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읊조리다 - 삶의 빈칸을 채우는 그림하나 시하나
칠십 명의 시인 지음, 봉현 그림 / 세계사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요즘 시집을 사는 사람 참 드물 게다.

그리고 좋은 시집 만나기도 쉽지 않다.

시어가 갈수록 혼자만의 세계로 침잠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의 아픔을 껴안고 자아가 눈물을 흘리는 시를 만나기는 쉽지 않고,

제각기 고독의 독방에 수인이 되어,

각각의 색으로 발산하는 언어들은 소통되지 않고 휘발되는 듯도 싶다.

 

그런 틈새로 sns 시들이 등장한다.

 

끝이

어딜까

너의

잠재력(하상욱, 다 쓴 치약)

 

갈수록 난독증이 깊어가는 시대에,

인간의 진심을

조롱하고 비웃는 무리들을 옹호하는

온갖 쓰레기들이

언론이란 이름으로 정치에 밥숟가락을 올려 놓을 때,

시는 침묵하고 있다.

 

당신은 왜 나를 열어놓고

혼자 가는가(김혜순, 열쇠)

 

시의 한 도막을 놓은 것도 있고,

시의 전체인 것도 있을 것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읽으면서, 그래, 이건 내 이야기야.

하면, 된다.

 

그렇게 시의 세계에 발길을 들여 놓도록 이 책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

그 시인의 시집을 더 읽어보고 싶도록 하고,

그렇게 문학에 다가서도록...

 

아직도 취해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자세로

새롭게 웃고 싶어(이근화,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요가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으나,

누구나 새로운 자세의 삶을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이 꿈에만 머묾을 깨닫고 실망한다.

자세를 취해보지 않은채로...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 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 아닌가(함민복, 자본주의 사연)

 

시대를 꿰뚫는 구절도 만난다.

 

괜찮아,

바닥을 보여줘도 괜찮아

 

나도

그대에게

바닥을 보여줄게.

 

악수(박성우, 바닥)

 

이렇게 이물없이 바닥을 보여줄 수 있는 사이.

손바닥, 혓바닥, 삶의 바닥까지도...

사랑이란 이름보다 더 큰 마음이 뭉클, 밀물져 온다.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기 위하여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노혜경, 고독에 관한 간략한 정의)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깊은 마음, 더 마음씀이 가득한

섬세한 마음을 보여주려고,

나뭇잎이 아름답다고만 한 사람의 가슴을 어루만진다면,

충분히 시는 아름답다.

세상은 그렇게 풍요롭다.

 

내 삶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김선우, 낙화, 첫사랑)

 

사랑하면 자신을 보게 된다.

사랑하는 자신에 대한 포용과 용서가

그 긍정이 사랑을 더 오롯이 깊게 만들고,

사랑은 혼자서 속으로 하는 게 아니라,

둘 사이에서 존재의 깊은 긍정에서 피어오르는 감정임을 아는 것은,

어른스러운 사랑이다.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었다(광장, 박준)

 

사랑하는 것은

함께 살고 싶어하는 마음인데,

상처받는 것은,

독점 또는 공유에 대한 마인드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함께 세상에 존재하며 산다면,

'혼자만 널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얼마나 불가능한 명제인지,

그 마음을 가지고,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워주는 일이

곧 사랑임을,

배우는 것 또한 인생이리라.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이은규, 바람의 지문)

 

사랑하는 마음은

보이지 않는 허공에 키스를 보낼 줄 알고,

슈퍼문이 아닌 조각달을 공유할 줄 안다.

더우면 더운대로 열기를 공유하게 되고,

책에서 누구도 느낄 수 없는 바람의 지문을

쓸어볼 줄 알게 된다.

 

두툼한 문제지 뒤에 해답지는

언제나 부록처럼 얄팍했다.(조윤희, 내 그림 속으로 들어온 풍경)

 

삶이란 문제지는 언제나 버겁다.

무겁고 두텁고 가혹하지만,

해결책은 친절하지도 자세하지도 않다.

해답지는 빈약하고 얄팍하고 늘 맘에 들지 않는다.

맘에 들지 않는 조건을,

발랄하고 상큼하게 살 줄 아는 지혜,

사랑의 지혜이리라.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김용택)

 

달을 보고,

와, 달이 모라 카드나?

이렇게 물으면, 할 말 없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는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에 그 말이 너무도 흔해서,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한 사람과도 같다.

 

이 책은 13,000원이다.

혹자는 에이, 글자도 별로 없고,

별로 읽을 것도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에게는 어떠한 책도 사용가치로 따진다면,

몇백 그램의 폐휴지의 가치와 같은지도 모른다.

 

국밥 한 그릇에 커피 한 잔 값으로,

흐뭇한 구절을 몇 구절 얻는다면,

어차피 덤인 인생,

행복하게 하루를 웃을 수 있을 게다. 

 

 

http://www.youtube.com/watch?v=xYFEpXyQnmw

 

책 소개 영상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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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4-08-25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시모음집 같군요.
글샘님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오늘 물난리가 엄청나네요.
그쪽 동네도 심각한 사태 같던데 어떠신지요..

글샘 2014-08-26 09:27   좋아요 0 | URL
시모음은 아니고... 시의 구절들을 단편적으로 모아놓은 책입니다.
어제 퇴근길이 난리도 아니었답니다. ㅋㅋ
고속도로가 완전히 꽉 막혀서 국도로 갔는데, 어휴~ 힘들었어요.
잘 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