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독서뿐 - 허균에서 홍길주까지 옛사람 9인의 핵심 독서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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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붙들고 있는 사람을 볼 수가 없다.

지난 주에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

책을 읽고 있는데 사람들이 힐끗거리고 날 쳐다보는 시선이 많았다.

이상한 인종을 본다는 듯... 그들은 다들 똑같은 걸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민 선생 책을 참 부지런히 읽는데도, 쓰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한다.

덮어놓고 넘치게 읽는 걸, '남독'이라고 하는데,

또 죽자고 읽기만 하는 걸, '도능독'이라고 하는데,

정민 선생이 '다산 지식 경영법'을 몸소 실천하여 다작을 하는데, 깊이가 좀 아쉽다.

 

이 책에서는 읽기에 대한 9인의 이야기를 묶었다.

조선 사람들이니, 그 독서의 틀이 한문서적들에 한정된다.

읽는 방법은 특정되지 않는다.

 

책이란,

1. 명도정덕의 경전

2. 경세치용의 역사실용서

3. 수사미관의 문장서

4. 계물흡문의 고증훈고서

5. 유담파적의 소설쇄기... 등으로 분류한다. (362)

 

홍석주의 분류인데, 조선의 책에 대한 관점을 잘 드러낸다.

홍석주가 마지막 것을 경계한 반면, 사실 독서라고 하면

현대인들은 마지막 것을 염두에 두지 않나 싶다.

 

경전이 사라진 시대,

역사 역시 '소설쇄기'를 통해서나 접하고,

그나마 드라마를 통해 바라보게 되는 시대.

'중고등학교 문제집'은 '실용서'에 속할 것이고,

참으로 독서의 범위가 천해지고 속된 것으로 좁혀졌다는 생각이 든다.

 

반구저기(反求諸己) : 자기 자신에게서 돌이켜 구한다.(맹자)

 

독서가 '자기 자신'과 떨어져서는 아무 힘이 없다.

 

그리고 책은 '먼 길을 가는 사람의 노정기' 역할을 한다.

 

책이란 한 부의 노정기이고,

행함이란 말에게 꼴을 먹이고 수레에 기름칠해서 노정기에 따라 몰고 또 달리는 것이다.

말에 고삐를 씌우고 수레를 손질해 두고는

몰지도 않고 달리지도 않으면서,

오직 열심히 노정기만 강론한다면,

먼 길을 가려는 계획은 끝내 무너져 이뤄질 날이 없다.(205)

 

공부를 하는 것은 '실천'과 떨어져서는 무용지물이다.

강을 건너는 뗏목은 수단일 뿐이다.

책은 뗏목이란 소리다.

강을 건너고 나면 뗏목은 버리는 것.

삶의 목적은 책을 읽는 데 있지 않다.

 

곧, 이 책은 쓸데 없는 책이다.

다만, 이정표처럼 길을 가르쳐서 사람을 헛되이 돌게 하지 않는 정도의 역할이다.

 

이 책에서 책을 읽는다는 일은, 공부한다는 일과 같은 의미인데,

공부할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放' - 마음을 내버려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求放心' - 방심을 구하는 것이다.

 

두가지 다 중요하다.

 

가슴속에 떡덩어리처럼 딱 맺힌 것이 있게 된다.

그럴 때는 등한하게 내버려두되 생각조차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101)

 

이렇게 방심하고 있어야 할 때도 있는 법.

그렇지만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노라면, 어느 순간 문리가 확 트이는 법이다.

 

그렇지만 '맹자'에서 논한 바,

공부란 '방심을 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방심의 상태에서 마음을 구하는 것.

 

그러니, 늘 방심하도록 놔두지 말고, 정밀한 독서에 힘쓰되,

골똘히 생각해도 막혀 진전이 없을 때는 '방심'의 방법을 쓰는 것도 한 이치.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니,

골똘히 안고 마음을 담글 책을 맞으러

깊은 책장 속으로 산책을 떠나게 해주는 책이다.

다만, 책장 속에서 길을 잃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헤매기만 해서는 곤란할 노릇.

