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 보통 엄마의 거창고 직업십계명 3년 체험기
강현정.전성은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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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입이 닳도록 한 이야기는

"너희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다"라는 말이었다.

흔히 알듯이 '너희는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너희는 이미 빛과 소금이다>

이미 그 존재만으로도 주의를 밝히고 짠맛을 낼 수 있는 귀하고 소중한 존재로 태어났다.

는 의미였다.(213)

 

한국에서 가장 거창~한 이름의 고등학교가 '거창고'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가는 학교로 인식이 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그러나, 그 학교의 속내는 그냥 공부 잘 하는 학교이지만은 않다.

그 핵심에 직업 선택의 십계가 놓여 있다.

 

 

일반적으로 <직업 선택>을 할 때는,

승진해서 존경받고, 탄탄한 장래가 보장된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리~로 가라고 하기 쉽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가난의 대물림의 고리를 끊고

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특히 질곡의 현대사를 살아온 대한민국 부모들에게 그런 마음은 당연지사이고 인지상정일 게다.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일까.

이것이 단순히 엄마들의 과욕 때문일까 아니면 두려움을 조장하는 사회의 책임인가.

비상식적인 교육 경쟁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러운 문화처럼 정착하는 건 정말 우려할만한 일이다.(205)

 

그런데,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

부모가 반대하는 변두리... 이런 곳은 다들 말리고 싶어하는 곳이 아닌가.

툭하면 사상 논쟁으로 빨갱이이고, 색깔론의 피해자가 되는 지식인 사회가 이 땅 아닌가.

공부 시켜놨자 감옥 들락거리기 십상인 땅에서 이런 가르침이라니...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성경에 있는대로 살라는 말이나 다름 없다.

 

부모들은 종종 교육자인 나에게 어떻게 하면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부모님들 자신이 잘 살아가야 합니다."(8)

 

전성은 교장의 이야기다.

그렇다. 부모들이 열심히 잘 살고, 자식의 앞길을 믿어주면 된다.

그런데 질곡의 현대사는 특히 IMF 구제금융기 이후,

아이들이 미래를 오리무중으로 여기기 십상인 세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뉴타운이라면 아무나 뽑아주고, 돈벌이라면 살인도 서슴지않는 인간을 만든 셈이다.

 

거창고를 졸업하여,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직함을 가진 사람도 많을 것이다.

돈을 많이 번 사업가나, 유명한 명의로 소문난 의료인, 법조인들도 수두룩할 것이다.

또는 정치가나 교육자 중에서도 그야말로 <십계>와 어울리는 삶의 궤적을 누린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거창고 사람들은 그들을 취재하라 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하게 걸어가는 사람들.

그 속에서도 조금은 색다르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취재하라고 했고,

그들은 역시 자신이 십계를 지키며 살지 못했음을 시인하며 다른 사람을 둘러댔다.

 

아이들에게 결정을 맡기면 시간은 더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자기가 제일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게 가장 행복한 선택.

부모는 헬퍼가 되어줘야 한다. 리더가 아니다.(46)

 

좋은 말로만 너스레떠는 어른은 아이들이 '꼰대'로 여긴다.

부모가 <로드 매니저>가 되려 하면 아이들이 외면한다.

 

거창고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는 이유... 참 쉽다.

 

학생들도 철이 들면 뭘 하겠어. 공부하는 거지.

스스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 그런 학생을 당할 수가 없거든.(62)

 

공부 열심히 하게 하려면, 스스로 철이 들게 해야한다.

기다려야 하고, 믿어줘야 한다.

 

교육은 자율성을 길러주어야 해.

질서에 대해 판단하는 감수성을 키워줘야지.

도덕적 결정권이 아이들에게 있어야 성숙할 수 있어.

자율이 없는 곳에 도덕적 자기 결정 능력은 자랄 수 없어.

