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유년기

 

 

일곱 살의 나는 이혼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고 있어서

아빠와 엄마 누구와 함께 살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딱히 동요하지 않고 답을 낼 수 있었다.

 

아빠는 그 분야에서 이름 높은 학자였고, 엄마는 자산가 집안의 딸이었다.

어느 쪽을 따라가더라도 금전적인 불편함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마음이 가는 대로 결정하면 되었기에

최종적으로 나는 엄마를 따라가기로 했다.

다만, 이것은 내가 아빠보다 엄마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빠를 따라가면 연구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이혼의 원인은 아빠와 엄마의 대화가 엇갈려서인 모양이었다.

아빠는 연구소에 묵는 일이 허다했고,

가끔 집에 돌아올 때면 엄마에게 연구 내용을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늘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빠는 자신이 이해하는 것은 상대도 이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대화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엄마와는 일상 대화의 템포도 맞지 않아서

혼자 고민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그런 아빠였기에 나도 분명 곁에 없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니, 역시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분명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재밌게도 아빠와 엄마의 관계는 이혼한 후가 더 양호했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을 정도로 서로에게 애정은 확실히 있었던 모양인지

내가 어릴 적에는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나를 통해 부모는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분명 그 정도 거리감이 두 사람에게는 딱 적당했던 걸 테다.

나는 평온한 모습의 부모를 보며 기뻐했고,

두 분이 바라지 않았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어릴 적 기억 중에 특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부모님이 이혼한 뒤 외가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하고

몇 개월 후에 아빠가 에어건을 사줬을 때의 일이다.

 

어느 휴일, 나는 엄마와 함께 공원에 갔다가 아빠를 만났다.

매일 함께하다가 한 달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게 되면

외롭지 않을까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빠가 하는 일은

근무 시간도 휴일도 불규칙해서 원래부터도 그렇게

자주 얼굴을 마주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한 달에 한 번 가족끼리 외출하게 되었다고 생각해보면

반대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을지도 몰랐다.

 

코요미.”

 

한 달 만에 아빠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함께 살고 있을 적에는 어느 정도의 빈도로 이름을 불러줬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관계도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갖고 싶은 거 없니?”

 

바로 얼마 전 나는 생일을 맞이해서 여덟 살이 되었다.

그 선물을 말하는 걸 테다.

이혼 전에는 나에게 뭔가를 사주는 건 늘 엄마의 역할이었기에

아빠가 선물을 사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 기뻤다.

게다가 그때 나는 때마침 갖고 싶은 물건이 있었다.

 

에어건이 갖고 싶어!”

에어건?”

. 지금 학교에서 유행하고 있어.”

. 어디에 팔고 있으려나.”

 

어느 백화점 장난감 매장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에어건을 가지고 있는 같은 반 친구가 그곳에서 샀다고

실컷 자랑을 했기 때문이다.

그길로 백화점 장난감 매장으로 부모님을 데리고 갔고,

매장 한쪽 구석에 조금 쌓여 있던 에어건을 발견했다.

총 종류에 대해선 전혀 몰랐지만,

어쨌거나 다들 가지고 있는 물건이 갖고 싶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하나를 빼서 아빠에게 내밀었다.

 

이게 좋아!”

의외로 저렴하네, 2천 엔도 안 하는 걸 보니. 좋았어, 그럼.”

 

그러다 아빠가 말을 멈추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얼굴을 쳐다보자 아빠가 상자로 시선을 물끄러미

떨어뜨리고 있었다.

 

대상 연령, 10세 이상인가.”

 

맙소사.

당시의 나는 이제 막 여덟 살이 된 참이었다.

물론 에어건을 자랑한 같은 반 친구도

다들 여덟 살이거나 일곱 살이었지만,

세세한 것은 따지지 않는 부모가 꽤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아빠가 어떤 타입의 부모인지 잘 몰랐다.

참고로 엄마는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빠가 사주는 선물이니 엄마는 관계가 없지 않을까――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마는 게 아이다운 발상이다.

