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시대 -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제자백가의 귀환 1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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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한 권 씩 나올 때마다 사모았던 추억이 있다.

우표 수집가가 우표 발행일을 기다려 우체국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달려가듯,

강신주의 제자백가 이야기 열두 권을 기다리는 마음은 행복하다.

 

이제 그 첫 권을 읽었고, 두번째 책을 사 두었다.

안그래도 '아트앤스터디'에서 강신주의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때마침 열두 권이나 되는 대작을 저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반갑기 그지없다.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

중국 땅에 불었던 풍운의 바람은 숱하게 많은 영웅들과

숱하게 많은 사상들을 배태하였다.

그러나... 전쟁과 독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상들은 유실되어 버리고 만다.

우선 첫 권은 왜 제자백가인가?의 물음이다.

 

혼란과 질서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것은,

공자로 귀결지어지는 당위론은 아닐 것이다.

많은 제후들이 타당성을 인정하고 채택하였던 다양한 사상들에 대하여 살펴보는 일 역시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첫 권에선 상(은)나라와 주나라에서 시작한다.

역사는 승자의 몫이기에 더럽혀진 이름 속에서도 올곧은 역사를 읽을 줄 아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

강신주를 따라 걷노라면 혜안을 구경할 수 있다.

 

당대를 읽어내기 위해 주역, 춘추, 시경까지 읽어주는 섬세함을 강신주는 발휘한다.

철학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역사'와 '문학'까지 읽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신주가 젊어서 고마운 이유다.

 

제자백가를 분류하는 데 '공자'를 맨 앞에 둘 필요는 없다.

공자를 맨 앞에 둔 것 역시 어떤 집단의 패러다임이 목표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곱씹노라면, 사마천 이전의 이야기도 읽을 수 있다.

사마천이 제시한 역사의 패러다임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어 고맙다.

 

제2권에서는 공자가 본격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공자에 앞서 <관중>을 들이미는 것은 어떤 소이연일지... 자못 궁금하다.

이 책은 여러번 읽어야 할 책으로 열두 권의 자리를 미리 서가에 만들어 두어야 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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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2-01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권은 아직 제 책상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강신주의 다음권이 나오면 아마도 빨리 읽어 내려가겠죠?

글샘 2012-02-02 18:55   좋아요 0 | URL
1권보다 2권이 재미있네요. 1권은 아무래도 개괄적이고 기본적 설명에 할애된 분야니깐...
빨리 12권이 다나왔으면... 좋겠구만... ^^
 
중용 인간의 맛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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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어떤 교수가 수업 시간에 밤과 낮은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더니 학생들 의견은 분분...
교수 왈, 옆자리 사람을 돌아보라. 옆자리 사람을 보고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으면 낮이고,
그 사람에게 아무 생각이 없거나 짜증이 생기면 그건 밤이다... 이런 해석을 했다는... 

이 이야긴, 아마 이런 상황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어디서 재밌는 이야길 들었는데, 옆사람한테 키킥거리면서 말해줄 수 있으면 낮이고 아니면 밤.
아마존 강을 누가 발견했는지 알아? 글쎄... 아마.... 존?...  

모든 기쁨은 인간에게서 오고 그 반대도 역시 인간에게서 나온다.
중용은 <중간만 가라> <한쪽으로 치우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뜻으로 쓰면 안 된다.
워낙 험악한 현대사를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중용은 정말 살아남기 위해서 걸어야했던 중도로 읽혔을지도 모를 일이다만. 

