은 땅이다. 39쪽

그 기적은 만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1882년, 조선의 국경 너무 만주 땅, 그곳에서 최초의 한글성경이 번역·인쇄 되었’고 만주 지역과 조선의 북쪽으로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한글번역이 이뤄질 수 있었던 계기는 ‘지금으로부터 140여 년 전, 압록강변 마을 의주 출신의 상인인 백 씨’가 우연히 만주로 넘어가 장사를 하다 존 로스 선교사에게 한문으로 쓰여진 얇은 성경을 받으면서부터였다. 백 씨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성경을 가지고 무사히 고향으로 가져갔고, 여러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다. 또한 그로인해 최초의 한글성경이 번역되었음은 물론, 나라가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성경을 퍼트리다 ‘고문과 옥고를 치르고 전 재산을 잃고도 성경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조선의 사도 바울로 불리는 백홍준’이다.

만주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존 로스 선교사는 조선 땅을 위해 기도했던 선배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존 로스와 그의 매제인 매킨타이어와 조선 말 선생 이응찬은 함께 한글 번역을 했다. 존 로스는 한글 성경이 번역되면 ‘조선의 여인들과 신분이 낮은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될 것’이라 여겼고 그렇게 ‘사회적으로 낮은 자들을 위해 준비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성경을 번역하면서 조선 땅에 선교사가 들어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한 달 뒤에 제물포를 통해 선교사가 들어왔고 놀랍게도 그들의 손에는 또 다른 한글 성경 번역본이 들려있었다. 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오기 전 만주에서 한글 성경이 번역되는 것도 놀라운데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도 한글성경이 다른 방법과 루트로 번역되고 있었던 것이다. 왜 하나님은 두 가지 성경이 번역되게 하셨을까?

1882년 최초의 한글 성경과 두 번째 한글성경이 중국 만주에서 인쇄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조선에서는 임오군란이 일어난다. 그때 중전 민씨의 조카 민영익과 둘도 없는 친구였던 이수정은 중전 민씨가 피신하도록 도움을 주어 수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가는 특혜를 얻게 된다. 그리고 농학자 츠다센을 소개 받고 그의 집에 걸린 산상수훈 액자에 사로잡힌다. 그는 일본인들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온 지 7개월 만에 미국 선교사 녹스 목사에게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그는 조선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복음이라 여겼고, 수신사가 모두 돌아간 뒤에도 남아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다. 엄밀히 말하면 한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한문성경에 토를 다는 ‘현토’라는 작업을 했다. 그 와중에 선교사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미국에 보내기도 했다. 그 호소문은 세계선교평론지에 실렸고, 결국 1885년 4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는 일본에서 이수정을 만나 한글 성경을 전달 받아 조선에 오게 된다.

그렇게 번역된 한글성경은 조선 각지로 흘러가 교회를 세우고 사람들을 모이게 했고, 기도하게 했다. 그리고 평양 대부흥 운동까지 이어졌고, 이런 역사를 지켜보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임을’ 깨닫게 된다. ‘선교사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부터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세운 교회가 한국 교회’였고, ‘동양인으로서 처음으로 동양에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지금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보면 당시의 간절했던 마음보다 각박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더 멀리하는 사람들, 복음 이외에 다른 것을 탐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하는 것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의주가 조선의 기독교 역사의 뿌리가 되었다는 점, 분단 된 뒤에 ‘탄압과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지하교회로 숨어 들어가 지금도 목숨을 건 예배를 드리고 있’는 상황을 만들고, 남한은 남한대로 풍요로움 속에서 또 다른 구원을 바라게 만드는 상황을 왜 만드신 걸까? 저자는 ‘회복’이라고 했다. 남한과 북한에 다른 시련을 주시고 훈련하심으로 회복되기를 바라고 계신다고 했다. 그리고 ‘남과 북이 다시 하나가 되어 통일 한국이 될 때를 기다리고 계’시며, ‘오래전 이 땅에 있었던 대부흥을 다시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솔직히 북한, 통일, 전 세계를 위한 기도가 잘 되지 않아 형식적으로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북한땅에서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되고, 가난하지만 영적 성장을 이룬 북한과 반대인 남한이 하나 될 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 기독교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수많은 감정들이 밀려왔다. 정확히 알지 못했던 역사에 대한 미안함,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나에 대한 반성들이 말이다. 하지만 나는 믿음의 선배들에게 복음을 빚졌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 현재 내가 이렇게 편하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배드릴 수 있는 것. 당연히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하심이 먼저지만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 정말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믿음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과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기쁘게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기도가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꺼이 그 기도를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오로지 기도뿐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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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3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뜨거워지시죠? 저도 그랬어요 성경이 중국쪽에서 들어올때 종이를 새끼줄로 얽어매서 보부상들이 들여왔을정도로 성경을 사랑한 민족이 우리나라 선조들이었죠 설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