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과 자유 - 장자 읽기의 즐거움
강신주 지음 / 갈라파고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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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박-최 게이트로 시끄럽다.

그들은 왜 욕을 먹을까? 원래 못된 인간들이었다면, 작년에도 욕을 먹었어야 했다.

그들이 저지른 악행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이다.

그것도 세월호처럼 잔인한 일도 엮여있기 때문에, 김기춘, 우병우 등도 함께 죽일놈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걸어온 길이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게 만드는 것이지, 그들은 원래 욕먹고 있지 않았던 인간들이다.

강신주는 장자의 몇 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장자가 가리키고자 하는 달은 무엇이었는지를 탐사한다.

딱, 그만큼 의미가 있는 책이다.

 

춘추 전국시대의 혼란상은 날마다 전쟁이고 참혹한 현실이었을 게다.

이때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백가쟁명이 나선다.

누구는 인의예지로 질서를 잡자고 하고,

누구는 자연의 법도로 정치를 하자고 하고,

결국 법가의 처벌정치가 진시황의 마음에 들고 만다.

장자는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그 이야기는 그야말로 이야기여서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이야기만으로 통용되기도 하고,

조삼모사는 남을 속이는 사람을 빗댄 것으로, 호접몽은 인생의 무상함으로 흔히 이야기된다.

 

그렇지만 장자라는 책 속에 담긴 것 역시 정치철학이어야 할 것이고,

어떻게 정치하라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모토를 가지고 이야기를 살핀다.

이 책은 장자 전체에 대한 고찰이 아니다.

 

몇 가지 이야기로 장자를 읽는 방식 내지 시선을 제시하는 책이다.

좀 억지스러운 점도 있고, 불필요하게 하이데거나 베르그손, 사르트르가 맥락없이 튀어나와 점유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강신주처럼 장자를 읽을 필요도 있다.

 

길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다.

<도행지이성>이 장자의 전체 주제라 할 만하다는 이야기다.

그것을 행함으로서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 '도'이다.

 

올바른 정치란?

좋은 정치란?

없다.

다만, 그것을 행했을 때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지 어떤지를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담뱃값을 올려서 국민 건강이 좋아지는 결과를 얻었다면? 그것은 잘한 일인 것이다.

그렇지 않고 청와대라는 기관을 삥땅처로 활용했을 때는 그것은 욕듣고 감방갈 일인 것이고.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와 '무 고금'을 마주 놓는다.

사르트르의 '무'는 인간에게는 미리 주어진 본질이 없고,

그래서 인간은 본질을 만드는 존재.(178)라는 것.

'옛날과 지금'을 없앤다는 것은,

기억, 지각, 기대라는 역량이 창출하는 시간의식을 제거하는 데 있다.(194)고 한다.

 

바닷새에게 잔치를 베풀다 죽이고 마는 노나라 임금의 의도는 좋았으나, 참혹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는 것.

유아론적인 사고는 결국 비극을 부를 수도 있음에 대한 경고로 읽는다면,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가 된 것인지의 '호접몽'도 그저 상대적인 시선이 아니라,

결국 어떤 결과를 낳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저것'과 '이것'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저것'과 '이것'이 짝이 되지 않는 경우를 '도추'라고 한다.

한번 그 축이 '원의 중심'이 되면 그것은 무한한 소통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도 '비'도 하나의 무한한 소통이 된다.(115)

 

박근혜가 악마면 문재인은 천사일까?

문재인이 갑갑한 고구마면 이재명은 사이다일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인지 부조화로 본 장자.

중요한 것은 '도추'의 자리에 서 보라는 것이다.

 

양시론이나 양비론이 아니라,

핵심을 꿰뚫는 자리에서 바라보는 시선.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올바름의 관점에서 욕심을 내려놓으면 바라보이는 곳.

