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딱 좋을 만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리프트에서 내려서자마자 와키사카 다쓰미는 자리에 앉는 일 없이 뒷발의 바인딩을 장착했다.

그리고 그 길로 잽싸게 타고 내려갔다.

다른 사람이 준비를 끝내기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혼자 왔을 때의 큰 장점이다.

워밍업 걷기는 충분히 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서 평소에 다니던 지점으로 향하기로 했다.

원래는 레귤러 스탠스지만 간간이 스위치 스탠스로 바꿔가면서

정비를 마친 중급 정도의 코스를 내달렸다.

카빙을 즐기기에는 최적의 경사면인데도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의 모습은 많지 않았다.

그 앞에는 비압설(非壓雪)의 상급자 코스가 기다리고 있어서 눈이 내린 직후가 아니면

거의 전면이 울퉁불퉁한 비탈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다쓰미도 그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쪽으로 내달린 것은 자기만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압설(壓雪) 부분을 지나가자 설면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적당히 부드러운 곳은 활주하면 상쾌할 만큼 재미있지만 그것도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어제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니까 이대로 가면 그 울퉁불퉁한 비탈길에 돌입하는 것뿐이다.

일부러 그런 곳에서 스노보드를 타겠다고 새벽같이 일어나

달랑 혼자 차를 운전해가며 여기까지 찾아온 게 아니다.

미리 점찍어둔 포인트가 점점 다가왔다. 다쓰미는 스노보드를 저어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남의 시선은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잔소리 많은 패트롤 아니라면 신경 쓸 필요 없지만 규칙을

위반하는 장면은 가능하면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경사지 왼편으로 숲이 펼쳐졌다. 그 앞쪽에는 빨간 로프가 가로막고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너머는 활주 금지구역이다.

그래도 다쓰미는 로프를 향해 속도를 올렸다.

목표 포인트를 발견했다. 그곳을 노리고 상체를 낮추며 한껏 머리를 숙였다.

무사히 로프 밑을 통과. 내달려온 힘을 이용해 멋지게 오르막을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아직 방심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신경이 쓰이는 것은 거기부터다.

좁은 간격으로 서있는 나무들을 피해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나치게 신중해져서 필요 이상으로 속도를 늦추는 것은 그야말로 금기사항이다.

장소에 따라서는 극단적으로 경사도가 낮아지는 곳이 있다.

숲 속은 비압설(非壓雪)이다.

보드가 눈에 파묻혀 옴짝달싹 못하게 되면 그건 정말 눈뜨고는 못 볼 처참한 꼴이다.

나무가 밀집한 구역을 무사히 빠져나오자 갑작스럽게 시야가 확 트였다.

발치에 멋들어진 파우더 존이 펼쳐져 있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최고의 비밀장소다.

다쓰미는 속도를 늦추는 일 없이 뛰어들었다.

풍성한 눈이 그의 스노보드를 부드럽게 받아들였다.

그대로 중력에 몸을 맡기고 타고 내려간다.

마치 손오공의 근두운(觔斗雲)을 탄 듯한 부유감과 질주감이 있었다.

, , . 바람, 바람, 바람. 친구들과 함께였다면 틀림없이 포효를 내질렀을 것이다.

이러니 스노보드는 그만둘 수가 없다. 파우더 런은 그야말로 최고다.

하지만 천국의 시간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광대한 산 속이라도 적당한 경사도를 갖췄고

게다가 나무들이 밀집하지 않은 구역은 극히 일부분뿐이다.

그래서 다시 밀집한 나무 사이를 빠져나가야 한다.

단 이건 이것대로 긴장감이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기는 하지만.

저만치 앞쪽에서 사람이 보였다. 빨간색과 하얀색의 투톤 컬러 스키복에 검은색 헬멧.

스키 폴을 들지 않은 것을 보면 스노보더일 터였다. 몸매로 봐서는 여자인 것 같았다.

나무 사이에 멈춰 서서 뭔가 하고 있었다. 무슨 사고라도 난 것일까.

하지만 가까이 가보니 사고 같은 건 아니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셀카였다.

카메라를 들고 팔을 한껏 뻗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앵글로 찍히지 않는지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쓰미는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제가 찍어드릴까요?”라고 말을 건넸다.

여성 스노보더가 다쓰미 쪽을 돌아보았다.

 

?”

다쓰미는 카메라로 찍는 포즈를 취하며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셔터 눌러드린다고요.”

, 부탁 좀 해도 될까요?”

약간 허스키하지만 젊음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좋아요, 어떤 식으로 찍어드리면 되죠?”

그러자 그녀는 카메라를 손에 들고 스노보드의 한쪽 발을 풀어놓은 상태,

이른바 원풋으로 다쓰미가 서있는 곳까지 올라왔다.

 

저 앞에 하트 모양으로 생긴 경치가 있는데, 보이세요?”

그렇게 말하며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저 먼 곳을 가리켰다.

하트 모양이라고요?”

저기 바로 앞에 큰 나무가 있는데 윗부분의 나뭇가지가 Y자로 크게 갈라졌죠?

그리고 그 너머에 산의 능선이 있어서 정확히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데.”

어디…….”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곧바로는 알지 못했지만 상하좌우로 시야를 이동시키는 사이에 문득 그 모양이 눈에 잡혔다.

하트의 아래 반절을 나뭇가지가, 위 반절을 능선이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 진짜네. 재미있는데요? 이런 식으로도 보이는군요.”

