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셀로 열린책들 세계문학 19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권오숙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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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작년부터 셰익스피어 작품을 다시 읽어볼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작품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줄거리를 따라간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 여겨졌고, 인물들의 대사, 행동, 심리 등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싶었다. 작년에는 <맥베스>를 읽었는데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구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오셀로>는 또 어떨까?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두 번째로 집어 든 작품은 <오셀로>다.

이아고: 공기처럼 가벼운 하잘것없는 것도, 질투하는 자에겐 성서만큼 강력한 증거가 되지. (제3막 제3장)

에밀리아: 하지만 질투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소용없어요. 그들은 이유가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저 질투심이 많아서 질투하는 것이죠. 질투심은 스스로 잉태되어 태어나는 괴물이에요. (제3막 제4장)


<오셀로> 또한 굳이 내용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질투 때문에 눈이 멀어 아내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자의 이야기. ‘질투’라는 감정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정도의 차이겠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감정 때문에 괴로웠던 기억이 있으리라. 그러나 보통은 이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이 감정을 적절한 선에서 다스리게 된다. ‘오셀로’는 그렇지 못해 파멸한다. 그런데 이 ‘질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바로 ‘오셀로’를 질투하는(혹은 시기하는) 또 다른 사람, 이아고의 ‘말’에서 비롯된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비단 ‘오셀로’ 뿐만 아니라 극에 등장하는 여럿 인물들이 ‘질투’라는 감정에 시달린다.


‘오셀로’는 ‘이아고’의 계략으로 아내인 ‘데스데모나’의 정조를 의심하고 한 번 의심이 생기자 의혹과 질투의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그토록 사랑한다며 아끼던 아내에게 ‘창녀’ 혹은 ‘갈보’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으며 학대를 하고 결국 목숨을 빼앗는다. 이성이 감성에게 잠식당한 것이다. 그저 ‘오셀로’가 싫어서 이런 계략을 꾸몄다는 ‘이아고’ 역시 그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오셀로에 대한 질투가 꿈틀거렸다. 이방인 주제에 승승장구하는 오셀로가 미웠고, 오셀로 역시 자기 아내 ‘에밀리아’와 잠자리를 했으리라 의심하며 복수를 꿈꾼다.


이번에 <오셀로>를 읽으면서 ‘어허라?’하면서 조금 놀랬던 것은 성적으로 굉장히 노골적인 묘사나 표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남성 캐릭터들이 자기 아내나 연인의 정조를 의심하고 그것을 옭아매려는 시도 또한 거침없다. 이 작품을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터라 표현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조금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여과 없는 표현들을 읽고 있자니 불편한 감정과 함께 왠지 모를 쓴 웃음이 나기도 했다.


오셀로는 물론 이아고, 캐시오, 데스데모나의 아버지인 ‘브라벤쇼’ 등 등장하는 남자 인물에게 여자란 정조를 지켜서 순결한 상태로만 있어야 하는 존재, 그러나 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창부와 같은 존재, 혹은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자에 대한 이런 의식을 기반으로 서로 알게 모르게 ‘연대’한다. 예를 들어 브라벤쇼는 자기 몰래 오셀로와 결혼한 데스데모나를 비난하면서 오셀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어 장군, 그 애를 잘 지켜보게나. 아비를 속인 애이니 그대도 속일지 모르네” (제1막 제3장)


남성인물은 그렇다 치고, 순결하고 고귀한(?) 인물로 그려지는 ‘데스데모나’는 굉장히 평면적인 인물이다. 사실 그녀가 오셀로를 사랑하게 된 계기도 ‘엥?’ 싶었다. 그가 전장을 돌아다니면서 겪은 일들을 들으며 서서히 오셀로에게 반한 것으로 그려지는데, 어쩐지 불충분하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정말로 데스데모나의 무의식에는 강하고 다른 것에 대한 열망이 잠재되어 있던 것일까(이 작품에서 남자들은 데스데모나의 이런 성적 취향을 정숙하지 못한 여자의 증거로 덧씌우며 공격하기도 한다). 극 초반에는 전장까지 따라가서 오셀로와 함께 살겠다며 상당히 적극적이던 그녀가 극 후반에는 억울하게 의심받으면서도 아무런 저항도 없이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줘 그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오히려 이아고의 아내인 ‘에밀리아’의 캐릭터가 더 생동감 있다. 에밀리아는 만약 세상을 다 준다면 남편 몰래 부정을 저지를 수도 있다고 스스럼 없이 말한다. 그러면서 여자에게만 정절의 의무와 순결을 강요하는 남자들을 비꼰다. ‘아내들의 타락이 남편들의 잘못’이라며 한없이 가부장적인 남자들의 이중성을 비난한다.


