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 article qui s'intitule "Dans le musée, pour le vingt et unième siècle qui n'est pas encore venu, du vingtième siècle qui n'est pas encore parti" est publié en pages 44-45 dans le magazine coréen «Public Art». Il est le premier écrit pour ma nouvelle série "Lettres de la haine et de l'amour esthétiques pour mes contemporains" qui continuera dorénavant pendant quelques mois dans le même magazine.

<퍼블릭 아트(Public Art)> 2013년 7월호 44-45쪽에 제 글이 실렸습니다. 'culture letter' 연재의 일환인데요, 앞으로 '동시대인을 위한 미학적 증오와 연애의 편지'라는 전체 제목으로 제가 몇 편의 편지 글들을 <퍼블릭 아트>를 통해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그 첫 편지의 제목은 "아직 오지 않은 21세기를 위해 아직 가지 않은 20세기로부터, 미술관에서"입니다. 일독을 권하며, 무엇보다 <퍼블릭 아트>의 예쁜 지면으로 읽으시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소중한 지면을 제안해주신 안대웅 기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동시대인을 위한 미학적 증오와 연애의 편지 (1)

아직 오지 않은 21세기를 위해 아직 가지 않은 20세기로부터, 미술관에서.
 

최정우 (비평가, 작곡가)
 

무엇보다 내가 이 편지를 하나의 용서(pardon)를 구하는 일로부터 시작하려는 점을 미리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모릅니다. 당신의 성별도, 당신의 사회적 위치도 알지 못합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정보는, 당신이 20세기 말에 태어나 21세기 초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띄우는 것은, 아마도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을 것이라는 미약한 확신과 불확실한 연대감 때문입니다. 백 번 용서해서, 만약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시간을 '시대'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면 말입니다. 물론 '시대'라는 말을 쓸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공통의 의식이나 기억이 필요할 겁니다. 나와 당신이 공유하고 있는 의식 혹은 기억이란 아마도, 20세기에 상상했던 무언가 대단히 신나고 왠지 무척이나 찬란할 것만 같았던 21세기에 대한 꿈, 그리고 그 20세기 말의 꿈이 기이하게 뒤틀리고 이상하게 좌절돼버린 21세기 초의 어이없을 정도로 무참한 현실, 바로 이러한 꿈과 현실에 대한 의식 혹은 기억일 겁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고백하자면,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앞으로 당신을 동시대인(contemporain)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하여 이 편지는 나의 동시대인인 당신에게 띄우는 우정의 편지이자 동시에 절교의 편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무엇보다 이 편지가 이러한 이중적이고 역설적인 관계의 편지라는 사실에 대해 또한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편지는 나와 당신을 향한, 그리고 나와 당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향한, 그런 용서의 편지, 그러나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해야만 하는, 그런 굴욕의 편지, 그런 역사이자 동시에 이야기(histoire)를 위한 편지이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왜 절교의 편지일까요. 나는 동시대인인 당신과 다른 시간을 살고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나는 나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당신을 다른 시간으로 떠나보내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무척이나 이중적입니다, 나처럼 말입니다. 나와 당신은 민주화라는 일견 당연해 보이는 정치적 과정이 그 어떤 시대보다 확고하게 안착된 것처럼 보이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동시에 그 민주화라는 여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한 행보를 보이며 전례 없는 (비)가시적 위협을 당하고 있는 시대를 그저 침묵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와 당신은 예술이 그 어떤 시대보다도 문화적이고 사회적으로 가장 안정된 상태에서 향유되고 권장되는 사회 안에서 살고 있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술 그 자체가 가장 큰 의심을 받고 가장 널리 위험을 당하며 가장 많은 문제들에 봉착해 있는 사회를 그저 타성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런 당신과, 그런 나와 절교하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동시에 이것은 왜 우정의 편지일 수밖에 없을까요. 나는 우리의 이러한 시대와 사회를 그저 손쉽게만 떠나보내거나 폐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나와 당신은 이 시대와 사회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최종의 - 것으로 '최종적으로' 상정된 - 정치경제적 제도로부터의 이탈을 결코 쉽게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로부터 한 발짝도 떼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나와 당신은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구속적 우정으로 묶여 있습니다. 나와 당신은 이런 시대와 이런 사회 안에서 서로 언제나 충돌할 위험에 노출돼 있는 일종의 잠재적이고 영원한 적(敵)이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오직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만, 지극히 단단하고 끈끈한 우정으로 묶여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러한 우정과의 절교를 함께 실행할 수 있는 우정, 그런 우정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이 물음은 또한 내가 다시금 힘주어 당신을 동시대인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이유에 대한 대답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나와 이러한 절교의 우정을 나눌 수밖에 없는, 이러한 절교를 통해 저러한 우정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그런 동시대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이 편지가 그런 불가능과 그런 역설들의 편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합니다. 내가 이미 말했듯이, 이 편지는 하나의 용서를 구하는 일로부터 시작됐고, 다시금 다른 용서를 구하는 일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이 점은 분명히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만나고 헤어질 것이며, 헤어지며 다시 만날 것입니다.

나는 무엇보다 먼저 미술관에서 당신에게 절교를 선언하고자 합니다. 나와 당신을 함께 설레게 했던 그 수많은 시각적이고 시간적인 약속들에 대해 이별을 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미 부드럽게 경고했듯이(그러나 경고가 얼마나 부드러울 수 있을까요), 이러한 이별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이별이 그러한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제작하고 향유하고 있는 미술은 여전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미술관 속에 갇혀 있고 닫혀 있습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 바깥으로의 탈출을 외치고 그러한 공간의 생산적 해체를 종용하는 모든 미술들 역시 더욱 광범위하게 확장된 '미술관'이라는 개념적이고 사회적인 틀 속에 묶여 버립니다. 세계는 미술관이 되었고 미술관은 세계가 되었습니다. 말로(Malraux)가 의미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의미에서, 세계는 '상상의 미술관(le musée imaginaire)'이 된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미학적 유사(流砂)'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미술관은 세계의 유사(類似)임과 동시에 세계라는 유사(流砂)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저 흐르는 모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체제, 나와 당신은 그 체제 안에서 그 모래를 먹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미학적 체제라고 하는 우리 세계, 우리 시대의 가장 부정적이고 불가능한 얼굴일 겁니다. 우리의 시대에 미술과 미술관은 그런 모래 속에서, 그토록 너무나 가깝고 밀접한 우정 속에서, 근친상간과도 같은 사랑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유사(流砂)라는 명명과 유사(類似)하게, 나는 이러한 관계를 또한 '미술관 속 동물원'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그 동물원 안에서 구경거리가 되는 동물은 결코 미술품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파리 속 동물들은 바로 나와 당신입니다. 나와 당신은 미술관 안에서 예술작품들을 경험하는 동물들로서 표상되고 재현되며 따라서 전시됩니다. 미술작품들은 오히려 그렇게 전시되는 우리 동물들을 말없이 바라봅니다. 우리가 그저 침묵 속에서 시대라는 전시품을 그저 타성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동시대인, 동물들. 미술을 관람하는 나와 당신, 우리 동시대인들이 전시품이 되는 공간, 그곳이 바로 21세기의 미술관이자 동물원의 형태, 20세기에 우리가 꿈꿨던 낙원이자 동시에 지옥의 모습입니다. 나는 이러한 낙원과의 우정에 절교를, 이러한 지옥과의 사랑에 이별을 고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다시 묻자면,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래서 나는 또 묻습니다. 떠나보낼 수 없는 것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요. 유행가 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그러나 동시에 나는 바로 그 유행가의 스쳐 지나치듯 간과되는 바로 그 가사를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별할 수 없는 것과 이별한다는 것, 하여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니, 데리다(Derrida)의 말처럼, 용서란, 어쩌면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 바로 그것만을 말한다는 사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내가 미술관 안에서, 미술관을 떠나며, 미술관 밖으로, 당신을 떠나보내며, 그렇게 묻고 싶은 물음입니다. 나를 용서하지 말고, 당신을 용서하지 마십시오. 타성 속에서 침묵하는 나와 당신을 용서하지 마십시오. 진정 용서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 襤魂, 合掌하여 올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팀전 2013-07-09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람혼님. 외국에 계셨던 것 같은데...들어오신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요. 세계가 단말기 속으로 들어간 인터넷 공간인지라 파악이 어렵군요.ㅋㅋ

아감벤이 말한 동시대성- 거리를 두면서도 들러붙음-과 동시대인, 즉 펜을 현재의 암흑에 담으며 써내려 갈 수 있는자 라는 문장이 떠오는 글입니다.

그렇게 보면 동시대인으로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은 삶의 모든 인지와 감각을 총동원하여 이성적 판단과 윤리적 결단을 총합해내는 거대한 일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 솟아오를 수 있는 용기와 가벼움까지 끌어 안으려면...

오랜 만에 만나 무거운 이야기를 하네요. 장마철이라 구름이 너무 많이 밀려와서 그런가 봅니다.
ㅎㅎ

어디에 계시더라도 무탈하게 정진하시리라 기대합니다.

