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요 며칠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던 날들이 계속됐다.  필요없는 외출은 자제하고, 휴일에도 집에만 갖혀 있었다.  꼭 나갈 일이 있으면 미세먼지를 상당부분 걸러낸다는 식약청 인증 마크가 찍힌 마스크를 착용했다. 하지만, 결국 외출을 피할 순 없었다. 출, 퇴근길엔 담배 연기에 준한다는 그 미세먼지를 잔뜩 흡입한 날도 있었다. 그 뿌연 안개를 보며 이것이 과연 꿈이 아닌지 헷갈렸다.  불과 2~30년 전, 내 어린 시절의 세상을 생각해 봤다.  맑고 한없이 투명했던 푸른하늘과 풍경들이 말이다.  과거 맑은 공기와 풍경은 상식이었다.  물을 사먹는다는 경제 관념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해서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 이야기가 동화책에 나오기도 했다.   2011년 태평양을 마주보고 서 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기 전까지 생선을 먹는 일에는 아무 거리낌도 없었다.

 

생각해 보라. 공기,물,음식 ...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존재하는데 필수적인 요건들이다. 사람들이 막대한 노동과 시간을 투자해, 갖기 소망하는 고급 아파트, 비싼 자동차들과는 차원이 다른 물질이다.  사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천원이면 살 수 있는 생수 한 통이다.  그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 출신의 정치,경제학자이자 1980년 이래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사 펴냄, 2002년)에서 현대 자본주의와 경제발전, 그리고 민주주의와 빈부 격차, 일과 소비 중독, 세계화 등에 관한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마구 뒤엎고 있다. 

 

문제는 아무도 그 상식을 의심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상식 자체가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단단히 주입돼 있다. 경제란 발전하는 것이 선이고 마이너스 성장의 길로 들어서면 악이다.  세계의 모든 정부와 정치인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역사관이나 종교, 민족성, 언어 등은 다르지만, 이 생각만큼은 세계평화를 이루고도 남을 정도의 공감과 일치를 이룬다.  하여, 경제발전은 신념이자 상식이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적인 기후변화나 중국발 미세먼지나, 식수의 오염이나, 방사능 공포 등이 이 상식에서 기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고 있는 경제성장이란 상식은 수정되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 경제제도, 즉 생산수단, 생산의 제관계는 절대적, 근원적으로 환경에 종속돼 있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경제제도의 하부구조는 틀림없이 바뀝니다.  환경이 파괴되면 경제제도도 파괴됩니다. 아무리 자연환경을 무시하고자 해도 인간이 생물인 이상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극단적인 무관심 혹은 현실도피형의 인간이라도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변화는 곧 반드시 일어납니다."  167쪽,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러미스

 

오늘날 많은 나라의 정부들은 경제성장이 되면 빈부격차가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러미스 교수는 빈부의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은 경제발전이 아닌 `정치의 문제'라 단언했다.  오늘날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양극화다.  경제가 발전했지만 왜 빈부차이는 해소되지 않는가?   모두가 부유한 사회란 실현 불가능하다.  사회적 자본이란 한정 돼 있고 자유시장경제에서 능력에 따라 부의 편중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하여, 빈부격차를 `정의'의 문제로 되돌릴 때 이 문제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진행될 수 있다.  결국 모두가 부유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호언은 경제발전이 아닌 `정의로운 분배'를 가능케 하는 `올바른 정치'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이 책의 논의는 실로 다방면에 이른다. 우리 세계와 사회, 정치와 경제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관찰하고 분석하는 러미스의 통찰력은 `상식의 파괴'에 가 닿는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적인 러미스의 사상은 과연 세계 경제와 환경이 지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경제발전을 선으로 포장하고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꿈꾼게 지난 20세기의 역사였다.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로 전환한지 불과 100년만에 지구는 빙산에 침몰당한 타이타닉호의 운명을 닮아가고 있다고, 러미스는 평가한다.   사람들은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많은 시간을 공장과 일터에서 보내고 있다.  국가는 경제발전이란 신화를 교육으로 주입하며 무차별적인 개발을 지속해 왔다.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일상의 환경 문제가 이와 연관돼 있다.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근접하기 바로 전까지 그 안의 구성원들은 저마다 자신이 맡은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 일해 왔다.  얼마 후 차가운 바닷물에 빠져 최후를 맞는 탑승객들의 운명은 하나뿐인 지구위에서 경제발전을 상식으로 알고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깨끗한 공기, 맑은 물, 적당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는 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발전은 환경을 파괴하고 이룩해야할 절대 목표가 아니다.   하여, 저자는 `대항발전'과 `제로성장'이라는 대안을 내 놓는다.   그것은 돈은 적게 벌고 소비는 줄이며, 일은 덜 해서 다른 의미에 닿는 행복과 삶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 대항발전은 경제는 성장하지 않아도 좋다, 그 대신 의미없는 일 혹은 세계를 망치는 일, 돈밖에는 아무런 가치도 나오지 않는 그런 일을 조금씩 줄여가자는 것입니다.  싫은 일을 줄이고 의미 있는 일만을 추구하는 것은 금욕주의도 뭐도 아니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바라지 않는 일로 잔업까지 하면서 과로사 직전인데도 끊임없이 일을 하는 삶이야말로 금욕주의라 해야 하지 않을까요."  111쪽 

 

벤자민 프랭클린은 "시간은 금이다"고 했다.  미국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초석을 다진 그가 이 말을 내뱉을 때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이 금언속에 `발전'의 개념이 내포해 있다고 진단한다.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돈 벌 기회를 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쓴 말이다.  하여, 이제 이 말을 "금은 시간이다"란 말로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이 시간이란 의미다.  경제 발전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때, 그간 수단은 항상 긍정돼 왔다. 그 결과가 환경파괴 였고, 노동자들의 삶의 질 저하였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점령하고 나서 다양한 토목사업을 진행해야 했지만,  그곳 원주민들의 노동력을 돈으로 살 수 없었다.  원주민들이 돈의 개념을 몰랐고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침략자들은 총칼을 앞세운 강제동원을 통해 그들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소중했던 것은 유럽인들이 가져온 희귀한 물건을 사는데 필요한 돈이 아니라,  지금까지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시간'이었다.  우리가 오늘날 자발적인 노예로 살아가고 있단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껏 당연하게 생각했던 대의제, 이것은 본래의 민주주의가 아닌 귀족제의 변형이란 사실을 아는가?   20세기 최대의 살인자는 국가였고, 그 대상은 바로 자국민이었다.  원자력은 체르노빌 사고 이전까지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최첨단 발전 방식이었다.  당신의 상식을 의심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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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03-1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저 유명한 토마스 페인의 '상식'에서 따와서 지으려고 했다죠.
저렇게 외우기 힘든 긴 이름보다 훨씬 좋아보이는데,
일본 출판사나 우리나라 출판사나 제목 선택이 아쉽네요.
내용이 정말 좋고, 훨씬 더 많이 읽혀야 할 책인데 말이죠.

개츠비 2014-03-15 21:38   좋아요 0 | URL
저자는 `상식'이란 제목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어보니 그 이유가 분명해 집니다. 차라리 저자가 생각했던 제목이 더 적당하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경제에 치유친 책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