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박물관 순례 1 - 선사시대에서 고구려까지 국토박물관 순례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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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출간되기 시작한 지 30. 그동안 국내외를 두루 돌아다니며 펴낸 답사기가 총 스무 권에 달한다. 그럼에도 유홍준 교수는 "아직도 답사할 곳이 너무도 많다"라며 국토박물관 순례라는 제목의 답사기를 새로 시작했다. 기존에 내놓은 "답사기에서 다루지 않은 유적지를 선사시대부터 삼국·가야·발해·통일신라·고려·조선을 거쳐 근현대까지 시대순으로 찾아가"려는 것이다. 열두 권에 걸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다 담지 못한 답사처가 여전히 남았다는 사실, 그 답사처들에서 풀어낼 이야기가 "이제까지 쓴 것만큼 더 써야"할 정도로 많다는 사실이 대단하다. 우리 국토와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연구 열정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체력 또한 여전하다는 말 같아서다.

 

국토박물관 순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선사시대부터 따라 답사한다. 1권에서는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시대, 고구려 시대를 다룬다. 저자는 이전 답사기에서 다루지 않았으면서 각 시대를 대표할 만한 유적지를 골랐다. 그렇게 선택된 답사 장소가 각 시대별로 연천 전곡리, 부산 영도, 울산 언양 그리고 중국의 단동, 환인, 집안이다. 연천과 부산, 울산은 책을 준비하면서 직접 다시 답사했지만 고구려의 주요 유적은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의 영향으로 답사할 수 없었다고. 유홍준 교수는 대안으로 2000년의 '압록·두만강 대탐사단' 답사기를 가져와서 같은 유적지가 20여년 동안 변화한 부분에 대해 설명을 추가했다.

 

연천 전곡리의 구석기시대 유적은 "세계 고고학지도를 바꾼 주먹도끼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막연히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된 곳으로만 알고 있던 연천 전곡리의 역사를 상세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군 병사 그레그 보엔이 우연히 발견한 주먹도끼에 세계 고대사 지형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그리고 이후 진행된 발굴 상황과 최근 건립된 전곡선사박물관 건립기가 소개된다. 이어 박물관 내부를 설명하면서 인류 진화의 과정을 도판과 함께 보여주고 출토 유물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저자는 구석기시대의 연천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가까이 있는 가볼만한 장소들을 함께 소개한다. 발굴에 힘쓴 고고학자 김원용의 일대기를 해설하고 인근의 '연천 주상절리', 고구려 시대에 축성된 '당포성', '호로고루', '은대리성'을 보여준다. 한 장소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쫒아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넘나드는 것이다.

 

신석기시대 유적을 찾아 부산 영도를 살피고 울산 언양에서 신석기에서 청동기를 거쳐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유물을 둘러본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만을 알고 있었는데 그 인근에 천전리 각석과 대곡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지역의 유물이 소장된 울산대곡박물관이 있었다. 천천리 각석에는 청동시 시대 추상무늬와 신라시대의 문자가 새겨져 시대를 관통하는 유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책 뒷부분 절반 정도 분량을 차지한 고구려 유적 답사는 현재 불가능한 상황 때문에 더 흥미롭게 읽힌다. 저자는 고구려 역사 답사를 지역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눴다. 다수의 고구려의 성터가 자리 잡은 압록강 주변, 고주몽의 건국 신화가 깃들인 오녀산성과 환인 지역, 유리왕이 수도를 옮겨 지은 집안(국내성).

 

집안의 환도산성 자락에의 산성하 고분군에는 고구려 적석총 수천 기가 있다. 환도산성 꼭대기에서 찍은 고분군 전경은 어느 피라미드 집락 못지않은 위용이었다. 고구려 적석총이 수천 기씩 모여 있는 고분군이 몇 개씩 있다는 걸 알지 못해 놀라울 따름이었다. 저자는 고구려의 고분과 신라·백제의 그것을 비교해 설명한다.

 

좀 더 올라가 북쪽을 바라보자 산자락 아래로 수천 기의 적석총이 무리지어 있었다. 집안 산성하 고분군이었다. 그 장대함은 송기호 교수가 환인의 오녀산성과 함께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을 보여주는 두 가지 중 하나로 지목한 것이다. 경주 신라 대릉원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집체미, 백제의 공주 송산리 고분과 부여 능산리 고분의 우아한 능선과 달리 고구려의 강인함과 장대함이 절로 다가온다.

pp.266-267

 

현재는 하나만 개방돼 있는 벽화 고분의 양식사 설명도 유익하다. 읽을 수록 새로운 지식이 새록새록한 건 한국사와 한국미술 공부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의미일 게다.