람혼 2013-07-09 15:14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오랜만입니다, 드팀전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저도 그간 알라딘 서재와는 격조하다가 오랜만에 글 하나 남겨봅니다. 저는 아직 계속 파리에 있습니다.
저 또한 '동시대인'이라는 말을 아감벤의 개념을 염두에 두면서 썼는데, 역시 드팀전님이 적확하게 지적해주셨네요. 그 가장 '사소하면서도 거대한' 일을 잘 읽어주셔서 언제나처럼 깊이 감사드립니다. 밑이 과연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시험하는 듯 무겁기만 한 이 세계에서, 어쩌면 우리의 환담은 오히려 깃털처럼 가벼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드팀전님 또한, 그 언제 그 어디에 계시든, 건강하시고 건필하십시오. 장마 구름이 내리는 비를 뒤집어, 오히려 비를 하늘을 향해 올리시길.
 

 

말 그대로, '회고전' 한 자락.

중학교 때 그렸던 몇 장의 그림들, 사실 거의 잊고 있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베란다 정리를 하다가 발견하고 말았다(아니, '발굴하고 말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밀려온다. 그래서 달콤하면서도 고통스럽다. 예전에는 그림 그리는 걸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너무 오래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말하자면, 다시 그리고 싶은 거다. 그림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면서, 그림에 대해 품고 있던 그때의 열정들도 다시 되살아나고,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회한도 밀려오고,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그저 그리고 싶은 거다. 

 

   

▷ 람혼, <담배를 쥐고 있는 노인>(1991).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렸던 그림으로 기억하고 있다. 화면 좌측 상단의 커다란 붉은 손톱(?) 같은 것은 붉은 그믐달을 그린 것이다. 기억 속에만 어렴풋이 존재하던 그림인데, 무엇보다 이 그림을 '발굴'할 수 있어서 가장 좋았다고 말해야겠다. 이 그림을 그렸던 당시 김호석 화백님이 이 그림에 대해 한 마디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말씀의 정확한 내용은 지금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중학생이 이런(?) 그림을 그린 걸 신기하게 생각하시면서도 왠지 안쓰럽게(?) 여기신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때의 내 느낌이 정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김호석 화백님은 그때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약간은 착잡한 표정을 머금으셨던 것도 같다. 당시 화백님의 작품들은 실사(實寫) 화면을 한가득 채운 슬픈 은유들로 내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그러나 그러한 아픔의 느낌은 내가 당시 김호석 화백님의 작품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계기이자 이유이기도 했다. 이 그림에는 어쩌면 그런 영향들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 람혼, <無題>(1991년경).

 
역시나 중학교 때 그린 그림. 커다란 탱화 한 점을 그려보고자 시작했으나 결국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이다. 실로 오랜만에 '발굴'하고 정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고운 주황색 종이가 완성되지 못한 그림을 곱게 숨긴 채 그렇게 곱게 접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펼치고 사진을 찍었다, 어둡게, 어두운 마음으로. 

 

 

▷ 람혼, <침 흘리는 여인>(1990년경).

 
이것도 중학교 때의 그림. 데생 시간에 시키는 그림은 안 그리고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스스로 평가해보자면, 전체적으로 피카소(Picasso)의 영향이 강력하게 느껴지는 그림이라고 하겠는데, 왜 의자에는 저렇게 많은 금들이 가 있는지, 왜 저렇게 빈틈없이 균열되어 있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 람혼, <야, 우리도 돈 좀 벌자!>(1991년경).

 
위의 <담배를 쥐고 있는 노인> 그림과 비슷한 시기의 그림으로 추정된다. 오른편에 '야, 우리도 돈 좀 벌자!'라는 글이 쓰여 있다. 난 그때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알 수 없다. (또한 '美史'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로 썼던 것일까? 모르겠다. 그 시절의 아호였던가?) 갱지에 붓 가는 대로 마구 휘갈겼던 그림, 그래서 오히려 더 소중하다, 순간을 담고 있어서. 섬섬옥수, 악의와 허약함을 동시에 가득 담고 있는 듯한 손가락들이, 지금에 와서 뒤늦게, 아찔하고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 람혼, <얼굴-연작>중 일부(1992년경).

 
중학교 3학년 때쯤의 그림으로 추정된다. 그때 난 점점 '표현주의적'이 되어 가고 있었나 보다. 이때쯤 '얼굴 연작'을 구상했던 기억이 난다. 다양한 모델들을 바탕으로 변조된, 다소 위악적이고 거친 화면 구성을 통한 몇 백 장의 얼굴들을 그리는 연작을 구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결국 완성은 하지 못했다. 이 연작의 일부들도 모두 미완성으로 남은 것들.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 얼굴들은 모두 내 마음속에 있다, 하지만 찾을 수는 없다, 그저 그렇게 있을 뿐. 

 

 

▷ 람혼, <莊子, 應帝王, 第七에 대한 한 해석>(2006).

 
이건 2006년 첫날에 쓰고 그린 것인데, 현재 내 서재의 한쪽 벽에 부착되어 있다. 말하자면 『莊子』의 한 장면에 대한 작은 형상화를 의도했던 것. 그러나 그림은, 글은, 언제나 그 의도를 가볍게, 그러나 또한 무겁게 벗어난다. 이성복 식으로 말하자면, 입이 없는 것들, 들뢰즈 식으로 말하자면, 기관 없는 신체들, 그런 것들(사실 이 모든 것들은 말이다, 말일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구멍 뚫리고 찔리고 당하는 것들, 그런 것들(그러나 말은, 여기서, 말의 무게를 벗어난다, 혹은 말이 아닌 것의 무게를, 마치 말처럼, 덧입는다). 돌이켜보면, 이렇듯 20대 때의 그림은 저 10대 때의 그림보다 뭔가 좀 더 '미니멀'해진 그런 느낌이다. 30대의 그림은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 그게 궁금하다. 그러니 다시 그릴 수밖에.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모든 그림들을 실로 오랜만에 갑자기 베란다에서 '대량 발굴'하고 나니, 그리고 이렇듯 들쑥날쑥 다양한 스타일의 그림들로 구성된 때아닌 회고전(?)을 열고 나니, 정말 새롭게 그림을 시작해보고 싶은 욕망이 치솟는다. 다시 그림을 그려야겠다, 가능하다면, 치열하고 탐욕스럽게, 어쩌면 그저 탐욕스럽게만, 그렇게, 지금은 다만 그러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 불가능하겠지만, 이라고 말하지만,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불가능이 아니라면, 다른 무엇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라는 물음을 남기며. 노파심에서 다시 말하자면, 이는 '불가능은 없다'는 식의 순진한 희망에 대한 예찬이 아니다, 결코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기쁜 절망 같은 것에 가까울 터.

— 襤魂, 合掌/合葬하여 올림.

 

 

 

 

알라딘 서지 검색을 위한 이미지 모음: 

 

 

 


댓글(25)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5-09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9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9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9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9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0 0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바다 2011-05-11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이것이 중학생의 그림이었단 말입니까? ㅎㅎ

람혼 2011-05-12 22:48   좋아요 0 | URL
뭐, 부끄럽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멀리 출장을 가셨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잘 돌아오신 건가요? 남극! ^^

푸른바다 2011-05-14 16:49   좋아요 0 | URL
첫번째 그림을 보고 든 인상을 말씀드리면, 담배를 피다가 선생님께 들킨 학생의 심리가 표현되있는 것 같네요.^^ 담배피다가 들키는 순간에는 내가 어른이었으면 하는 아쉬움, 벌거벗겨진 당혹스런 느낌, 동정을 바라는 마음이 복합적으로 느껴지겠지요. 어른이었으면 하는 것은 '노인'으로, 벌거벗겨진 당혹스러움은 수세적인 노인의 표정과 자세 그리고 벌거벗은 웃통으로, 동정심은 노인 앞에 놓인 동냥 그릇으로 표현된 것 아닌가요?ㅎㅎ 그리고 이런 복함적인 감정을 '실사'라는 수법을 통해 그림의 사실성을 강조함으로써 숨기는 것이 이 작품의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세번째 작품 "침흘리는 여인"의 경우는 침이 다른 신체부위들 즉 머리카락, 귀 등과 같이 신체와 분리되는 양상이 아닌 일체되는 것으로 동일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사물의 존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인습적 태도를 중지하고 그것을 괄호 안에 넣는 "현상학적 판단 중지"를 수행하고자 하는 치열한 의지가 드러나고 있는 것 같군요.^^ 신체는 의자와도 분리되지 않는데 의자에서 보이는 균열은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전제하는 소박한 존재론의 취약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침흘리며 의자에서 자는 여인은 우리의 인습적 태도에서는 매우 천박한 것으로 인지될 수 있으나 여인의 표정에 나타나는 행복한 표정은 이것 역시 인습적 편견일 수 있다는 주제의식을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탱화는 이러한 인식론적 단절에서 느껴지는 고독감을 불교의 무차별적이고 정갈한 세계에 대한 지향을 통해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를 그린 것이요, "야 우리도 돈좀 벌자"는 불교의 정갈한 세계를 동경하다가도 이내 냉혹한 현실을 자각하게 되는 것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잠에서 막 깬듯한 표정, 말라빠진 신체 등등을 통해 이를 잘 표현하고 있네요.^^ 제 생각에 美史는 아마도 '앗싸'를 나타낸 것으로 추측됩니다.^^ 美-> 아름다움 -> '아'를 취하고 史는 사 ㅎㅎ 앗싸의 가벼움을 한자를 통한 음차로 치환함으로써 승화시키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즉 '앗싸'는 현실의 냉혹함을 자각하는 순간에 대한 감탄사로 보입니다.^^