당연히 지식의 성장도 제한될 수밖에 없지.(64)

 

아이들도 교사들도 불안해하는 것이 '자율'의 한계다.

자율로 냅두면 소란스럽다.

질서를 강조하는 관리자에게 혼나기 쉽다.

그러나, 아이들은 성숙한다. 자기 결정에 익숙해진다.

지식의 성장도 더불어 함께 한다.

 

믿어주는 부모되기에서 믿어줌이란 뭘까?

자녀를 믿어줌은 인간-나 혹은 타인-속에 내재하는 신적 성품을 믿는다는 뜻이다.(193)

 

'모든 인간이 부처'와 상통하는 말이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네, 제가 주를 사랑합니다.

헬라어 성경은 다르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아가페(조건없는 사랑) 하느냐? / 네, 제가 주를 필로(이성적, 지적인 사랑)합니다.

예수가 다시 묻고 베드로는 같은 대답을 한다.

예수가 세 번째도 똑같이 묻고, 베드로는 역시다...(216)

 

사랑해서 '내 양을 먹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조건없이 사랑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사랑하는 부족한 베드로의 나약한 모습에게 예수님은 인류를 맡긴 것.

거창고의 교육은 종교와 맞닿아 있지만,

그 종교는 삶에 스며드는 것이지 폭력적인 지시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겉모습의 화려함이나 스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꽉 찬 느낌, 즉 내적 충만 같은 게 있었다.

그것도 아니다.

그들 중에는 자신들이 가득 차 있노라 자신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들은 그저 우직하게 자신의 삶을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220)

 

우공이산...

우공이 대를 이어 산을 옮기려 했더니 하늘이 산을 옮겨 주었다는 고사다.

우직하게 걸어가는 사람들...

 

약삭빠른 헛똑똑이들을 양산하는 세상에서,

우직한 우공들을 기르는 학교가 거창고등학교라면... 조금은 가까운 비유일는지 모른다.

 

이런 책의 아쉬움은,

사실 별로 읽을 필요 없는 깨인 사람들이 주로 읽는다는 데 있다.

스스로 마음을 닦으려, 돌아보려 읽는 의미도 있지만,

자식 교육으로 날마다 불안하고 들들 볶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책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학교를 못 믿겠고, 사회를 못 믿을 때,

그래서 불안한 부모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건강한 사회는 원래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에,

내 자식이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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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dgling 2015-02-04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업십계를 보니 김난도 교수의 저서가 떠오르는 군요. 저 의미는 진짜 저런 곳으로 택해가란 말인지 아니면 반어법으로 비꼬는건지... 공부안하면 저런 곳으로 가게된다는건지 여러 함축적인 의미가 있어보이는건 저만의 생각인가요? 개인적으로 김난도 교수나 위에 직업십계같은 말은 싫어하는 사람이라 궁금합니다.

글샘 2015-02-08 23:24   좋아요 1 | URL
김난도의 책은 `힐링`을 파는 장사꾼의 책이고요...
십계의 의미는... 인생의 진실을 고민하게 만드는 함축적인 말입니다. 돈 많이 주고 남들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직업이 정말 행복한 곳인지를 생각하며 살라는 의미겠죠~ 직업을 택할 때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인데 보통 남들의 환호를 너무 중시하지 않나요? 특히나 사회가 험할 때, 높은자리 오른 사람들이 한결같이 추잡한 이력을 가진 것을 보면, 생각하며 살아라~ 이렇게 들립니다.

마녀고양이 2015-02-05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구매할까 어쩔까 고민 중이었는데 글샘님 글이 도움이 되네요

잘 지내시죠?? ^^

글샘 2015-02-08 23:25   좋아요 0 | URL
그래서 구매 하신 건가요? ㅋ
책이 좀 산만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강렬한 것 같습니다.
직업 선택에 있어서 고민하지 않고 가는 건, 두고두고 후회하도록 만드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For Him 2015-11-15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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