왜 지금 중용인가?
정말 치우친 정부가 하늘의 뜻도 무시한 채,
자기의 모태인 강을 파헤치고, 국가의 모체인 국민을 불태워죽이고 물에빠져 죽이고 영웅만드는 현실에 비분하여 쓴 것일까?
아무튼 EBS 도올 강의가 중도하차할 뻔 하다가 10.26 돌 선생의 1인 시위와 나꼼수 이후에
갑자기 다시 슬며시 안방에 착종하였다는 희대의 코미디가 연출되기도 했던 바,
이전의 '노자 강의' 책을 재미없이 보았던 나로서는 '중용' 역시 글쎄 하고 봤는데,
아니다, 이 책은 쉽고 재미있다.(물론 돌 선생 특유의 현학은 감춰지지 않는다. 말 좀 알아듣게 쓰면 안 되나? 온갖 언어가 마구 뒤죽박죽되어 쓰여 있어서 나도 못알아 먹는 단어가 많다. 국어선생도 모르는 외래어들이라니... 그치만, 그런 말들은 캐무시하고 넘어가도 글의 요지를 이해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한문을 풀어가는 강의도 아니다.
중용에서 가장 중시하는 '어휘'가 무엇인지,
그 어휘들은 동양 사상, 공자의 사상에서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를 잘 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용 전체에서 포인트가 될 점들에 대하여 강조하는 강의라서 마음에 들었다.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이 첫머리부터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책이 중용인데,
도올의 중용에서 '성'과 '교' 가운데 놓인 '도'를 비로소 찾게 되었다. 

도란 것은 잠시도 떨어지면 안 되는 것이어서, 신독(홀로있어도 삼감)할 정도로 조고각하 해야 할 노릇임으로 중용은 시작한다. 

중은 천하의 근본이고 '和'는 도달해야할 지점이다.
시중, 군자의 중용이란다. 때에 맞게 운용하는 것. 선분의 중점이 아니라, 연속선 상의 미분계수랄까?
소인의 중용은 무기탄이란다. 꺼리는 것 없이 지껄이는 것.
중용이 오래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맛을 아는 것도 당연한 노릇이다. 

그런데 중용은 비겁한 등신이 아니다.
백인가도... 시퍼런 칼날에서 춤출 수도 있을 정도의 '誠'이 중용의 요체인데,
천하지성... 천하 최고의 '성'을 강조하는 책이 중용이다. 

인간은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제 살아 움직이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
그 다음엔 '치곡'이랬다. 기차치곡.
소소한 사물에까지 정성을 다하는 세심함. 
아무래도 공자는 '소음인'이면서 A형이었던 모양이다. ㅎㅎ 

지성무식... 그 성실함을 쉬지 않고 하는 일.
그러면서도 무성무취, 지의한 '성'
소리도 나지 않고 냄새도 없지만, 지극하도다~ 중용의 도리여...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마지막에 한글 중용을 정리해서 덧붙여 둔 것이다.
틈날 때마다 읽어볼 염을 내게 하는 것은 오직 이 마지막 부분의 힘이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이 1장을 읽다가 '에잇, 뭐 이렇게 잘난 척만 하고 있어?'이렇게 덮어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팔린 책들의 절반 이상은 1장에서 에잇, 이러고 덮일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은 어차피 한번 읽는다고 줄거리가 좌르륵 일렬종대로 정렬할 책은 아니다.
중용의 덕을 공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왜 이 책이 4서 안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알고 이해해야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전, 특히 한문의 맛은 천천히 마음에 드는 구절을 수첩에 적어 두고,
느긋하게 음미하는,
언어를 뛰어넘는 의미장의 힘을 느끼는 경험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책을 조급하게 읽지 말고, 느긋하게 감상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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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11-12-01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워서 못 다는 읽더라고 한 권쯤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책이에요.

글샘 2011-12-02 11:27   좋아요 0 | URL
1장만 좀 넘어가면 어렵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해석을 해나가면서 읽으면 되죠. 꼭 읽어 보세요. 꽂아두고 바라만 보지 마시고.. ㅋ
 
만화로 보는 주역 - 하
이기동.최영진 글, 변영우 그림 / 동아출판사(두산)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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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위편삼절... 

주역은 하나의 상징 체계다. 

