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닉 혼비의 <하이 피델리티>는 음악을 좋아하는, 음악에 미친 수다쟁이 찌질남이 주인공이었다. 닉 혼비의 <런던스타일 책읽기>는 <하이 피델리티>의 독서 버전이다. 물론 이 책은 픽션은 아니고 닉 혼비가 읽은 책, 산 책, 읽다만 책에 관한 이야기다. 닉 혼비가 <하이 피델리티>의 주인공처럼 찌질한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딱 그만큼 수다스럽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닉 혼비가 수다스럽기 때문에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그렇게도(?) 수다스러웠던 것은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물론 그가 실제로 말이 많을지 ‘손가락’으로만 말이 많은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 잡지인 <빌리버believer>에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요즘 내가 읽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실었던 에세이를 모아 엮었다는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빌리버 편집부를 욕하는 내용도 많다. 그래서 좀 많이 웃기다. 꼭 편집부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도 웃음이 팍팍 터진다. 정말 집어던지고 싶을 정도의 책에 대해서는 제목과 내용 및 저자를 밝힐 수 없다고 표현하는 부분도 그렇고.

잡지에 실린 도서 서평을 모은 글이라고 하니 뭔가 대단한 책을 끊임없이 많이 읽었을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는 매달 구입한 책과 그 중 읽은 책을 따로 표시하는데 그 리스트를 보면 닉 혼비 역시 책은 많이 사는데, 당장 읽지 않고 책꽂이 어딘가에 꽂아두는 편이 많구나 싶어진다. 그러다 언젠가 그 책을 읽기도 하지만 읽지 않고 그대로 책꽂이 더 깊숙한 곳에 처박히는 책도 많은 듯하다.
 
그가 읽거나 사는 책 리스트도 특별할 것이 없다. 여기저기서 좋은 책이라고 칭찬받는 책보다는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이것저것 잡식으로 골라 읽는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책 읽기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그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때문에 그는 독자들에게 제발 재미없는 책, 남들이 좋다고 하는 엄청난 고전을 꼭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재미없는 책은 그냥 던져버리라고 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재미없으면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 듯. 

축구 시즌에는 책 읽는 양이 엄청나게 감소하고, 아이가 태어나자 또 책 읽을 읽지 못하고, 급기야 아이가 읽어달라는 동화책이 그달 가장 많이 반복해서 읽은 책에 꼽히는 등 닉 혼비의 생활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롭다. 나는 이 작가에 대해 잘 몰랐는데 <런던스타일 책읽기>를 통해 그의 아들이 자폐증을 앓고 있고, 그래서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폐아의 이야기나 자폐증을 극복하고 희망을 얻은 내용 일색의 자폐아 관련 책을 읽으면 어쩐지 소외당한 기분이 들거나 화가 나거나, 당혹감이 든다고 표현한 부분에서는 짠해지기도 했다. 축구 박사인 그가 어떤 소설에서 축구에 관한 얼토당토않은 예가 등장하자 당장 그 책 읽기를 중단했다는 이야기도 공감 갔다. 역시 어설프게 알면서 잘 아는 척 글을 쓰는 것은 금물이다. 

<런던스타일 책읽기>는 독서에 관한 책이지만 폼을 잡지 않는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과 같은 책과는 정반대의 책이라고 할까? 닉 혼비는 자신이 작가이고, 글을 쓰는 친구들이 많아 책을 꼭 읽어야 하고, 또 음악이나 영화, 미술, 스포츠 등 다른 문화에서는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책에는 있다고 믿기 때문에 책을 읽지만, 모든 사람들이 엄숙하게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다빈치 코드>나 ‘칙릿’을 읽으며 독서의 즐거움을 한껏 누리는 사람에게 그런 책은 읽어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훈계하지 말라고 한다. 책에서 즐거움을 느껴야 그게 바로 최고의 독서이기 때문이다.

사두고 읽지 않은 책이 쌓여가면서도 또 책을 사는 습관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런던스타일 책읽기>를 읽고 그래도 조금은 위안을 얻었다. 언젠가는 읽지 않겠나? 아님 말고.



우리는 스스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이미 읽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40세나 50세가 되기 전에, 혹은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하는 책 목록을 머릿속에 넣어 다니거나 실제로 적어 다니는 사람들을 늘 만난다). 대단한 찬사를 받은 소설을 어렵사리 읽고 나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그렇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실은 슬며시 기분 좋아지기도 하는 사람은 분명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는 문장이 묘사하는 세상보다는 문장 그 자체에 관심을 모으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고, 그런 글을 읽어낼 만한 인내심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더 불투명하게 쓰인 소설들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독자로서 내 자신의 취향과 한계를 지적하고자 한다. 막말로 하자면, 그런 책을 읽으면 나는 지루해지고, 지루해지면 성격이 나빠진다. 내 독서 생활에서 지루한 것들을 제거하기란 놀라울 정도로 쉬웠다.

독서가 레저 활동으로서 살아남으려면, 독서의 (불분명한) 혜택보다는 즐거움을 장려해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도 책을 읽지 말라고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부탁이니 읽고 있는 책이 재미없어 죽을 지경이라면 내려놓고 다른 것을 읽기 바란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재미없을 때 리모컨을 집어 드는 것처럼 말이다. 높은 평가를 받은 소설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멍청하다는 뜻은 아니다. (......) 내가 아는 것은 읽느라 힘들어 눈물이 나는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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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6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도서목록을 열심히 만들어봤지만, 정작 계획대로 읽은 책은 많지 않았어요. 오히려 계획에 얽매여서 어떤 책을 보려고 집에서 거리가 먼 도서관에 간 적이 있어요.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이상하게 제 동네 도서관에 없더군요... ㅎㅎㅎ 그냥 읽고 싶은 대로 골라서 읽는 게 마음 편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설 연휴 잘 보내세요. ^^

잠자냥 2017-01-26 16:53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읽고 싶은 대로~ 그때그때 읽는 게 가장 좋더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설 연휴에 좋은 책 또 많이 읽으시는 시간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