결국 이 그림들은 람혼님의 중학교 학창시절의 방황을 상징하고 있는 흔적들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의 완성되지 못한 그림은 그 방황을 최종적으로 요약하고 있는 것 같네요.^^

람혼 2011-05-14 13:54   좋아요 0 | URL
이 놀라운 정신분석적 해석에 읽는 내내 너무 즐겁게, 크게 웃었답니다! ^^
특히 미사에 대한 해석은 정말이지...! 아싸! ^^
저는 '美史'가 혹시 'mass/messe'가 아닐까도 생각했죠.
그런데 요약하고 나니, 너무나 우울하고 문제 많은 중학생이었군요. 크하하! ^^

푸른바다 2011-05-15 12:20   좋아요 0 | URL
ㅎㅎ 큰 근거 없이 즉흥적으로 해본 해석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이미 작가의 것이 아니겠지요. 저자의 죽음이라는 바르트의 말을 새기며 사는 요즈음입니다. 사실 담배는 구체적으로 피는 담배라기 보다는 이미 그 당시 정신이 어른만큼 성숙해 있었음을 상징하는 것이겠지요. 물리적 나이나 외모는 어린이인데 마음은 이미 어른인 복잡한 심경이 그림에 나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람혼 2011-05-21 16:45   좋아요 0 | URL
그때도 피웠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

푸른바다 2011-05-23 14:16   좋아요 0 | URL
안 피우셨었나요?^^

람혼 2011-05-25 15:17   좋아요 0 | URL
네, '그때'는 안 피웠어요.^^

2011-06-13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4 0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사르 2011-06-26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호석 화백님의 작품집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와우~ 란 말을 먼저 하고 싶네요. 감정선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 과연 람혼님만의 세계관이 가득 들어있는 그림이네요. 중학생때 저 멋진 그림을 그리셨다니요. 그림을 들여다보는 관객들에게도 한아름 영감을 안겨주는 그림같애요.
배란다가 정말 '유적지'로군요! 저런 멋진 작품들이 '대량발굴'되는 곳이니까요. ㅎㅎ '회고전' 잘 봤습니닷! 전시회를 하시게 되면 꽃다발이라도 들고 찾아뵙고 싶어집니다. ^^

람혼 2011-07-06 12:33   좋아요 0 | URL
김호석 화백님의 작품집을 갖고 계시군요.^^ 저도 어릴 때 너무 너무 좋아했던 작가이십니다. 더욱 반갑습니다, 달사르님.^^ 베란다는 유적지라기보다는 거의 폐허죠, 요즘에는 거의 정리를 다 했지만요. 기회가 있을 때 다른 회고전(?)도 한번 다시 열어보겠습니다. 세심하게 관심 가져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starover 2011-07-0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람혼의 과거를 기억하겠습니다.

람혼 2011-07-09 02: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는 그 과거와 현재 사이에 끊임없이 다리를 놓겠습니다.

책사랑 2011-07-14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메일 보내놓았습니다. 선생님!

람혼 2011-07-20 15:14   좋아요 0 | URL
앗, 어떤 이메일인지요...?

책사랑 2011-07-2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글러 번역관련...

2011-07-23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5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지인이 도록을 번역한 관계로 해서, 지난 3월 27일 목요일 오후, 작가 및 큐레이터와의 대화를 겸한 아네트 메사제(Annette Messager) 회고전의 개회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날까지도 도록의 번역본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는데,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으름'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조금 씁쓸해졌다(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불만은 일전에 내 어머니의 '이유 있는 비판'을 소개하면서도(http://blog.aladin.co.kr/sinthome/1840680) 잠시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시내 한복판에서 '행복한 눈물'을 흘리고 있을 다른 유수의 국내 '현대' 미술관들 역시 사정이 결코 나은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전시회를 자주 방문하는 이들은 이미 익히 느끼고 있는 것이겠지만, 이러한 '회고전(retrospective)'이라는 '거대 형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일단 이러한 대규모의 전시회 형식이 '미술 산업'의 한 측면을 가장 거대하고 도드라지게 보여주고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인상 한 자락은 굳이 여기서 첨언하지 않아도 되리라. 여러 굵직한 회고전 때마다 내가 느끼게 되는 일종의 심리적 '중압감' 내지 육체적 '피곤함'은 아마도 저 '거대 서사'로부터 직접적으로 기인하고 있는 하나의 병증일 것. 하여, 도약하자면, 이제ㅡ겨우 이제서야?ㅡ'미술'은 '미술관'을 완전히 그리고 온전히 떠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오래 묵은 상념과 투정의 한 자락, 다시금 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는 음악도 결코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음악이 콘서트홀과 클럽 등 기존의 '닫힌' 공간으로부터 어떻게 '탈주'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비단 음악의 작곡과 연주라는 지극히 '음악[내]적인' 문제를 떠나 그 문제가 위치하고 있는 지점 자체를 이동시키는ㅡ어쩌면 '해소'까지 해주는ㅡ물음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형식 바깥의 형식'이 지닌 문제, 곧 장르라는 내적 형식 바깥에서 그 장르 자체를 구성해주는 외부적 형식이라는 문제는, 일종의 '공간'에 대한 물음을 다시 묻는 물음이며ㅡ이러한 문장 형식을 통해 나는 이미 스스로 '사이비-하이데거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인데ㅡ이는 따라서 '시간 예술'로서의 음악이 자신의 '전제'이자 '영점(零點)'으로 지니고 있는 '존재 조건'을 묻는 물음이기도 하다.

Annette Messager: les messagers(Centre Georges Pompidou)
    Paris: Xavier Barral, 2007.

2) 위의 책은 작년 파리의 조르주 퐁피두 센터에서 열렸던 아네트 메사제 회고전을 기념해 출간된 도록으로,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의 도록 역시ㅡ아직 확인해보지는 못했지만ㅡ이 책의 번역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도록에 수록된 글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실하게' 확인하게 되는, '확인 사살'을 하게 되는 한 가지 사실은, 미술과 철학이 맺어온ㅡ또한 지금도 맺고 있는ㅡ저 '열정적인 관계'에 다름 아니다. 이 관계가 지닌 '뜨거운'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강렬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기생적(寄生的) 현대 철학의 '더부살이'라는 생존 형태가 지닌 하나의 작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은 영화와 흘레붙고 미술과 흘레붙고 음악과도 흘레붙는다. 정신분석과의 '근친상간'은 거의 '겁탈'과도 같은 이러한 철학의 '짝짓기' 행태가 가장 여실히 드러난 최근의 사례에 속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철학과 예술 각각의 '순수주의' 따위를 주장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은,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형식에 대한 철학적 개입의 '과잉'이 너무나도 쉽게 저 '의미'ㅡ더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이 '감추고 있는', 예술의 '배후'에 있는 것으로 상정된 어떤 '의미'ㅡ에 대한 일종의 '강박적 집중'으로 귀결되곤 한다는 점이다(그러나 이러한 '진단'의 외형 역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철학과 정신분석이 서로 배 맞는 형국을 띠고 있지 않나). 이 지점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러한 '의미'에의 과도한 집착에 의해 붕괴되는 것이 다름 아닌 '예술' 그 자체이며, 그로 인해 살아남는 것은 '스타'와 '산업'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예술의 '순수주의'에 대한 주장ㅡ또는 모든 '의미'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감ㅡ과는 섬세하게 구분될 필요가 있는데, 내가 의미와 이론의 과잉에 의해 질식할까 걱정하고 있는 것은 예술의 '순수한'ㅡ또는 '순수하다'고 상정된ㅡ취지와 의도가 아니라 바로 현대 예술의 저 '텅 빈 형식'이기에 그렇다. 텅 비어 있는, 하나의 '순수 형식'으로서의 예술. 어쩌면 '의미'에 대한 과잉된 집착은 저 텅 빈 형식의 속을 꾸역꾸역 채우려고만 하는 과식과 폭식의 형식일 것. 고로, 나는 이러한 텅 빈 형식에 '숭고한 대상'이라는 '레테르'를 붙인다(그렇다면 여기서 '레테르'라는 단어는ㅡ관습적으로라도ㅡ일종의 '부정적' 표식이 되어야 할까).