 

----------- 편집 오류 하나

 

284. 책 꽤나 읽었다는~~, 공부 꽤나 했다는~~

  이것들은 '깨나'라는 조사로 붙여 쓰고 '책깨나, 공부깨나'라고 써야 옳다.

 

꽤나 부사보통보다 더한 정도로.

    (예) 2월이었지만 햇살은 꽤나 따뜻했다.

 

깨나 조사체언의 뒤에 붙어, 어느 정도 이상이나 상당한 정도임을 나타내는 보조사.

                       주로 아니꼽거나 눈꼴사납다는 투로 쓰인다.

    (예) 나이깨나 든 사람이 하는 행동이 어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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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부의 서재 - 어느 외주 교정자의 독서일기
임호부 지음 / 산과글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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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와~ 님은 알라딘 서재에서 몇 년째 만난 분이다.

이번에 '임호부'란 재밌는 필명으로 책을 냈다.

나랑 동갑이어서 같은 시대를 살아온 이야기엔 공감도 가면서도,

독문과(왠지 독문~은 딱딱하고 독해보인다.) 출신이어선지,

문학적 감성이 말랑말랑 멜랑꼴리하다가도 어려운 말들이 막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을 때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던 두 고정관념은,

'외주교정자'와 '헛헛함'이었다.

 

어쩌면, 그것들이 이 책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들인지도 모른다.

외주교정자로서의 일은 '독서가로서의 작가'와는 같아보이지만 전혀 다른 일을 하게 할 수도 있다.

외주교정자는 '정독'보다는 '문자독'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헛헛함'은 그의 '후와' 하는 한숨 소리와 상관있는 심사같기도 하고,

스토리 텔링에 몰두하기보다는, 스토리 사이사이, 인물들 사이사이의 기류를 감지하는 촉이 발달한

작가의 숨소리가 내 마음에 닿아서 느끼게 하는 심리적 상관물 같기도 하다.

 

암튼, 내가 전혀 모르거나 관심이 없었던 책들도 많아서... 지루한 독서였던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 이러이러한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쓰여진 책이라기보다는,

이러이러한 글들을 모아서 꾸린 책이어서 작가의 목소리도 뜬금없이 어눌하면서도 수다하고,

읽는 이 역시 좀 당황스런 맘을 감출 수 없다.

 

이 책에서 몇 번이나 등장하는 '나이브'하다는 말은,

작가가 '프로'의식이 없어보여,

쓸데없는 겸손 내지는 자신감 없음으로 비춰져 눈에 거슬렸다.

전문적인 분야라면 좀더 자료를 찾아야 할 것이고,

정서적으로 에두르는 분야라도 '나이브'하다는 것은,

뭔가 '치열하지 못함'의 변명인 듯 하여 눈에 자꾸 밟힌 것 같다.

 

그이의 가장 큰 '주특기'는 개념을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다.

거기서 일반적인 통념과 다른 사념을 솔솔 풀어내는데, 그런 장기를 잘 살려 쓴 글들은 정말 맛깔나다.

입장을 몇 가지로 해석하는 그런 것.

 

'도망치기'라는 제목은

마치 입장을 끊임없이 유예하려는 내 지질한 모습을 연상시킨다.(184)

 

이런 것이 작가의 '입장'이래서야...

 

눈이 올 때 생각나는 사람은 기쁨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고,

비가 올 때 생각나는 사람은 슬픔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다.

눈을 함께 맞는 사람과는 연애를 할 수도 있고,

또 그렇게 헤어질 수도 있지만,

비를 함께 맞는 사람과는 설사 연애는 할 수 없더라도 쉽게 헤어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기쁨은 때가 되면 우리를 떠나지만 슬픔은 어지간해선 우리를 놔주지 않으니까.

기쁨은 발산이고 슬픔은 수렴이다.

기쁨은 증발되지만 슬픔은 스며든다.

기쁨은 !!!이고 슬픔은.......이다.(208)

 

김소연이랑 '마음 사전'을 쓰라고 둘이 놀라고 하면,

아마 죽을 때까지도 놀 수 있을 사람이다.

 

 

 

인생을 허비한다는 표현은 함부로 쓸 게 못 된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끼거나 혹은 낭비할 수가 있겠는가.

