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무엇인가 2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2
파리 리뷰 지음, 김진아.권승혁 옮김 / 다른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김연수가 '소설가의 일'이란 책을 썼더랬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 책을 읽은 후유증으로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아니었을까 한다.

 

파리 리뷰에 인터뷰한 세계적 작가들의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하다.

여느 소설 못지않은 재미와 호기심을 느끼며 읽게 되었다.

책 한 권에 12명의 인터뷰가 들어 있어, 너무 길지 않고 오히려 아쉬울 즈음에 마무리를 한다.

 

2권에는 '멋진 신세계'의 올더스 헉슬리, 보르헤스, 나보코프, 조이스 캐럴 오츠, 도리스 레싱,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귄터 그라스, 토니 모리슨, 주제 사라마구, 살만 루슈디, 스티븐 킹, 오에 겐자부로...

이름만 들어도 세계적인 그런 유명인들의 인터뷰로 가득하다.

올 한 해는 이들이 인터뷰를 조곤조곤 듣는 일만으로도 행복할 듯 하다.

 

창의력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신체의 동맥경화가 생기기 40년 전에

이미 정신의 동맥경화에 걸리는 것 같습니다.

어째서 어떤 사람은 아주 늙은 나이까지 정신의 개방성과 탄력성을 유지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오십이 되기도 전에 머리가 굳어버리고 비생산적이 되는 걸까요.

이건 생화학적인 문제이면서 성인 교육의 문제입니다.(29, 헉슬리)

 

역시 비유를 들어도 멋지게 든다.

창의력의 문제는 문학과도 밀접하면서 삶의 질과 연관있는 것이기도 하다.

생화학적이면서 교육적인 문제. 날카로운 지적이다.

 

소설, 전기, 역사 모두가 중요한 형식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허구이든 실제이든 구체적인 인물과 상황의 관점에서 볼 때 보편적인 추상 개념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47, 헉슬리)

 

문학의 가치를 정확하게 짚어준다.

 

작가에게는 어떤 메시지도 없지요.

글을 쓸 때는 단지 써야 하기 때문에 씁니다.

작가가 자기 작품에 너무 깊숙이 관여하면 안 될 거라 생각합니다.

작품이 스스로 써 나가게 내버려둬야 합니다.

관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판단은, 작가가 제공하는 즐거움과 독자가 얻는 감동으로 판단해야 합니다.(78, 보르헤스)

 

그래. 어차피 독자는 읽고 싶어하는 작가의 책만을 읽는다.

작가의 힘이란 독자를 설득시키기 힘든 것이다.

작가가 의도하는 바대로 독자가 변화된다면, 성경을 읽은 신도들이 부에 탐닉하지는 않으리라.

작가와 독자의 감동은 '줄탁동시(어미닭과 새끼가 안팎에서 동시에 쪼아야 알이 깨진다는 말)'하여야 한다는 것이 독서의 매력이다.

 

과장이 매우 심하지요.

셰익스피어는 언제나 부분적으로 인용될 때 훨씬 훌륭합니다.(95, 보르헤스)

 

이렇게 비판적으로 읽기, 이것이 훌륭한 독자이자 작가인 것임을 보여준다.

 

작품이 지나치게 많고 적고의 생산성은 상대적인 문제입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작가가 쓴 가장 훌륭한 작품입니다.

어쩌면 오래도록 읽힐 책 몇 권을 위해서 많은 책을 쓰는 거지요.(148, 조이스 캐럴 오츠)

 

독자 역시 작가를 모두 읽을 필요는 없다.

독자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가장 훌륭한 작품'을 골라 읽는 것.

이 책의 많은 작가들이 '훌륭한 독자'로써, 고전에 탐닉한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모든 작가들은 예외없이 때때로 엄청난 혹평을 받게 됩니다.

이런 경험은 경이로울 정도로 해방적입니다.

저처럼 많은 책을 펴낸 작가들은 필연적으로 코뿔소처럼 두꺼운 가죽이 생깁니다.

두꺼운 가죽 안쪽에는 연약하고 희망에 찬 나비 같은 영혼이 깃들지만요.(149)

 

제 성격은 질서있고 주의깊고 꼼꼼한 편이고 심하게 내성적입니다.

그래서 어디에서든 은둔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156)

 

작가들은 숱한 비평가들의 험담에 맞닥뜨리게 된다.

은둔적인 삶을 살지만, 희망에 찬 나비 같은 영혼이 깃든 사람들...

인터뷰에서 이런 아름다운 표현을 쓸 수 있다니...

