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좋아했던 작곡가는 요하네스 브람스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른바 3B, 바흐(Bach), 베토벤(Beethoven), 브람스(Brahms) 이들의 음악을 위주로 듣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은 여전히 내가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음악가들이다. 그 후로 라흐마니노프와 쇼팽의 음악에 매료되었다가 몇 년 전부터 내가 푹 빠져 있는 작곡가가 바로 슈베르트이다.

그런데 슈베르트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슈베르트가 빚어낸 아름답고 낭만적인 선율을 들으면서도 그를 생각하면 안경을 쓴 평범한 얼굴 밖에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나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과 함께 ‘겨울 나그네’와 같은 가곡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길만한 일화가 넘치는 것도 아니며, 슈만과 클라라와 얽힌, 그래서 낭만적인 신화로 가득한 브람스 같은 이야기도 존재하지 않으며, 바흐 집안처럼 대대로 수많은 음악가들을 배출하지도 않았다.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사랑은 쇼팽의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하다. 차이코프스키만 하더라도 그의 성 정체성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일화가 전해온다. 그런데 슈베르트는 어떠한가? 안경을 쓴 모범생 이미지의 가곡의 왕? 그쯤이 아닐까?

슈베르트 음악을 즐겨듣는 나도 그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지 않다. 슈베르트 전문가인 한스-요아힘 힌리히센의 <프란츠 슈베르트>는 지금까지 너무나도 부실하고, 흐릿하게만 알려져 온 슈베르트의 이미지에 또렷한 윤곽을 그려낸다. 가곡의 왕, 소박한 살롱 문화에 익숙한 음악가로서의 슈베르트 이미지를 걷어내고 거기에 천재적이고도 위대한, 일찍이 자기 재능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음악에 확신을 지녔던 작곡가로서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이 책 제목을 그 어떤 수식어도 없이 <프란츠 슈베르트>라고 한 것은 슈베르트에게 씌워진 어떤 오해나 이제까지의 한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내고 오롯이 작곡가 ‘슈베르트’, 인간 ‘슈베르트’로 그려내고자 했던 저자의 의도가 담긴 것은 아닐까.

프란츠 슈베르트는 음악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저자가 생각하기에, 그리고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보기에 슈베르트의 전기는 클리셰와 진부함으로 뒤덮여 있다. 언젠가 하이네가 칸트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칸트에게는 삶도 역사도 없기 때문에 전기에 쓸 거리가 없다’고. 저자는 이 표현이 슈베르트에게 더 적합할 것이라고 말한다. 슈베르트는 평생을 고향에 머물렀고, 긴 여행을 하거나 외국에서 지낸 적도 거의 없었다. 연애 한번 못해봤고, 독신으로 죽었기에 가족을 돌볼 일도 없었다. 초기 왕정복고 시대의 빈에서 아주 평온하게 살았던 것이다. 이런 평범한 삶과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너무나도 짧은 인생 때문에 슈베르트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처럼, 음악만큼이나 강렬한 삶의 흔적을 이 세상에 남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슈베르트의 음악적 사고와 갖가지 문제를 좀 더 깊은 통찰력으로 지니고 들여다보면 밋밋해 보이는 인생 뒤에 감춰진 개성 강한 예술가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고.

그리고 이 책을 읽노라면 자연스레 작곡가로서의 슈베르트를 재발견, 아니 재확인하게 된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소년 슈베르트의 모습에서부터 자신의 재능을 믿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음악을 창조하는 데 행복해하고 즐거워한 소년, 청년기의 방황 그리고 주변의 인정과 격려, 자신의 음악에 대한 고뇌와 불만족, 그토록 원했던 성공을 드디어 눈앞에 둔 모습, 그리고 그 성공을 온전히 누리지도 못한 채 너무나도 빨리,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버린 그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그려진다.

슈베르트의 초상화를 보면 그는 소심하면서도 다정해 보인다. 그래서 그런 걸까? 슈베르트에게는 특별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그는 기숙학교 시절부터 여러 친구들과 활발하게 예술적이고 지적인 교류를 나눴다. 그리고 이런 교우 관계는 슈베르트 인생에 뚜렷한 자국을 남긴다. 여름날에 함께 소풍을 가거나 어울려서 소시지를 먹는 순수 오락모임에서부터 수준 높은 토론을 벌이는 독서 모임에 이르기까지 성격도 매우 다양했다. 그는 다양한 친구들,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무엇보다 일상적인 예술 교류를 중요하게 여겼다. 친구 그룹에는 동년배뿐만 아니라 그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도 있는데, 친구들 기억에 따르면 어린 슈베르트는 이미 처음부터 그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슈베르트의 친구들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그를 시기하지 않고 놀라워했다. 그리고 이런 친구들의 지지와 열광적인 추종으로 인해 슈베르트는 선뜻 자유 예술가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뜻과 달리 교사직을 버리고, 부모 집에서 나와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작곡가의 길을 걸어간 것이다.