인생을 부여받을 때 얼마의 시간을 어떻게 쓰겠노라고 미리 계약서를 작성한 것도 아닌데.

가장 끔찍한 오만은 내 인생의 선로나 항로가 이미 정비되어 있음은 물론

내가 그 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150)

 

그이 글 속에선 '겸손'과 '주저'가 뒤섞여 나온다.

그것이 그의 글의 묘미로도 작용하고, 심심하다고 느껴지는 한계로도 비쳐진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나랑 비슷한 구석도 많은 사람 같다.

그랑 술을 마시면, 술병만 줄줄 늘어서고, 회만 급속도로 줄어들고,

묵묵한 시간이 술잔 사이로 가득할 것이다.

아마, 그러고도 지루하지 않게 취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호,흡'이 '흡, 흡'하고 숨이 컥, 막히는 '흡기 吸氣'가 아니라,

'후와~'하고 내쉬는 '호기 呼氣'라서 다행이다.

 

이렇게 우연히 써두었던 글들을 모아서 낸 책이라,

참 좋은 그의 글들이 아쉬운 측면이 많다.

 

이제 외주교정자란 직업을 좀 벗어두려는 계획이라면,

조용히 앉아서 글을 쓸 시간과 공간을 누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작정하고 글을 쓰면 더 진도가 안 나갈는지도 모르지만,

남의 글에서 눈을 떼고, 자신의 마음을 살며시 열어 일관된 글들이 주르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한다.

 

그래서 그때는,

임호부란 필명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이름 석 자를 드러내 주기 바란다. ^^

 

(후와 님, 이 얄궂은 글에 제 응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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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인문학
한귀은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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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명이 모이는 어떤 모임에서 딱 한 번 한귀은 선생을 본 적이 있다.

그나 나나 그 모임의 핵심 멤버는 아니고, 그저 숟가락 얹는 수준이어서 말 한 마디 나눌 일도 없었지만,

조여정처럼 생긴 예쁘고 참한 얼굴인데, 싱그런 젊음이 아니라 찌든 삶의 짠함이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이 책을 읽노라니, 그의 짠한 마음이 그득 묻어난다.

그 날들을 이렇게 읽고, 보고 쓰면서 살아 왔으리라.

이렇게 인문학이 그의 힘든 날들을 겨우 지탱하는 줄기가 되어 주었으리라... 생각하니 더 짠해진다.

 

그의 사고는 '사랑, 행복, 고독, 상처, 그리고 노년'을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중간에는 재밌는 소설 이야기, 영화 이야기, 음악 이야기들이 가득해서 풍요롭다.

이야기는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폭 빠지게 매력적이지도 않다.

 

존 레넌의 'Grow old with me' 가사를 인용하는데,

Grow old along with me,

The best is yet to be.

나와 함께 늙어 가자.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나이가 들면 노화되고 퇴화되고

침식되고 약화될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는 상당히 용감하다.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니... 힘을 준다.

 

그래선가 그의 최근 책은 <가장 좋은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이다.

- 인문고전에서 사랑의 기술을 배워라

 

사노라면,

황인숙 시에서처럼 '어쩌겠니'라든지,

박찬욱 감독처럼 '안됨 말고'라는 말이 힘이 될 날이 분명히 있다.

그렇게 삶은 만만하지 않다.

 

진리란 타인과의 진정한 마주침에서 만들어지는 것.(알랭 바디우, 111)

 

그의 사랑 이야기는 이론적이고, 사변적이고, 장황하면서, 쓰라린 맛이다.

부채표 활명수처럼 톡 쏘면서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맛이라기보다는,

정체 불명의 건강 식품처럼 콕 찝어 몇 단어로 말할 수 없는 오묘하게 불쾌한 맛이랄까...

 

어쩌면, 아직도 그가 '타인과의 진정한 마주침'을 간구하고 있는 존재임을 그렇게 드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그 '무엇' 안에 있다고 여겨지는

'무엇 이상의 어떤 것'에 대한 욕망이다.(자크 라캉, 112)

 

타인과의 진정한 마주침을 욕망하는 자에게,

만남은 피곤하다.

