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문학작품을 읽다 보면 그는 어쩌면 칼럼이나 에세이를 더 잘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대표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1984>나 <동물농장> 같은 작품들은 사실 어떤 면에서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지나치게 뚜렷해서 오늘날 읽기에는 조금 촌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이렇게 독자에게 전하고자하는 바가 분명한 작가라면 칼럼에서는 더욱 거침없이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오웰의 칼럼을 엮은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은 그러한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준다.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이전에 오웰의 에세이나 칼럼을 맛볼 수 있었던 책으로는 대표적으로 <나는 왜 쓰는가>가 있다. 예전에 이미 이 책을 통해 그의 단순 명료한 문장과 명쾌한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최근 출간된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은 그동안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그의 ‘칼럼’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오웰은 영국 일간지 <트리뷴>에 근무하며 매주 칼럼을 썼다. 얼마나 많이 썼는지 때로는 세 편이나 네 편이 한꺼번에 실리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런 오웰의 칼럼을 ‘평등’, ‘진실’, ‘전쟁’, ‘미래’, ‘표현의 자유’ 등 주제별로 엮어 다양한 글을 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을 크게 관통하는 흐름은 ‘전쟁’과 ‘파시즘’ ‘자유에 대한 통제’ 등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웰은 1차 세계대전 및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시대에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살았으며 스페인내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그러니 그의 관심사는 마땅히 전쟁과 당시의 세계 구조에 있었으리라.

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전쟁과 파시즘, 강제수용소, 고무경찰봉, 원자 폭탄’에 관한 글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오웰은 자신의 관심사가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렇게 말한다.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다면, 머릿속이 온통 침몰하는 배에 관한 생각일 수밖에 없다.’고. 그럼에도 오웰은 ‘내가 만약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정치와 무관한 글을 썼을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정치와 무관한 글을 쓰는 조지 오웰이라니, 언뜻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럴 만큼 그는 파시즘과 자본주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뒤섞여 요동치던 시대에 끊임없이 영국의 제국주의를 성찰하고 자본주의를 경계하는 글을 썼다.

이런 오웰의 태도는 <나는 왜 쓰는가>에서도 이미 엿볼 수 있었는데, 그는 거기에서 ‘나는 작가다. 모든 작가는 정치에 거리를 두려는 충동을 느낀다. 평화롭게 책을 쓸 수 있도록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이상은 기업형 슈퍼마켓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구멍가게 주인들의 꿈보다도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왜 쓰는가>, 63쪽)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은 ‘어릴 때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한 작가의 동기를 헤아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인간이 글을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보았다. 그가 꼽은 첫 번째 동기는 순전한 이기심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가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 동기는 미학적 열정으로,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 등을 의미한다. 세 번째로 역사적 충동이 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가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끝으로, 정치적 목적이 있다. 오웰은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밝히며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292~294쪽) 그런 생각을 지닌 오웰이기에 정치적 색채가 짙은 문학 작품에 이어 그보다 더 정치적인 칼럼을 쓴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흐름은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책의 오프닝 글에서 오웰은 ‘나는 사람들이 정치적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믿는다. 죽을 게 뻔한 환자라 하더라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처럼 말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인간의 광기가 빚어낸 전쟁과 파시즘에 맞서 진실을 전달하는 데 두려움 없이 앞장선다. 때로는 남들이 하기 어려운 말을 함으로써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오웰은 사회 부조리와 불평등에 누구보다 민감했다. 국수주의가 만연하는 시대를 살면서도 인도 식민지 국민과 유색인종, 소외 계층의 아픔을 잊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때로는 비난의 화살이 빗발치기도 했다. 물론 그가 소외된 이들의 굶주림과 추위에만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다. 점차 고립되어 가는 도시 생활 속에서 인연을 만들고자 애쓰는 젊은이들의 문제를 고민하기도 한다. 실제로 ‘배우자 모집 광고에 대한 생각’이라는 칼럼에서는 그토록 완벽한 남녀가 신붓감 또는 신랑감을 구하기 위해 신문에 광고까지 낸다는 사실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꼬집으며 그 칼럼을 읽는 이를 미소 짓게 만들기도 한다. 그는 또, 설거지와 같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일을 끔찍이도 싫어했는지 일찌감치 가사노동 해방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웰이 자신의 칼럼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바는 사회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며, 이때 지식(인)과 진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였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인종 차별도, 혐오도, 전쟁도, 파시즘도 모두 인간의 무지에서 비롯되었으며, 무지가 더 큰 악을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1947년이다. 유태인 혐오주의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를 대체할 희생양을 찾아 나선 셈이다. 인종 간 혐오와 집단 망상은 이 시대 삶의 방식 일부나 다름없다. 사람들이 조금만 덜 무식했다면 이런 혐오와 망상의 영향이 지금보다 덜 했을지도 모른다. (.....) 조금이라도 지식을 얻고 나면 사람들이 조금은 덜 악랄하게 굴지도 모른다.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50~51쪽)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가 속한 우물 밖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도 신경 쓰도록 만드는 일이다. (.....) 시간이 지나고 끔찍한 상황이 쌓여갈수록 인간의 마음은 ‘자기 방어적 무지’를 뿜어내는 듯하다.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76~77쪽)


이런 오웰의 생각은 1949년 그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에서도 잘 드러난다. ‘공산주의나 파시즘을 물리치려면 우리도 그들만큼 광신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결론짓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광신적인 믿음을 타파하려면 반대로 광신적이지 않게, 지성을 활용해야 한다. 호랑이처럼 행동해서는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두뇌를 사용해 소총을 만들지 않았던가.’

오웰은 ‘지구가 사실은 다른 행성에서 빌려 쓰고 있는 정신병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정신병원에서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그는 ‘지성’에서 찾은 듯하다. 제대로 살아남아 이 사회 어느 한 부분이라도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기 위해 사람들이 ‘깨어 있기’를 촉구했다. 그리고 오웰 자신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한 오웰. 그러나 그 지성이 단순히 머리 좋음을 뜻하거나, 지식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가슴으로 뜨겁게, 그러나 머리는 냉철하게 판단하는 지성을 의미할 것이다. 그래서 오웰의 ‘정치적’인 글들이 언제나, 그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을 뜨겁게 뒤흔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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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20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왜 쓰는가>이거 몇년전에 사서 묵혀두고 있는데...오웰은 정말 자기 철학대로 삶을 살았던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책도 기회되명 읽어봐야겠네요 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잠자냥님 서재에서 책 많이 추천 받았습니다 ㅎㅎ

잠자냥 2018-09-20 14:57   좋아요 1 | URL
<나는 왜 쓰는가>에는 정치적인 글 말고도 나름 낭만적인 에세이도 종종 보입니다. 언제 꼭 읽어보세요~
참, 그리고 감사합니다. 얼마전 ‘좋아요‘ 폭풍 세례 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9-20 14:59   좋아요 1 | URL
서재 들어가서 놀다가 잠자냥님 글 보고 존 치버 일기도 구매하고 이렇게 저렇게 잘 놀았어요 글이 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