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까? - 홍봉주 vs 흥선대원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44 
방상근 지음, 조환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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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접하는 한국사법정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세계사법정》을 읽기시작한지 일년이 넘었고 그간 한권 두권 모아왔던 시리즈가 벌써 50여권 가까이에 이르렀다. 책을 워낙에 좋아하는지라 용돈을 모아 사기도 했고 어른들께 선물로 받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리즈 모으기에 무척이나 열중했던 결과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이 책들을 다른 아이들에게도 공개해 함께 책읽기를 하기로 엄마와 약속했다. 오랜만에 재판에 참관했으니 열심히 집중해야겠지? 오늘 법정에 설 사람(?)은 홍봉주 VS 흥선 대원군 이다. 홍봉주는 잘 모르는 사람이고 흥선대원군은 조선 제26대 왕(재위 1863∼1907)인 고종황제의 생부로서 살아있는 가운데 아들을 왕으로 올린 유일한 사람이다.

 

1866년 흥선대원군은 법을 어겼다는 등 다양한 이유로 천주교 박해 사건을 일으켰고 그 때문에 천주교를 믿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중 홍봉주는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3대에 걸쳐 순교한 집안의 사랑이었다. 그의 영혼은 역사공화국에 와서도 그것을 잊지못하고 분하게 생각하던 홍봉주는 흥선대원군을 만나서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천주교 신자를 처형한 곳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은 지나간 일이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시행한 일이라고 한다. 결국 홍봉주는 평소에 안면이 있던 나신앙 변호사를 찾아 방금 있었던 일을 말하고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고소하게 된다. 앞으로 재판은 어떻게 진행될까?

 

이번 재판의 논쟁이 된 천주교, 천주교는 어떻게 17세기에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천주교는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그리고 중국에 간 사신들이 이곳에 와 있던 서양인 선교사로부터 천주교에 관한 서적을 얻어오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면 신앙이라기 보다 학문으로 먼저 들어온 것이네~) 천주교를 접한 양반들은 처음에는 서양학문의 한 부분으로 이를 연구하였는데 정조때에는 몇몇 학자가 신앙으로서 천주교를 믿기시작하였고, 그중 이승훈이라는 사람이 청나라에서 서양인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온 뒤에 천주교회가 창설되었다고 한다. 그리고도 오랜 세월이 흐른뒤 천주교는 전국으로 확대되어져 나갔다.

 

천주교가 전국으로 확대되면 천주교를 믿는 사람도 수십, 수백배로 불어날것은 당연지사. 교회가 설립되고 5년 후인 1789년에 신자수가 100여명이었던 것이 1800년에는 1만 명, 1865년에는 2만 3,000명까지 늘어났으니 참 대단한 변화였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관점에서 보면 예로부터 조선에 뿌리박혀 있던 유교정신을 무시하고 국법을 여겼으며 종굑적인 진출, 경제적인 침탈, 국토침략의 순으로 조선을 빼앗으려 들 서양 세력의 음모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천주교를 의심할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해가 된다. 그것은 유교를 중시하는 당시의 지배 계층에게 불안감을 안겨주었고 탑압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단순히 지금의 시선으로 판단하기엔 아직 정보가 부족하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이 한 행동이 최선이라고 할수있을까? 당시의 시대가 그를 그렇게 몰아갔다 하더라도 그로인해 억울한 피해를 당한 많은 백성들의 서글품은 어떻게 풀어줄것인지? "하느님이 만인의 아버지라면, 세상 사람들은 비록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차별은 있지만 모두 평등하게 형제가 된다." 라는 것은 당시의 신분제도 하에서 용납될수 없는 사상이었다. 피고 흥선대원군의 조선왕 변호사는 유교를 중시하는 조선에서 유교의 가치를 부정하는 천주교가 부정하다 하였고 원고 홍봉주의 나신앙 변호사는 그러한 비판은 천주교에 대한 무지 혹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항변한다. 과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의 담당 판사 공정한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또한 배심원들의 선택은?

 

<판결문>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홍봉주가 흥선대원군을 생다로 제기한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왕 그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다. 다만 처벌의 수위가 합당했느냐의 부분에 있어서는 일부 피고의 책임을 인정한다.

 

<내 판결문>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은 피고  흥선대원군이 천주교 신자들을 의심한 이유는 어느정도 이해하나 홍봉주와 다른 신자들에게 가한 천주교 박해로 인한 정신적 피해 보상 및 손해 보상 청구를 기각한다. 다만 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억울한 죽임을 당한 그들에게 사과를 할 것을 명한다.