처음 부모 집에서 나올 때 이미 그는 평생의 작곡 활동 중에서 상당부분을 끝낸 상태였다. 600개가 넘는 가곡 중에서 200개를 작곡했다고 하니 이 왕성한 창작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럼에도 슈베르트는 음악 시장에서 자신을 성공적으로 입증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익숙한 소시민적 환경과 그에게 호감을 갖고 열광하는 집단 속에서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을 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무렵에도 유독 한 장르만큼은 거의 완벽한 인정을 받았는데, 바로 가곡이다. 처음부터 가곡은 그의 상징이었다. 그의 친구와 동료들이 한결같이 이 장르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우연은 아니며, 슈베르트가 일찍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도 가곡에 있었다. 그런데 슈베르트의 유명한 가곡들을 들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거기에는 그만의 독특함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슈베르트의 가곡은 정형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작곡 기술을 현실화한 것이다. 노래 성부는 해방되었고,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반주역할이 강조되던 피아노 성부는 독립했다.’

한편, 베토벤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충격적인 깨달음은 슈베르트가 작곡가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진작부터 싹텄다.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은밀하게, 나는 내가 무언가를 이룰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베토벤 이후에 누가 해낼 수 있단 말인가?” 언제부터인가 베토벤은 젊은 슈베르트에게 특별한, 그래서 더 주눅 들게 만드는 기준점이 되었던 것이다. 슈베르트는 여기서 ‘베토벤 이후’의 근본적인 문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며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나아간다. 그리고 그는 친구나 지인들이 아닌 보다 광범위한 대중을 위한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시도한다. 1828년 초 마인츠의 쇼트 출판사에 보내는 편지에서 슈베르트는 “이 후자의 작품들을 제공하는 이유는 제가 예술에서 최고의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귀하께 알리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밝힌다. 음악극, 대규모 관현악곡, 교향악적 미사는 “예술에서 최고의 것”으로서, 대중에게 나아가는 세 갈래 길이었고 슈베르트는 살아생전 이렇게 차별적인 전략을 쓰며 대중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국가가 나를 먹여 살려야 한다. [...] 나는 오로지 작곡을 위해 태어났다!” 슈베르트는 여러 차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스-요아힘 힌리히센은 슈베르트를 ‘프리랜서 작곡가라는 모델을 조금씩 성공적으로 실현해나갈 수 있는 최초의 작곡가’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슈베르트는 고정된 직책이나 귀족의 후원, 독주자로서의 연주 활동이나 레슨에 의존하지 않고 아주 일찍부터 작곡가로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비록 중간에 위기와 실패를 겪기도 했고, 그의 인생에서 자유 예술가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부각된 것은 마지막 몇 년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더욱이 살아 있을 때 슈베르트는 자기 작품의 출판을 위해 작품번호를 무려 106번까지 매겼다. 이는 그보다 25세 이상 많은 베토벤에게도 뒤지지 않는 숫자였다. 1828년에는 드디어 온전히 슈베르트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첫 번째 음악회가 열렸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다. 슈베르트는 그때부터 더욱 왕성한 창작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데 안타깝게도 그해 11월 너무나도 때 이른 죽음이 찾아온다. 슈베르트가 병상에서 마지막까지 몰두했던 작업은 ‘겨울 나그네’의 수정이었다고 한다. 어느덧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는 이즈음에도, 이 구절을 읽는 순간 ‘겨울 나그네’를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듯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슈베르트의 음반에 손이 간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이 책을 읽기 전보다 한결 더 아름답고 친숙하게 들려온다.




내가 즐겨 듣는 슈베르트는 리히터와 빌헬름 켐프가 압도적이다.




요즘에는 짐머만의 연주도 좋고




라두루푸도 슈베르트 연주자로서 빼놓을 수 없다.




폴리니와 소콜로프의 연주도 나는 사랑한다. 디누 리파티와 클리포드 커즌의 연주도 추천하고 싶다.




<겨울 나그네> 앨범은 저것뿐인데, 사실 이언 보스트리지 <겨울 나그네>를 산다 산다하고 계속 미루기만...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명연주만 골라 담은 앨범- 그러고 보니 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유독 좋아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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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 2019-02-27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클래식 음악가중에 슈베르트를 제일 좋아하는데 생각이 비슷해서 놀라울 정도에요 저도 짐머만의 슈베르트 연주가 가장 해석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짐머만이 연주한 슈베르트 즉흥곡 90.2 유투브 영상 추천드립니다 표현이 굉장이 유려해요

잠자냥 2019-02-27 14:20   좋아요 0 | URL
네 추천하신 영상 꼭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19-02-2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글이네요. 저도 근 몇년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애호가가 되는지 요새 조금씩 감이나마 오는데 오랜 시간이 축적된 글이라 더 반갑게 읽었습니다.

잠자냥 2019-02-27 17:25   좋아요 0 | URL
저도 서른 넘어서 클래식을 제대로 듣기 시작했는데, 예전에는 왜 이 음악의 매력을 몰랐을까 안타까웠을 지경이었답니다. 좀더 일찍 알았다면 더 많은 음악을 들었을 텐데 말이에요. ㅎㅎ 좋은 음악 많이 들으시길 바랄게요!

auriol23 2021-06-26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모젠 쿠퍼 이야기를 안 하셨네요. 저도 삼십 년 넘게 켐프 슈베르트에 빠져 지냈는데 정년퇴직 후에 우연히 이모젠 쿠퍼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잠자냥 2021-06-26 23:02   좋아요 0 | URL
저도 아주 늦게 알아서 아직 그 연주의 참맛을 모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좀 더 귀기울여 들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