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하 (양장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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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문학이 뒤로갈수록 흡인력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이 소설 역시 뒷부분에서 좀 용두사미가 된듯 싶다.

 

카프카라는 소년을 이끌게 된 시코쿠의 도서관과

그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의 예언,

산에서 기절했던 소년이 노인이 된 부분이 절묘하게 결합되는 순간을 기대했는데,

그런 순간은 없었다.

 

호시노가 만난 샌더스 노인.

그리고 미녀와의 세 판...

생뚱맞게 튀어나온 앙리 베르그송...

 

순수한 현재라는 건

미래를 먹어가는,

과거의 붙잡기 어려운 진행이다.

사실은, 모든 지각은 이미 기억이다.(81)

 

소설 속 이런 구절은 작품을 망친다.

녹아있지 않아서다.

 

모든 물체는 이동 중에 있네.

지구도 시간도 개념도 사랑도 생명도 신념도 정의도 악도,

모든 사물은 액상적이고 과도적인 것일세.

한 장소에 하나의 형태로 영원히 머물러 있는 것은 없다네.(105)

신이라는 건 인간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라네.(104)

 

이런 구절이라든가,

체호프의 '필연성'을 설명한 구절은 과도한 표출이다.

 

필연성이라는 것은 자립적인 개념일세.

그것은 논리나 모럴이나 의미성과는 다르게 구성된 것일세.

어디까지나 역할로서의 기능이 집약된 것이지.

역할로서 필연이 아닌 것은 거기에 존재해서는 안 되지만,

반면 역할로서 필연인 것은 거기에 있어야 하네.

논리나 도덕이나 의미는 그것 자체가 아니라

관련성 속에서 생겨나네.(106)

 

체호프가 '만일 이야기 속에 권총이 나온가면 그것은 발사되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곡 작법'에 관한 것이지,

이 복잡다기한 세상과는 관계가 적다.

 

작품 속에서는 사필귀정이고 인과응보이며 전화위복이고 인지상정으로 마치지만,

세계는 뒤죽박죽이고 엉망진창이며 이전투구이고 토사구팽이기 십상이어서다.

 

메타포를 통해

저와 사에키 씨 사이에 있는 것을 꽤 많이 생략해 갈 수 있습니다.(117)

 

좋은 작품은 좋은 메타포를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글쎄다.

 

작품 속에 많은 음악들이 등장하지만,

하루키가 선호하는 음악은 바흐의 평균율 쪽보다는 격정적인 음악인 듯 싶다.

 

조용하지만

소년과 같은 유연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그리고 중심을 향해 가까이 가려는 구심적이면서도 집요한 정신(178)

 

'대공트리오'라는 음악을 통해 이런 구절을 읊조리는 것 역시,

호시노라는 청녕의 입에서 나올 법하지는 않다.

자의식이 지나치게 돌출된 것 아닌가.

 

경험을 경찰에게 말해주면

"이 미친놈아, 장난치는 거냐?" 하고 얻어맞기 십상이다.

녀석들은 국가에서 봉급을 타먹는 깡패같은 놈들이니가.(319)

 

아, 요즘 한국 경찰이 이렇다.

이런 것이 훌륭한 메타포다.

 

글자를 읽기는커녕 나카타씨가 최후에 한 일은 글자를 불태우는 일(320)

 

이 작품의 시기에 한국에서 등장한 소설들 역시,

글자를 불태워버리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런 것들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경향이었던 듯...

 

만나러 와줘서 고맙습니다.(370)

나를 기억해주는 것, 다무라 군만 나를 기억해 준다면,

다른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잊어도 괜찮아.(371)

 

판타지 속에 다양한 철학적 시도를 녹여보려 했으나,

초반을 이끌던 포석이 중반에 좀 늘어지는가 싶더니,

종반에는 맥없이 풀려버리는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다.

 

 

125. 파엘라...라는 음식이 등장한다. 스페인 어로는 '빠에야'가 더 가깝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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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물고기 2016-10-22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딩때 적지않게 꽤나 신경쓰며 읽었는데 다시금 읽고 싶어져요

글샘 2016-10-22 18:30   좋아요 0 | URL
하루키 초기 소설이 좀 환상적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