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us Stage.’

 

갑자기 준야의 컴퓨터 모니터에 그 글자가 떠올랐다.

좀비를 한창 섬멸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게임은 중단되었고 글자만이 깜박이고 있었다.

뭐지? 보너스 스테이지? 이 게임에 이런 모드가 있었던가?

준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면이 바뀌고 ‘Please Wait’라는 글자가 깜박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화면이었다. 서버 장애일까? 아니 장애라면 보너스 스테이지라는 표시는 이상하다.

준야는 그대로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다음 전개는 전혀 시작되지 않았다.

착착 진행되는 점이 자랑인 이 게임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간격이었다.

리셋하는 편이 나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바로 다음 스테이지를 플레이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트러블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준야는 기분을 전환하고 책장에서 만화를 빼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때로 게임 화면을 쳐다봤다.

‘Please Wait.’ 화면 안에서 누군가가 속삭이듯이 글자는 계속 깜박이고 있었다.

 

*

 

하루는 옥상에 나와 있었다.

지면에는 드론 네 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특별 주문한 컴퓨터는 방에 두고 왔다.

옥상에는 콘센트가 없어서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았다.

대신 하루의 주변에 있던 것은 소형 맥북이었다.

하루는 맥북을 펼쳐서 클라우드에 다시 접속했다. 조금 서둘러서 행동했다.

조금 전에 하루가 선택한 플레이어의 화면에는 ‘Please Wait’ 경고가 떠 있을 테지만,

플레이어는 성미가 급하다.

아직 1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로그아웃한 플레이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루는 체크 프로그램을 다시 가동시켰다.

플레이어 두 사람이 이미 퇴장했지만 다행히 다섯은 남아 있었다.

그중에는 ‘JUNYA’의 이름도 있었다.

마침내 찾아왔다. 하루는 마지막 명령어를 타이핑했다.

 

*

 

갑자기 화면이 바뀌고 게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준야는 읽고 있던 만화를 내던지고 컨트롤러를 잡았다.

보너스 스테이지였지만 게임 화면은 여느 때와 같았다.

게임 개시를 알리는 음악이 흘렀고 좀비에게 점거당한 시부야의 공중이 비춰졌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편성이 이상했다.

드론이 네 사람?”

무심코 말했다. 드론은 단순하고 동작도 간략해서 그다지 인기가 없는 보직이었다.

선택지가 스무 가지 정도나 되는 <리빙데드 · 시부야>에서

한 스테이지에 이만큼이나 되는 드론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또 만났네.”

조금 전에 준야에게 말을 건 플레이어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준야는 수고라는 답변만 쳤다. 플레이 중에는 플레이 쪽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게임 스타트.

게임 개시 지점은 스크램블 교차로 근처에 있는 빌딩 옥상이었다.

준야는 드론을 하강시켜 교차로로 향했다.

교차로에는 좀비들이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느 때와 모습이 달랐다.

드론을 보면 맹렬히 달려드는 좀비들이 이쪽을 올려다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좀비들의 움직임뿐만이 아니었다. 온갖 것들이 평소와 달랐다.

드론의 움직임이 여느 때보다 훨씬 느렸다.

배경 배치도 달랐다.

배치가 다르다기보다 그림이 엉성하다고 할까

여느 때의 화면보다 상당히 조잡한 인상을 받았다.

베타 테스튼가?”

준야는 중얼거렸다.

보너스 스테이지라는 이름을 빌려서 개발자 측이 테스트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보통 그쪽 작업은 디버거를 고용해서 실행할 텐데 돈이 없는 걸까.

그런 데 맞춰주는 건 짜증났지만,

새로운 버전을 한시라도 빨리 플레이할 수 있다면

개발자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도 괜찮을지 몰랐다.

준야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준야는 버튼을 누르고 좀비 무리에게 발포하기 시작했다.

 

*

 

하루의 시선 아래.

스크램블 교차로에서는 대혼란이 일어나 있었다.

상공에서 발포를 반복하는 드론.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하루는 그 광경을 단지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부적인 것은 보려고 하지 않았다.

전체를 내려다보며 그 광경을 뇌에 계속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기적이다.

하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외의 감정은 없었다.

단지 이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Moon river, wider than a mile…….”

하루는 흥얼거렸다. 헨리 맨시니의 <문 리버>였다.

“I'm crossing you in style some day…….”

 

*

 

게임은 명백하게 이상했다.

덮치고 또 덮쳐도 좀비가 쓰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총탄은 발사되는 듯했지만, 화면 속의 좀비에게 닿지 않고 통과하는 것 같았다.

이거, 뭐 좀 이상하지?”

플레이어가 채팅으로 말을 걸어왔다.

준야는 컨트롤러를 조작하면서 한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게임 플레이는 반쯤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우리 베타판 디버거인 거 아냐?”

아아, 그럴지도. 이거 이상해.”

버그투성이야. 좀비도 안 죽고 말이지.”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준야는 게임을 종료시킬까 싶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화면상에 화살표가 깜박이기 시작했다. 이런 것도 본 적이 없었다.

압박하듯이 화살표는 계속해서 깜박였다. 위로 가라는 걸까.

준야는 조금 망설이다가 드론을 상승시키기 시작했다.

오른쪽 아래 지도에서 빨간 점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준야는 그 의도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빨간 점이 있는 장소로 준야를 유도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이 스테이지가 시작된 빌딩 옥상이었다.

다들 화살표 나오고 있어?”

준야는 채팅창에 말을 걸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도를 보니 다른 플레이어는 스크램블 교차로 부근에서 좀비를 계속 쏘고 있는 듯했다.

뭐지? 의문을 품으면서 준야는 계속해서 상승했다.

 

*

 

드론 한 대가 하루의 시야에 떠올랐다.

빌딩 옥상. 드론은 선물을 옮겨다주듯이 천천히 하루에게 다가왔다.

눈을 감았다. 하루는 양손을 펼쳤다.

게임오버다. 이제 곧 세상이 끝난다. 하루의 마음은 흐트러져 있지 않았다.

옮겨다준 죽음을 살그머니 받아들이듯이 하루는 그때를 기다렸다.

아메.”

말이었다.

말이 북받쳐 올랐다. 그 사실에 하루는 놀랐다. 강한 자극에 마음이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말해야 한다. 게임오버. 이 경치가 닫힌다. 그 전에.

하루는 그 말을 했다.

 

총성이 울렸다. 하루는 뒤로 튕겨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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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형 2017-11-2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준야가 게임인줄만 알았던 스테이지가 사실은 현실이었단 사실에 놀랐습니다. 하루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까지 희생시키면서까지 남에게 죽고 싶었던 걸까요.. 다음 화가 빨리 보고 싶습니다.

애니는재미있어 2017-11-22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아메‘와 이 글이 전하고 싶은것이 뭐일지 궁금하네요. 작품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