'진정한 마주침' 안에는 '만남' 이상의 어떤 것이 있을 것이라고 간절히 바라는 상태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을 그닥 신뢰하지 않는 듯 하다.

 

아이를 칭찬하는 일은 그만큼 쉽지 않다.

아이가 한 행동의 약 5%는 칭찬받을 만하다.(118)

 

어휴, 사범대에서 가르친다는 이가. 이렇게 아이에 대하여 비관적으로 생각한다면... 우짜겠노...ㅠㅜ

내 관점은 다르다.

아이를 칭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다만, 아이가 한 행동의 약 5% 정도는 늘 야단맞을 행동이어서,

어른들의 눈에는 칭찬받을 95%의 적응행동보다, 눈에 도드라지는 5%의 부적응행동이 크게 보여 혼낼 때가 많아 보인다.

 

잠들어 있는 내 아이의 얼굴을 보며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이 타자야, 이 알 수 없는 존재야.

내일도 너로 인해 내가 미치겠구나.

그러면서 웃는다.

이 타자때문에 내일도 사는 게 재밌을 거고, 흐뭇할 거고,

이 타자에게서 나는 묘하고도 달달한 냄새 때문에 마음이 훈훈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166)

 

그래. 그는 95% 정도는 아이가 이쁜 걸 알고 있다. 다행이다.

내 아이만 그런 건 아니다. 아이들의 5% 잘못을 지적질하는 것이 교사의 본분은 아니다.

95%의 발전을 위해서 5%의 잘못을 바루어 나가는 것이 교사의 본질이다.

 

결국 인간은 자아에 의해 굴절된 세계를 경험할 뿐이다.(니체, 184)

 

그의 이 책이 재미있고, 유용하기도 하지만,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이 이런 것이다.

그는 국립대 교수로서 살아온 모범생이라는 것.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 역시 상당히 우수한 성적을 거둔 모범생들이었다는 것.

 

성취와 과정을 다 잡아야 하므로 나는 뭔가를 '취미'로 배우지 못한다.

그것은 '성공'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나는 음반을 모으고 그것을 열심히 듣는데,

그것 또한 내가 하는 어떤 일,

예를 들면 글쓰기 같은 것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198)

 

언제나 너무 착한 여자로 치부되었던 여자들이여.

좀 늦었지만 이제는 '늙은 애'가 될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늙은 애'가 되어 '애늙은이'였던 자신을 많이 토닥여주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길 바란다.(206)

 

이런 작가가 나는 안쓰럽고 짠하다.

그가 애늙은이였던 시절을 거쳐, 아직도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늙은 애'든 '어린 애'든

'애'는 '최선'을 다해 무엇을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철부지'라는 말도 그렇다.

 

그저 자기 맘에 내키면 하는 사람을 '애'라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을 '자유인'이라 부른다면,

'낙타'처럼 뚜벅뚜벅 맡을 일을 성싱히 하는 사람보다,

'사자'처럼 용맹스럽게 자기 일을 성취하는 사람보다,

'어린이'처럼 바닷가 모래밭에서 조개 껍데기와 모래성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높이친 니체의 말을

머리로 이해하는 사람은 '애'가 아니다.

니체의 저 말은, 몸이 무람없이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늙은 애'는 훈련이 필요하고, 철학이 필요한 경지일 것이다.

 

 

건강함이란 상처받을 수 있는 능력.(레비나스, 224)

 

애늙은이들은 달리다가 넘어져 상처입는 일이 드물다.

늘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생활해서,

조용하고, 어른스러우며, 조심스럽게 산다.

그래서 다들 '참 어른스럽다.'며 칭찬한다.

 

그러나, 그는 '건강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상처가 생겨야 딱지가 앉고 저항이 생기는 법이다.

상처를 비껴가기만 해서는 딱지도, 저항도 요원한 일이다.

 

그가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권하는 이유는, <건강하게 상처받기>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건강하게 상처받기>를,

<긁어 부스럼>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빌어 준다.