▷ 늘어놓는, 하지만 만질 수는 없는, 볼 수도 없는. [사진: Rosa]

3) 따라서 '의미(meaning)'와 '전언(message)'은 섬세하게 구분될 필요가 있다. 당연하게도, 예술은 확정된 의미를 정할 수 있는 기표가 아니다. 곧, 예술은 의미로 바로 치환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예술은 말을 건다. 하지만 반드시 그 말의 의미를 결정하고 확정하는 것이 감상과 비평의 책무는 아니다. 예술을 하나의 '의미'로 보느냐 아니면 하나의 '전언'으로 보느냐 하는 갈림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나를 지독한 '헤겔주의자'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예술은 '매개된' 형식이다. 의미의 '직접적' 현전이 불가능한 이유는ㅡ역시나 나를 지독한 '해체주의자'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ㅡ또한 그것이 언제나 '사후적으로(nachträglich)' 구성되기 때문이다. '전언'은 어떻게 구성되고 전달되는가, '편지'는 어떻게 [항상 수신자에게] 도착하게 되는가. 전언들은 도착(arrival)과 도착(perversion) 사이를 왕복한다. 우회적으로 말하자면, '정갈하게' 늘어놓은 저 '디스플레이'의 형식은 액자와 틀(frame)의 규격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엿보는 공간 안의 사물들이 지녀야 할 배열의 형식으로는 그리 적당하지 못한 듯 보인다. 왜냐하면 저 '엿보는' 공간은 이미 그 스스로 누군가 자신을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의 도착적 성격이 지닌 힘은 그렇게 발생한다(그렇다면 사르트르적인 타자의 시선을 '역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이러한 형식은, 역설적으로 실로 '적당하고 적절한' 디스플레이의 방식이라고 말해야 할까).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저 공간 안에 '전시된' 액자들 각각의 '의미'가 아니다(그 액자들이 개별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우리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다만 그 공간이 말을 걸어올 뿐이다. 형식이 말을 걸어오는 것이고, 그 형식의 텅 빈 틀만이, 기억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엿보고 있다는 '상상적 의미'를 넘어서, 나에게 하나의 전언을 전한다. 따라서 이 언어는, 당연하게도, 하나의 '상징적인' 형식을 띠게 된다.

▷ '피'는 호흡하고, '숨'은 출혈한다. [사진: Rosa]

4)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피가 쏟아져 내린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회의 압권이라 말하고 싶은 위의 작품 <카지노>를 보면서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영화 <샤이닝(The Shining)>의 마지막 장면들을 떠올렸던 이가 비단 나만은 아니었을 것. '차가운 풍만함'을 머금은 채, 피는 숨을 내쉬고, 숨은 피를 뿜어낸다, 호흡하는 피, 출혈하는 숨. 하지만 여성성으로서의 '피'와 그 '흐름'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 따위는 귓등으로 흘려 듣자(제발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작가의 '유년 시절'이 평범했나 독특했나 따위의 질문은 하지 말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주문과 상동적인 관계에 있는 하나의 제안). 반복하자면, 문제는 '의미'가 아니다. 자칫 방심하면, 작가란 존재는 정신분석가 앞에 앉은 '어설프고 영악한' 피분석자처럼 자신의 '상상적 자아상'만을 반복하는 존재가 되기 쉽다. 문제는 그러한 상상적 의미일 수 없다. 이 작품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오히려 [오로지] '기술적' 문제 때문이었다. 미술이 '환상'을 드러내고 향유하는 방식이라는 의미에서의 '기술(technique/description)'. 미술은 이미 '시각'을 떠난지 오래지만, 저 '미술 작품'은 공감각적인 것을 오로지 '시각적인 것'의 영역 내에서만 보여주고 또 향유하고자 한다. 그 '기술'은 언제나 의심스러운 것으로밖에 남을 수 없는 성격의 것이지만, 동시에 실로 경이로운 것이기도 하다. 왜 의심스러운가: 언제나 의미의 함정ㅡ저 의미를 '감촉'할 수 있다는!ㅡ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왜 경이로운가: 공감각적인 매체와 경험들을 '시각'이라고 하는 하나의 감각만으로 소화하고 소환하려는, 곧, '환원'과 '소급'이 아니라 '매개'하고 '증식'하려는 그 '형식적' 전언의 노력이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 파손 주의: 하나의 서명을 만들기 위해. [사진: Rosa]

5) 하나의 서명, 가장 마음에 드는 자신의 서명을 만들기 위한 저 모든 [헛된] 시도들은, 마치 깨지기 쉬운 이삿짐, 병 속에 넣어져 바다에 던져진 편지와도 같다. 이에 전언은 이제 하나의 '이름'으로, 하나의 '고유명'으로[만] 남는다. 서명 만들기는 정체성(identity)의 구성과 확립을 위한 하나의 '필수적인' 시도이지만, 또한 그것은 동시에 그 자체로 동일화(identification)가 지닌 지난하고 험난한 여정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징후'이기도 하다. 하나의 서명을 만들기 위한 시도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러한 무수한 시행착오가 말 그대로 '무수히'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아포리아에 있을 터. 때로는, 폐가의 천장을 따라 직조되는 거미줄처럼, 때로는, 잘라도 잘라도 다시 끈질기게 자라나는 몸의 터럭들처럼, 그 서명은 결코 확정되거나 안착하지 못한 채로 부유하고 증식할 것이다. 그 이름[들]과 서명[들], 혹은 이름과 서명을 찾으려는 이러한 시도[들] 속에서, 그것이 점지해주는 어떤 '운명적' 운동을 감지하는 것. 어쩌면 나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이름[들]을 따라갔던 저 데리다(Derrida)의 여정에서처럼, 메사제(Messager)의 이름[들]을 따라 그 전언(message)이 지닌 운명과 형식에 주목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유연상'이란 무의식적이라기보다는 실로 [전]의식적이지 않은가.

▷ 파편적인 몸[들]이 한데 뭉쳐 이루어낸 한 염(念/殮)으로서의 소원[들]이란? [사진: Rosa]

▷ 손금을 보고, 그리고, 주문을 내려쓰다, 기록하다. [사진: Rosa]

6) 손금에 기록된 운명은 하나의 단어가 되어 액자 밑을 향해 반복적으로 흘러내린다. 그 단어를 단순한 명사들의 반복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일종의 명령문 또는 감탄사의 강조적 용법으로 읽어내야 할까. 이는 말하자면, 그림책을 '읽으면서' 글자가 있는 부분은 뛰어넘고 그림만을 볼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오히려 그림책 안에서 그림들은 제쳐두고 글자들만을 '감상할' 것인지를 택하는, 그런 기묘한 선택지와도 같다. 그렇다면 '손금-운명'이라는 무채색의 그림에 대해 각양각색의 '문자-기록'이라는 형태로 응수하는 저 '주석'으로서의 '주문'은, 일종의 '시각적' 형용모순(oxymoron)이라 할 것인가. 작품 앞에 도착하여 도착적인 '인상비평'을 시도하고 있는 한 명의 비평가란, 사실 그 자신의 '상상적 자아상'과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분석주체에 다름 아니었다. 하나의 '그림', 하나의 작품 앞에 선다는 것이 이제 일종의 '자가-정신분석(auto-psychoanalysis)'이 되어버린 자에게, 저 모든 흘레붙는 철학적 리비도의 총체는 하나의 황홀한 '언어적' 증상으로 [승]화한다. 다만 내용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형식으로서의 전언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할 뿐. '분석가'의 자격으로 자신 앞에 서 있는 하나의 작품은, 그러므로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훌륭한' 타자일 수밖에 없는 것.

7) 얼마 전 한 지인으로부터 '그렇게 까칠하게' 살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의 말은 지나가는 길에 툭 하고 던진 농담 같은 것이었겠지만(마치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가사처럼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것은 실로 스스로의 '까칠함'을 많이 죽이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ㅡ혹은, '죽이면서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는ㅡ사뭇 진지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어떻게 덜 까칠하게 살지?'라는 반문이 혀와 목구멍에 걸렸으나, 내뱉지는 않았다, 아니, 뱉지 못했다. 까칠함과 섬세함, 과민함과 예민함 사이의 경계, 사실 나도 그것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하지만, 자신은 예민함이자 섬세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처구니없게도 다른 사람에게는 과민함과 까칠함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알 정도로, 또한 바로 그러한 사실 자체가 저 두 개의 개념들 사이에서 일종의 '경계'를 설정해주는 하나의 '경험적' 지표가 된다는 사실을 지긋이 인정할 정도로, 나는 스스로를 죽이고 있었다, 죽이면서 살고 있었다. 아마도 저 마지막 사진은 그런 나의 초상화일 것이다, 어지러운 손금이 점지한 운명에 눌려버린, 날카로운 손톱이 지시한 행로에 찍혀버린.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서지 검색을 위한 알라딘 이미지 모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4-03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6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 '기억'과 '재현'의 장소로서의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백남준의 <다다익선>. [사진: 襤魂]

1) 며칠 전 실로 오랜만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왔다. 이 '거대한' 미술관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으로는 두 가지가 떠오른다. 열네 살 무렵의 어느 여름 나는 이 미술관의 [똑같이] 거대한 정원 한 구석에 앉아 그림 한 장을 그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서양화가 조덕현 선생, 동양화가 김호석 선생, 그리고 만화가 이희재 선생을 강사로 모시고 대략 일주일 동안 열렸던 '청소년을 위한' 미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날 정원에 앉아 내가 그리고 있던 그림은 거친 채색화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소재는 그곳의 풍경 안에는 있지도 않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거지의 모습이었다! 그 그림은 당시 김호석 선생으로부터 '경악에 찬', 그리고 '우려를 담은' 호평을 받았는데, 그 시절의 어린 나는 나름대로는 미술 수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풍의, 고풍스러운 어느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같은, 이야기 한 자락이 그 첫 기억이다. 두 번째 기억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고 계신 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국립현대미술관을 가지 않으신다. 내 인생 최초의 기억들이 대부분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전시회들을 보러 다녔던 기억이고 보면, 이러한 어머니의 '결심'은 사뭇 격세지감의 느낌을 자아내지 않을 수가 없는데, 하지만 이에 대한 어머니의 변론(辯論)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렇게 '외따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문제라는 것, 곧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 위치 자체가 문화정책의 한 실패를 방증하고 있다는 것이다(어머니의 비교 대상은 파리 시내 한복판에 있는 조르주 퐁피두 센터에서부터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사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시립미술관, 한가람미술관, 호암갤러리(아직도 있는지 모르겠다), 로댕갤러리, 리움, 조선일보미술관, 일민미술관, 그 외 사간동과 인사동의 크고 작은 화랑 등 서울시내의 다른 미술관들과 비교했을 때 분명 '작심하고' 찾아가야 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머니의 주장은 단호하다.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존재가, 가장 근대적이고ㅡ'모던'의 의미에서ㅡ현대적인 도시문화와 동떨어진 곳에 '여유롭고 한가하게'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현대성'에 대한 일종의 무지이자 이율배반이라는 것. 내가 어머니의 의견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간에,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공간이 내게 일종의 '기억'이라는 지위로 남아 있게 된 것을 보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2007년 7월, 이 동물원 옆 '현대적' 미술관에서는 세 개의 전시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게오르크 바젤리츠(Georg Baselitz),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 그리고 정연두의 전시가 그것.