 

강신주의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장자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되어 좋은 책.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루쉰, '고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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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질문 - 사소한 물음이 세상을 흔들다 세계사 가로지르기 15
권재원 지음 / 다른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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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망친 아이들에게 부모들이 들이미는 정답이 생겼다.

공무원 시험이나 치라는 것.

'명문대'를 가야 장래가 보장될 것이라 착각했는데, 그 길을 포기하고 나니, 대안인 정답이 '공무원'이다.

 

공무원도 다종다양하다.

정무직 공무원도 있고, 일반직 공무원, 교육행정직이나 검찰, 교정직, 소방, 경찰등...

 

이 책은 상당히 깊이가 있다.

청소년들이 철학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때,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으로 권할 만하다.

 

과학과 철학, 사회, 경제, 환경, 그리고 인간의 악에 이르기까지,

심심한 제목 아래서

아주 풍미가득한 글들이 펼쳐진다.

 

책은 얇지만 맥락이 명료하다.

한나 아렌트의 '아이히만'에 대한 설명을 읽노라니, 한국 현대사의 친일파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국가를 도륙하고 있다.

 

악당이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다만 둔감한 정서와 빈약한 상상력의 소유자,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성찰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권위자의 명령에는 맹목적으로 복종한다.

그것이 매우 악한 일이라 할지라도.(150)

 

그것이 세월호를 가져왔고,

김기춘이 버텨온 힘이 그 '권위'와 '명령'이었다.

이제 세월호의 7시간을 인양할 이유가 명백해졌고,

부정한 권위를 무너뜨릴 필요가 드러났다.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경제'나 '교육', '철학'과 같은 측면들로 보자면,

수업이나 세미나 교재로 다루기도 좋아보인다.

 

고등학생들 토론 교재의 부교재로 쓸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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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 사진 찍는 인문학자와 철학하는 시인이 마주친 모나드
이광수.최희철 지음 / 알렙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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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은 무한한 개수를 갖고 있다는 의미를 가진 것 같지만,

사실은 무한을 양적인 개념이 아닌

질적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27)

 

소유냐, 존재냐의 문제도 양과 질로 환원할 수 있고,

인간을 도구로 여기느냐 목적으로 여기느냐도 양과 질로 볼 수 있다.

 

존재를 존재자로 보지 않고 존재로 볼 때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보이기 시작한다.

존재는 있다,라고 할 수 있지만

더 엄밀하게 '이다'라고 해야할 것이다.(31)

 

사진은 우리 눈이 발견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사진가는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들을

일부러 찍어 보여준다.

철학자나 시인은 거기 말을 덧붙여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

 

'무상'은 '늘 푸르지 않음'이다.

'푸른 인생'은 단일 종목 우승이 아니라 창조적 종합우승이어야 한다.

인생은 다종 경기이다.(61)

 

나이듦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생각만이 아니라 나이들고 있다.

푸르지 않음에 한숨쉴 것이 아니라, 그래도 살아있음을 노래할 나이란 생각을 한다.

 

저 기호 같은 존재가

사회적 성공이라는 여과지를 통과하려고 들지 말고

그저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67)

 

자식에 대한 사랑이 이런 것이다.

 

무질서는 질서없음이 아니라

무수한 질서가 있는 것이며,

공은 텅 빈 것이 아니라

무한한 '이다'가 존재함을 의미.(137)

 

우리의 삶이 삶에 대한 착각으로 가득하다면,

그것은 '착각'을 삶으로 알고 살아가는 것이므로

삶이 고통스럽다.(225)

 

이 책은 사진보다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다.

삶과 생각과,

그 사이의 착각들과

우리의 추구들의 무상함에 대하여,

푸르름과 늙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단상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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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이산하 지음 / 양철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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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이산하의 자전 성장 소설이다.

양철북으로 등장하는 소년은,

빽구두 스님을 따라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여울을 가만히 보면 가장 격렬하게 소용돌이칠 때가 햇빛이 가장 찬란하게 빛났지.

