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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ㅣ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평점 :
한국 중학교 국어 교과서의 단점은 초등 국어 교과서와의 괴리에 있다.
초등학생이 읽을 소년소설은 쌔고쌨는데, 중학생이 읽을 소설이라고 하면, 김동리, 박완서, 뭐, 이런 생각을 하는 인간들이 책을 만들어서 그럴 것이다.
이렇게 좋은 책들이 세상엔 많은데 말이다.
국어 교과서엔 우리나라 것이든 외국 것이든 다양하게 고민할 거리들을 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교과서 개발 지침서엔 이런저런 칼들로 가득하다. 다 잘라내고 나면 남는 건, 다시 박완서와 이청준일까?
이 소설은 제목이 아주 발칙하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의 존재는 살아있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죽었습니다.'의 과거 시제를 쓰는 존재는 <귀신>이든지.
그렇다. 이 소설의 주인공 재준이는 혼자서 귀신 놀이를 즐긴다. 일명 시체 놀이. 죽은 영혼의 놀이.
일기를 쓸 때도 자기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느낀 감정들을 쓴다. 훨씬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간혹 관 속에 들어가는 행사를 하는 단체도 있다. 미리 유언장을 쓰고 관 안에 누워 남들이 곡하는 소리를 들어 보는 것이다. 아무리 돈이 되면 다 하는 세상이라지만 좀 꼴같잖은 이벤트이긴 한데, 그래도 거기서 많은 반성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경혜는 시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 같아 보인다.
그의 소설은 생활이 생동감있게 팔뜨닥거리는 문체라기 보다는, 오래오래 고민한 것들을 슬몃슬몃 주저하며 내놓는 듯 하다. 그래서 이 소설이 중학생의 생활을 소재로 한 것 치곤 좀 무겁게 보일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주변에서도 죽음은 얼마든지 일어난다. 특히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은 많다.
내 5촌 조카도 하나 그렇고, 올해 우리 학교에서도 한 명 하늘로 갔다. (아멘)
유미의 담임이 귀걸이를 했다고 유미에게 술집 여자... 운운하는 것은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모범생 교사들이 아이들을 얕잡아보는 드물지 않다.
어른이 해서 나쁜 짓이 아니라면 아이가 해서도 나쁜 짓은 아니다. 아이가 해서 나쁜 짓이라면 그건 어른이 해도 나쁜 짓이다. 이런 기준으로 아이들을 혼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아직 어려서 자기가 한 일에 책임질 능력이 없으니 학교에서는 과잉보호를 하는 것일 뿐이란 지은이의 생각은 옳고 또 옳다.
재준이는 시체놀이를 즐기는데, 아이들이 신기하게 여기자 이런 말을 남긴다. "이걸 잘 하냐 못 하냐는 오로지 그걸 즐기느냐, 버티느냐의 차이야. 즐기면 얼마든지 오래 가지만 버티면 금방 끝나. 그게 요령이야." 이건 인생의 모든 면이 그렇다.
철학한다는 유미의 엄마는 학교에 대해 아주 불만이 많다.
그런데, 사실 한국의 모든 사람들은 학교에 대해 아주 불만이 많지 않을까?
그런데도 진지한 토론을 벌여 학교를 개혁할 생각을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미필적 고의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학교 교육은 고양이고, 금붕어고, 뱀이고, 코끼리고 모두 모아다가 각자 잘 하는 걸 더 잘 하게 하는 게 아니라 그 모든 동물들을 똑같이 만들게 하는 교육이라고. 고양이더라 물 속에서 헤엄도 치고, 똬리도 틀고, 코로 물도 뿜으라고 요구하는 교육이라고." 그래.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게 최고다.
모든 부모는 자식들에게 다 감옥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부모를 이해해 나가는 유미는 너무 성숙한 거 아닌가?
아이들을 소재로 글을 쓰긴 했지만, 그리고 소설로 엮어 내긴 했지만, 지은이의 생각들이 오랜 생각을 모아낸 듯한 느낌이 들어 책 전체가 다소 묵직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앞으로 기대되는 작가다. 이경혜. 그의 이름을 기억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