 
 
 
월요일의 공포 지그재그 22 
다니엘르 시마르 지음, 카롤린 메롤라 그림, 이정주 옮김 / 개암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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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앙, 숙제 다 했니?' 상사를 대신 일주일간 출장을 가게된 엄마로 인해 예기치않게 자유(?)를 만킥하게 된 줄리앙네 가족(아빠, 누나, 줄리앙). 월요일에 숙제를 내고 일주일의 유예기간을 거쳐 다음주 월요일에 검사를 하는 선생님이라, 항상 숙제를 열심히 해 우등생으로 불리던 줄리앙은 어쩌다 숙제를 못하게 되었을까? 숙제를 못(?)했다면 선생님께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함에도 줄리앙은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거짓말을 해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불량배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가방까지 빼앗긴 줄리앙, 위기는 곧 기회라는 듯이 숙제를 했으나 불량배들에게 가방을 빼앗겨서 안타갑다는 그 대신 발표를 하겠다는 말을 했고 반아이들의 선택에 의해 월요일의 챔피언이 되어 별을 받는다.

 

"야, 찌질리앙, 이거 해 놔! 안 그러면, 너 숙제 안 한 공책 오딜 선생님한테 보여 준다!" (p.72) 비밀이 오래갈수 없다고 줄리앙이 한 거짓말은 수요일의 괴물이라 불리는 스티브 말레트에게 제대로 들켜버렸다. 하필이면 불량배들 중에 말레트의 형이 포함되어져 있어 줄리앙이 숙제를 않했다는 사실을 말레트가 알게된것이다. 줄리앙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수 있을까? 자신이 완벽한 아이라 생각하는 줄리앙은 자신의 잘못이 선생님께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데, 숙제를 잘 해와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학생은 안느마리 라브리와 줄이랑 포트뱅 둘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선생님께 거짓말을 한 불량학생으로 밝혀지는 일이 반갑지않은 것은 당연지사.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 이번일을 잘 피해가 방법은 없을까?)

 

공부를 잘 하는 친구가 잘 못하는 친구를 도와주는 조건, 악어(오딜) 선생님의 그 조건은 참 좋아보였다. 한 반에는 잘 하는 아이가 있으면 못 하는 아이도 있는 법, 그럼에도 잘 하는 아이들끼리 어울린다면 물론 줄리앙은 함께 조를 짜자는 친구 스티브 말레트의 요청을 거절하고 혼자 하기로 하지만 결국 숙제를 제 시간에 못하고 만다. 그럼에도 거짓말로 제시간에 숙제를 해온 친구들을 제끼고 챔피언의 별을 획득했다면? 완벽주의자인 엄마를 만족시키기 위해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줄리앙에겐 그를 괴롭히는 화요일의 악마 루시 페를랑와 수요일의 괴물 스티브 말레트가 있으며 챔피언의 별을 두고 겨루는 적 안느마리 라브리가 있다.  

 

"괜찮아, 줄리앙. 넌 분명히 잘했을테니까." (p.59) 이 책을 읽으면서 딸아이가 생각났다. 소심하지만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는 뭐를 하든 느긋하게 생각하며 뒤로 미루기 일쑤였다. 야단을 쳐도 소용없었는데 그 아이에게 강적이 나타났다. 바로 올해 딸 아이의 담임을 맡으신 선생님, 숙제를 안해오면 집으로 전화를 걸어 숙제를 다한후에야 하교를 시키겠다고 말하시고는 진짜로 숙제검사를 받아야만 하교를 시켰다. 이제 아이는 집에오면 잠들기 전에 숙제를 꼭 하고서야 잠자리에 든다. 그덕에 난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두려워진다(?). 남의 말을 들은척도 않하는 아이에게 있어 선생님이야 말로 가장 무서운 강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직도 책읽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딸, 집에 오면 도서관에 틀어박혀 시간 가는줄 모르고 독서삼매경에 빠져든다. (그 열정을 공부에 쏟으면 안되겠니? 딸아~엄마는 이제 조급해 진단다.)



