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뉴욕공립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이용자가 도서관 직원과 통화를 하고 있다. 통화 내용으로 이 도서관은 한 사람이 한 번에 50권의 책을 1년 동안 대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놀라워라! 직원은 자신이 대출한 책들이 궁금한 이용자에게 목록을 일일이 불러준다. 또 다른 이용자는 유니콘에 대해 궁금한지 그에 관한 책을 문의한다. 직원은 유니콘에 대해 자신이 아는 한에서는 이런저런 정보를 준다. 이윽고 카메라는 다른 곳을 비춘다. 도서관 로비로 짐작되는 곳에서 한 남자가 수많은 청중을 앞에 세워두고 강연을 하고 있다. 사회자가 있는 걸 보니, 저자 강연쯤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그런데 이 사람은? 리처드 도킨스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 자유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니, 또 한 번 놀란다. 이곳은 뉴욕공립도서관이다.

지난 주말에 본 영화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Ex Libris - The New York Public Library>는 책을 좋아하고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가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면서 볼 수 있는 대단한 영화다. 다큐멘터리인 데다가 장장 3시간을 넘는 상영시간 때문에, 혹시 지루하지나 않을까? 재미없는 게 아닐까 우려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당신이 책덕후라면, 그리고 도서관, 또는 서점이라는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곳에서 무언가를 얻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이 영화가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다큐멘터리를 딱히 즐기지 않을뿐더러 긴 상영시간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러나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처음 몇 장면만으로도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뿐만이 아니다. 영화를 함께 본 친구들이 모두 책덕후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 영화는 도서관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그 도서관은 살아서 꿈틀꿈틀 움직인다! 이제까지 내가 알던 도서관이 아니다.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곳이며 가끔 그 책을 이용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이 영화는 완전히 깨뜨려버린다. 앤드류 카네기는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에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고, 그의 기부에서 출발해 뉴욕공공도서관이 탄생한다. 그리고 그 도서관은 오늘날까지 민간자본과 공공기금(시 예산)이 결합해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지식과 정보, 배움의 장을 마련해주고 있다. 그 내용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저 놀랍고 부럽기 그지없다. 리처드 도킨스나 엘비스 코스텔로, 패티 스미스 등 저자를 직접 초빙해 강연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저자와의 만남 같은 자리는 우리나라 도서관도 종종 벌이는 행사이니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고 치자(물론 강연자가 저런 이들이라는 게 놀랍고 부럽기는 하다). 그런데 뉴욕도서관은 92개 분관 곳곳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미술 컬렉션 전시회는 물론 온갖 특별한 강연과 음악회, 공연 등이 이루어진다. 정보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인터넷을 무료로 대여해주기도 하며, 방과 후 오갈 데 없는 청소년들에게는 또 다른 교육과 돌봄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들보다 더 어린 유아들의 보육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점자/음성 도서관인데 이곳에서는 점자 읽는 방법과 점자를 타자로 치는 방법을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여 교육한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 제작과정도 상세히 보여준다. 차이나타운에 마련된 분관은 중국인들을 위해 영어 교육과 컴퓨터 교육 등이 이루어진다. 심지어 어떤 분관에서는 직업 소개와 취업을 알선해주기도 한다. 도서관이 지식을 나누고 배움의 장이 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누리고, 지역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북돋으면서 그들의 삶이 진일보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책을 보관하는 일, 즉 과거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인류의 미래까지 만들어가는 것이다.

도서관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는 지금 사는 집에 이사 오면서 이런저런 점들을 고려했지만 그중에 무엇보다 도서관과 아주 가깝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걸어서 2~3분이면 도서관이다. 우리 도서관에서도 소소한 행사를 한다. 그러나 내가 주로 이용하는 시스템은 도서 대출과 도서 신청 등이 전부이다. 그럼에도 나는 도서관을 매우 잘 이용하는 편에 속한다. 학교 다닐 때도 강의실을 비롯해 캠퍼스 그 어떤 곳보다도 도서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수업 시간보다도 이렇게 앉아서 읽은 책에서 얻은 게 더 많았다. 적어도 지금의 나를 이룬 부분 가운데 ‘좋은 점’들은 도서관에서 얻은 게 많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공간보다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이라면 <뉴욕라이브러리에서>에서 드러나는 도서관의 온갖 기능과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살아 숨 쉬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이들의 열정이 가슴 뜨겁게 다가올 것이다.

이 영화에 따르면 토니 모리슨은 도서관을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라고 말했으며 또 어떤 이는 ‘구름 속의 무지개’와도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을 호기심과 열정으로 이끄는 공간’이다. 뉴욕도서관은 지식과 정보의 고른 확산과 평등한 분배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한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자 구름 속의 무지개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어디 뉴욕도서관만 그러하겠는가, 이 땅을 비롯해 전 세계 수많은 도서관들이 지금도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책과 도서관이 매우 큰 가치를 지니는 게 아닐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는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해 이런저런 작가와 작품이 많이 등장한다. 어떤 순간에는 프리모 레비의 말이 인용되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다. 장 주네의 <도둑일기>가 언급되기도 하며, 오디오북 제작 과정에서 읽히는 책은 다름 아닌 나보코프의 <어둠 속의 웃음소리>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이런 코드들을 찾아서 음미하는 즐거움도 무척 클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읽은 책도 있고 아직 읽지 못한 책도 있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는 읽을 날을 미루기만 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당장 읽고 싶어진다. 우선은 도서관과 관련하여 <세계의 도서관>이라는 이 매혹적인 책부터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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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8-10-2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3시간 짜리 다큐라니, 금방 막내릴 텐데 빨리 검색해서 예매해야겠는걸요?^^ 감사합니다

잠자냥 2018-10-22 13:25   좋아요 0 | URL
네- 상영관도 그다지 많지 않아요;; 네이버에서는 상영관 검색하면 안나오기는 하는데, CGV 예술 영화관 같은 곳에서도 상영 중입니다.

2018-10-22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2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8-10-23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꼭 봐야겠네요~~~
살아 움직이는 도서관!
생생한 소개 감사합니다.

잠자냥 2018-10-23 11:23   좋아요 1 | URL
네, 도서관 사서분들이 보셔도 굉장히 많은 영감을 얻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잠자냥 2018-10-23 11:43   좋아요 1 | URL
상영관 검색 해보셨나요?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대한극장/메가박스 정도만 나올 텐데 CGV압구정/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 등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세실 2018-10-23 11:57   좋아요 0 | URL
넹~~ 서울, 인근은 대전에서 하네요.
아쉽게도 청주는 안하네요.

잠자냥 2018-10-23 12:01   좋아요 1 | URL
안그래도 댓글 달고 아차 했습니다. 제가 너무 서울 중심으로 생각했네요. ^^;;
기회가 될 때 언제고 한번 보세요. ㅎㅎ

공쟝쟝 2018-10-23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영화 보고 싶어요

잠자냥 2018-10-24 09:35   좋아요 1 | URL
저는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보고싶더라고요. ㅎㅎ 기회가 되신다면 꼭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