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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바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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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ellio gegen Calvin oder Ein Gewissen gegen die Gewalt>

칼뱅에 맞선 카스텔리오 또는 폭력에 대항한 어떤 양심

 

독일어 원 제목을 읽어보면, 음률을 살리려 애쓴 흔적이 느껴진다.

카스텔리오와 칼뱅의 첫소리가 비슷하지만 그 세계관은 정반대였듯이,

게비센과 게발트의 앞부분이 비슷하지만 반대의 뜻을 가진 낱말들을 찾으려 애썼을 것임이 느껴진다.

 

흔히 칼뱅을 유명한 종교개혁가라고 알고 있지만,

이 책에서 등장하는 칼뱅은 좀 다르다.

기존의 썩어빠진 가톨릭을 개혁하는 데 성공한 제네바에 등장한 칼뱅의 청렴함은 금세 폭력이 된다.

지극히 살피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듯, 칼뱅주의는 곧 독재의 그늘을 드리운다.

 

도시와 국가에서 권력을 가진 것은 모조리 그의 관전한 권리 아래 종속되고...

그의 가르침은 곧 법이었다. 그에게 반대하는 듯한 눈치만 보여도 곧 감옥에 가거나 추방되지 않으면

화형장의 장작더미가 기다리고 있었다.(12)

 

그에 맞선 카스텔리오라는 남자는 '코끼리 앞의 모기'에 비유된다.

이 모기는 힘없고 고독하지만 인문주의자의 역할을 다했다.

 

이 지상의 어떤 사람에게도 세계관을 이유로 박해할 권리는 없다.(14)

우리 인간 종족의 영원한 비겁성을 생각해볼 때,

시대의 권력자들에게 대핳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얼마나 추종세력을 억기 어려운가.

그렇듯 카스텔리오도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그림자 외에는 뒤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싸우는 예술가의 유일한 재산인 불굴의 영혼에 깃든 굽히지 않는 양심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15)

 

이 책의 머리말만 세 번 네 번 읽었다.

이 책을 읽기 힘든 사람이라면,

이 책의 머리말만이라도 읽어 보기 바란다.

 

정신적인 면에서 승리와 패배라는 말은 그 의미가 다르다.

그때문에 언제나 승리자들의 기념비만을 바라보는 세상을 향해서,

수백만의 존재를 망가뜨리고 그 무덤 위에 자신들의 허망한 왕국을 세운 사람들이 인류의 진짜 영웅이 아니라,

폭력을 쓰지 않고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진짜 영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야한다.

다시 말해 정신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그리고 마침내 지상에서 인간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폭력을 쓰지 않고 폭력을 당했던 사람들이 진짜 영웅임을 기억해야 한다.(27, 머리말)

 

 

 

 

조선 왕조의 상징 광화문 앞에서,

현대 폭력의 앞잡이 경찰(사실 저들은 군대를 가려고 지원한 의경들이다. 위법한 일이다.)들에게

캡사이신 물대포를 맞는 유가족이라니... 참혹한 현실이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이런 말이...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런 말이 일상화된 나라...

슬픈 이 나라...

 

한 국민의 상당수가 내면적으로는 독재체제에 반항심을 갖고 있다 해도

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통합된 계획과 확고한 구조로 결집되지 않는 한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독재자의 권위가 처음으로 흔들리고 난 후에도 실제로 무너지기까지는 정말 길고도 험한 길이 놓여 있는 것.(98)

 

1935년 씌어진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 작품은

전체주의로 흐르고 있는 유럽의 분위기를 이미 예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종교전쟁 시기의 <특수한> 사건을 다룬 이 글이 인류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책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언제나 도발적 인간에게 굴복하곤 하는 인류는,

단 한번도 참을성 많고 공정한 사람에게 굴종한 적이 없었다.

오직 자신의 진리가 유일하게 가능한 진리이며,

자신의 의지가 세계 법칙의 기본 공식이라고 선포할 용기를 가진 위대한 편집광들에게만 인류는 굴종해왔다.(54)

 

이런 글을 읽으면서,

나치하의 독일 국민이,

일제 강점기 전쟁기의 일본 국민이,

그리고 박정희 독재개발 시기의 한국 국민이 떠오른다.

그들은 왜 박근혜를 찍는가...

저 '편집광'이라는 단어가 어떤 현상을 설명해주는 요약적 어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칼뱅과 카스텔리오 사이에는 <세르베투스>라는 돈키호테가 등장한다.

 

역사는 수많은 인간들 중 단 한 사람을 선택해 세계관의 대립을 조형적으로 보여주곤 했다.

그런 사람이 반드시 최고 수준의 천재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운명은 자주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주 우연한 이름을 골라서 후세의 기억에 뚜렷하게 새기곤 했다.(123)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런 말투가 좋다

전기 같은 것을 쓰다가도, 툭툭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들려준다.

마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사실, 이런 부분을 만나려고, 지루한 세르베투스와 칼뱅의 대결,

카스텔리오의 '반박문'들을 읽는 건지도 모른다.

 

 

 

피카소는 그런 세르베투스를 그림으로써,

핍박받는 인격, 인권에 대하여 그렸다.

최소한의 기본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추잡한 권력의 만행을...

 

이단자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나는 우리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 생각을 가진 모든 사람을

우리가 이단자라 부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198)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을 죽인 것일 뿐이다.(227)

 

세르베투스의 화형에 대하여, 카스텔리오는 <관용 없음>에 관한 글을 쓴다.

그것은 곧 독선자 칼뱅에 대한 저항이 된 셈이다.

 

<모든 칼뱅에 맞서는 어떤 카스텔리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제목들은 참 멋지다.

칼뱅의 독재를 '금지, 금지, 금지'로 표현하고,

이에 맞서는 카스텔리오는 '칼뱅은 유죄, 유죄, 유죄'로 쓴다.

 

빛이 오고 난 뒤에도

우리가 한 번 더 이토록 캄캄한 어둠 속에 살아야 했다는 사실을

후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카스텔리오, 의심의 기술 중>

 

아, 이 구절을 읽으면서

민주주의가 온 줄 알았던 지난 날이...

그리고 한 번 더 이토록 캄캄한 어둠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모든 칼뱅에게는 어떤 카스텔리오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느 날, 칼뱅주의에 금이 쩌적 가는 날

카스텔리오는 잊힐지라도,

그렇게 빛은 오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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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15-05-0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선생님....이 글은...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