 
 
 
지하세계 아이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4 
프랑수아즈 제 지음, 최정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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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버림받아 지하(하수도)세계에 살게 된 다른 아이들과 달리 17살 소녀 이리엘은 부모가 마지막까지 목숨걸고 딸을 지켜주려 했다는 것이 달랐다. 이리엘의 특이함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혼자만의 삶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섯 살 난 조드나 갓난 아기 모이자 등 더 어려운 아이들을 돌본다는 것에 있다. 지상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계인 하수도, 그곳에도 약육강식은 존배하고 더 강한 자에게 먹히는 것은 어른들의 세계인 지상과 마찬가지다. 그런 삶을 거부하고 약자를 돌보는 이리엘이 그래서 더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 그들의 안락한 은신처(비행기 A380)가 경찰에 발각나고 아이들은 뿔뿔히 흩어져 버린다.

 

이동할 때, 하수도에서 부랑아들을 만났을 때, 땅 위에서 경찰이나 부자 구역 어른들을 만났을 때. (p.64) 이리엘은 어린 조드에게 3가지 주위사항을 알려주며 다시금 기억에 되새기게 한다. 만약의 경우 이리엘과 헤어졌을 때 그것들이 조드를 살아남게 할 가망성이 많으니까 꼭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5살의 조드나 아기 모이자는 지하세계 주민인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에게 도움이 안되는 불법거주자와 다름없으니까. 그들 입장에선 자기 세계의 주민이 아니라면 몰아내야 하는 적임에는 분명했으니까. 책속의 배경은 지금부터 13년 뒤인 2025년을 가르키고 있다. 그 사이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아이들이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가 되어 지하세계에서 살아갈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형 아틀란의 실종으로 새로운 대장이 된 예틀란이나 그를 따르며 복종하는 부랑아들, 동생인 놀란은 형을 배신하면서까지 그들의 손아귀에 잡힌 이리엘의 일행들을 구해준다. 왜 놀란은 위험을 무릎쓰고 이리엘 일행을 구하게 되었을까? 안전한 형의 보호아래 있는 것이 그에게는 더 좋은 일 아니었나? 13년뒤 실제로 그런 세상이 벌어진다면 그런 생각만으로도 두려움에 휩싸인다. 딸이 한참 성인이 되어 살아갈 그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평안했으면 좋겠다. 미래를 최악의 상황으로 그려논 많은 책들을 읽어왔기에 더욱 미래에 대해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생겨난다. 가가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13년후의 미래, 한정된 일자리에 매달려 아둥바둥 살아가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로 보여진다. 아니 목숨이 걸린 오히려 더 치열한 생존경쟁이 일어날것처럼 보여졌다.

 

내가 살지않을 아주 먼 미래를 이야기하는 책과 달리 내가살아갈수도 있는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이기에 더 관심이 갔고 그 실상에 더 불안함을 느껴야만 했다. 13년후 그때의 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린 시절 버려져 배움이 없는 아이들과 달리 글을 읽고 쓸줄 아는 등 이리엘의 교육수준은 상당히 높았다. 참! 지상셰게에에 올라갔다 경찰에게 체포당한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지하세계 아이들 뒤에는 폭력조직이 있다는데 그것도 사실일까? 지하세계(하수도)에 살아가는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단체가 있다는데, 그 단체의 조직원 중 드러난 인물이 바로 의사인 스모그(테오도르 모뵈르)다. 지금 우리의 발이나 다름없는 자동차를 사용할수없으며 비행기 대신 아에로솔로를 날아다니는 교통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도 재미(?) 있었다.


잘 사는 사람들은 사람처럼 살아가고 못사는 사람은 부랑자나 부랑아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 어쩌면 그런 세상이 책속에만 있는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극과 극의 현상은 어디서든 벌어지고 있으니까. 이제 이리엘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비행기 A380)에 새 가족이 들어왔다. 지하세계에서만 살아오던 놀란이 지상에서 잘 적응하며 살아갈수 잇을까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보게 된다.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수밖에 없는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 그런 세상을 상대로 놀날은 이리엘과다른 아이들의 보호자로서 살아갈수 있을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현재의 놀란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며 잘 해결해 나가길 바래본다.



 
 
 
달려라 얏상 스토리콜렉터 8 
하라 코이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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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露宿者) 또는 노숙인은 주로 경제적 빈곤으로 인하여 정해진 주거 없이 공원, 길거리, 지하철 등을 거처로 삼는, 도시에서 생활환경이 제일 나쁜 빈민 계급을 말한다.