 

저는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어떤 이야기를 쓰기로 결정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어떤 사건이나 사람들, 가끔은 꿈이나 독서가 갑작스럽게 자신을 내세우고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문학 글쓰기가 가장 비이성적인 요소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이때문입니다.

이 비이성적인 면이 독자에게로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23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작가가 이성적으로 도식을 짜면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비이성적인 흐름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이야기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많은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글쓰기 자체라기보다는

쓴 글을 고쳐쓰고 편집하고 수정하는 일 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글쓰기의 가장 창조적인 부분입니다.(234, 요사)

 

김연수가 토할 지경이라는 토고 이야기 역시 모든 작가들의 고충이다.

그것을 힘들다고만 여겨서는 작가가 되기 힘들다. 그 일을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작가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 모양이다.

 

헤밍웨이가 책을 마쳤을 때 텅 비고, 슬픈 느낌이면서도, 행복함을 느꼈다고 하듯,

한 권의 책쓰기를 마쳤을 때 저는 텅 빈 기분, 불안함을 느낍니다.

소설의 저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인생이 갑작스럽게 단절된 느낌이 들지요.

이 느낌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즉시 저 자신을 또 다른 작품으로 던져넣는 겁니다.(242, 요사)

 

광신과 불관용이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심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는 의견 차이의 수용 능력이 없다는 사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247)

 

작가들의 사회 인식이 얼마나 정확하고 날카로운지도 배운다.

'의견 차이의 수용 능력이 없는 역사'

이것은 바로 우리의 현대사 아닌가?

'광신과 불관용의 압박을 심하게 받은 역사...'

동병상련이랄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로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요사는 글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행과 싸우는 한 방법이지요.(254)

 

귄터 그라스의 작품에는 매우 다양한 장르, 역사, 조리법, 서정시...가 섞여 있지요.

... 그림, 시, 대화, 인용, 연설, 편지들까지요.

아시다시피 서사시의 웅대한 개념을 다룰 때에는 이용 가능한 언어의 모든 측면과

의사소통의 가장 다양한 형식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269, 귄터 그라스)

 

양철북의 작가인 그라스는 독일 통일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단다.

 

전 수상인 빌리 브란트는

처음부터 독일 통일을 향한 열차는 정거장을 떠났으며 어느 누구도 그 열차를 막을 수 없다고 선언하였지요.

무반성적인 대중의 열기가 그 선언을 이어받았지요.

그러한 멍청이 은유가 진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런 상황은 누구도 통일이 경제는 말할것도 없고 문화도 심하게 망칠 것이란 점을 생각하지 않았음을 확증합니다.

이래서는 안 되지요.

저는 조정할 수도 없고 위험 신호에 반응하지도 않는 열차에 타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플랫폼에 서서 기다렸습니다.(280, 그라스)

 

멋진 비유이고, 멋진 의사 표시다.

지성은 때로 차가운 갑 속의 칼처럼 무용지물로 비칠 수도 있으나,

그 지성이 필요한 곳이 또한 이 세상이다.

남들이 되고말고 올라타는 그 열차에 타지 않고 플랫폼에 서서 기다리는 사람...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

 

햇빛이 창밖 참나무의 높은 가지에 달린 무성한 잎들을 투과하면서

그녀의 흰 연구실에 얼룩덜룩한 노란색 빛 웅덩이를 만들었다.

모리슨은 커다란 책상에 앉아서, 그곳이 무질서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아주 잘 정리되어 있는 듯 했다.(296)

 

인터뷰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부분조차도 문학적이다.

 

작품을 쓰는 동안, 출판되기 전까지는 소리내서 읽지 않습니다.

낭송을 믿지 않아요.

글이 성공적이지 못한데,

잘 쓴 걸로 착각하게 될 수도 있거든요.

종이에 쓴 소리없는 작업을, 들을 수 없는 독자에게 잘 전달할 언어를 사용하는 건,

글을 쓰면서 겪는 여러 어려움 중 하나입니다.(303, 토니 모리슨)

 

언어의 음성학적 측면까지 고려한 대화도 의미있다.

 

우리 시대 큰 오류의 하나는 민주적인 담론입니다.

이 세상에서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작동하는 것은 국제금융 권력이지요.

이러한 활동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지요.

정치가들은 대리인에 불과합니다.

소위 정치와 금융 권력 사이에는 일종의 내연 관계가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반대 세력입니다.

대안이 있습니까, 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단지 소설과에 불과하며 본 대로 세상을 그리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제 일이 아닙니다.

저는 종종 '뒤로의 발전'이라 불렀던 것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이 말은

여기서 멈추고, 뒤에 남겨진 수십억의 사람들을 향하자'는 말입니다.

