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중간고사가 다 끝났구나.
사는 게 그런 것 같아.
세상사는 그저 그런 하루가 반복될 뿐인데,
사람은 늘 그 세상을 분절적으로 바라보는 것.
1년은 그대로 더워졌다 추워졌다 날씨가 변할 뿐인데,
봄인데 춥다는 둥, 금세 더워졌다는 둥, 인간의 변덕이 쉽게 변할 따름이지.
오늘은 시인에 대한 시를 두어 편 보자.
전에 김광균 시인의 '노신'이란 시에서,
시인의 고달픈 살림살이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도 있었고,
정희성의 '길'이란 시에서도,
시인으로서의 삶이 주는 가난한 복을 보여주고,
함민복의 '긍정적인 밥'에서도,
굳이 애써 힘든 삶을 긍정적으로 보려했던 구절이 등장한단다.
무수히 손에 뺨을 얻어맞으며
항시 곤두박질해 온 생활의 노래
나는 돌팔매에도 이제는 피곤하다.
먹고 산다는 것,
너는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느냐. <김광균, '노신' 중>
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라
평생에 죄나 짓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살기가 죽기보다 어렵구나
어쩌랴, 바람이 딴 데서 불어와도
마음 단단히 먹고
한치도 얼굴을 돌리지 말아야지 <정희성, '길' 중>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함민복, 긍정적인 밥)
시인은 남들에 비해서 눈이 밝은 사람일게다.
그러다보니, 남들의 눈에는 쉽사리 보이지 않는 것,
잘 들리지 않는 것들이 보이고 들리는 사람.
그러니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사람.
관세음보살처럼 세상 사람들(세)의 고난이 보이고(관)
힘겨워하는 소리가 들리는(음) 사람이 시인일 거야.
그저 책을 읽어도 남들은 읽어내지 못하는 구절들을 아파하며 읽어내는 사람들 말이지.
우선 김광섭의 <시인>을 한번 읽어 보렴.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아름 팍 안아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篇)에 2천원 아니면 3천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 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김광섭, 시인>
제목이 '시인'이다.
화자는 도대체 시인은 뭐하는 사람이지? 이런 의문에서 시작했을 거야.
"시인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답변이 이 시의 내용을 이루고 있단다.
1연에서 시인이란 ~~한 '천직'이라고 하고 있구나.
천직이란 하늘이 내려준 직업이란 뜻인데,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하거나 힘든 일을 일컬을 때 쓰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업이나, 사람을 가르치는 교직, 성직자 같은 사람들.
화자는 시인을 그래서 '소중하지만 힘든'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봐도 좋겠지?
꽃은 피는 대로 보는 시인.
<보는> 행위가 나왔잖아. 관세음의 볼 <관 觀>
관조한다 할 때 그 '관'이야.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거지. 시인의 일이란.
이렇다 저렇다 자신의 판단을 억지로 우겨넣지 않고 바라보기.
꽃은 이래서 핀다 저래서 핀다고 욱대기지 않고,
꽃이 피면 피는 대로 보는 시인의 역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는 시인.
여기선 <노래하는> 행위가 나온다.
시인은 '노래부르는' 사람이지.
세상의 모든 힘든 소리<세음 世音>을 다 듣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
사설 시조 중에 이런 시조가 있단다.
'이흠'의 시존데... 뜻은 이런 거야.
노래를 만든 사람, 걱정도 많기도 많았나 보구나.
말로 일러서는 다 못 일러서, 노랠 불러서나 풀었던가.
(노래로 불러) 진실로 풀릴 것이라면 나도 불러 보리라.
노래는 즐거운 노래보다는 힘겨운 시름의 노래가 더 많은 것도 그런 사연인가 보다.
그 다음 구절에선 세상 가득한 물건도 다 안지 못하여,
전신을 다 시에 담는 시인이 등장해.
세상의 모든 것을 시 안에 담기 위해서는 온몸을 불사르는 노력이 필요하단 이야기겠지.
그렇지만 한 편에 몇 천 원밖에 주지 않는 세상.
시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원망의 마음도 내지 못하고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게 시인이래.
시인은 늙을 때까지 언어를 아끼는 사람이래.
어리석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부터
세상의 슬픔을 다 껴안아 볼 수 있는 늙음까지,
마라토너처럼 장거리의 고독을 안아보는 시인.