 

만약 아빠가 대상 연령을 이유로 안 된다고 한다면

같은 반 친구들은 다들 가지고 있다는 것,

여덟 살이든 열 살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절대로 위험하게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 등……

다양한 말로 아빠를 설득시킬 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기우였다.

 

뭐어, 여덟 살도 열 살이랑 크게 다를 건 없지.”

속으로 승리 포즈를 취했다.

아빠는 자잘한 것은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었나 보다.

아빠의 말을 듣고 역시 엄마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아마도 막 이혼한 참이라서

마음 한구석으로 나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대상 연령에 대해서 잔소리를 듣지 않고

약간 고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에어건을 감쪽같이 손에 넣었다.

다시 공원으로 되돌아가서 에어건으로 얼른 잠시 놀았다.

이윽고 배가 고파서 식사를 함께 하고

다시 한 달 후에 만날 약속을 한 다음 아빠와 헤어져

엄마와 둘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 커다란 골든 리트리버가 장난을 걸었다.

 

다녀왔어, 유노.”

꼬리를 흔드는 유노의 귀 뒤편을 쓰다듬어줬다.

유노는 그렇게 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유노는 내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가 기르기 시작한 개로

가끔 외가에 올 때면 늘 함께 놀았다.

그게 지금은 매일 함께였다.

외할아버지 댁에 살게 되고 나서 기뻤던 일들 중의 하나가 이거였다.

 

이거 선물 받았어. 부럽지?”

유노에게 에어건을 보여주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노.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봤던 빵 하면 죽은 척하는 재주를

유노도 부릴 수 있을까?

 

유노한테 쏘면 안 돼.”

내 생각이 전해졌는지 뒤에서 조금 날카로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에, 하고 얌전하게 대답했다.

사람한테 쏘면 안 된다는 소리를 돌아오는 길에 실컷 들은 후였다.

잔소리 참 많네, 다 안다고요.

유노를 한참 쓰다듬어주고 나서 손을 씻고 집에 들어와

거실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에게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다녀왔습니다, 할아버지!”

오오, 다녀왔니? 코요미, 재밌었니?”

 

할아버지가 온화한 웃음으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말수는 적지만 늘 달콤한 사탕을 주는 자상한 할아버지다.

 

. 할아버지, 사탕 줘.”

오늘은 이미 먹었잖아. 하루에 한 개씩이야.”

 

다만 사탕을 하루에 하나밖에 절대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치사하다.

나는 그 사탕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많이 먹고 싶은데,

할아버지는 내 손이 닿지 않는 옷장 가장 위 서랍에 넣어 놓고

마음대로 꺼내 먹지 못하도록 했다.

사탕 하나라 해도 많이 먹는 건 좋지 않으니까라며 하루에

하나밖에 주지 않는다.

그 엄격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는

아빠가 사준 에어건을 아무 생각 없이 할아버지에게 자랑하고 말았다.

 

됐어. 그것보다 할아버지, 이것 봐!”

오오, 에어건이구나. 사내아이라면 역시 갖고 싶은 법이지.

할아버지도 어릴 적에…….”

 

온화하게 미소 짓던 할아버지의 눈이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코요미, 그거 잠시 보여주렴.”

? …….”

 

심상치 않은 할아버지의 분위기에 에어건을 얌전히 상자째 건넸다.

그것을 받아 든 할아버지는 박스 일부를 가리키며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령 대상이 10세 이상이라고 돼 있잖니. 너한텐 아직 일러.”

 

그렇게 말하고 할아버지는 일어나서 방을 나갔다.

그길로 내 에어건은 돌아오지 않았다. 버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큰 소리로 울고서 그날부터 할아버지를 제일 미워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도 나를 싫어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만큼 날 위로해준 자상한 할머니를 따르게 되었고,

할아버지와는 그다지 말을 섞지 않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나름대로 날 좋아해줬다고 깨달은 건,

그로부터 2년 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이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한 가지 수수께끼를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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