 

고구려 벽화고분은 350년 무렵부터 668년 멸망까지 300년간 조성되면서 초기 100년간은 여러 칸 무덤의 초상화, 중기 100년간은 두 칸 무덤의 풍속화, 후기 100년은 한 칸 무덤의 사신도 벽화로 이동하는 양식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러한 양식의 변화는 무덤의 주제가 초기는 피장자 개인, 중기는 내세의 삶이 영위되는 공적인 공간, 후기는 영혼의 세계를 구성하는 질서 등으로 변해간 것을 말해준다. 즉 고구려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 이처럼 점점 높은 차원으로 발전해갔음을 알 수 있다.

p.285

 

국토박물관 순례1권은 압록강을 따라 흘러가는 뗏목의 모습에서 마무리된다. 지난 2000년 유홍준 교수가 이 지역 답사를 다녀올 무렵 같은 지역 역사탐방을 다녀왔었다. 둘러본 루트는 비슷하지만 갖고 있는 답사자의 배경 지식에 따라 답사의 후기는 천만가지 차이가 난다. 다시 간다해도 이제는 직접 광개토대왕비를 직접 볼 수 없을 것이며 각종 유적에 접근할 수도 없다.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를 따라 오래 전 걸었던 고구려의 땅을 떠올려볼 뿐이다.

 

저자의 답사기는 동선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답사 목적지에 더해 지나치기 아까운 인근의 유적지로 안내한다. 각 장 별로 그 시대에 중요한 역사 지식도 빼곡해 흥미를 위한 독서에도 지식을 위한 독서에도 충실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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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창비청소년문학 123
박영란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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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 초록 풀밭에 잠긴 집 한 채, 집 옆엔 흔들리는 그네, 2층 테라스 밖을 내다보는 두 사람, 아래쪽 풀 숲 그늘에서 그 집을 바라보는 두 아이. 박영란 장편소설 시공간을 어루만지면의 표지는 집과 풀밭에 나눠선 인물들을 반짝이는 은색 세로선 안에 묶는다. 서로 다른 존재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한 순간을 암시하듯이.

 

박영란 작가는 장편 나의 고독한 두리안 나무(자음과모음, 2011)로 데뷔한 이래 꾸준히 청소년 소설을 써오고 있다. 편의점 가는 기분』 『게스트하우스 Q』 『안의 가방등을 출간하면서 "혼란스러운 성장의 단면을 깊이 있게 조망하는가 하면, 청소년문학의 아름다움을 갱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는 성인과 아동 사이, 시시각각 두 시기 사이를 오가는가 하면 '청소년기'의 독특함 또한 내재하고 있는 날들에 주목한다.

 

시공간을 어루만지면은 시골에서의 삶을 선택한 아버지와 도시를 떠나지 않으려는 엄마의 결정에 의해 이사하게 된 남매가 등장한다. 고등학생인 화자 나는 아버지의 무책임한 이주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어떻게든 도시에서의 삶을 꾸려보려는 엄마의 노력에 힘을 보내려 한다. 부족한 돈으로 반지하와 원룸 이외에 최선의 선택지는 앞 건물의 그늘에 가려진 외진 2층집. "2년만 살자"는 엄마의 말에 이끌려 좁은 통로를 지나 들어간 그 집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알미늄으로 만든 작은 방울 소리거나 녹슨 철 조각이 조심스럽게 서로 부딪는 소리 같".

 

아버지의 갑작스런 퇴직과 귀향은 나머지 가족들에게 혼란을 안겼다. 중산층의 삶은 한 순간에 쪼개져 이사와 전학이 반복된다. 시골의 남편을 안착하도록 돕과 아이들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엄마는 하루가 달리 소진돼 간다. 고등학생 누나인 ''는 초등학생 동생 '' 앞에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낼 수 없다. 아버지는 멀게만 느껴지고 엄마에게 힘듦을 더 보탤 수도 없다. 엄마와 나 그리고 준은 각자의 복잡한 시간을 버티고 있다.