그렇다고 힘겨워하지 않고 '터덜터덜' 꾸준히 가는 자세를 보여주는 시인.
<쌀알 만한 빛>이라도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그 희망의 씨앗을 영원처럼 품고서 사는 시인.
신이 안 날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땐 보는 척도 안 하는
먼산바라기도 좀 하는 시인.
나무와도 하나가 될 수 있고,
돌과 냇물과도 일체가 될 수 있는,
나무의 소리도 듣고,
돌과 냇물의 마음도 읽어낼 수 있는 <관세음>의 눈과 귀를 가진 사람, 시인.
연애를 하면 시인이 된다는 말도 있잖아.
그건, 그만큼 세상의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섬세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말일 거야.
아빠가 민우와 시를 읽자고 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란다.
시를 통해 녹아든 세상 이야기를
민우와 나눠보고 싶었던 그런 이유지.
시인의 삶은 <타는 저녁 놀>처럼 금세 지나가고 없지만,
그의 <시>는 <자국>으로 남아있다는 그런 이야긴가봐.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시인을 드러내기 위해서 '꽃'과 '사랑'을 들먹이고 있지.
시인은 아름다움과 진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세속적 욕망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그래서 깊은 고독의 늪에서
자신과 싸우는 사람들,
그리하여 평생 오직 인생의 진실이 아로새겨진 시 한 편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르는 사람들임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거란다.
이흠의 '평시조'와 형식은 다르지만,
뭔가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지 않니?
다음엔 나희덕의 '귀뚜라미'를 감상해 보자.
이 시는 화자를 귀뚜라미로 설정하고 있어.
지금은 미미한 소리지만,
언젠가는 감동적인 소리로 울려나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담긴 시란다.
한번 읽어 보렴.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나희덕, 귀뚜라미>
1연에서 <매미소리>에 묻힌 귀뚜라미 소리는 아직 노래가 아니라고 했어.
아직은 자신의 시가 세상을 울리는 감동적 시가 아니란 거지.
2연에서도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할 뿐인 울음.
풀잎도 없고 이슬도 내리잖는 지하도 차가운 바닥,
콘크리트 벽 좁은 틈의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숨막힐 듯>한 노랫소리지.
아직은 인정받지 못하는 무명 시인의 처지를 노래한 것 같아 보이는구나.
한국의 시단은 어쩌면,
능력있고 시 잘 쓰는 사람보다는 서로서로 자기들끼리 편먹고 인정해주는 시인을 쳐주는지도 몰라.
그래서 이런 시를 썼는지도.
어쩌면 가수가 되고 싶은 꿈으로 가득하던 허각 같은 이가,
노래도 제대로 못하는 가수들을 보면서, 이런 시를 읊은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내 소리로 세상을 울릴 수 없어.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이라서...
매미는 높은 나무 위에서
온 세상 사람 다 들으라고
매웁게 매웁게 울어대는 곤충이잖아.
그렇지만, 세상은 늘 한결같지 않은 거야. 수시로 변하는 것.
가을이 오면,
지금은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가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겠지?
됐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가득 담긴 노래란다.
화자 자신이 귀뚜라미로 변신하게 되지.
자신의 울음이 누군가의 가슴에 실리기를,
시인이 자신의 시가 누군가의 가슴에 감동으로 묻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쓴 시겠지.
누구나 지금 자신은 부족한 사람이지만,
언젠가,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바라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라고 알지?
소파는 '작을 소, 물결 파, 小波'라고 일본의 유명한 어린이 운동하던 분의 이름이래.
고가와라고 읽었을 거야. 아마도...
엊그제가 어린이날이었잖아.
방정환 선생님이 쓴 동시중에 귀뚜라미 소리란 노래가 있단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서,
어쩌면 더 추워질 겨울을 대비해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셨는지도 모르지.
일제 강점기를 살기는 참 힘들었을 테니 말이다.
요즘 인기인 아이유란 가수가 있지?
영어론 IU라고 쓰지만, 중국어로 '아이'는 '사랑한다'는 뜻의 동사니깐,
너를 사랑한다는 뜻의 의미도 담고 있겠다.
어린 나이의 가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음색으로 새로운 음악 세계를 개척해 보이는 모습이 이쁘더구나.
민우도 뭘 하든
자신의 세상을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살자꾸나.
세상은 넓어 보이지만,
또 매미나 귀뚜라미 한 철이듯,
시절은 금세 지나가는 것이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