주역을 읽으려고 책을 여러 권 사 두었는데,
만화가 일단 만만하니까 먼저 읽으려다 보니,
이 책은 효사를 풀이하는 데 중점을 둔 책이다. 
그래서 결코 만만하지 않다.

효사보다는 전이나 괘사를 읽고 싶기때문에 다른 책을 먼저 들썩거린다. 

'주역, 인간의 법칙'은 주역이란 책에 대하여 주로 쓰고 있는데 별로 재미가 없고,
남회근의 '주역 계사 강의'는 상징에 대하여 재미있게 쓰고 있다. 

정병석 역주의 '주역 상, 하'는 괘사만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괘사를 상세히 풀이하면서 풍부한 예를 들어 두었다.

이 만화는 주역이란 어떤 책인가를 설명하는 상권의 절반 정도를 읽고,
효사는 차근차근 공부할 때 심심풀이 삼아 한번씩 보는 정도가 좋겠다. 

'아트앤스터디'에 이기동 선생의 주역 강의가 있다.
방학때 시간나면 들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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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탐닉 - 삶의 질문에 답하는 동서양 명저 56 고전 탐닉 1
허연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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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닉[耽溺]  : 어떤 일을 몹시 즐겨서 거기에 빠짐, addiction 

기왕에 나온 책 중에서 고전을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책이
늘 동양쪽은 신영복의 '나의 고전독법 강의',
서양쪽은 강유원의 '인문 고전 강의' 정도였다. 
이제 이 책을 한 권 더 추천할 수 있게 되어 무지무지 반갑게 생각하며 읽었다. 

그리고 나도 올해 고전을 읽겠다고 연초에 마음먹은 적도 있었음을 어렴풋이 기억하게 된다.
뭐,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 이런저런 가벼운 책들을 읽고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시인 허연 님의 글로 채워져 있는데,
고전이 초월의 경험이며 구원이라는 그의 너스레는 충분히 이유 있음을 글을 통해 보여준다. 

원래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인용'을 많이 하는 법인데,
그의 글에는 '인용'이 극히 절제되고 있다.
80년대 흔히 읽었던 사회과학 서적의 가장 큰 한계가
어떤 맥락에 닿지 않는 인용문들을 읽으며 요령부득의 추측으로 글을 소화해야했던 것인바,
작가의 글들은 짧으면서도 압축된 내용을 최선의 설명으로 남기려 노력한 흔적이 가득하다. 

그의 <고전> 목록은 여느 목록과는 조금 다르다.
보통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로 시작하여,
동양의 <논어>, <맹자>, <노,장>으로 튀다가
르네상스 이후의 다양한 작가와 작품들을 늘어놓기 십상인 <사상사>와는 다른 것은,
이 책이 그가 온몸으로 밀고 나온 독서의 결과물로서 독자들에게 슬며시 권하는 목록으로서의 <탐닉의 결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올바른 고전 독서임을 갈파하려는 듯,
그는 편안한 문학 작품부터 들이민다. 

이방인, 데미안, 위대한 개츠비, 변신, 동물농장,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분노의 포도, 율리스즈, 신곡, 두이노의 비가, 구토, 적과흑, 인간의 조건, 풀입, 오만과 편견, 등대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햄릿, 전쟁과 평화, 노인과 바다, 길 위에서(잭 케루악, 처음듣는...), 설국에 대한 권유가 100페이지를 훌쩍 넘긴다. 

꼭 고전이 부담스러운 철학서적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음을 충분히 강변하였다. 

두번째 장에서는
인간의 삶에 가장 큰 흔적을 남긴 위대한 저술들이 등장한다. 인문학 분야의 고전이라 하겠다.

프로이트와 다윈, 푸코와 데카르트, 칼 포퍼, 니체, 공자, 장자, 플라톤, 아우렐리우스,토마스 쿤, 레이첼 카슨, 비스겐슈타인, 에리히 프롬의 글들은 당연히 읽어야 할 목록들이란 듯, 쉽게 들이민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사회과학 서적의 고전들을 망라한다.