   

▷ 바젤리츠의 '거꾸로 된' 레닌 점묘 초상, 그리고 그 '기원[Ur-text]'. 

2) 바젤리츠의 문제의식은 '재현(representation)'의 논리에 놓여 있다. 현대의 구상회화에 있어서 이 재현이 문제되지 않았던 적이 있겠냐마는, 이에 대한 바젤리츠의 접근방식은 단순하면서도 자극적이다. 요는, 거꾸로 그리며 거꾸로 본다는 것. 많은 이들이 바젤리츠가 선택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소재들, 그리고 그러한 소재들을 거꾸로 그린 방식에서 일종의 '전복성'이라는 개념을 애써 끌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바젤리츠의 그림에서 '기억'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역사적' 기억 또는 '회고적' 기억이 아니라 '재현이라는 형식'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 거꾸로 그리고 보는 방식에서 오히려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 그림들이 소위 '전복성'에 대한 단순하고 순진한 상징이라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이 거꾸로 된 그림임을 곧 바로 '인지'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바젤리츠의 이른바 '러시안 페인팅' 연작은 우리가 구상회화 속에서 '구상'을 인지하는 방식, 곧 우리가 그림 속에서 구체적인 형상을 포착하는 인지 과정 그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림이 거꾸로 그려졌다는 것을, 혹은 그림이 거꾸로 걸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단박에 알아챈다. '이 그림은 거꾸로 그려져 있다' 혹은 '이 그림은 거꾸로 걸려 있다'는 인식은, 그것이 오직 추상회화가 아닌 구상회화인 한에서만 가능한 그런 종류의 인식인 것이다. 아마도 바로 된 그림 속에서보다 거꾸로 된 그림 속에서 사물들이 '훨씬 더 잘 보인다'는, '곧 바로 보는 이의 눈을 향하게 된다'는 바젤리츠의 말은, 바로 이러한 구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한 언급으로,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시선에 대한 바젤리츠만의 '회화적' 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렇듯 바젤리츠의 '거꾸로'라는 방법론은 시선이라는 현상에 대한 하나의 회화적 질문으로서 이해될 때만이 비로소 재현의 논리에 대한 '반성(reflection)'이라는 지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외의 의미, 예를 들어 형상에 대한 즉물적인 전복이라는 의미만을 이야기한다면, 그의 그림은 전혀 새로울 것도, 논의할 것도 없는, 또 하나의 진부한 '회화' 이상은 아닐 것이다.

   

   

▷ '거꾸로' 된 바젤리츠의 그림에서 '형상의 전복' 따위의 의미만을 이끌어내는 이론적 행위는, 역설적이게도, 전혀 '전복적'이지 못하다.

3) 덧붙여, 지나가는 길에 이러한 '재현'의 논리와 체계에 관한 가장 최근의 주목할 만한 미학적 논의를 꼽자면,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책들을 추천하고 싶다. 아래 두 권의 일독을 권한다. 랑시에르에게 있어서[도] 미학이 하나의 학제(discipline)가 아니라 담론의 체계 혹은 물음의 형식들임은 분명하지만, 그는 부르디외(Bourdieu)와도 '구별(distinction)'되는, 리오타르(Lyotard)와도 '분쟁(différend)'을 일으키는,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게다가 정신분석의 예술적 '기반'과 '기원'에 대해 역으로 '정신분석'을 가하고 있는 『미학적 무의식』의 논의는 특히 흥미롭다. 최근 랑시에르의 책들 몇 권을 지하철을 오가며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후일 다른 글로 따로 미루겠다. 바젤리츠의 인상적인 레닌 초상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하나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지젝(Žižek) 편집의 레닌 선집인데, 이 책의 후기(Lenin's Choice)에서 지젝은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ly correct)'이라는 것에 대항해 '진실에 대한 권리(right to truth)'라는 각을 세우고 있다(pp.168-178 참조). 개인적으로 이러한 논의를 구상회화의 '비평'에 적용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말하자면, 회화에 있어서 '정치적 올바름'이란 회화의 전복성에 대한 '단면적인' 주장일 것이며, 회화에 있어서 '진실에 대한 권리'란 시선에 대한 일견 '나이브'해 보이는 물음에 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젤리츠가 '거꾸로' 그리기의 대상으로 단번에 레닌의 초상을 '선택'한 것에는 분명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Jacques Rancière, L'inconscient esthétique
    Paris: Galilée(coll. "La philosophie en effet"), 2001.
▷ Jacques Rancière, Malaise dans l'esthétique
    Paris: Galilée(coll. "La philosophie en effet"), 2004.

▷ Slavoj Žižek(ed.), Revolution at the Gates, London/New York: Verso, 2002.



▷ 피아노 위를 배회하는, 레닌의 환영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그림.

4) 더불어, 왜 레닌인가, 왜 '이 시대'에 하필이면 레닌인가ㅡ지젝은 심지어 월스트리트 근무자들 중에서도 마르크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지만 '레닌'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그 어느 누구라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는 '유머'를 날리고 있는데ㅡ하는 물음 앞에서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피아노 위에 떠오른 레닌[들]의 환영을 그린 달리(Dali)의 그림이 바로 그것이다. 실은, 고백하자면, 이 모든 개인적인 이유들 때문에, 그 덕분에, 나는 바젤리츠의 레닌 초상 앞에서, 다소 오랜 시간을, 머무를 수 밖에,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브네의 이른바 '비결정적인 선들'은, 아마도 현대미술의 곤궁(predicament), 그 비결정성과 불확정성에 대한 '현상적' 혹은 '윤리적' 등가인지도 모른다. 

5) 브네의 작품이 제기하는 문제는 실로 '재현'만큼이나 오래 된 개념미술의 문제, 곧 예술에 있어 쾌(快)의 측면과 지(知)의 측면 사이의 대립이다. 전시회 한 구석에 마련된 공간에서 브네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영상을 보고 있자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동시에 개인적으로 어떤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브네는 그 자체로 현대미술이 봉착했던 하나의 막다른 골목, 곧 'predicament'라는 영어 단어가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 바로 그 사태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브네의 작품들과 그에 따르는 연혁을 일별하면서ㅡ이러한 '일별'이야말로 바로 '회고전(retrospective)'이라는 형식에 가장 적합하고 알맞을 전시와 관람의 방식이 아니겠는가ㅡ곧 바로 현대미술에 관한 단토(Danto)의 논의를 떠올렸던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으리라. 브네의 '시행착오'가 결국 다다른 지점은 어디였던가. 그것은 바로 '비결정적/불확정적 선(indeterminate line)'의 지점이었다. 왜 이것을 '비결정적/불확정적'이라고 부르며 또한 '선'이라고 부르는가, 그것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해석학적 지평은 무엇인가, 여기서 중요한 물음은 바로 이것이다. 왜냐하면ㅡ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면ㅡ'현상적으로' 그 선들은 결코 비결정적인 것이 될 수 없으며ㅡ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그렇게 결정된' 하나의 형상이기 때문에ㅡ또한 그것은 이미 '선'조차도 아니기 때문이다(면을 선으로 치환하는 하나의 '환상', 예술의 지극히 당연한 과정과 일환으로 인식되었던ㅡ그래서 '인식' 그 자체조차 되지 않았던ㅡ그 환상의 추상화 과정에 대한 반발과 문제의식이야말로, 개념미술이 취했던 가장 '급진적인' 입장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내게는 아래 사진의 퍼포먼스가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쉽게 '동양화의 기법과 정신'을 연상시킨다, 한 번 더 강조하자면, '너무도 쉽게' 말이다. 이 '너무나도 손쉬움'은 현대미술의 저 '위대했던 곤궁'에 비할 때 정말 비겁하고 단순한 회피이자 도피는 아닌가, 우연성과 수동성을 가장한 가장 '필연적이고 적극적인' 회피, 동양을 가장한 가장 서양적인 '오리엔탈리즘'으로의 도피, 그런 것은 아닌가, 아닐 것인가, 그런 물음이 꾸역꾸역 자꾸만 내 머리 속을 채워만 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저 무쾌(無快)의 지(知)는 '거꾸로' 쾌(快)의 무지(無知)로 귀착하는 것이 아닌가, 혹시 그런 것은 아닌가, 그런 우려의 물음과 함께. 그러니까 요는, 이 작품들의 기괴하리만치 '심각함'과 '진지함'은, 이제 나에게는 오히려, 실소에 가까운 웃음을 자아내고 있었다는 것, 만약 저 작품들이 나의 이러한 '선적(禪的)인' 웃음을 의도했던 것이라면, 당신의 예술은 성공했다!