 

"이 세상에 속고, 이 도시에 속고, 직장에서 속았다"며 시골 살이를 떠난 남편을 따라 어느 날 갑자리 삶의 터전을 바꿀 수 없었던 엄마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나와 준도 마찬가지. 대출로 지탱되었던 중산층 생활을 정리하자 두 집으로 나뉜 살림은 빠듯했다. 엄마는 다시 일자리를 찾았고 아이들은 바뀐 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이루어질 만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었다. "자라면서 매 시기마다 계획한 범위 안에서 일이 이루어지는 걸 경험한 사람"들로서는 하루 아침에 달라진 삶터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가끔 아버지가 도대체 무엇에 속았다는 것일지 생각할 때가 있다. 아버지 역시 엄마처럼 이루어질 만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면서 살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눈앞에 보이는 꿈들을 이뤄 내면서 살아온 아버지가 어째서 속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p.49

 

나와 동생 준이 2층 집의 캄캄한 다락방에서 안정감을 찾을 즈음 아래층에서 수상한 소음이 들려오고 곧 그 집에 사는 사람이 나의 가족만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비어 있다던 아래 층에는 할머니와 아이 둘이 숨어 살고 있었다. 아래층 식구들이 숨어 살게 된 사연을 공유하는 동안 나의 가족이 견디고 있는 시간이 지나간다.

 

딸이 두고 떠난 쌍둥이 자작과 종려를 거두면서 아들이 팔아버린 자기 집에 숨어 살아야 하는 할머니의 상황은 나의 엄마의 다른 모습같다. 할머니를 묵묵히 도우러 오는 손자의 존재는 나의 모습과 중첩되고 험한 상황 속에 녹아들어 적응하는 쌍둥이는 동생 준의 또다른 모습같다. 서로가 서로의 의지가 되는 한 때를 보내고 두 가족은 각자의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맘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선택'이라고 할머니가 말한다.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인생에 속수무책으로 쓸려갈 것이냐 혹은 그 때 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의지에 따른 삶을 살 것이냐. 선택이라는 행위는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이 아닐지. 스스로 의미있는 가치를 부여한 시간은 그것이 혼돈과 절망의 모습을 하고 있다해도 견딜만 한 것이 되지 않을지.

 

그때 할머니는 인생을 두고 너무 아름다운 꿈을 꾸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인생이 분명히 있을 테지만,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름다운 인생은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불쑥 물었다.

"그럼 어떤 인생이 아름다운 건데요?"

() 할머니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맘먹은 대로 되지 않았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달렸지. , 거기에 달렸지."

pp.154-155

작가는 애초 "서백자 할머니와 자작, 종려를 죽은 사람들로 설정"했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이들 세 사람과 또 다른 손자 장희의 삶은 시종 모호하다.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 설명만으로는 그들의 시간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작가가 애초에 의도했던 설정때문이기도 할테지만 우리가 이웃과 맺는 관계의 방식 역시 그러하다지 싶다. 우리가 주변과 마음을 주고 받을 때 그들의 현재 삶이 구성된 방식이 얼마나 중요한가.

 

할머니 아들의 욕심으로 동네에서 가장 훤했던 2층 집은 빌딩의 어둠에 잠기게 됐다. 그러나 그 집에 숨어든 할머니와 손녀 그리고 2층에 세를 얻은 나의 가족은 서로가 힘겨운 한 때를 건너도록 돕는다. 각자의 다른 삶이 시작되고 연결은 끊기지만 지나간 "환영 같은 세계"는 그 세계를 통과한 사람들 사이에 남아 그들만의 시공간이 된다.

 

오래된 이곳은 누군가가 살던 자리였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이 무너진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다른 누군가는 다시 시작한다.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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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작품
윤고은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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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출판사가 '지식공동체 그믐'에서 진행한 윤고은 작가의 신작 『불타는 작품』 북클럽에 참여했다. 『불타는 작품』은 앞서 발표한 작가의 단편  「불타는 작품」과 「Q」를 모티브로 격월간 소설잡지 <Axt 악스트>에 일 년 넘게 연재됐던 소설이다. 단편 「불타는 작품」에서는 후원하는 작품을 불태워야 한다는 설정을 가져오고 「Q」에서는 도시이름과 이미지를 가져왔다. 두 단편에 동시에 등장하는 '개' 역시 장편이 된 『불타는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동물?)이다.