롤스의 정의론, 군주론, 슬픈 열대, 국부론, 자본론,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맥루한의 미디어 이해, 루소의 사회계약론,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부르디외, 보봐르, 홉스, 카네티, 열하일기, 사마천 사기, 대니얼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 밀레트, 지멜,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까지...

숨가쁘게 달려가는 고전 탐닉은
한가지 큰 단점도 남긴다.

이 책을 읽고, 다이제스트를 읽어 뭔가 많이 부족하다. 원전을 읽어야겠다...는 감정이 솔솔 피어오르기 보다는,
허연 덕에 고전 안 읽고도 읽은 체를 할 수 있겠군...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이거, 이런 다이제스트로 고전을 섭렵한 체 하는 거 아냐? 하는 불안감도 머리를 들지만,
어쨌든, 이 책을 밑줄 좍좍 그으면서 작가와 책 제목, 그 책의 주요 개념만이라도 대학 1학년 때 머릿속에 넣어둔다면,
평생 살면서 차근차근 공부할 거리는 충분히 누적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와 저작들은 대학 다니면서 교수들이 소개한 것들이 많다.
이런 책이 이제라도 나온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아이들의 대학 입학 축하 선물로, 이 책을 꼭 밑줄 그어가면서 읽고,
더 확산적인 독서의 길로 접어들기를 바란다는 말을 해주는 데 꼭 적합한 책이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이해시킴으로써 승리를 거두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자들이 죽고 새로운 진리를 신봉하는 세대가 주류가 되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155, 토마스 쿤)

아, 구시대가 죽어야 새시대가 오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도 구세대로서 신세대에게 '고전읽기의 필요성' 내지는 '고전읽기의 힘'을 전수하면서 죽어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권하기 좋은 책을 만나 참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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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득록, 정조대왕어록
남현희 엮음 / 문자향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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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쁠 망(忙)자를 깨어 보면,
'마음 심' 변에 '망할 망'을 쓴다.
곧, 마음이 죽는다는 말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인간은 진면목을 놓치고 살게 된다.
정신이 없도록 바쁜 일은,
그래서 하루라도 웃지 않고 보낸 날,
바빠서 웃음 한 번 머금지 못한 날은, 마음이 죽은 날이다. 

정조대왕 어록인 '일득록'이 영화 '오월愛'에 나왔던 여고생일기를 적은 여자분의 기록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으로 올랐다는 기록을 만난 일이 있다.

일득록은 신하들의 눈에 비친 정조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정조 7년 규장각 직제학 정지검의 건의 로 처음 시작되었는데,
사관의 기록과는 별도로 규장각 신하들이 평소 보고 들었던 것을 기록해 두었다가,
연말에 그 기록을 모으고 편집하여 규장각에 보관한 것이다. 

정조의 시대는 조선이 이미 성리학적 질서를 버리던 시대였다.
정조가 굳이 성리학적 질서를 옹호하면서 돌아가려 했던 시대는
어쩌면 돌아갈 수 없는 일방통행로를 역주행하려던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래서 성리학적 성군의 관점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가득하다.
성군은 자신을 철저하게 돌보고, 그리하여 백성에게 힘든 일은 덜어주며 베풂을 전하려는 의도를 남기려 한 것이다.
그러나, 정조가 사랑했던 학자들의 눈에는 이미 변화하는 세계가 들어오는 것인 바,
서양의 종교와 프랑스 혁명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밀물져 들어오는 것에 귀를 쫑긋 세우는 시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행간을 읽으려 노력하였다.
성군이 되는 일의 염결함을 스스러운 태도로 쿨하게 드러내는 임금처럼 보이려 노력하는 군주.
그러나, 물결처럼 파도치는 세계 속의 근대 조선의 맹아가 나날이 싹트는 것을 느끼는 군주.
그 사이의 결기 서린 긴장감과 둘러치기의 명수들이 내놓는 언어들은 오히려 세상을 곧이곧대로 읽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사람을 대할 때 성심으로 대한다면 그 사람도 나를 성심으로 대할 것이다.
이는 서 恕자 공부다.
내가 평생토록 추구한 것은 이 한 글자에 있다. 