 

내가 알고있는 노숙자의 이미지는 그다지 밝지않다. 그런데 고정적인 노숙자의 이미지를 확 깨트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달려라 얏상》의 주인공 얏상이 바로 그 사람이다. "신세타령이라는 건 도피 도구에 불과해. 젊을 때부터 신세타령에만 매달려 있다가는 평생 신세타령이나 하면서 살아가는 놈이 되고 만다고." (p.361) 골판지를 깔고 자고있는 다카오에게 "골판지 따위나 깔아놓고 퍼져 자는건 타락이라고" 걷어차며 호통을 치는 사람, 그것이 노숙자 다카오와 얏상의 첫만남이었다. 노숙자에게는 노숙자의 긍지가 있다는 특이한 설교를 하는 사람, 자칭 "긴자의 야스, 얏상"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얏상을 따라진정한 노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츠키지 중앙도매시장'은 얏상의 주요활동무대다. 노숙자이면서 상인들의 환영을 받는 유일한 사람, 다카오는 그의 제자가 됨으로서 전 세계 유일무이한 ‘노숙 푸드코디네이터’인 얏상과 그의 제자 다카오로 활동하게 된다. 노숙자라 해서 무조건 구걸하고 행패부릴 것이란 편견은 버려라. 일반인보다 더 자기몸을 관리하며 계획된 일상을 살아가는 외부에 보이는 것만 보면 절대 노숙자 같지 않은 사람이 얏상이다. 길거리를 자기집처럼 생각하고 생활하는 것이 노숙자의 기본, 얏상을 지켜보면 맛을보는  것에 대한 절대미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직장생활을 하다 노숙자로 전락한 다카오의 전력은 밝혀진데 반해 얏상에 대한 과거는 아직도 비밀이다.

 

"요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함께 채워주는 것이다." 요리는 단순히 배만 채우면 되는 것인줄 알았던 나에게 이 말은 충격적이었다. 왜 같은 재료로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내것이 더 맛없었는지 이 말로서 이해가 되버렸다. 배를 채우기 위해 만든 내 음식보다 먹을사람을 생각하고 만든 동생의 음식이 더 맛난 것은 당연한 일. 얏상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출입금지구역은 없고 어떤 음식이든 맛을 볼수있었다. 왜 그들은 노숙자 신분인 얏상을 그토록 환영하는 것일까? 음식점에서 노숙자란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인 불청객이 아니었던가? '머리도 몸도 매일 깨끗히 씻는다. 설사 소매가 다 헤진 옷이더라도 부지런히 빨아 입어야 한다. 손톰을 깍고 수염을 면도하고 귓속도 깨끗이 청소한다.' (p.12) 이렇게 깔끔하면 어디 노숙자라 말할수 있는가?

 

노숙자의 존재는 도시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거라며, 매일 몸단장을 성실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얏상의 철학은 읽는 나를 감동시킨다. 일본 최대의 수산물 시장인 츠키지와 각종 음식점에서 벌어지는 새다른 음식의 향연, 왜 다카오가 얏상의 제자가 되고 싶어졌는지 책을 읽어가며 이해가 되엇다. 맛난 음식을 마음것 즐길수 있다는것은 행복이다. 그것도 손님으로서가 아닌 가족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먹을수 있다면야. 뭐든 공짜란 없다 얏상이 자유롭게 그곳을 드나들수있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거저가 아닌 정보와 교환하는 대가'라는 것, 주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갇혀있어 정보가 어두운 주방장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댓가로 맛난 음식을 얻어먹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윈-윈 전략인 셈.

 

먹고나면 몸도 마음도 든든해지는 그런 요리가 그리워진다. 세상에서 그런 음식을 만들수 있는 존재는 바로 엄마, 엄마의 손맛이 깃든 음식이 그리워진다. 얏상의 제자로 정보를 취합하는 법을 배워가는 다카오, 때로는 얏상을 도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도 하며 서서히 홀로서기를 준비해 가는데, 세상에서 소바를 제일 좋아한다면 엄마의 반대를 무릎쓰고 가출을 시도한 소녀 미사키, 노숙자 얏상의 아내와 같은 존재인 신오쿠보의 빅 마마 오머니, 스승 얏상에게도 진정한 노숙자의 길로 인도해준 스승이 존재했다. 스승이 위기에 쳐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승이 있는 히시키리를 찾아간다. 얏상을 노숙자답지 않은 노숙자로 키운 그 스승이라는 존재는 어떤 인물일지 궁금했다.