소설을 읽기에 앞서 윤고은 작가 인터뷰를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들었다. 배경 설정 파격적인데다 미리 알면 안될 중요한 스포일러가 있다니 본 내용을 읽기 전 궁금증이 폭발했다. 작가의 목소리는 발랄명쾌했다. 책에서 배어나오던 음울함은 당췌 느낄 수 없는 하이톤이었다. 작가는 해외독자들이 『밤의 여행자들』을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이더고 전하며 블랙유머를 작품의 한 요소로 소개했다. 『불타는 작품』 속 블랙유머는 어떤 모습이려나 싶었다.


소설은 기본 설정부터 범상치 않다. 조작할 수 있는 카메라만 보면 사진 그것도 탁월한 구도의 작품 사진을 (쥐도 새도 모르게) 찍어내는 개가 등장하고 실종 끝에 국립공원에서 연인과 함께 고립돼 죽은 채 발견된 재벌집 외동딸의 미스터리 거기에 생업에 종사하느라 예술혼에 회의를 느끼는 라이더에게 어느 날 도착한 막대한 후원제의까지. 상식(이라고 여기는 무엇)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상처럼 늘어서 있다. 여기에 의문을 제기할 거라면 이쯤에서 책을 덮으라는 듯이 말이다.


초반에 몰아치는 상상력의 파고를 넘고 나면 화가 안이지가 겪는 창작의 고통과 작품이 갖는 고유의 가치가 형성되는 과정으로 들어선다.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당도한 후원의 기회에 고마워 하는 시간은 잠시이고 혜택 수령을 위한 험난함이 길고 지리하게 이어진다. 공항에 픽업은 실종, 담당자 연락 두절, 숙소 포화, 간신히 연결된 재단의 부실한 대응, 예정없이 길어지는 대기 기간 그리고 시시각각 가까워오는 산불이라는 재연재해. 과연 이것은 수혜인가 그것을 가장한 고난인가.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로버트'라는 개이름을 딴 후원 재단에서는 또다른 모습의 시련이 기다린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강박을 시설 전체가 고수하고 있었으며 통역을 건너 개의 언어는 우아한 모멸감을 자아낸다. 재단과 결연을 맺고 작가의 예술적 모티브가 된 도시 Q의 압박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작품 전시 기간은 시시각각 닥쳐온다. 


로버트는 예술이 현실의 이면, 꿈을 넘어가서 계속 되는 빛나는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개는 색맹으로 알려 있는데도 불구 산불 지역의 위성 사진을 보며 붉은 빛의 아름다움을 논하고 작가가 입은 의상의 색상 배치를 칭찬한다. 특별한 심이안을 발휘하는 개 로버트가 선택하는 작품은 그것이 무엇이든 훌륭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로버트에게 인정받은 작가는 이후 탄탄대로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작품만 희생한다면.


나는 예술이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는 막다른 골목이지만, 꿈으로 넘어가서 계속 얘기하자고 말해주는 마음. 그게 예술가가 우리에게 심어주는 빛이죠. 안이지 작가님, 당신의 전시가 끝난 후에도 나는 한동안 당신 작품 속에서 살고 있을 겁니다.

p.148


재단이 자비로운 후원 대신 안이지에게 제시한 조건은 후원을 받는 기간 동안 생산한 작품 중 재단 주인 로버트가 정하는 단 하나를 불태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이지는 불태울 용도를 가정하고 작품을 만든다. 우연에 우연이 겹친 가운데 떠오른 영감이 작품이 된다. 그리고 로버트는 소각로에 들어갈 단 하나를 선택하는데, 안이지가 목표로 한 그것이었다. 그런데 개의 선택 이후 안이지의 마음이 묘하게 변화한다. 불태울 것을 감안해 버려지는 것이 당연한 재료까지 활용한 작품에 애정이 샘솟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가 사랑하는 작품을 로버트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로버트가 선택한 작품을 작가가 사랑하게 되는 구조겠죠. 어떤 경우에든 작가는 사랑하는 걸 불태울 운명을 피할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당신은 결국 그것과 사랑에 빠질 겁니다.

p.186


소설은 안이지가 불태워질 작품에 쏟는 집착과 그 작품이 갖는 실제 작품성의 의미를 은밀히 묻는다. 작가가 부여하는 의미, 감상자가 부여하는 의미, 작품 주변인이 의도적으로 생산한 의미 등. 어떤 의미로 평가하는 것이 합당할 것인가, 만일 한 가지 의미가 의도적으로 비대해져 가치가 상향된 작품이라면 그것은 진실로 가치있는 작품일 것인가. 어떻게 생산된 의미이든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수요자가 많은 작품은 가치있는 작품일까.


