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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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p.9).

 

정착한 순례자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우리의 눈으로 읽을 수 없는 스펙트럼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우리 곁을 떠난 공생자는 여전히 표류하고 있는지, 빛의 속도에 다다른다면 우린 이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글쎄, 여기 이곳 시초지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인간의 모습을 빌려 살아있다. 따라서 그 모든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작가 김초엽검은 형태시초지의 여러 그림자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기술적인 것, 과학적인 것, 물리적인 것, 이론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시초지를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글이 끝날 때쯤에는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 시초지와 인간에 대해 생각을 조금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술했듯 중요한 점은 결국 모든 이야기들이 인간의 형상으로 표출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시초지에서 살아가는 인류에 대한 것이다.

 

시초지에는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는 인류인간성이라는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살아간다. 인간성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생애의 모든 과정을 거치며 인간은 인간성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성을 획득 및 유지하도록 돕기 위해 어떤 마을에서는 순례를 떠나보내고(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어떤 행성 외계인들은 유모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며(공생 가설), 어떤 인간은 자신의 생애를 기록물로 남긴다(관내분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그들이 획득하게 되는 인간성이란 대체 무엇일까.

순례를 떠난 어린 인간들은 결과적으로 이곳 시초지에서 사랑에 대해 배운다.

 

지구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충격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수없이 많겠지. 이제 나는 상상할 수 있어.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p.52)”

 

그 사랑에는 행복과 불행, 고통과 위로, 슬픔과 기쁨이 모두 융합되어 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습득하는 사랑이라는 인간성으로 보인다. 사랑’을 동력으로 이 부조리하고 차별적이며 편협한 시초지의 세계와도 맞서는 인간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한편인간은 그들’, 곧 외계에서 온 보육자들로부터 이타성에 대해 배운다.

 

하지만 만약 공생의 대상이 지구상의 생물이 아니라면 어떨까? 지구에서도 유래하지 않은 것, 수만 년 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에 지구 밖의 어느 행성에서 온 것이라면. 그것이 우리의 뇌에 자리 잡았고, 우리의 유년기를 지배했고, 우리를 윤리적 주체로 가르쳐왔다면. 인간을 비 인간동물과 구분하는 명백한 특질들이 사실은 인간 밖에서 온 것들이라면.(p. 129)”

 

기본 욕구로만 프로세싱되어 있던 인간은 외계에서 날아온 그들과의 접촉으로 자기(自己)가 아닌 타자(他者)에 대해 인식한다. 그리고 도덕과 윤리, 법과 질서, 배려와 같은 것들을 발달시킨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결국 인간성이란 사랑이라는 감정적인 요소와 이타성이라는 이성적 요소의 복합체처럼 보인다.

 

그런데 인류의 독특한 점은 이러한 인간성을 사후(死後)에도 유지시키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도서관은 인간 개개인의 생애라는 거대한 기록, 마인드를 저장하는 공간으로 존재한다(관내분실). 그러나 여기에 기록된 것은 앞서 정리한 것과 같은 거시적 인간성이 아니다. 인간 하나하나가 살아가며 발달시킨 미시적 인간성이다. 이 기록된 인간성의 작동 매커니즘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기록된 미시적 인간성이 또다시 인간성을 발달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마인드가 정말로 살아 있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건 단지 재현된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그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중략)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게 진짜로 엄마의 지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중략) “엄마를 이해해요.”(p.271)”

 