너무 찬란해서 눈이 부실 정도였네.

문득 햇빛이 부서지는 그 찬란한 순간이 바로 백척간두에서 한 발 내딛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161)

 

그의 삶은 참 고단했다.

'한라산' 필화사건에 얽힌 그는,

지금 정권에서 떠받드는 미국과 이승만의 아킬레스건인 4.3을 정면으로 조준했다.

 

미군 지휘하의 군경토벌대와 서북청년단의 양민 학살...

전체인구의 30%가 죽은,

한마디로 한국판 아우슈비츠였다.(244)

 

그에게 '한라산'이 여울이었나보다.

 

오스카가 와 성장을 멈추고 난쟁이가 되어버렸십니까?

아, 그거야... 잔인한 나치 세상에 대한 저항 정신 아니겠나.

자라서 어른이 돼봐야 학살자나 동조자로 변할 테고...

그라머 양철북은 와 자꾸 두드립니꺼?

그런 세상에 침묵하고 방관하는 자들의 의식을 두드리는 영혼의 북소리 아니겠나.

니가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그북이 데미안의 알 같은 존재라는 것도 스스로 깨닫게 될 기다.

그라고 오스카처럼 눈알에 힘으 한번 팍 주면 교실 유리창도 와장창 박살날기다.

앞으로 넌 펜으로 힘껏 북을 쳐라. 양철북.(228)

 

삶이란

난쟁이가 되어 멈추어

양철북을 두드리며 유리창 깨지도록 소리도 내질러 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난쟁이일 따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양철북이 되어버리기 십상인 게 또 세상이다.

 

세상과 삶 사이에서,

어떤 것이 나의 삶이 되도록 할 것인지,

생각하면서 살 일이다.

 

이 책은 내용의 진지함에 비하면,

형식이 무척이나 재미있다.

 

불교적 화두와 문학적 상징이 엇박을 치면서

엇박에서 느껴지는 행간의 짜릿한 재미가 그득하다.

 

역시, 양철북 출판사다.

한국 근대사에 관심이 있거나,

도~(불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ㅋ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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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두고 읽는 니체 곁에 두고 읽는 시리즈 1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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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니체 철학의 개론서는 아니다.

자기가 쓰고싶은 이야기들을 쓰는 간간이,

니체의 말에 기대어 삶의 지혜를 얻은 경험을 쓴 책이라 보면 더 가깝다.

 

그래서 니체의 어느 한 책을 풀이한 해설서도 아니고,

니체의 삶이나 사상을 조망한 비평서도 아니다.

그저, 작가의 생각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틈틈이,

이거봐라, 니체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나.

이런 근거로 들이미는 정도다.

 

그런데 니체의 중심 단어인 '영겁회귀'나 '낙타, 사자, 어린아이' 등의 비유가

적절하게 섞여 쓰이는 것이,

니체를 쉽게 읽는 방법의 하나이기도 한 셈이다.

 

자기보다 능력이 훨씬 부족한 것 같은데도 엄청나게 성공한 사람이나,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면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데 크게 인정받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질투심이 발동한다.

분노나 질투에 휘둘리게 되면 좋은 점들을 왜곡하거나

긍정적인 것에도 눈을 감는 습성이 생겨 종국에는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자신을 병들게 하는 르상티망의 싹을 잘라내는 일,

거기서 니체가 말하는 초인으로 가는 길이 시작된다.(40)

 

니체의 초인을 뛰어난 인간, 위인으로 보지 않는다.

호랑이가 된 사나이 이징(나카지마 아쓰시의 <산월기>)의 이야기를 덧대면서,

인간의 약한 부분을 짚어준다.

 

시시포스는 자신의 운명을 묵묵히 짊어짐으로써

결과의 무의미함을 절차의 충실함으로 전환시켰던 것.(101)

 

카뮈의

시시포스의 신화 첫 구절에 나오는 이야기다.