로버트 재단의 소각식 퍼포먼스는 작품의 소멸과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을 연료로 예술 수요자의 주의를 끈다. 재단이 설립되기까지 거친 화제성과 소각에 얽힌 스토리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재단의 권위에 힘을 실어준다. 재단은 에술의 가치를 좌우할 수 있는 권위자로서 지위를 누린다. 


어떻게 트리밍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표정을 갖게 된다. 빌의 경우에도 그랬다. 소각식을 의심한 적은 없었으나 유령 같은 작품으로 인해 그는 상하좌우, 프레임 밖의 세상을 더듬어보게 된 것이다. 빌의 말은 결국 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로버트가 소각한 작품들이 어디로 가는가? 소각식 이후에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닌가.

p.295


화려하게 예고된 화형식의 제물이 될 작품을 구출하기로 마음먹은 안이지가 뛰어든 문 안쪽에는 정교한 로버트 스토리의 '이후'가 있었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기괴한 사건이 가뭄 끝의 폭우 속에 펼쳐진다. 붉게 타오르던 화재를 덮어버린 폭우, 폭우에 멈출 수밖에 없었던 소각식. 재단으로 향할 때 일어난 문제의 원인을 제공했던 화재를 멈추게 한 폭우는 소각식의 가능성을 떠내려 보냈다. 화형식을 치르지 못한 작품 그리고 작가는 이 폭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폭우에 의해 휩쓸려간 또다른 무엇이 있지 않을까. 안이지는 작품의 구조와 희생 중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을까.


주인공의 이름 '안이지', 배달 앱 '빨리', 대체 가능한 복제품을 연상시키는 개의 이름 로버트(로봇?) 등, 윤고은 작가는 작명에 남다른 특기가 있다. 작명이 별 고민 없이 순식간에 이뤄진다는 점은 더 놀랄 거리다. 개의 심미안에서 비롯한 '로버트 월드'는 그 이면을 드러낸 후 "프레임 밖"을 떠올리는 '안이지 월드'로 탈바꿈한다. 『불타는 작품』을 넘은 이후에 예술을 대할 때 '작품에 대한 사랑'의 근원을 질문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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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삶
마르타 바탈랴 지음, 김정아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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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고 있어. 보이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야. p.208 

브라질 작가 마르타 바탈랴의 소설 보이지 않는 삶에서 가장 매력적인 문장이다. '보이지 않음'을 알아보고 그것을 책으로 쓰려는 여성,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다. 이 문장에 호기심을 느끼는 독자는 본격적인 독서를 결정하기 전에 자신의 관심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에 더 관심이 가는지 혹은 '보이지 않음'이 더 궁금한지. 마르타 발탈랴의 소설은 '보이지 않음'에 더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2016년에 브라질에서 출판된 소설은 영화화돼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에우리지시와 기다 자매를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가부장적인 가족과 사회 분위기 안에서 서로를 보듬는 자매애에 촛점을 맞췄다. 영화의 원작 소설은 더 다채로운 '보이지 않음'을 펼쳐보인다. 사랑을 배제한 선택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 에우리지시와 열정 하나에 한 시절을 바친 자매의 대조적인 모습이 소설의 중심이다. 작가는 자매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부모, 가깝고 먼 가족, 주변 마을 사람들에까지 폭을 넓힌다. 그들 모두, 특히 여성들의 인생은 '보이지 않음'에 의해 주조된 것이었다.

 

서사 틈틈이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나는데 가장 흥미로운 예는 에우리지시가 의상 디자이너로 일하는 걸 남편 안테노르가 알게 되는 장면에서다. 안테노르는 자신의 집에 의상 제작을 의뢰하러 들른 여자들이 가득 찬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는 "내게 필요한 건 가정에 전념하는 여자"라며 "좋은 아내는 남편과 자식들 외에는 쳐다도 보지 않아야" 한다고 반복해 소리친다. 신비로움은 부부의 아이들에게서 발생한다. 안테노르가 소리치는 순간마다 아이들이 초췌한 모습으로 변해간 것이다.


"나는 일하러 가고, 너는 애를 봐야 해."