용서 서자를 파자하면 '여심 如心'이 된다.
마음이 같다는 뜻.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남도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남도 싫어한다.
나와 남의 공통된 마음, 이것이 서이다.
내 마음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니 성심으로 대하게 되는 것이다. 

박람강기만으로는 남의 스승이 되기에 부족하다. 겉만 배우기 때문이다. 

정조 자신이 박람강기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폭넓게 독서하는 한편,
깊이 사색하고 치열하게 궁리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세상에는 할 수 없는 일이란 없다.  
일이 손 앞에 닥치면 저절로 그 일을 맡아서 처리할 방도가 생기게 마련이니,
서 있을 때도 눈앞에 나타나게 해야 하고,
수레에 탔을 때도 눈앞에 나타나게 해야한다.
요즘 사람들은 평소 궁리하고 격물하는 공부가 없어서, 그 때문에 일을 당하면 어떻게 손을 쓸지 모른다.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처했든,
늘 잊지 말고 생각해야 한다.
어떤 일에 집중하고 골몰하다 보면, 
서 있을 대도 그 일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수레에 탔을 때도 그 일이 눈앞에 아른거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보면 세상에는 처리하지 못할 일이 없다. 

사대부는 하지 않는 바(유소불위)가 있은 뒤라야 비로소 나랏일을 처리할 수 있다. 

유소불위... 그게 강직함이다. 

옛사람들은 젊은이가 노인과 같았으나,
요즘 사람들은 노인이 젊은이와 같다.
옛사람들은 스스로를 소중히 여겼으나,
지금 사람들을 스스로를 가벼이 여기기 때문이다. 

동안열풍, 동안종결자...  

치세의 음악은 편안하고 즐거우니
그 정치가 화평하기 때문이며,
난세의 음악은 원망스럽고 노여우니
그 정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고,
망국의 음악은 슬프고 음울하니
그 백성이 곤궁하기 때문이다.(예기) 

한국의 오늘날 음악은 '서바이벌'의 음악인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검소에서 사치로 가기는 쉬워도, 사치에서 검소로 가기는 어렵다.

 

날마다 얻는 생각을 기록하는 연유는 무엇인가. 

나는 왜 날마다 하나씩 얻은 생각을 적는가? 

넓게 읽고 열라 적는(박람강기)가 과연 하루 한 가지 얻음에 도움이 되는가?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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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6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6-17 09:27   좋아요 0 | URL
좋은 말을 읽으면서도 의심투성이인 것은,
요즘 제 독서의 흐름입니다. ^^
조선 왕조 시대는... 왕만 살자고 도망가는 이해할 수 없는... 시대였거든요.
성리학적 원리도 아니고, 비겁하던 시대죠.
일이 많아 바쁜 사람도 여러 종류예요.
그 일을 즐기면서 많이 하는 사람도 있는가하면,
멍청하게 일을 떠맡아 일이 많으면서 힘들어 죽겠다 하는...
저는 그 후자같아요. ㅎㅎ

마녀고양이 2011-06-1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인용구 너무 좋은데요.
어제 낮에 책 주문했는데, 그거 주문하기 전에 이 페이퍼를 읽어봤으면 좋았을 것을.
저도 이 책 사고 싶네요......... 아, 저야말로 왜이리 가도가도 어린애처럼 뻗대고 실수하는걸까요. ㅜㅜ

글샘 2011-06-17 09:29   좋아요 0 | URL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린 거라서 선물드릴 수가 없군요. ^^ 안타까워라.
사람은 갈수록 어린애처럼 실수하는 존재란 걸...
인간 심리 공부하는 마녀고양이님이 더 잘 아실텐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