 

진정한 무소유의 자유로움을 실천하는 얏상이 무척이나 부럽다. 언제든지 원하는 곳으로 떠나갈수 있다는 그 자유가, 많든 적든 소유를 한다는 것은 그것에 구속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구속당하고 또 구속하기도 한다. 책을 통해 진정한 자유로움을 배웠다면 그것을 실천할수는 없을지라도 마음속 한귀퉁이에 그런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간다면 잠시 불었다 지나가는 바람이 아닌 오래도록 함께 할수있는 그런 바람이고 싶다. 단순한 맛객이 아닌 얏상과 같은 '노숙 푸드코디네이터'가 되고 싶다는 새로운 소망을 꿈꾸게 되었다.

 

"재료의 차이는 미미하지만 이 차이가 가게를 망친다네. 이 메뉴는 그만둬야겠소." (p.358)



 
 
 
출항 1 버지니아 울프 전집 17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진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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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본 작가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게된 이유는 명작은 오래살아남는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 책이 살아남았기에 명작이라는 단순하다면 단순한 이유에서다. <울프만큼 많이 알려져 있으면서 울프만큼 읽히지 않은 작가도 드물 것이다>라고 말한 박희진 씨의 말이 책을 읽어가며 이해가 되었다. 평범한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나같은 독자는 읽고 이해하기에 넘 힘든 책이었다. 20세기 여성문학인 중 최고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인물들 중 한명인 버지니아 울프, 이 책은 당시의 시대가 어떠했는지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가 어떠했는지를 알기에 좋았다.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고 있던 1837년부터 1901년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배가 항구를 떠나간다는 의미의 이름 출항, 엠브로우즈 씨와 엠브로우즈 부인은 휴가를 남미의 산타 마리나로 떠나기 위해 '유플라지니'라는 여객선에 탑승한다.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그들 부부가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주인공은 뜻밖에도 그들 부부의 조카인 레이첼 빈레이스라는 24살의 처녀였다. 선주의 아버지의 명에 따라 외삼촌과 외숙모 부부를 배에서 맞이하게 되는 레이첼, 배를 타고 항해하는 동안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두 고모와 함께 살아가던 레이첼의 삶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테렌스 휴잇과 존 허스트, 레이첼 앞에 나타난 그녀를 고민에 빠트린 젊은이들이다. 헬렌과 리들리는 레이첼을 데리고 산타 마리나에 내렸고, 그곳에서 레이첼은 휴잇과 허스트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들 중 한명을 선택해야 하는 고민에 빠진다. 저자 버지니아 울프는 왜 주인공 레이첼에게 평범한 삶을 주지 않았을까? 두 사람 중 테렌스 휴잇과 결혼을 약속하고 약혼하게 되지만 아마존 상류 원주민 마을로 탐험을 떠났다 열병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지고 죽음을 맞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출항》은 버지니아 울프의 첫 장편 소설이고 오랜시간 수십번의 수정작업을 거친 정성이 깃든 작품이기도 하다. 책속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정서가 많이 배여져 있어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약간이나마 알수있게 해준다. 책을 통해 알수없었던 것들을 진명희 씨의 작품해설을 통해 약간이나마 이해할수 있게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24살이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순수함을 간직한 레이첼, 최소 110년전에 쓰여진 책이라면 그 당시 여성들은 10대 후반의 나이에 결혼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레이첼의 결혼은 늦어도 한참 늦은것인데~~~.

 

저자는 왜 순진한 레이첼의 첫 상대로 유부남 리처드 댈러웨이를 선택한 것일까? 아버지 뻘인 리처드가 아닌 비슷한 도래의 청년을 상대로 맞아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만들어 줄수는 없었을까? 작품해설편을 통해 그 이유를 듣게되었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불만은 생겨난다. 정치적 본능이라는 것을 가진 여자는 단 한명도 없다며 여성들의 정치에 대한 참정권을 거부하는 보수적인 남자가 레이첼의 첫 성경험 대상이라는 것은 그녀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겠다는 의지와도 같아 보였다. 은연중 자유를 향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레이첼, 저자가 작품속 주인공인 레이첼을 통해 자신이 갈구하는 것을 그리길 바랬다.


 솔출판사의 버지니아 울프 기획시리즈 중 첫편인《출항》1,2권을 읽었다. 이미 나온 책과 출간 예정중인 나머지 18권의 책들도 기회가 닿는다면 만나보고 싶다. 어렵게 시작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지만 한번두번 읽어가다 보면 그녀의 작품세계에 빠져 공감하며 함께 호흡을 할수있는 날도 오리라 믿는다. 아직은 공감한다고 자신있게 말하기에는 나 자신이 많이 부족함을 절감해야 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