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다 나도 정신이상이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무심코 책을 펼쳤을 뿐인데 도무지 멈출 수 없었고, 소설 속 주인공 캐시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상한 일은 계속 일어나고, 전혀 기억을 못하는 캐시를 지켜보다 보니 내 의식도 흐려지는 듯했다.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면서 혼잣말로 ‘이상해, 이상해’를 반복했다. 약 400쪽의 소설이 절반을 훌쩍 넘어서도 계속 그런 상태라 정신이상을 호소하는 게 어쩜 당연해 보였다. 능숙한 독자라면 캐시가 겪는 일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겠지만 나는 너무 깊이 몰입한 나머지 그저 과정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드디어 긴 터널을 지나 캐시가 모든 일을 알아채는 계기가 되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서서히 진실이 밝혀지려 할 때부터 책장이 더 정신없이 넘어갔다.

 

정말 다행이에요. 제가 잘못 기억했던 거면 친구분이 절 가만두지 않았을 거예요. 276쪽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누군가 자신을 궁지로 몰아 비정상적인 상태로 몰아간다면 캐시처럼 되지 말란 법도 없을 것 같다. 그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내적인 소모가 큰데 그녀는 이 모든 걸 어떻게 견뎠을까? 그녀가 단서를 발견하기 전까지 답답하고,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 지쳐가고 짜증이 났는데 지나고 보니 그녀는 오히려 굉장히 잘 견디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누군가 악의적으로 주변의 환경이 그렇게 만든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쳐지나갔던 자동차 속의 여자. 캐시는 그녀를 도와주려 했지만 여러 이유로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그녀는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아는 사람이었다는 충격과 공포감이 그녀를 점점 궁지로 몰고 갔다. 매일 걸려오는 말 없는 전화를 급기야 살인자라고 생각하고, 결국엔 교사 일을 쉬어야 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직전까지 간다. 남편과 친구 레이철이 보살펴주지만 점점 그들도 지쳐가는 기색이 보인다. 나 같아도 배우자나 친구가 이런 증상을 계속 호소한다면 결국엔 지쳐버렸을 것이다. 그나마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구원이 되었다.

캐시는 잃어가는 기억 속에서 혼자 싸우고 있었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정신을 완전히 놓지 않고 종종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 숲에서 살해된 제인의 남편을 찾아가 그날 그녀를 돕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 남편에게도 하지 못한 고백들을 쏟아놓는다.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의견을 말해주고 결국엔 어느 정도 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추적하고, 완벽한 증거가 손에 들어온 순간부터 사건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져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는 지혜를 발휘한다.

사건의 진실은 추악했지만 이유를 듣고 자신이 좀 더 배려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제인이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가정 앞에는 마음이 찡해졌다. 사람을 한 순간 미쳐가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릇된 욕망이 불러일으키는 범죄와 상처가 너무 깊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씁쓸함은 여전했다.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추악한 면이 언제든지 드러날 수 있다는 두려움, 그렇기에 이성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밖에 할 수 없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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