 

단 한 가지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가 있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100)

 

참으로 하찮은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면서,

본연의 자신의 진면목인 '치히로(千尋)'를 잃어버리고 '센(千)'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니체의 영겁회귀는 불교의 인연설과 다르다.

 

지금의 삶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105)

 

인생은 어차피 부조리하다.

출발점은 너무도 균형잡히지 못한 곳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출발점이 어떠하였든, 붓다의 깨달음처럼 인생은 고통이다.

탐, 진, 치...

이들은 마치 저팔계처럼 탐욕스럽게, 손오공처럼 성내며, 사오정처럼 어리석게 인간을 살게 한다.

 

영겁회귀는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신의 천국을 약속하지 않는다. 신은 죽었으니.

오로지, 지금, 영겁회귀한다 해도 지금 나는 만족한다는 자세를 말한 모양이다.

 

지금 내가 희생하는 오늘의 고난은

미래의 행복과 즐거움과 부유함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하며 산다.

그렇다면, 오늘 왜 행복하고 즐겁게 누리며 살지 못하는지...

 

인간은 곧 뇌라는 도식이 일반화되어가는 오늘

두뇌만으로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니체의 지혜를 대지의 호흡을 통해 느껴보자.(153)

 

편견과 편견이 날카롭게 부딪치는 커뮤니케이션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극단으로 치달아 끝내 폭발한다.

이것이 바로 숙성 기간이 결여된 지식을 그저 타인에게 과시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이 운영하는

사이트들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 이유다.(161)

 

인간의 향상은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깊이에 있지 않을까?

향상심은 곧 숙성된 맛, 성숙함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닐는지...

 

사람은 항상 껍질을 벗고 새로워져야 하고

항상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한층 새로운 자기를 만들기 위한 탈바꿈을 평생 멈추지 마라.(166)

 

날마다 아이처럼 향상하려는 즐거움을 안고 사는 존재라면,

삶이 배움의 축제라는 것이다.

낙타처럼 참고 견디며 우직하게 나아가는 걸음은 허무 앞에서 좌절한다.

사자처럼 울부짖는 최고 의식 역시 허무 앞에서는 무너진다.

어린아이처럼 즐거움으로 하루하루를 영위하는 법.

 

아~ 슬퍼진다.

 

창조적인 일을 하든

평범한 일을 하든

항상 밝고 가벼운 기분으로 임해야 순조롭게 잘 풀린다.

그래야 사소한 제한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생기기 때문.

평생 이런 마음을 지켜나가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일을 이루는 사람이 될 것.(179)

 

삶의 과오는 너무 진지한 데 있다.

그래서 저팔계처럼 욕심내고, 손오공처럼 화내고, 사오정처럼 어리석어진다.

 

마티즈를 폐차시킨 국정원이나,

친일파 조상 이야기 고만하자는 김무성이나,

너무 오래 생각하면 성질만 나빠진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지나치게 성질내지 말 일이다.

그런다고 정말 성질이 안 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스리려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게 맞는 삶의 방법론을 찾기는 어렵다.

타인의 방식이 내게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왜 그일을 하려 하고, 왜 그렇게 되고 싶고, 왜 그 길로 가려하는지,

내면으로부터 평가기준을 갖추지 못해서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왜?라는 의문부호에 스스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게 됨으로써,

이제 그 길을 가는 일만 남게 되는 것이다.(216)

 

어린아이들의 호기심처럼 질문하고,

남의 기준으로 답을 찾지 말라는 말.

 

참 쉽고 당연한 말들이지만, 이렇게 들려주니 옳고 또 옳다.

 

니체라고 하면 그 짙은 털보 수염만 떠올리지 말고,

참 쉽고 편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읽어볼 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 다음에 곧장 <차라투스트라~>나 <인간적인~>을 주워들었다가는

어린아이처럼 베고 잘 게 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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