▷ 이 '선적(禪的)인' 퍼포먼스는 혹시, 현대미술의 '손쉽고 고매한' 도피가 아닐까, 무쾌의 지가 아닌, 혹시라도, 쾌의 무지는 아니겠는가.

6) 정연두의 작품은 유쾌하다. 전시장 초입의 '보라매 댄스홀'에서부터 그러한 유쾌한 '키치'의 미는 십분 발휘되고 있었다. 이어지는 그의 <로케이션> 연작을 보면서 머금었던 나의 웃음은, 실로 오랜만에 터져나오는 이미지에 대한 순수한 웃음이었다는 고백 한 자락. 정연두 전시의 압권은 그 후반부에 있다.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가 전시되고 있는ㅡ혹은 어쩌면 '상영'되고 있는, 이라고 말해야 할ㅡ'응접실'과 작품 제작에 쓰였던 세트가 있는 전시 공간이 바로 그것. 정연두가 '미술의 시간성'을 이해하는 방식은 그만의 'long take' 기법 속에 녹아 있다.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가 만들어내는 '정지된 장면'들은 그 자체로 각각 응접실을 장식하는 화폭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고정된' 화폭 사이에 '시간'이 개입하고 침범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보여지고 있던 '자연'과 '풍경'은, 저 시간의 개입과 침범 앞에서, 이제는 더 이상 결코 '자연스러운' 장면도, '풍경이 있는' 화면도 아닌 것이 된다. 배경이 되는 정경은 단순한 인쇄물이었고, 나무라고 생각했던 자연물은 이리저리 옮길 수 있는 인공물이었으며, 눈부신 햇살이라고 여겼던 빛은 단순한 조명의 효과였다. 최근 몇 년 간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보여준 키치에 대한 전반적인 경도 속에서도, 정연두만의 유쾌함, 그만의 키치가 빛을 발하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공간에 대한 시간의 침투' 속에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모든 '유쾌함'들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가리키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그런 '고루한' 물음들을 동시에 마냥 놓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내가 지닌 일종의 '천형'이랄까. 이러한 정연두 식의 '키치' 전시에 대해 또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작품 제작 세트 앞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었는데,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 또는 '작품 앞에서 사진 찍는 것은 금지돼 있습니다' 등의 클리셰가 왜 이런 종류의 전시에도 적용되는 것인지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여! 물론 나는 직원들의 감시를 용의주도하게 따돌리고 남몰래 나의 이러한 사진에 관한 '지론'을 관철시키는 데에 성공했지만 말이다(그 '아슬아슬한 미학'의 사진들을 이 자리에서 공개하지는 않으련다).







▷ 정연두,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의 몇몇 '장면들', 고정된, 그러나 고정되어 있지 않은.

7) 앞서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두 개의 기억을 이야기했지만, 그 개인적인 기억의 장에서 백남준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원통형의 중앙부에 우뚝 서 있는 백남준의 'monolith'ㅡ어쩌면 'poly-lith'라고 해야 할 것인가ㅡ, 어린 시절 처음으로 보았던 이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충격에서 나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부자유'야말로 기억의 대표적인 속성 중의 하나겠지만, 떠오르는 여담 한 자락 풀어놓자면, 얼마 전 나는 한 후배로부터 무조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자성어를 순서대로 두 개만 말해야 하는 일종의 심리 테스트를 받았는데, 내 대답은 각각 차례대로 '암중모색'과 '다다익선'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사자성어는 자신의 '인생관'을 의미하며 두 번째 사자성어는 자신의 '애정관'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후배의 답변이 되돌아왔으니! 말 그대로 '암중모색'하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 '충격'이라 이름할 것에는 보다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다다익선>의 화면에 등장하였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의 모습이 바로 그 이유를 구성하는 두 인물이라 하겠다. 물론 보위라는 뮤지션 자체가 지닌 예술적/경계적 성격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때의 나는 나의 이 오래된 우상이 백남준의 작품에 등장하였다는 사실에서 일종의 희열을 느꼈던 것,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인생에서 거의 첫 번째라 할 '미학적' 물음에 봉착했던 것인데, 지금 다시 떠올려보자면 그 물음은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물음, 조금 더 한정하자면 이른바 '키치(Kitsch)'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물음이었던 것이다. 물음은 오늘이라고 해서 달리 없어지진 않는다. 오랜만에 다시 만났던 <다다익선>, 그 거대한 구조물 사이로 보이는 몇몇 작동되지 않는 텔레비전들이, 마치 이가 몇 개 빠진 '태고의' 유적처럼, 조금은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곳, 바로 그곳 동물원 옆 놀이동산 옆 국립현대미술관은, 여전히 내게 '현대'인가, 아직도 내게, '현대'일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물음. 그런데 이 물음은, '여전히' 하나의 미학적 물음일 것인가, 아니면 '아직도' 하나의 역사적 물음일 것인가, 하는, 또 하나의, 그렇고 그런, 물음. 그 몇 겹, 몇 자락의 물음, 물음들.

2007. 7. 7.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서지 검색을 위한 알라딘 이미지 모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지난 7월 28일 토요일, 용산에 드넓은 둥지를 튼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시회 '사경변상도(寫經變相圖)의 세계'를 관람하기 위한 것(이런 행운이, 그날은 무료관람일이었던 것!). 옛 중앙청 시절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방문은 처음이라 약간의 회상 어린 격세지감 또한 느꼈던바, 어린 시절부터 불화 혹은 탱화와 관련된 전시회는 거의 빠짐없이 다녔던 개인적 전력에 비추어볼 때, 특히 이번 전시회는 과거 1993년에 호암갤러리에서 열렸던 고려불화 특별전('高麗, 영원한 美') 이후 내 마음을 가장 설레게 했다는 고백 한 자락. 현재 리움 미술관의 조명 또한 그러하지만, 당시 호암갤러리의 조명은 마치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회랑'에 들어온 듯한 어둡고도 차가운 종교적 신열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는데ㅡ예를 들어,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에 있는 로스코의 방을 떠올려보라ㅡ, 이러한 '종교성' 앞에서, 낮은 조도의 조명이 실은 훼손되기 쉬운 유물들의 보호에 일차적 목표를 두고 있는 '과학적' 조치라는 사실은 차라리 부차적인 것이었다. 이번 사경변상도 전시회에서도 이러한 '어둠'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다는, 또 하나의 즐거운 고백 한 자락. 이번 전시는 몇 가지 '기본적' 장점들을 지니고 있는데, 일단 '사경'과 '변상도'라는 개별적이고 독특한 주제로 구성된 기획전시회라는 점, 서체와 도상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점 등이 그렇다. 전시 기간은 2007년 9월 16일까지, 나들이를 빙자한 일람(一覽)을 권한다.



▷ 통일신라시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사경의 일부. 사진은 그 중 발원문 부분이다. 정갈한 서체는 발원의 염(念)을 '반영'한다.

2) 사경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이미 삼국시대부터 이루어졌던 것으로 여겨지나, 현재 전하는 최고(最古)의 사경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이다. 서기 754년에서 755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며, 과거에는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리움에 소속되어 있는 귀한 유물이다. 사경(寫經)이란, 말 그대로, 경전을 베껴쓰는 작업을 뜻한다. 서양 중세의 필사본과 일종의 '기이한' 상동성(相同性)을 갖는 이러한 사경의 특징은 그 '발원'의 염(念)에 있다 할 것이다. 사경은 그 말미에 발원문이나 발원의 염을 담은 게송을 첨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박상국 문화재위원의 말을 차용하자면, 사경 자체가 '공덕경(功德經)'으로 불리는 것에는 어폐가 있으나, 그것이 기복(祈福)을 위한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 한에서, 곧 부처의 '말씀'을 옮기고 널리 전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목적을 갖는 한에서, 그것은 곧 공덕이요 수행이라 할 수 있으며, 사경 말미의 발원은 그러한 마음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것(박상국, 『사경』, 대원사, 18-19쪽 참조). 개인적으로 가끔씩 지인들에게 정갈하지 못한 글씨에 어설프기 그지없는 그림이나마 '사경'과 '변상도'를 흉내 내어 제작한 '괴작(怪作)'을 선물하곤 하는데, 아마도 그 '발원'에 어떤 뜻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러한 '선물(膳物)'의 염 그 자체에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생각 한 자락 남기고 지나간다.



▷ 한밤의 사찰 초입, 그곳에 우뚝 서 있는 신장(神將)들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애써 웃음을 지으면서도,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몸을 떤다... 사진은 고려시대 불공견색신변진언경(不空索神變眞言經)의 사경에 수록된 신장상(神將像).

