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카를 융 자서전
칼 구스타프 융 지음, 조성기 옮김 / 김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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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은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최적화된 책이다.  타인이 아닌 자신이 설명하는 나란 주제가 자서전의 처음과 끝을 채워넣는다. 하여 자서전은 자기고백체의 문장을 구사한다. 용기 있는 저자라면 치부를 드러내놓기도 할 것이다. 이 솔직함이 자서전을 다시 펴보게 한다. 일생 살아온 자신을 설명하자니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다.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자서전은 대부분 그랬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일생과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칼 구스타프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조성기 옮김, 김영사 펴냄 2007년)을 읽고나선 그 생각을 바꿨다. 자서전은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섭렵한 이후에 읽어야 제대로 독해할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내가 칼 구스타프 융의 자서전을 읽게 된 것은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서평 덕분이다. 글 잘 쓰기로 소문난 정여울은 융의 자서전을 1천자의 감상으로 요리해 냈다.  짧고 알차게 쓰기란 항상 어렵다.  그 서평을 통해 프로이트 보다는 덜 중요하게 생각해 왔던 융에 대해 신비한 관점을 갖게 됐다. 서평 한 편의 위력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막상 융의 자서전을 독파하며 보낸 20일은 쉽지 않은 하루하루 였다. 융의 자서전을 섭렵하고서야 비로소 그가 왜 프로이트 만큼의 대중성을 얻지 못했는지 짐작이 갔다.  그의 심리 이론들은 한마디로 난해하다.  그 난해함은 융의 이론서보다 한층 자서전에서 더 위력을 발휘한다.  그럼에도, 독서를 중단할 수 없는 묘한 `끌림'을 계속 발산했다. 소설가 조성기의 무난한 번역도 한 몫했다. 

 

이 끌림은 역설적으로 그의 `난해함'에서 발원한다. 자서전으로 일생을 전념한 융의 사상과 이론을 정리할 순 없다. 하여,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가 있다면 나처럼 융 사상의 입문서로 자서전 읽기를 택하지 말것을 당부한다.  융은 죽기 4년 전인 1957년 구술을 통해 자서전 집필을 시도했다.  구술이란 방법을 택한 것은 그가 여든을 넘은 나이로 병약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서전의 상당 부분을 그는 직접 서술하기도 했다. 어떤 장들은 도저히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었고, 진중한 자기고백체의 문장으로 다듬을 필요을 느꼈다.  융 말년의 최후, 최고의 저술이기도 한 자서전은 그럼에도, 사후 출판될 태생적 운명을 갖고 출발했다.   융이 사후 출판을 강력 요구했기 때문이다.

 

"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Selbst: 인격의 가장 깊은 구심점) 실현의 역사다 "  11쪽, <기억 꿈 사상>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목사인 아버지 아래서 신앙교육을 받고 자라났지만, 융은 아버지와 같은 맹목적 믿음을 거부했다.  어느 순간에는 교회에 나가는 것도 꺼리게 된다. 커 가면서 그는 아버지의 신앙이 어떤 벽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융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버렸지만, 자신의 생각아래서 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신앙은 고통스런 사유와 행동을 통해 다시 인간안에서 새롭게 획득된다고 믿었다.  그는 심령현상, 기적, 우연성을 가장한 초현실의 사건이 우리 세계에서 이성과 양립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융의 묘비명에는 "부르든 부르지 않든, 신은 존재할 것이다"고 적혀 있다.  신에 대한 그의 생각은 생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 나는 그분을 믿는게 아니라, 그분을 압니다. "

 

융과 프로이트의 만남과 결별은 20세기 정신분석학 발전 역사에서 큰 사건이었다. 정신질환의 원인을 어린 시절의 성적 트라우마로 돌린 프로이트는 당시 학계의 심각한 저항에 직면했다.  <꿈의 해석>을 읽고 융은 프로이트의 사상에 일부분 동조하게 된다.  융은 당대 정신의학계에서 나름의 입지를 갖고 있었지만, 프로이트를 지지하는 것이 알려지면 큰 타격을 입게 돼 있었다.  그럼에도, 융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기꺼이 그의 편에 서겠다." 고 말하며 그와 교제를 시작했다.  드디어 1907년 2월 오스트리아 빈으로 프로이트를 찾아가 무려 13시간 동안 깊은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융과 프로이트는 연구의 방향이 달랐다. "신비주의와 이성주의"간 교제는 7년간 이어가다 결별의 수순에 이르고 말았다.

