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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인간 Homo Viator - 정신과의사 문요한이 전하는 여행의 심리학
문요한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평점 :
바야흐로 바캉스 시즌이다.
대통령도 휴가를 간다 하고, 고속도로가 정체의 절정을 이루고,
온갖 숙박지는 바가지 요금으로 돈을 벌어 들이는 계절이다.
기업 중심의 문화, 부자 중심의 휴가가 되다 보니,
계를 모아서 일년에 한 번 버스를 타고 명승지로 가면서 술에 취해 버스에서 춤을 추던 시절도 있었다.
그나마 이제 8월에 한 주 사람들이 쉰다. 참 초라하다.
정신과 의사 문요한이 쓴 이 책이 부산의 '원북'으로 선정되었다기에 찾아 읽었다.
별로 새로울 것은 없다.
자신이 안식년을 내고 1년을 세계를 떠돈 가족의 이야기였다.
틈틈이 여행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삽입했다.
부러웠다.
돈도 있고, 안식년도 내고, 참 부러웠다.
그 부러움의 욕망이 여행을 부추긴다.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이 비판하던 것처럼,
여행의 욕망은
여행 자체의 고유한 가치에서 발생하는 것도,
여행하는 사람의 필요에서 발행하는 것도 아닌,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모방하여 여행을 모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텔레비전에서는 늘 어딘가를 여행하거나, 무언가를 먹는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하다.
여행하면서 먹기까지 하는 프로그램은 더욱 짜릿하다.
주변 사람들이 어디를 간다 하고, 무엇을 먹는다 하면,
그것들이 다 머릿속에 들어앉아 나의 욕망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나 아닐까.
지라르는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욕망의 모방이 진실임에도,
진실을 은폐하는 가운데 세워진 낭만적 거짓에 불과한 욕망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래서 경쟁자인 타인이 대상을 손에 넣는다는 상상은
대상의 가치를 드높이고 욕망을 강렬하게 만들어
평등해지는 사회일수록 모방의 갈등이 강렬해진다고 한다.
맺음말에서 오르한 파묵을 이야기한다.
훌륭한 화가는 자신의 그림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종국에 가서는 우리 마음 속의 풍경까지 바꿔 놓는다.
여행도 그러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활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여행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여행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 이후의 일상에 달려 있다.(318)
이런 좋은 여행조차도
타인의 욕망에 대한 모방이 아닐는지...
여행이란 말조차 낭만이고 꿈이던 70년대를 돌아보면,
일 년에 두 번 명절이면 길고긴 시간 버스에서 흔들리던 사람들의 시절을 생각해 본다.
욕망이란 말조차 낭만적이던 시절...
이유없는 반항이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같은 뜻모를 언어들에 대한 동경의 시절...
결국 여행은
자본의 흐름 속에서 파생된 상품의 하나이고,
욕망의 삼각형 속에서 감추어진 '타인의 욕망'에 대한 갈구이면서도,
자신의 일상에 활기를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 다면적인 것이다.
절정 경험이란
부모가 되는 경험, 신비 또는 광활함에 대한 경험,
자연에 대한 경험, 미학적 지각, 창조적 순간,
치료적 또는 지적 통찰력, 오르가슴.
특정 운동의 성취 등의 순간 등이 있다.(매슬로, 215)
여행이 반드시 절정 경험일 수도 없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작가를 따라서 히말라야나 남미에 갈 필요도 없다.
날마다 쳇바퀴처럼 사는 곳에서 벗어나는 곳이면
거기가 인근 소도시의 모텔 방이든,
한적한 해안가든,
나름의 여행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이 텅 비운(vacant) 도시,
서울 같은 곳으로 바캉스(vacance)를 떠나는 것도 재미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