“아내들도 남편들처럼 보고, 냄새 맡고, 달고 쓴 것에 대한 미각도 갖고 있어요. 그들이 아내 대신 딴 여자를 택할 때 그들이 하는 짓이 무엇이지요? 재미 보는 일일까요? 그럴 거예요. 욕정 때문에 그런 짓을 할까요? 그럴 거예요. 그런 실수를 하는 건 나약해서 일까요? 역시 그럴 거예요. 그러면 우린 남자처럼 욕정도, 재미 보고 싶은 욕망도 나약함도 없나요? 그러니 남편들은 우리를 잘 대접해야 해요. 우리들의 잘못은 그들의 잘못이 가르친 결과임을 알아야지요” (제4막 제3장)


사특하기 이를 데 없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이아고’ 또한 묘하게 매력있다. 그는 이 모든 극의 연출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 그만큼 인간의 나약한 속성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십분 활용할 줄 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장점으로 비추는 인간의 선한 면을 약점으로 잡아 그것을 공격한다. 그만큼 인간의 나약함에 정통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럴까? 이 작품에서 내가 공감한 구절 가운데는 이아고가 던진 말들이 많다.



이아고: 사람이 이런 사람이냐 저런 사람이냐 하는 것은 다 우리 마음에 달린 겁니다. 우리의 몸뚱이가 정원이라면 우리의 의지는 정원사죠. 그래서 쐐기풀을 심든, 상추를 뿌리든, 박하를 심고 백리향을 뽑아 버리든, 한 가지 풀만 심든, 여러 가지를 심든, 게으름을 피워 불모지로 만들든, 근면해서 잘 가꾸든, 이런 것들을 좌지우지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권능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지요. 만약 우리 저울에 정욕의 저울판을 균형 있게 만들어 줄 이성의 저울판이 없으면, 우리의 본능 중 정욕과 천박함이 우리를 터무니 없는 결과로 몰고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날뛰는 감정과 음욕의 자극과 끓어오르는 정욕을 식혀 줄 이성이 있지요. 나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도 제가 보기엔 음욕의 곁가지이거나 어린 가지에 불과합니다. (제1막 제3장)

이아고: 악행이란 실행될 때까지는 진면목을 보이지 않는 법이지. (제2막 제1장)

이아고: 인간은 역시 인간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때로는 자신을 망각하는 법입니다. 사람이란 화가 나면 호의를 베푼 자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제2막 제3장)

이아고: 명예보다는 몸의 상처가 더 아프죠. 명예란 남이 안겨 준 가장 헛되고 공허한 것으로, 종종 아무런 미덕 없이 얻기도 하고 또 별 이유 없이 잃기도 합니다. 부관님은 명예를 전혀 잃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잃었다 생각하지만 않으면요. (제2막 제3장)

이아고: 장군님, 남녀 할 것 없이 좋은 평판은 우리 영혼의 가장 소중한 보석입니다. 제 돈주머니를 훔치는 자는 곧 쓰레기를 훔치는 셈입니다. 돈은 중요한 듯하나 아무것도 아니고, 제 것이었다가 타인의 것이 되며, 수많은 자들의 종이니까요. 그러나 제 명성을 훔치는 자는 스스로 부자가 되지도 못하면서 저를 가난하게 만드는 것을 훔치는 셈입니다. (제3막 제3장)

이아고: 공기처럼 가벼운 하잘것없는 것도, 질투하는 자에겐 성서만큼 강력한 증거가 되지……. 위험스러운 억측은 원래 독약과 같아서 처음에는 구미에 맞지 않는 것을 잘 모르지만 혈액에 조금만 작용하면 유황 광산처럼 타오르지. 내 뭐랬나. (제3막 제3장)



1600년대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오셀로>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작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등장 인물들의 행동이나 말(데스데모나 제외하고 -_-)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공감을 얻는 것은 이 작품이 그만큼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정서와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나약함을 탁월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리라.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세 번째 작품으로는 <햄릿>을 생각하고 있다. <햄릿>은 또 어떻게 새롭게 다가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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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01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햄릿》을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읽으려고 하는데, 관련자료까지 참고하면 독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잠자냥 2016-09-01 16:06   좋아요 0 | URL
읽고 나셔서 쓰실 글이 벌써 궁금해지는군요. ㅎㅎ

cyrus 2016-09-01 18:22   좋아요 0 | URL
기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제 책 읽고, 글을 쓸 지 몰라요. 잠자냥님의 <햄릿> 읽기가 제일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