안테노르가 겨우 반복을 멈췄을 때 더 특이한 일이 일어났다. 그들이 소리를 한 번 지를 때마다 아이들의 상태가 더 안 좋아진 것이다. (…) 신의 보살핌만 받고 사는 아이들이었고, 자신의 운명을 운에 맡긴 아이들이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빈민가의 아이들이나 다름없게 될 것이다.

pp.70-71

시인의 재능을 20대 초반 여섯 아이 출산에 바쳐야 했던 안테노르의 어머니 마리아 히타, 미혼모가 되어 오갈데 없어진 기다와 프란시스쿠를 돌보고도 매춘부였기 때문에 정체성이 숨겨진 필로메나, 부유했던 과거를 잊지 못한 채 아들을 담보로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으려는 기다의 시어머니 에울랄리아에게도 현재는 보이지 않는 삶이 있었다. 그러나 정해진 미래는 출산이요, 운이 좋아야 가사노동을 면할 수 있고 남편과 아이들만 바라봐야 하는 가부장 체계의 한계는 여성의 삶을 모순으로 가득채웠다.

 

가부장 사회의 영향은 남성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회적 규정에 맞는 아내를 요구했던 안테노르는 '영혼없는' 아내를 마주하고 당황한다. 책임을 다하되 감정도 활력도 없는 아내, 안테노르는 '아내'의 기준에 의문을 떠올리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그는 문제의 핵심을 몰랐고 알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사고의 지체 현상은 기다의 첫사랑 마르쿠스에게도 나타난다. 돈으로 학위를 취득하고 의사가 된 그는 병원이 왜 잘 안되는지 몰랐고 자신이 사랑보다 안락한 일상을 선택할 사람이라는 것, 혈육에 대한 책임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삶' 이면에 '무사고(無思考)'가 있다.

 

에우리지시는 첫 프로젝트로 요리책을 썼다. 남편의 비웃음 덕분에 그 '작품'은 한 순간 쓰레기통 신세. 하지만 에우리지시는 자신의 노고가 깃들인 '작품'을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 그는 거실 책장 뒤를 그 '작품'의 무덤으로 삼았고 좌절에 빠졌을 때 그 앞을 지켰다. 에우리지시는 책장 앞에 놓인 소파에 앉아 문학과 백과사전이 보여주는 세계 너머 자신의 작품을 기억하고 재기를 다진 것은 아닐지.


안테노르가 터트린 폭소가 그녀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거실의 시계가 세 번 울렸을 때, 그녀는 그것을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 에우리지시조차 왜 자신이 그 공책을 다시 가져왔는지 몰랐따. 에우리지시는 공책의 검은 표지를 행주로 닦으면서 생각을 잠시 미뤘다. 젖은 공책 속지 사이사이 종이를 끼워 넣은 뒤, 거실 책장을 장식하고 있는 백과사전 전집 뒤에 숨겨두었다.

방으로 돌아온 에우리지시는 그제야 잠들 수 있었다.

p.48

소설의 마지막은 에우리지시의 끝없는 타자기 소리에 묻혔다. 쉬지 않고 써낸 글은 어디에도 실리지 못한 채 책상 서랍 속에 쌓였다. 에우리지시의 성공을 바랐지만 그런 결말은 너무 안이하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굴러가지 않으니까. 작가는 에우리지시의 책 '보이지 않음의 역사'가 지혜를 가진 눈에 띄리라는 예측을 '작가의 말'에 조심스럽게 남겼다. 그러나 아무렴 어떤가. 에우리지시가 글로 발굴한 '보이지 않음'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 화석이 되어 영원히 남을 텐데.


새로운 단계를 맞이한 에우리지시에게서 가장 거슬리는 게 있었다면 눈빛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상대방을 바라볼 때, 마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겠다는 듯이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안이 제대로 굴러가즌 이상, 아폰수가 머리 자르는 것을 잊지 않고 세실리아는 아무 데서나 헤프게 웃어대지 않으며 항상 적당한 길이의 치마를 입는 이상, 안테노르의 슬리퍼와 소파의 쿠션이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는 이상, 에우리지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눈빛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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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선량한 보통 사람의 무의식에 잠재한 '차별'의 넓고 깊음을 길어올렸던 저자 김지혜가 이번에 '가족'의 공고한 '정상성'을 질문한다. 아직 출간 전이어서 『OO각본』이라는 표제가 붙은 샘플북을 출판사로부터 받아 보았다. 제목에 대한 궁금증은 프롤로그 '가족이라는 각본'에서 바로 풀렸다. 전작에서 누구에게나 해당되(지만 본인은 모를 수 있)는 편견의 실체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국가 소멸을 운운케 하는 저출생 문제의 근본 원인인 가족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당신의 OO은 '정상'입니까?