물론 이상일 뿐이지만...(370, 주제 사라마구)

 

정치적으로 뛰어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상론임도 정확히 알고 있지만,

문학은 그런 문제제기를 충실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날 모두가 '백색질병'이라는 '눈먼자들의 세계'를 상상하면, 두려운 일이다.

 

실명은 인간의 이성이 맹목적임을 표현하기 위한 은유입니다.

이 행성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굶어죽어가는데도,

아무런 갈등없이 저 행성의 바위 형성 과정을 조사하려고 화성으로 우주선을 보냅니다.

우리는 눈이 멀었거나 미친 거지요.(371)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현실의 모순을 감지하도록 꿈틀댈 수는 있다.

충격적인 소설을 통하여 세상의 본질을 암시하려는 작품을 통해 작가는 눈을 뜨게 만드는 자다.

 

순수한 창작력은 무언가 일어나는 걸 지켜보는 데 있습니다.

일단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때는 그것에 더 집중하고

그러면 그 일이 더욱 즐길만 해집니다.(434, 살만 루슈디)

 

이 책을 읽다 보면, 뛰어난 고전들도 읽고 싶고,

작가들의 책도 뒤적거리고 싶어진다.

창작의 고통을 즐기는 그들만큼, 소설에 흠뻑 젖도록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모름지기 책이란

유리창을 뚫고 날아오는 벽돌처럼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쓰는 책이 개인적인 공격의 일종이기를 바랐습니다.

책은 어떤 누군가가 탁자를 가로질러 돌진해서는 독자를 움켜쥐고 한대 후려갈기는 것과 같아야 한다고요.

독자의 얼굴을 한대 후려쳐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독자를 화나고 불안하게 만들어야 하지요.

누군가로부터 당신 소설때문에 저녁을 먹을수 없게 되었다는 평지를 받는다면,

잘했어, 가 제 반응이라고나 할까요.(450, 스티븐 킹)

 

그렇다. 멋진 작품은 벽돌과 같다.

그것이 허구든 실제든 상관없고, 소설이든 르포든 관계없다.

얼어붙은 바다에 도끼질을 하듯,

독자의 얼어붙은 바다에 '쩡~~~' 소리 울리게 충격을 주는 책이 멋진 책이다.

 

손으로는 빨리 쓸 수 없기때문에 초고가 더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것 같아요.

컴퓨터와 손으로 쓰는 차이는

모터를 단 스쿠터로 달리는 것과 시골길을 실제로 걷는 차이처럼 여겨집니다.(464, 킹)

 

훌륭한 비유다.

작가가 훌륭해서이기도 하지만,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 역시 정확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갈 줄 안다.

 

진지한 대중소설과 순수문학 사이엔 정말 큰 차이가 있나?

일단 차이를 구분하는 지점이 무너지면

많은 진지한 비평가들은 머리를 흔들면서 '그러면 안 돼'라고 할 거예요.

이 모든 것은 먹고 살기 위해 문학을 분석하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

- 만일 우리가 어중이떠중이를 모두 받아들인다면,

누구나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그러면 이 일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고, 그러면 우리는 뭘 해야 하지?

-으로 귀결된다고 봅니다.(470, 킹)

 

비평가들에게 이런 멋진 빅엿을 날릴 줄 아는 작가도 드물다.

 

우익의 협박과 테러 위협과 마주하면서도

천황제, 국가주의, 자위대의 파병을 비판하는 등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넜다.

1994년 노벨상을 받았으나,

같은 해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문화훈장과 문화공로자상은 거부했다.(494, 오에 겐자부로 소개말 중)

 

오에 겐자부로의 글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이 너무도 다양한데, 사는 세상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언론은 노벨상 후보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벨상은 문학 작업에는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약력이나 공식적 위상에는 도움이 되고, 훨씬 더 넓은 영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얻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작가로서는 변하는 게 없습니다.(523, 오에)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정확한 지적이 아닐까?

 

좋은 직업을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경력이지요.

매일 아침 읽을 책이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으면서 일어납니다.

그게 제 삶이었지요.(530, 오에)

 

아침마다 읽을 책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으며 일어나는 흥미로운 삶.

이런 말을 할 줄 아는 작가는 멋지다.

 

문학작품은 역사적 사건을 개인의 경험으로 바꿔서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생생한 느낌과 경험이야말로 내가 겪어보지 않은 타인의 상처와 아픔에 대한 공감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문학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굉장한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539, 옮긴이 말)

 

문학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작가들의 생각들을 읽는 일은 '굉장한 특권'이다.

두꺼운 책이라 두려워 말고,

좋은 책을 접하기를...

 

책읽기 좋아하는 이라면, 당연히 읽어야 할 좋은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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