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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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을까 하는 것과 왜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며칠 밤을 새우며 잡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_1997년 1월 독서기록장

17살의 나는 어렸다.『노인과 바다』를 읽긴 읽었지만 작품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그런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유명한 작품이기에 읽어봤고, 당시에 읽었던 유명 작품들은 죄다 재미가 없었던 기억뿐이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완독을 해 낸 과정과 시간들이 감사하다. 아마 이렇게 재미없게 읽을지언정, 완독하지 못하고 책 읽는 것 자체를 포기해 버렸다면 현재의 나는 어쩌면 독서의 즐거움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상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만큼 나에겐 독서의 즐거움과 과정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10대에 읽었던 작품을 30대가 되어서 다시 읽으면 어떨지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깨달아 버렸다. 물고기와 사투를 벌였지만 상어에게 다 뜯긴 채 돌아온 과정 중요하지만 노인의 이야기 그 자체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노인은 바다를 건너다보고는 자기가 지금 얼마나 외롭게 혼자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어둡고 깊은 바닷속에 비친 무지갯빛 광선들과 앞으로 쭉 뻗은 낚싯줄과 묘하게 일렁이는 잔잔한 바다를 볼 수 있었다. 63쪽

17살의 나는 이런 문장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도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바다위에 혼자 있으니 외롭다고 여겼을 것이다. 언제 끌려 나올지 모르는 물고기를 보며, 돌아갈 수나 있을지 아무런 확신이 없는 가운데 바다 한 가운데 놓여 있는 노인. 불안함과 불확실함이 뒤섞여 긴장감이 팽팽한 가운데 상황을 지켜보는 혹은 눈앞에 놓인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연륜이 느껴졌다. 실패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왕이면 물고기가 온전히 끌려 올라와 당당하게 항구로 돌아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조금은 빤할지라도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마음먹은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과 궁지에 몰려 있는 상태에서 어려움은 또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놈한테 낚싯바늘이 주는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닐 거야. 굶주림의 고통, 그리고 자기가 알지 못하는 어떤 존재와 대결하고 있다는 사실, 그게 가장 견디기 힘든 문제겠지. 자, 이보게, 늙은이, 자넨 이제 그만 쉬게. 다음 일이 닥칠 때까지는 놈이 계속 애쓰도록 내버려둬. 80쪽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가운데서도 청새치가 겪고 있는 고통을 헤아리며 포획자의 자만이 아닌 자연의 이치로 대하는 시선들이 그저 경이로웠다. 청새치는 물론 노인에게도 생사가 오가는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온전히 청새치를 끌어 올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상어만 만나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해 볼만하다 여겼지만 끝내 상어에게 뜯기고 만다. 지금 당장은 청새치를 안전하게 끌어 올려 돌아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지만 상어의 습격으로 모든 것이 호락호락 하지 않음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그런 가운데 자신을 도와주는 소년을 떠올리고, 소년의 손길을 그리워하고, 그가 도착했을 때 소년 또한 노인을 걱정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눈앞의 가장 중요한 물고기는 잃어버렸지만 더 소중한 것을 알게 되고, 다시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주기도 하다. 그 소중한 것은 지금껏 살아온 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완전한 실패가 아니라는 사고에서 완전히 달라진다.

“이게 다 꿈이라면, 그래서 내가 저 물고기를 낚은 일이 아예 없었던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미안하구나. 물고기야. 애당초 너를 낚은 게 잘못이었어.” 노인은 말을 멈췄다. 115쪽

상어에게 뜯겨버린 청새치를 보며 회한에 잠긴 채 모든 것을 초월해 집으로 어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를 저어 가는 노인. 나 역시 물고기가 어떻게 될지 지켜보느라 긴장감으로 잔뜩 굳어 있던 마음을 풀고 모든 걸 내려놓았다. 그가 집으로 돌아와 소년과 재회하고 잠에 빠질 때 이게 정말 꿈이었으면 좋을 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면 좋을 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꿈같은 이야기고, 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임에도 모든 걸 진짜 겪어버린 노인과 지켜보는 이 모두가 함께 고생하고, 외롭고, 쓸쓸한 바다 위에 함께 있었던 것 같아 동질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나는 노인의 이야기를 또 다시 읽겠다고 다짐했다. 40대에도 읽을 것이고 50대는 물론 정말 노인이 되었을 때 이 소설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상상만 해도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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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08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창시절에 읽었는데 또 읽고 싶어 별글클래식 고전셋트(10권)짜릴 샀는데 읽고 싶네요 다시 ㅎ

안녕반짝 2018-08-11 19:00   좋아요 0 | URL
정말 다시 읽으니 좋더라고요^^
어서 만나보시길^^

stella.K 2018-08-08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 책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생각나는 작품이어요.^^

안녕반짝 2018-08-11 19:00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더라고요~
40대가 되면 또 읽어보려고요^^
그 사이 새 번역이 나오면 그걸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