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카르테 1 - 이상한 의사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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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테는 독일어라는데,

영어로는 차트(의료 기록)라고 부른다 한다.

카덱스 용지에 적는다는 용어와 상통하는 의미인 듯...

 

 

 

 

참 따스한 의사를 만났다.

이름도 이치토(一止), 세로로 쓰면 바를 정, 바른생활 사나이.

 

멈춰서서 가슴을 펴고 망치를 휘둘러라

발밑의 흙에 무심히 정을 갖다 대라.

서두르지 않아도 좋다.

대답은 항상 그곳에 있다.

하나에 머문다고 쓰고 '바르다'라고 읽지 않는가.(259)

 

그는 소세키의 '풀베개'를 암송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지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62)

 

의사든 누구든 직업인으로서 직장은 힘들다.

뜻대로 되지 않아 감정이 상하게 된다.

좀더 편한 일이나 승진을 꿈꾸고 도피를 찾기 쉽다.

 

원래 수명은 인간의 지혜를 벗어난 영역이다.

처음부터 운명은 정해져 있다.

흙에 묻힌 정해진 운명을 파내어

빛을 비추고 보다 나은 임종을 만들어 간다.

의사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184)

 

치유의 아즈미씨 이야기는 감명 깊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앞으로 가는 데만 급급해서

소중한 것을 버리고 가는 법이지요.

진짜 바르다는 것은 맨 처음 장소에 있는지도 몰라요.(210)

 

초심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직업에서도 대학병원으로 옮겨 더 큰 꿈을 꾀하는 일이 현명한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시골 병원에 머무른다.

 

아즈미씨가 털모자에 적어둔 편지는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저는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무쪼록 스스로를 아껴주시길...(230)

 

나도 올해로 교직 30년차가 되었다.

좀 지겨울 때도 있고,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한다.

스스로를 아껴줄 마음을 얻는 일은 고마운 일이다.

 

사람에게는 맞고 안 맞는 게 있다.

환자들의 미소를 보는 게 즐거우니

나에게는 이런 의료가 적성에 맞는 것이리라.(249)

 

교직 역시 그렇다.

이곳이 적성에 맞는 사람이 있고,

돈벌이로 마지못해 머무르는 사람도 많다.

 

적성에 맞는 직장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삶의 뒤안길에서 지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은

따스한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게다.

이미 숨이 끊어진 아즈미씨의 손에서 느끼게 되는 온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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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5-10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글샘님 페이퍼 보니 사야겠다 싶은...

글샘 2018-05-10 16:47   좋아요 1 | URL
뭐 굳이 사서 소장할 것 까지야... ^^

비연 2018-05-10 22:50   좋아요 0 | URL
ㅎㅎㅎ 빌려볼까요? 흠흠
 
연애의 행방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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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연애 해프닝 소설.

 

스키나 보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소설.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엮는 재미가 소소하지만,

작가의 본령이 추리물이다 보니,

이 작품은 소품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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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2 - 전이하는 메타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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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간 혼수상태가 이어진 끝에 심장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기관차가 종착역에 도착하면서 서서히 속도를 줄이듯이,

지극히 조용하고 자연스럽게.(574)

 

작가가 희망하는 죽음일지도...

 

제2권의 부제는 '우츠로 메타포'편이다.

우츠로는 한자로 遷을 쓴다. 옮겨간다는 의미다.

역자는 전이하는 메타포라고 적었는데, 한 부분은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원래 의미는 좀더 폭넓은 의미로 적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멘시키라는 이름에서 읽을 수 있었듯,

색즉시공, 물질은 텅 빈 의식 속에서 현존하는 것처럼 여겨질 뿐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이 세계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지 몰라.(584)

 

이런 말이 다른 말로 색즉시공으로 옮겨질 수 있겠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새벽의 화재로 영원히 소실되어버렸지만

그 훌륭한 예술작품은 내 마음속에 지금도 실재한다.

그들을 생각하면

드넓은 저수지 수면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볼 때처럼 기분이 지극히 고요해진다.

내 마음 속에서 그 비가 그치는 일은 없다.

그리고 무로는, 내 어린 딸은

그들이 내게 준 선물이다.

은총의 한 형태로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597)

 

삶에서 확실히 잡을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 있는 상황과 사람 뿐이다.

 

도후쿠 대지진을 겪은 사람들은

과거에 있었던 것이 어떤 의미를 가졌을지를 골똘히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이데아에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군요.