 

이건 그에게만 주는 비원이 아니라, 나에게 주는 용기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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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클래식 - 우리 시대 지식인 101명이 뽑은 인생을 바꾼 고전
정민 외 36명 지음, 어수웅 엮음 / 민음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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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와 포스는 다르다.

파워는 삶의 활력소고, 삶의 주체로서 느끼는 힘이고,

포스는 상대적으로 비교할 때 객체가 되어 느끼는 힘이다.

포스는 무력이고 파워는 인생에서 우러나는 아우라다.

 

독서가 파워있게 되려면,

우선 책을 읽은 사람의 심금의 거문고줄을 '둥~~~~~~~~~'하고 오래 울리게 되어야 한다.

흔히 '인생을 바꾸는 독서'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꿀 리가 있나?

분명 어떤 계기가 있었겠지만,

그 시절에 읽은 책이 오래 울림이 남는 거겠지.

 

나는 책을 읽어온 것이 한 십 년 되어간다.

그 전에도 되는대로 닥치는대로 소설도 읽고 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하면서 리뷰를 남기고 정리를 한 것이 한 십 년 된다.

 

그러면서 생긴 버릇이,

고전들을 섭렵하고 싶다는 마음의 충동질이다.

 

이 책엔 등장하지 않지만,

내 마음의 거문고를 울린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금강경'이다.

'선으로 읽는 금강경'인가 하는 두툼한 책을 읽으면서,

삶의 무게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된 듯 하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은 유명한 것들이다.

소개한 사람들도 유명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여러 작품을 소개할 때 늘 아쉬운 점은,

통일성이 없다는 것이고,

고전이 좋다~고 말하면서, 그 고전에 대하여 좀 더 상세히 설명하는 일을 뛰어넘고,

자기 감상을 늘어 놓기 쉽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그 아쉬움들을 잘 해소한다.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짧은 속에 줄거리와 핵심을 잘 짚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은 무궁무진 늘어난다.

그렇지만, 내 시간이 허여하는대로 흘러갈 노릇이다.

 

작가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일종의 '어린이 정신'.

세계는 선한 자와 악한 자로 이분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정신으로 충만하여 사는 성인과 그것을 잃어버린 불행한 사람들로 나뉘는 것임을 깨우친다.(20)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이런 책을 어찌 읽어보고 싶지 않겠는가.

 

플로베르에 이르러 글쓰기는,

그 내용과 형식의 대립 자체가 사라진다.

글을 쓰는 것과 사유하는 것의 차이가 사라지며

글쓰기는 어떤 총체적 존재가 된다.

그리하여 플로베르의 문장들은 하나하나 독립된 사물이 된다.

그래서 '마담 보바리'는 줄거리로 이해해야 할 작품이 아니라,

직접 읽어 봐야 그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런 유혹을 참는 일은 견디기 힘들다.

 

인간의 수명은 길어지고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무시무시하게 빨라진 오늘날 우리에게,

더 이상 십 대라는 나이는 큰 의미가 없다.

나나 내 자식들이나 심지어 내 부모들마저도,

우리는 모두 똑같이 성장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이제 성장은 평생의 과제가 되었고,

그 막막한 불확정성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격려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데미안'이 우리 곁에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135)

 

불후의 명작이란 말이 있다.

오래 되어도 썩지 않는다는 말이다.

 

진정한 클래식은 오래되어 표지가 낡아갈수록,

그 깊이가 더해지는 힘이 있는 책을 말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책을 소개하고 있지만,

글이 길지 않아서 아쉬운 점도 있지만,

고전의 힘을 보여주기에 훌륭한 역할을 할 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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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시공 -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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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평단 도서였는데,

제목이 뭔가 매력적으로 사람을 끌고,

표지도 상당히 이뻐서 관심을 갖게 한다.

 

근데... --;

읽으면서는 뭔가 열심히 먹고 있는데도 배고픈 듯한 느낌이랄까?

조밀하게 꽉찬 느낌이 아니라, 헤설피 얼버무려서 흘러나가버리는 듯한 허전함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음을 감출 수 없다.

 

바람에 비해선, 허전하다.

책읽는 이들의 이야기에 대한 책은 많다.