3) 신장(神將)이란 본래 인도의 신들에 그 유래를 두고 있다. 이는 불교가 토착종교로부터 보편종교 혹은 세계종교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신들 '사이'의 권력 관계에 일어난 모종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는데, 인도의 신들이 부처의 '말씀'에 감화되어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수호자의 모습으로 화(化)했다고 하는 담론 자체가 이미 '상징적' 권력의 층위에서 그 '변화'의 결과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이러한 역사적인 '감정이입'에 대한 '추억'을 반추하면서, 나는 살짝 미소를 머금었던가, 예를 들자면, 이런 일은 비단 인도에서만 일어났던 일은 아닐진대, 한국의 어느 사찰을 가도 만날 수 있는, 대웅전 뒤에 숨은 듯이 웅크리고 있는 산신각(山神閣)의 모습만 해도, 그것은 결국 '토착적인' 도교(道敎) 신들이 이루어낸 '성공적인' 불교화의 한 사례가 아니었던가,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이번 전시는 특히 13세기 초 몇몇 고려 사경에서 발견되는 뛰어난 필력의 신장상들을 다수 공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좋게 평가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신장상들, 사경에 담긴 '말씀'을 수호하는 그 신장의 모습들 속에서, 나는 단순한 권두화(券頭畵, frontispiece)의 기능과 외형을 뛰어넘는 일종의 '메타적인' 성격을 발견했던 것. 그러므로 '말씀'이란, 얼마나 가깝고도 먼 것이며, 또한 얼마나 친숙하면서도 두려운 것인가. 그리고 그림이란, 이 얼마나 '마력적(魔力的)'인 것인가.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곧 법화경(法華經)은 보통 7권의 첩장본(帖裝本) 한 질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전시회에서는 8권으로 이루어진 희귀한 첩장본 또한 선보이고 있다. 아래의 사진은 고려시대인 서기 1332년에 제작된 8권짜리 첩장본 표지들, 위의 사진은 1353년에 제작된 7권짜리 첩장본 표지들로서, 모두 일본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이다.



▷ 한 장의 그림 안에 담을 수 있는, 신들의 전쟁. 1334년에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의 변상도.

4) 도상의 위력은 가히 마력적인 것. 비로자나불이 설법을 펼치고 있는 장면 왼쪽으로,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날아다니는 용들의 모습, 그리고 아수라(阿修羅)와 제석천(帝釋天) 사이의 전투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말구름' 안에 '그림'이 들어가 있는 이 기이한 형국은ㅡ회화의 역사를 거꾸로 되짚어 올라가는 듯한 이러한 '가역적(可逆的)' 인상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생각해보지만ㅡ시간 진행과 공간 전개의 '병진(竝進)'을, 유래와 진행과 종착의 '병치(竝置, juxtaposition)'를, 단 한 폭의 그림으로, 단 한 순간의 시간에, 보여준다. 아마도 도상의 마력이 지닌 어떤 비술(秘術)이 여기 숨어 있을 터, 이에 신계(神界)의 싸움을 담고 있는 이 그림 앞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는, 고백 한 자락 남겨본다. 연상의 고리를 따라 단번에 다다른 곳은, 다름 아닌 단테(Dante)의 『신곡』 삽화들이다. 이 중 아마도 가장 유명하다 할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삽화들의 일람을 추천한다. 그의 '신곡 삽화'들을 보고 있자면, 언제나 피부 아래로부터 돋아오르는, 나의 친숙한 소름들. 아래 책은 도버 출판사에서 간행된 도레의 '신곡 삽화' 화집이다. 조용히 펴보고 있자면, 문득 품에 안고 싶은 책.



▷ The Doré Illustrations for Dante's Divine Comedy, New York: Dover, 1976.

   

▷ 땋은 머리를 한 귀여운 뒷모습의 선재동자 앞쪽으로 자애로우면서도 익살스러운 얼굴의 보현보살이 앉아 있다. 1334년에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 사경의 변상도와 그 한 부분. 선재동자의 이야기는 구법(求法)의 여정에 대한 하나의 은유이다. 이 은유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은유가 따로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어린아이'의 은유일 것이다. 니체의 낙타는, 어떠한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사자를 지나 어린아이로 화(化)하는가. 또한 예수의 어린아이(마가복음 10장 13-16절, 마태복음 19장 13-15절, 누가복음 18장 15-17절)는, 이 선재동자와 어디서 헤어지고, 또 어디서 만나지는가. 이러한 '접붙이기' 또는 '흘레붙이기'는 과연 가능한가, 아니 가능할 수 있는가, '유희'로 읽혀질 것을 무릅쓰고 '적확히' 말하자면, 가능할 수 있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 이러한 열주(列柱)의 형식, 반복의 형식 속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발원과 염원의 순수함과 집요함의 끝을 바짝 따라붙는, 마치 등이 붙어버린 쌍둥이처럼 따라붙는, 몸 입음의 경박함과 지난함, 살아짐[사라짐]이라는 축복과 저주이다.



▷ 14세기 중엽의 대방광불화엄경 사경의 변상도 부분. 윤회, 돌아가는 바퀴.

5)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윤회상(輪廻像)을 종종 헤겔의 저 '매개(Vermittlung)' 개념과 연관 짓기를 즐긴다. '직접성' 혹은 '무매개성(Unmittelbarkeit)'은, 매개를 거쳐ㅡ혹은 '반성(Reflexion)'을 거쳐ㅡ'매개된 직접성'의 형태를 띠며, 이러한 '변형'의 과정은 다시금 일종의 나선형 원환을 그리며 반복되는 것이다. 이는, 말하자면, 윤회의 바퀴에 대한 '서양철학적'인 해설은 아닐 것인가. '순수한 직접성'은 어쩌면 논리적이거나 형식적으로만 가능한 것이며, 모든 '직접성'은 이미 [한 번 이상] '매개된 직접성'에 다름 아닌 것, 그러므로 매개란 그 어떤 것/곳에도 편재(遍在)하는 것ㅡ행여 '편재(偏在)'는 아니겠는가ㅡ, 그래서 곧 매개란 이미 '형식적으로' 그리고 '위치적으로' 이미 하나의 불법(佛法)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 하는 망상 한 자락. '상동적(相同的)으로' 말하자면, 윤회란 결국 저러한 '매개된 직접성'의 집단적 몸 입은[肉化된] 형태, 그 반복적 형식이 취하는 전체적 도상(圖像) 내지 조감도(鳥瞰圖)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 한 자락. 이러한 일종의 '접붙이기' 내지 '흘레붙이기'는 호프마이스터(Hoffmeister)의 편집본과 임석진 선생의 국역본을 통해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고생스럽게 읽었던 나의 개인적인 독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겠으나, 이러한 경험이 비단 '한국사람'으로서 헤겔이라는 '서양철학'의 거인을 읽는 '독특한' 경험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는 일종의 '민족적 보편성' 위에, 오히려 이 지극히 '한국적인' 경험의 '독특성'이 놓여 있다는 느낌이다. 다시 한번 묻지만, 이는 과연 '가능한' 형식일 수 있을 것인가.

       

▷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hrsg. von Johann Hoffmeister), Hamburg: Felix Meiner, 1952.
▷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hrsg. von H.-F. Wessels und H. Clairmont), Hamburg: Felix Meiner, 1988.
▷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Hegel Werke Band 3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86.
*) 소장하고 있는 『정신현상학』의 독일어 판본은 세 가지이다. 이 중 가장 오래 된 호프마이스터의 편집본은 정본이 아닌 복사본인데, 낡고 색이 바랜 표지가 그리 얼마 되지도 않는 세월의 '무서움'을 알려준다. 대학에 갓 입학했던 해의 어느 봄날, 광장서적의 한 구석 서가에서 구입했던, '내 자신에 대한' 일종의 '선물'이자 '과제'였던 셈. 실은 나의 선배들도 1952년에 출간되었던 이 책의 복사본을 돌려보며 헤겔을 공부하고 있었던 것. 호프마이스터의 편집본은 현재까지도 '일독'은 거쳐야할 만큼 권위 있는 판본으로 남아 있다. 이후 1988년에 다시 마이너 출판사에서 베셀스와 클레르몽의 편집으로 새로운 판본도 출간된 바 있다. 현재는 주어캄프 출판사의 20권짜리 헤겔 저작집(그 중 3권이 『정신현상학』) 또한 빈번히 이용되고 인용되고 있는 추세.



▷ 헤겔, 『 정신현상학 I 』(임석진 옮김), 지식산업사, 1988.
▷ 헤겔, 『 정신현상학 II 』(임석진 옮김), 지식산업사, 1988.
▷ 헤겔, 『 정신현상학 1 』(임석진 옮김), 한길사, 2005.
▷ 헤겔, 『 정신현상학 2 』(임석진 옮김), 한길사, 2005.
*) 임석진 선생의 무쇠 같은 학자적 끈질김에 대해선 더 이상 첨가할 말이 없다. 일독을 권할 뿐이다. 과거 분도출판사에서 초판이 나온 이후, 1988년에는 지식산업사에서, 2005년에는 한길사에서, 각각 개역판이 출간된 바 있다. 소장하고 있는 판본은 지식산업사판과 한길사판.



▷ 김상환, 『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 』, 창작과비평사, 2002.