차별 없이 평등한 OO을 꿈꾸는 모두에게


가족 제도에 대해 저자의 촉발한 한 문장이 있다. "며느리가 남자라니 웬 말이냐!" 차별금지법이 거론될 때마다 등장하는 외침인 모양이다. 이 "개탄의 구호"를 외치는 쪽은 차별금지법이 동성결혼을 인정하면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문란해지며 결과적으로 출산율이 떨어져서 나라가 망한다는 논리를 편다. 주장의 불편함은 둘째치고 여러 모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목소리가 큰 힘을 얻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여전히 요원한 일로 남아있고.



김지혜 저자는 "가족 안에서 우리의 관계와 역할은 왜 성별로 규정되며, 애초에 이 역할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파고든다. 도덕, 윤리, 전통이라고 믿어지는 정상 가족을 상정한 '각본'에 빨간펜을 들이댄다. 그리고 질문한다. "며느리가 여자여야 하는 게 더 문제가 아닌가?", "결혼을 해야 출산하고, 결혼을 하면 출산하는 게 당연"한가?, "동성커플의 등장으로 성별 분업이 해체된 가족은 어떨"까?, "성교육이 가족질서를 유지하는 규율로서 작동하"는가?, "한국사회가 애써 지키는 가족각본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가족각본을 넘어선 가족과 제도"는 어떤 것일까?



샘플북에는 책의 프롤로그와 1장부터 3장까지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미리 공개된 차례를 살펴보면.


프롤로그 가족이라는 각본

1장 왜 며느리가 남자면 안 될까

2장 결혼과 출산의 절대공식

3장 초대받지 않은 탄생, 허락받지 못한 출산

4장 역할은 성별에 따라 평등하게?

5장 가족각본을 배우는 성교육

6장 가족각본은 불평등하다

7장 각본 없는 가족

에필로그 마피아 게임


"출산 기반인 결혼이 해체되면 "사회적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종말적 예언"에 대한 반론 과정이 인상적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로서 출산의 적법성을 가리려는 이유를 따져보면 "남성에게 결혼 밖에서 출생한 자녀에 대해 아무런 의무도 지우지 않음으로써" "부정적인 재정적 결과를 피하면서도 성적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저자는 문제의 원인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한편 "자기 자식을 버"리려는 의식적인 의도라기보다는 "남성을 중심으로 구축되어온 역사적 배경에 기인한다"는 (부분)면죄부를 주어 논의를 극단화하지 않는 묘수를 발휘한다.



저출생을 논의하는 대목에서 출생 당사자인 아이를 중심에 놓아보는 시도도 주목할 만하다. 앞선 세대를 부양할 인구가 부족하다던가 나라가 없어질 거라는 정치 경제적 위기의식을 부각시키는 것이 과연 출생에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태어난 아이를 국가 유지나 경제 부양의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사회가 아이를 양육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당신이 태어날 아이라면 이런 사회에서 나오기로 결심할 것인가.



출생하는 아이의 입장으로 관점을 돌리면, 사람의 탄생을 맞이하는 마음이 어떠해야 할지 다르게 보인다. 국가의 존속과 발전보다는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존엄하고 평등한 삶을 살 수 있는가. 양육자를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행복한 시간을 나누며 성장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된다. 사람을 그 자체로 존엄하게 여기지 못하고 도구로 취급하는 사회에 기꺼이 태어날 아이가 있을까. 자신이 어떤 삶의 제비를 뽑을지 모르는 불평등한 세상에 나오기로 마음먹는 일이 쉬울까. 어쩌면 지금의 낮은 출생율은,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든 존엄하고 평등한 삶이 보장되는 사회가 될 때까지 세상에 나올 수 없다는 아이들의 절박한 집단행동일지도 모른다.

pp.62-63


결혼을 출산의 전제 조건으로 여기지 않는 (이른바 선진국인) 나라들은 높은 합계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동성결혼과 혼외출산을 인정하는 이들 나라를 문란하고 비도덕적이라고 손가락질 할 것인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전통의 틀에 급변하는 미래 사회를 우겨넣으려는 시도는 재앙일 뿐이다. 경직된 결혼과 가족 제도를 출산의 기반으로 한정한다면 (상상하는 바로 그) "사회적 재앙"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가족각본에 관한 무수한 의심과 질문을 던질 뿐 해답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질문이라도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상황인가'하는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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