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풀꽃도 꽃이다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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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 전문)

 

아이들은 신비롭게 태어난다.

강낭콩만한 배아가 엄마를 입덧에 시달리게 하고,

평소 엄마가 먹지 않던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게 한다.

눈도 못 마주치던 것이 6개월이 지나면 뒤집고 기고 서고 걷는다.

음~마, 아바바...로 시작하는 언어도 2,3년이면 거짓말이나 농담을 할만큼 발전한다.

이때까지 아이들은 천재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아직도 건국중이다.

헌법 1조 1항에서 천명한 '민주'도 '공화'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제 강점기의 학교 잔재가 그대로 온존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의 욕심이 학교 현장에 투하된 결과,

일반계 학교는 몰락하고 특목고와 자사고 등만 승승장구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 와중에서 아이들의 삭막해진 정신세계가 비행으로 반영되어,

왕따, 괴롭힘, 일진의 폭력과 가출 등의 아이들 문제가 불거지지만,

정부는 언제나 무대책이거나 갖신신고 긁어대는 엉뚱한 대책만 남발하여

학교 현장을 일구덩이 속으로 밀어넣고 말았다.

 

그런 총체적 난국을 묘사하는 데는 장편소설만한 것이 없다.

조정래의 '풀꽃~' 속에는 갈등하는 아이들과 방향잃은 부모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래서 새로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근을 와서 3학년 담임을 맡아 첫날부터 밤 10시 넘도록 아이들 곁을 지켜야 하는 나로서는 이 책을 눈물겹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학교는 신도시 아파트촌에 있는 학교로 가정 형편은 중위권 정도인데,

인근 중학교의 최상위권 학생들은 일반계로 진학하지 않는다.

전에는 매년 스카이 대학을 십여 명씩 합격시키던 학교였으나,

이제 지방 국립대라도 많이 보내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조정래의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교사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념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교육민주화의 줄임인 듯한 강교민 선생은 수업도 잘하지만 아이들을 잘 이해하고,

학교의 부조리한 일은 발딱 교사가 되어 지적하고,

아이들의 곤란한 일은 두발벗고 나서서 해결해 준다.

 

소설 속이니 속시원한 이야기지만,

현실 속에서는 매일 쏟아지는 공문 처리에,

아이들 생활기록부 기록하기 위한 각종 행사 준비에,

그리고 온갖 항목의 생활기록부 입력에,

이명박이 '한국근현대사' 없애려고 바꾼 교육 과정에,

박근혜가 '국정' 추진하려 바꾼 교육 과정에,

매년 뒤바뀌는 사립대 살리기 입시 공부에,

아이들은 점점 수능 못 따라가겠다고 자빠지는데,

쾌도 난마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여기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아이들의 대부분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처럼 극단적이지 않고,

순둥이들이어서 교사의 의도에 따라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많고,

교사들도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이상한 사람들이 많지 않고,

나름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려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아직 희망이라면 희망이겠다.

 

내가 발령받던 1989년 전교조가 생길 때,

우리 아이는 좀 좋은 세상에 살까 생각했던 적도 있으나,

이제 아이가 어른이 되어 군대까지 마친 청년이 되고 나도 퇴직을 십년 정도 남겨둔 나이가 되고 보니,

대한민국의 현실은 쾌도 난마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민주가 서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공화의 이념을 가꿔 나가는데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학교를 살리는 길은,

부모가 욕심을 버리고 대안학교로 가는 길이 아니라,

나라 자체가 민주 공화국이 되는 길밖에 없다.

 

그러면 독일처럼 기술자 우대해서 독일보다 더 세심한 기술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고,

핀란드처럼 뒤처지는 아이가 없도록 하여 민주 시민을 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이 강을 오염시키고도, 자원외교로 쪽박을 차고도 멀쩡허니 사는 세상에,

박근혜가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도 저렇게 시퍼렇게 날뛰는 세상에,

지금처럼 학교가 온존하는 것도 신비로운 일이다.

 

결국, 풀꽃을 꽃이게 만드는 것은 정치다.

황지우처럼 <멀리서> 쉬이 오지않는 너를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너에게 <가는> 마음이 필요하리라.

 

부모와 교사가 읽어야 할 책이고,

정치가가 읽어야 할 책이다.

아이들이 비명지르는 소리가 가득해서, 아프지만 그래도 미래에는 좀 나아져야하지 않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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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03-0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 책은 마음 아프게 읽었어요.ㅠ 현실은 점점 나빠지는 듯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갖고 오늘도 촛불 들어요. 글샘님 소식도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