돌고래는 가능하지. 돌고래는 좌우 뇌를 따로 잠들게 할 수 있네.(131)

 

사람은 기사단장을 만들 수도 있고,

얼굴이 긴 사람을 따라 알 수 없는 공간으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인생이란

재미와 흥분으로 가득한 곳이기도 하고,

잿빛으로 남은 존재 자체를 믿기 힘든 어머니의 옷처럼 막연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하루키의 판타지가 도후쿠 대지진 이후 삶의 관조에 시선이 머문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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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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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튀어나온 돌출물을 일컫는 '단카이' 세대 하루키.

이번엔 미술 세계로 들어간다.

기사단장이라는 미술품.

그리고 판타지.

 

멘시키 와타루(免色 涉)란 이름은,

색을 면하고 건넌다는 의미다.

'색'은 '색즉시공'의 '색'이니 '이데아'에 반하는 '현실세계'정도 되려나 ...

현실을 벗어나 이데아의 세계로 건너가게 하는 존재라는 의미로 만든 건지도...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 (27)

 

초상화라는 세계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소설인듯 보이지만,

하루키라는 작가가 집어 넣는 섹스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여전히 식상하다.

 

모차르트의 오페라같은 작품에 필요한 것은

실내악적인 친밀함입니다.(141)

 

이 문장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대강당에서 오페라를 만나면, 흥겨운 몰입보다는 뭔가모를 이물감을 느끼게 된다.

오페라가 원래 대강당용이기보다는 친밀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무언가였음을 생각하면,

하루키가 던지려는 뭔가를 잡을 듯 하단 생각도 든다.

 

세상에는 가능하다면 모르는 편이 더 좋은 일도 있어.(376)

네가 어디서 뭘 했는지 나는 다 알고 있어.(404)

 

여러 번 반복되어 나오는 말이다.

인간의 내면은 빤하다.

 

정말정말 조용해.

이렇게 조용한 곳은 온 세상 어디를 찾아봐도 

또 없을 것 같은 정도로.

꼭 깊고 깊은 바다  밑바닥을 뚫고 한참을 더 내려간 것 같았어.

거기는 나를 위한 방이야.

아무도 올 수 없어.(417)

 

여동생이 들어간 비밀의 공간.

그곳은 지하의 공간이자 어두운 곳이다.

여동생은 금세 죽는다.

冥府 명부를 뜻하는 pluto가 금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플루토크라시가 금권정치라는데...

그 어두운 곳, 머나먼 명왕성 冥王星의 세계가 보이는 듯 하다.

 

비탈길 중간에 주저앉아...

비탈길을 굴러가는 공을 바라보는 프란츠 카프카를 상상했다.(508)

 

카프카가 비탈길을 좋아한 것은,

굴러가는 공을 관찰하기 좋은 곳이었다는 듯...

하루키는 인간 세상의 모습을 판타지를 통해 관조하고 있다.

 

흡사 물에 소쿠리를 띄우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기사단장은 말했다.

구멍 숭숭 뚫린 물건을 물에 띄우는 건

누구에게나 의미없는 짓이지.(509)

 

색즉시공을 이야기로 보여주려는 듯,

멘시키의 이야기는 뜬금없는 이야기들 속에서

다양한 시공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2권은 <이데아>를 넘어서 <메타포>라는데,

하루키의 구라가 어디까지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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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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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병원으로 나를 찾아온 뒤로

나는 꼭 한 번 엄마를 봤다.

나는 왜 엄마를 만나러 가지 않았는가.

간단히 말해 - 가지 않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188)

 

인간은 바쁘다는 핑계로

진면목을 놓치고 사는 존재다.

 

이 책의 마무리는 이렇다.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219)

 

이 책의 시작은 이렇다.

 

내가 9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입원한 뒤 3주쯤 지났을 무렵 어느 늦은 오후,

침대 발치에 놓인 의자에 엄마가 앉아 있었다.(12)

 

맹장 수술의 후유증으로 입원이 길어졌는데

엄마가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는 누구의 인생에서나 일어났을 법한 것들이고,

다 지난 시점에 보면 기억할 만한 것들은 없기도 한 것들이다.

 

그의 '올리버 키터리지'를 아주 감명깊게 읽은 나로서는

이 책은 지나치게 자전적이어서 시시하다.

 

삶은 아주 많은 부분이 추측으로 이루어진 듯하다.(22)

 

기억이라는 건,

일방적이고 흐릿하다.

 

결국, 소중한 것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오늘 내게 있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고 변질된다.

귀찮아서, 당장 편하니까 회피한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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