그런데, 이왕이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으면 덜 허전했을 거란 느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책을 읽는 사람에게 끌린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부분)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얼굴은 두 배로 환한데,

그 까닭은 책 속에 들어있는 꿈, 곧 바깥에서 오는 에너지와 독자가 읽으면서 꾸는 꿈,

곧 안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상승작용을 하기 때문이다.(291)

 

혹자는 독서인의 모습이 아름답다고도 하고, 섹시하다고도 하는데,

안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책의 아우라가 어우러져 독특한 파동을 만들어 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무덤이 되느냐 보물이 되느냐

내가 말을 하느냐 침묵을 지키느냐는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것은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있다.

친구여, 욕구 없이는 부디 들어오지 마라.(폴 발레리, 책의 입장에서, 236)

 

책은 읽는 자에게 자신의 몸을 내준다.

마음도 내준다.

그러나, 그 몸과 마음을 취하는 독자의 욕구에 따라,

결핍과 강렬한 요구에 따라 책은 보물이 되기도 하고 무덤이 되기도 하며,

빛을 내는 황금의 웅변이 되기도 하고, 잿빛 침묵이 되기도 한다.

 

책 속의 문장에 눈길이 닿으면 냉동되어 있던 생각의 얼음들이 녹아 따뜻해지면서

 생각의 아지랑이를 무럭무럭 피어나게 한다.(233)

 

이렇게 생각의 아지랑이를 모락모락 피어올리는 사람의 주변에선

모름지기 따뜻한 황금빛 아우라가 돋아오를 것이다.

얼음같은 생각들은 해동되고 승화되어 주변을 덥히게 마련이다.

그 마법의 열쇠는,

책에서 발생한 입자가 눈의 시세포에 와 닿으면서 일으키는 진동에서 시작된다.

 

책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

책은 읽어야 하는 것이다.

 

프로방스의 작가 피에르 마냥은 지니고 살던 수많은 책을 다 기증하고 오로지 25권의 책만 집에 남겨 두었다.

시인이자 사드 백작 연구 전문가인 질베르 레리는 집에 오로지 1백권의 책만 가지고 산다.

새로 한 권의 책을 더하면 이미 있던 것 중 한 권의 책을 덜어낸다.

'사물들'의 작가 조르주 페렉은 361이 가장 이상적인 숫자라며 그 숫자만큼의 책만 소장하는 친구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흩어지고 사라진다.

죽기 전에 서재를 없앨 것이냐, 죽고 나서 서재가 흩어지게 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139)

 

책을 읽는 것이 의미가 있지만,

또 특별한 책들은 쓰다듬어 보고 어루만져 보는 것으로도 의미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책들은 향긋하고 다사롭고 보드레한 감각으로 충만하다.

 

어차피 내 서재의 책들도 다 사라지고 흩어질 것이다.

이왕이면 생전에 그것들을 기증하고 나누는 것이 더 의미있지 싶다.

 

박이문은 '둥지의 철학'에서

철학하기란 자신의 영혼이 편안하게 거처할 개념적 둥지를 짓고

계속 리모델링하는 작업이라고 보고 있는데,

장년의 독서야말로

자기 자신의 정신적 안정과 휴식을 위한 '둥지 짓기'로서의 독서라고 할 수 있다.

책 속에서 얻은 것들을 자신의 문제의식에 따라 부서지지 않게 배치하고

쌓아올리고 빈 구멍을 메워가는 독서야말로 자기 자신만의 정신적 삶을 사는 길이다.(83)

 

젊어서도 책을 좋아했지만,

나이들어 읽는 책은 남다르다.

정신적 둥지를 짓기 위해 곁가지 하나도 의지가 된다.

더군다나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을 만나는 인터넷 공간도 큰 도움이 된다.

 

두뇌가 갈수록 퇴화하는 나이일수록,

잔가지는 잊어버리게 되겠지만,

큰 우듬지는 아우를 줄 아는 지혜를 책을 통해 얻기를 바라며,

잔가지도 놓치기 싫은 것은 기록을 하고,

때때로 얻어지는 그루터기같은 정신적 지혜들을 적어 놓으려

나는 오늘도 이 전자의 허공에 또 기록하고 적어 두는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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