한 사람의 생애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인드는 그로부터 받게 되는 위로와 위안과 같은 감정적인 것을 뛰어넘어 타자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마인드자체가 그 사람의 흔적이고 그러한 흔적이 감정의 물성을 지닌 것으로 우리에게 작용하기 때문이다(감정의 물성). 이때 마인드가 우리로부터 촉발시키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마인드에 접촉하는 인간이 누구이고, 마인드가 품고 있는 인간성이 어떠한가에 따라 해당 마인드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의 물성을 지닌 것으로 기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의 이해는 우리가 물리적 법칙, 수학적 질서 등을 공부하여 아는것과는 다르다. 희진이 첫 번째 루이와 두 번째 루이, 세 번째 루이, 모든 루이를 이해하는 것에 세상을 이루는 색채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가는 전혀 작용하지 않았음(스펙트럼)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타자가 될 수 없으며, 그 눈에 비친 풍경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는 상상하고 기쁨을 얻을 뿐이다(p.88). 주어진 정보를 기반으로 우리가 습득한 감정적 교류를 도구 삼아. 재경이 신체 개조를 통해 보통의 인류를 뛰어넘는 육체를 가지게 되었을 때, 왜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을지(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그저 상상하는 것이다. 그 상상이 결국 타인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이해는 이성적인 것이면서도, 감정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또한 '타인에 대한 이해'는 인류를 다른 영장류와 구분하는 가장 큰 인간성이기도 하다. 유사인류로 불리는 유인원들은 훈련을 받지 않는 한 타인의 지시(point)에 대해 반응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왼쪽을 가리키든, 오른쪽을 가리키든 그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상대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로 분류되는 인간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설령 완전한 이해는 없다해도- 이해한다. 따라서 이것을 인류를 특징짓는 가장 큰 인간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곧 인간성을 형성하는 것은 타인의 존재일 것이다. 타인의 존재로부터 습득하게 되는 감정적 변화와 그로부터 배워 쌓게 되는 세상의 질서, 타인을 상상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해. 결국 모든 화살의 끝에는 타인의 존재가 서 있다.

 

작가 김초엽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인간성과 그러한 인간성이 무엇에 기반을 두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우주 생명체들과 구분되는 특별함은 인류가 가지고 공유하는 인간성에서 온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성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형성되고 발달한다.

 

따라서 의미 있는 타인의 부재앞에서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의 변화는 그 가치를 상실하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게 만든다(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는 때때로 빛의 속도로 갈 수 없음을 한탄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 이 김초엽의 기록에서 일러주고 있는 한 가지는 타인의 존재가 인간에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 준다는 점이다. 유한한 우리에게 속력보다 중요한 것은 그 빛이 움직이는 방향이다. 빛의 속도로 도착하였는데, 그곳이 슬렌포니아가 아니라면, 나의 그리운 타자가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면, 모든 시간과 공간의 가치는 우주의 티끌만도 못한 것이 되고 만다.

 

김초엽의 이번 단편집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시초지에서는 결점으로 바라보는 것들이 배재되지 않는 낙원 같은 마을, 색깔로 세상을 읽는 외계의 생명체들, 쥐도새도 모르게 지구에 살면서 아이들을 보육하는 외계 정신체, 기술의 발달로 우주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소외된 과학자, 감정이 물성을 지닌 것이라면에 대한 상상력,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누구 자체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 우주가 아닌 바다로 떠나버린 우주인. 이들 각각의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는 큰 주제를 여기에서는 '인간성'으로 읽었다.

 

그러나 김초엽의 기록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소외자' 혹은 '소수자'에 대한 기록에는 김초엽 작가의 따뜻하고 상냥한 마음이 담겨 있어, 가슴이 먹먹해진다거나 눈시울이 붉어지는 등의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게 SF인가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 이 소설집은 SF이다. 단, 이 SF소설집이 갖는 차별되는 특별함은 작가의 마음, 감정 같은 것이 용해되어 있어 읽는 이의 감정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생물이 아닌지라 그 자극에 반응을 하게 된다. 따라서 어떠한 물리적 전달이 우리 내부에 어떠한 화학 작용을 일으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SF의 형상과 질감, 색채로 구현된, 감정의 물성을 띤 어떤 것처럼.

    

마지막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의 마지막 구절을 빌려 쓴다.

그저, 언젠가 자신의 '의미 있는 타자'를 만난다면, 그에게 우주 저편의 풍경이 꽤 멋졌다고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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