그 하트 모양을 배경으로 저를 찍어보려고 했는데 잘 안 잡혀서요.”

알았어요. 찍어볼게요.”

다쓰미는 오른발의 바인딩을 풀고 카메라를 받아들었다.

고글을 쓴 채로는 액정화면이 잘 보이지 않아서 비니모자 위로 올렸다.

 

어디쯤에 서면 하트가 나올 것 같아요?” 여자가 물었다.

거기서 조금만 더 뒤로 물러서보세요. 몸 전체가 다 들어가는 게 좋아요?”

아뇨, 상반신만 나오면 되는데.” 여자가 천천히 뒤로 물러서면서 대답했다.

그럼 거기쯤에 서면 돼요. , 찍습니다. 치즈.”

여자가 오른손으로 V자를 만들었다. 고글과 페이스마스크 때문에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혹시 안 나올지 모르니까 한 장 더.” 그렇게 말하고 다쓰미는 카메라를 다시 맞추려고 했다.

, 잠깐만요. 기왕이면 이렇게.” 여자는 고글을 헬멧 위로 올리고 페이스마스크를 벗었다.

다쓰미는 가슴이 덜컥했다.

커다란 눈은 적당히 눈 끝이 치켜 올라가 오만한 고양이를 떠올리게 했다.

갸름한 얼굴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턱이 가늘고 콧날은 높고 반듯했다.

그야말로 다쓰미가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너무 빤히 쳐다볼 수도 없어서 앵글을 정하고 셔터를 눌렀다.

고마워요. 다행이네요.”

여자가 원풋으로 다시 다쓰미가 있는 곳까지 올라왔다.

다쓰미는 카메라를 돌려주었다.

화면으로 사진을 확인한 그녀는

와아, 정확히 잡혔는데요?”라면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여기 자주 오세요?” 다쓰미가 물었다.

자주, 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 시즌에 몇 번 정도? 마음에 드는 스키장 중 하나예요.”

역시 그렇군요.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곳을 타고 내려갈 리가 없죠, 이런 비밀장소를.”

그녀는 카메라를 호주머니에 챙겨 넣더니 어깨를 으쓱 쳐들었다.

코스 밖의 구역을 달리는 게 금지사항인 줄은 알지만

아무래도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어서요. 나쁜 짓이죠?”

그렇게 치자면 저도 똑같은 죄를 졌죠.”

그래도 덕분에 좋은 사진을 찍었어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페이스마스크를 쓰고 고글을 다시 내렸다.

헬멧 옆에 별모양의 핑크색 스티커가 여러 개 붙어있는 게 눈에 띄었다.

 

혼자 오셨어요?”

조금 마음에 걸려서 다쓰미는 확인해보았다.

여성 스노보더는 뒤꿈치의 바인딩을 잠근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요? 나도 혼자 왔는데.”

혼자 타면 마음 편해서 좋죠?”

마치 다쓰미의 속셈을 꿰뚫어본 듯한 한 마디였다.

괜찮다면 함께 타시겠습니까, 라고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 그렇죠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주로 어디서 타세요?”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바꾸었다.

홈그라운드는 사토자와예요. 오늘 여기서 달려본 뒤에 다시 그쪽으로 돌아갈 예정이에요.”

, 사토자와 온천스키장?” 다쓰미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국 최대급의 스키장이다.

나는 아직 가본 적이 없지만 굉장히 넓고 설질(雪質)도 훌륭하다던데요.”

최고예요. 한 번 오세요.”

꼭 가봐야겠네요. 이번 시즌에 한참 더 타실 거죠?”

물론 그럴 생각이에요. 겨울철에는 이게 유일한 즐거움이니까.”

, 그렇다면 나하고 똑같네요.”

서로 간에 부상 없이 재미있게 타기로 하죠. , 그럼 또 어딘가에서.”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손을 흔들더니 활주를 시작했다.

다쓰미도 서둘러 바인딩을 장착하고 출발했다.

뒤를 따라가며 그녀의 활주 모습을 보고는 보통 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밀집한 나무 사이를 눈보라를 일으키며 휙휙 빠져나간다.

그 자세가 화려하고 다이내믹했다.

마치 여자라고 얕잡아보지 말라고 일갈하는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가 벌어지고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윽고 정규 코스가 앞쪽에 보이기 시작했다.

다쓰미는 코스를 벗어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머리를 한껏 낮춰 로프 밑을 지나갔다.

곧바로 경사면 아래를 둘러봤지만 조금 전 그 여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쩌면 아직 코스로 돌아오지 않고 또 다른 코스 밖 루트를 달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아쉽다,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거절당할 각오로 함께 타자고 말이라도 해볼걸.

이래저래 후회를 하면서 다시 타고 내려갔다.

그야말로 잠시잠깐 바라본 여자의 얼굴이 눈에 선하게 남아 있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돌아온 것은 오후 3시가 지난 무렵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스노보드와 부츠를 짐칸에 휙 넣었다.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다 운전석에 앉아서 마셨다.

지금부터 몇 시간 동안 도쿄를 향해 혼자서 운전해야 한다.

뺨을 탁탁 때리며 다시 한 번 기합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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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수영이 2017-12-23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진짜 대박이네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게이고 성님의 신작 눈보라 체이스라니!! 정말 대박 기대됩니다.

애니는재미있어 2017-12-2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기대되는 시작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