 

이 자서전에서 융은 유년 시절부터의 꿈을 많은 부분 복원시켜 놓았다. 기억력 자체도 놀랍지만 융은 꿈의 분석과 복원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을 분석하고 그 과정속에서 존재와 심리 세계의 의미를 추적한다.  융이 발전시킨 다양한 분석심리학의 개념들이 발견된 것도 자신의 꿈 속에서였다. 원시성과 태고의 상징들로 이루어져 있고 신화와 민담의 세계에서도 발견되는 `원형', 인류가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경험을 통해서 저장해 온 모든 잠재적 기억흔적인 `집단 무의식',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인 요소로 불리는 `아니무스' 등 이 모든 개념들은 이름없는 임상 환자들의 만남과 더불어 자신의 꿈의 분석과 추적을 통해 탄생하게 된 것이다.

 

" 우리가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지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을 단념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우주만물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문제를 학문적이거나 지적인 문제에서 제외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거기에 관한 어떤 관념이, 예를 들어 꿈이나 신화적인 전승을 통해 나에게 제공된다면 나는 그것들을 기록해둘 것이다. 심지어 하나의 견해를 짜내려고 시도할 것이 분명하다. 비록 그 견해가 언제나 하나의 가설로 남고, 그것이 증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 535쪽

 

솔직히 융의 심리학 이론에 대한 예비지식 없이 이 방대한 자서전을 읽는 일은 모험이었다.  융은 이 자서전의 학문적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하여, 사후에 출판되길 원했던 것이다.  모든 연구적 성과들과 그의 심리학 이론들은 깊이없이 다루어진다.  후일담이나 신변잡기적 감상,  무엇에도 구애됨 없이 자유롭게 서술하길 원했던 책이라 그런지 그의 사상 보다는 주로 삶과 경험에 치중한 자서전이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오면서 융은 좀 더 친절하고 고백적이다.  융은 세계 대전을 경험한 유럽 사회와 사람들의 이성주의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비판적 이성이 신화적 관념과 사후의 삶에 대한 관념까지도 죽여버린 현실을 통탄한다.  그는 의식과 얕은 지식으로 세계와 인간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는 `합리주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성과 합리주의만으론 우리 세계를 다 설명할 수 없을 뿐더러 무의식으로 표현되는 인간정신의 심연을 헤아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여, 칼 구스타프 융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대지를 `비밀로 가득 찬 세계'라 표현한다.  이 세계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예기치 못한 일들과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세계에 속하는 것'임을 인정해야 된다고 말한다.   융은 오직 그런 태도를 사람들이 가질 때에야, 우리 세계와 삶은 온전해 질 수 있다고 보았다. 거기에 하나를 더 정직히 보탠다. "나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무한히 크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자서전에서 그는 자신이 겪은 다양한 심령현상을 보고한다. 지인의 죽음을 예고하는 꿈이나 사후 세계에 대한 환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놓는 것을 볼 때, 그의 심리학이 왜 비과학적이란 비난을 받았는지 독자는 깨닫게 될 터다. 

 

이것에 대한 융의 답변은 분명하다.  존재와 우주, 그리고 세계가 과연 이성으로, 과학으로 완벽히 설명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심령현상을 경험했다. 그것은 예감이나 물리적 사건, 우연의 일치라는 모습으로 현실 세계에 등장한다. 신앙의 세계에 들어서면 이같은 심령현상은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모습을 띄기도 한다.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이성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다고 융은 잘라 말한다. 융 심리학이 신비주의와 종교적 색채를 띄고 있지만, 무의식 자체가 그런 성질을 이미 갖고 있다.  20세기 초반 프로이트와 융을 통해 무의식이 발견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성주의로 대표되는 `의식'이 인간의 총체적 정신이라고 착각해 오지 않았던가? 

 

융 심리학은 난해하고, 비과학적이란 비판은 합당할까?  융의 자서전은 정확히 그런 비판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흔을 바라보는 노학자가 정직히 고백하는 것처럼 "세계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고백 자체도 쉽지 않은 것이 권위를 중시하는 학자들의 습성이다.  하지만, 융은 그 모든 것이 가능한 우리 세계에 `비밀로 가득 찬'이란 수식어를 넣었다.  인간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성주의와 합리주의가 얼마나 황폐한 타락과 일탈로 나아갔는지 살아있는 인간의 역사가 증거한다. 사람은 의식으로 살지만, 그것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돛단배에 지나지 않는다.  무의식이란 대해와 심해를 기억하라. 이 자서전은 인간 융이 내면을 향해 띄운 무의식의 탐사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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