6) 예를 들자면, 사실 이러한 종류의 '접붙이기' 또는 '흘레붙이기', 일종의 상동성(相同性)에 대한 확인으로서의 '동서접합'은 의외로(?)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는바, 김상환 선생의 저서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가 드러내고 있는 이러한 접합의 '기본적 시각'에 대해 소량의 희열에 따라붙는 다량의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저러한 [민족적 상황의] '독특성'에 대한 일종의 '본능적'ㅡ그렇다면 이 '본능'이란 '코스모폴리탄적'이라고 할 텐가?ㅡ반발심 내지 방어심리 때문이기라도 했던 것일까. 일례로 김상환 선생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궁극의 존재론적 사태가 어떤 끈운동이라는 예감, 우리는 그 예감의 저편을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단정할 수 없는 사태가 묘하게 동서 존재론을 함께 엮어내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 사태에서 예감되는 끈을 존재론적 계사라 이름한다면, 동서 존재론의 역사는 모두 그 계사를 재전유해온 역사인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오늘날 물리학 분야에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려는 계획으로 출현한 초-끈이론도 이 재전유의 계보에 속하는지 모른다."(8쪽) 김상환 선생은 여기서 최소한으로 따져도 세 가지나 되는 끈들ㅡ동서의 계사 존재론, 그리고 초끈이론ㅡ을 하나의 끈으로 묶어보려는 어떤 실마리ㅡ이 역시 '끈'의 비유가 아닌가ㅡ를 잡아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평가는 물론 독자 개개인의 몫이다. 다만 떠오르는 잡생각 한 자락을 미친년 머리 풀 듯 풀어놓고 지나가자면, '계사(繫辭/繫絲)'라고 하는 단어 자체 역시 이미 저 '끈'의 은유가 취했던 '성공적인' 재전유의 한 사례가 아니었던가. 말하자면, '대통합이론'을 갈구하는 이데올로기의 모습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하는, 숨겨진 물음 한 자락, 드러내놓기.

       

▷ 『 사경변상도의 세계: 부처 그리고 마음 』, 국립중앙박물관, 2007.
*) 위 사경변상도 사진들의 출처이기도 한, 이번 전시회의 두툼한 도록과 브로셔(brochure). 이 둘 모두 첩장본 사경의 디자인을 차용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실 브로셔는 언제나 '첩장본'의 모습이었던 것을! 도록의 말미에는 논고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초입에 놓인 박상국 문화재위원의 글이 개괄적 해설을 대신하고 있다. 이들 논고 중에서도 특히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사경의 서체가 지닌 서풍(書風)에 대한 이완우의 글과 사경에 사용된 사경지(寫經紙)에 대한 천주현의 글이다. '잡학'에 대한 나의 개인적이고도 고요한 열광이 스멀거리며 기지개를 켠다.



▷ 박상국, 『 사경 』, 대원사, 1990.
*) 사경에 대한 일반적인 개설서로 추천하고 싶은 작은 책. 위 도록에 수록된 박상국의 글은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 요약본으로 볼 수 있다. 덧붙여, 대원사에서 발간되고 있는 이 '빛깔 있는 책들' 총서는 다양한 주제들에 관한 매우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귀여운 '실용서'들로서, 관심 있는 주제에 맞는 일독을 권해본다. 개인적으로는 이 총서에 속해 있는 '불화 그리기', '신장상', '보살상', '지옥도'에 대한 책들이 유용했다는 팁(tip) 한 자락도 첨언해둔다.



▷ 위 책에 수록된 도판 중에서 가장 '돋보였던' 사경들 중의 하나. 수려하고 호화로운 사경과 변상도들의 틈 사이로, 백지에 틈 나는 대로 틈틈이 써내려간 듯한, 범한(梵漢) 병기의 이 희멀건 조선시대 '사경' 한 자락은, 저 구겨진 백지만큼이나, 딱 그 만큼이나, 아름다웠다는 인상.

▷ 심재열(엮음), 『 초발심자경문 』, 보성문화사, 1986[재판].

7) 최근 일고 있는 '학력 위조 고백'의 대열에 얼마 전 '동참'한 한 스님에게서, 나는 어린 시절 한문을 배웠다. 1986년에 재판이 나왔던 저 심재열 선생의 책을 교재로 삼고서, 어린 몸의 나는 나만큼이나 작고 낮은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아, 이른바 불법(佛法)의 한역(漢譯)에 처음으로 입문했었다. 한자는 신기하고도 광대한 문자라는 사실을, 어린 나의 머리로써도, 조금이나마 어렴풋이나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내게 있어 '외국어'라고 하는 '외부성'과의 첫 만남이었다. "부초심지인(夫初心之人)은, 수원리악우(須遠離惡友)하고, 친근현선(親近賢善)하며"로 시작되는 보조국사(普照國師)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을 나는 아직도 입 속으로 우물거릴 수 있을 정도이다(이 지극히 '유교적인' 글에 비하자면,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내뱉는 공자의 말은 또 얼마나 '불교적'인가). 그 당시 이 스님이 운영하던 작은 선원은 낡은 아파트 상가의 한 구석을 차지한 허름한 곳이었다. 하지만,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다고 했던가, 지금 그 '선원'은 우면산 한 자락을 쥐고 틀어앉은 거대하고도 현대적인 사찰이 되었다. '육조 혜능은 까막눈이었다'는둥, '不立文字'라는둥, 최근 이 스님의 죄를 질타하는 시선이 점잖으면서도 따끔하다. 분명 그 말이 맞다, 모든 것을 버리고 들어간 승려의 길에서 학력이란 또 그 무슨 미망(迷妄)이란 말인가. 그러나 돌이켜보자면, 일종의 종교적 '비즈니스' 혹은 '자본화된' 종교의 입장에서, 그러한 위조된 학력이 교세의 확장에 미쳤던 '구조적' 영향은, 저런 점잖은 질책만으로는 해결되지도 해소되지도 않는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였다. 왜 그랬을까? 사람을 미워해야 할 것이 아닌가, 죄를 지은 것도 사람이고 미운 것도 결국 사람 아닌가? 단순히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죄를 미워해야 한다는 말은 무책임한 '구조주의'에 해당한다. 하지만 죄 대신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버릴 수 없는 안타깝고도 아름다운[앓음다운] '인본주의'이다. 사람을 미워해야만 용서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모든 종교의 '용서'와 '화해'의 담론에서 가까스로 얻을 수 있는 전제는 바로 이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사람을 사랑해야만, 그 죄를 미워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의 '인본주의'를 배경으로 함으로써만ㅡ이것은 결코 '당위'가 아니라 하나의 '가능조건', 곧 '인간의 조건'일 텐데ㅡ'구조주의'는 저 가공할 추상력을 다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용서'와 '구조'의 담론이 '저들'의 변명으로 '악용'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

8) 이 글은 단지 한 전시회로부터 촉발된 '잡생각'들의 자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글이라고 '잡스럽지' 아니 할까. 말하자면, 나는 다시금 저 '분류법'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인데, 이 글은, 내 글을 다시 '재귀적으로' 차용하자면, 단지 "한 전시회로부터 촉발된 잡생각"의 한 묶음이라는 의미로서만, 바로 그런 의미에서만 '미술과 비문증'이라는 카테고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장르의 분류법과 병증의 목록을 결합한 나의 카테고리란,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더욱, 저 '비문증(飛蚊症)'이라는 병증을 직접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의 안구(眼球) 위로는, 기다란 벌레의 사체(死體)들과 속된 분진(粉塵)들이 날아다니는데, 종일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그 모든 부유물(浮遊物)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도 아닐 터. 그러므로 '비문증'의 이 잡스러움이란, 일종의 천형(天刑)이라고 해야 할 것, 사경(寫經)을 논하다가 사경(死境)을 헤매는 꼴이 아닌가.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서지 검색을 위한 알라딘 이미지 모음: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hilocinema 2007-08-24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람혼님의 정성어린 글 잘 읽었습니다.
아참! 한길사의 "정신현상학"은 믿을만한 번역인가요?



람혼 2007-08-24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약한 정성이지만, 꼼꼼히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임석진 선생의 헤겔 국역은 "믿을 만한" 번역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다만 이번 '3차' 개역판(한길사판)에서는 '의역'이 조금 더 많아진 듯한 느낌입니다. 원문과 함께 보신다면 지식산업사판을 추천합니다.

philocinema 2007-08-25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중한 답글 감사드립니다.

근데 주책 맞게도 람혼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지 궁금해집니다. ^^

람혼 2007-08-26 02:01   좋아요 0 | URL
risper3 님의 소중한 댓글에 더 감사드립니다.
직종은, 비정규직 예술노동자, 정도로 해두죠.^^

2007-08-26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7-08-26 02:17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대로 대부분의 사회과학 서점들이 많이 없어지긴 했어도 몇몇은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날이오면, 논장, 장백 등과 비교할 때 광장은 전형적인 사회과학 서점이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만). 다만 '학교'라는 공간 근처에 가본 지가 참으로 오래 되어 현황은 잘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때 소탈한 성격의 담임 선생님께서 "넌 나중에 할 거 없으면 뭐 할래?"(아무래도 걱정이 되긴 되셨던 모양입니다...)라고 물으시길래, "사회과학 서점이나 하나 열죠 뭐."라고 대답했다가 출석부로 머리를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어지는 구타의 변: "굶어죽기 딱이다."

philocinema 2007-08-26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 감사합니다.
'비정규직'에서 가슴을 후비는 씁씁함이,
'예술'에서 가슴의 씁씁함을 쓸어내는 시원함이,
'노동자'에서 저와 손잡은 님의 따스한 손기운이 느껴집니다.

람혼 2007-08-27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을 '훈남화'하는 댓글, 감사합니다.^^

2009-06-04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0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tman00 2009-06-11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답글 감사합니다~

람혼 2009-06-11 14:40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좋은 하루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