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은 태어나면서 '사주 - 생년,월,일,시'가 정해진다.

그 결정론적 운명론에 경도되면, 삶은 너무도 뻔한 것 아닐까?

 

제 애비를 죽이고, 에미와 결혼해서 자식도 낳을 넘...이란 오이디푸스처럼,

제 눈을 칼로 찌르고 광야로 나아갈, 비극적 운명에 순응하기 싫다면,

이 책을 읽고 '안티 오이디푸스'의 길을 걷자는 달콤한 꾐이다.

 

애니팡 2라는 게임을 하다 보면,

처음엔 재미도 있다가,

레벨이 좀 올라가면, 해도해도 안 되는 경지를 만난다.

그럴 때 열받으면, 돈을 써서 이런저런 아이템을 사게 만든다.

그건 편법이고 꼼수다.

진득하게 안 되는 판은 '덕을 쌓는다'고 생각하고,

될 때를 기다리면 된다. 언젠가 한 판은 기회가 온다.

 

이 책에서 예를 든 고스톱처럼,

광을 많이 들었다고 승률이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피가 많다고 좋지도 않다.

자기가 든 패와 깔린 패와 순서가 척척 맞아 줘야 좋은 것이다.

 

고미숙의 가장 큰 장점은,

독자가 알아먹을 수준으로 말을 풀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학문적 깊이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힘들지만,

유사한 책들의 다른 저자들은 도대체 독자의 수준을 어떻게 잡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을,

고미숙은 알기 쉽게 설명한다.

 

물론 이 책을 본다고 사주명리학이 훤~히 보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렇지만, 기초로는 이만한 책이 없을 듯하다.

 

개념들과 용어들을 쌈빡하게 설명하는 그의 능력이 부럽다.

나의 일간은 '계수'이다.

 

계수는 계곡물이나 옹달샘처럼 스케일이 작지만 투명한 물이다.

주변환경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키는 유연성이 강하고, 아이디어와 독창성이 번뜩인다.(77)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게 된다.

서양의 '인간 탐구' 내지 '심리 해석'은 미리 많은 설문에 답한 다음 결과를 분석하는 것이어서

대부분의 경우,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분석하게 되는데,

동양의 철학은 음양보다는 오행의 상호작용이 크다.

 

나의 사주에서 나머지 일곱 글자는 불이 다섯, 나무가 둘이다.

치우쳐도 너무 치우친 사주다. ㅋ

그래서 가르치는 일로 먹고 산다.

식상이 '목'이다 보니, 표현하는 힘, 뻗는 것에 만족해 한다.

악기를 배우기 좋아하는 속성이 그런 것인가 한다.

 

재성이 '화'로 그득하다. 넘친다.

일복? 차고 넘친다. 알고나니, 억울하진 않다. 원래 팔자구나.

 

이렇게 치우쳐 있어서, 조커를 써볼까 하고 뒤적거려 보니... 헐~

점입가경이다.

 

네 글자의 '지지'에 딸린 '지장간'을 다 동원해 봐도...

열 하나 중에서, 다섯이 불이요, 둘이 나무다.

 

없는 것을 한스러워 하며 살면,

변화시킬 수 없는 것에 얽매이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나를 생하게 할 '금'의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거나,

나를 극하지만 금을 생하게 할 기운을 가진 것들,

물론 내가 어떤 사업을 한다거나 하는 일, 사람을 믿고 투자를 하는 일 같은 것은 금물임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만,

없는 것이지만, 서로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삶임을 깨닫노라면,

없으면 없는대로, 과하고 넘치면 또 그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삶이다.

 

고미숙 덕에 <운명의 브리콜라주>의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브리콜라주는 좋은 재료들로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날 그 작업장에 있는 재료들을 활용하여 최고의 예술품을 만들어 내는 활동이라고 한다.

재료 자체의 속성이나 본질이 아니라,

재료들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과 개성이 결정된다는 원리.(122)

 

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 두었다.(109)

 

행운으로 여길지, 불운으로 여길지는 해석하는 사람에게 달렸다.

내 삶의 해석,

굳이 남에게 맡길 것 없다.

 

내 삶은 내가 읽고 풀어가면,

풍부하게 차고 넘치지는 않더라도,

고만고만한 밥그릇에 겨우겨우 채워가며 살 수는 있잖을까 싶다.

 

이런 게송을 참 좋아한다.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受器得利益)

구슬보배 더욱 생겨 허공에 가득해도,

뭇 삶은 그릇따라 이로움을 얻을 따름... 

 

저녁밥이나 맛있게 먹을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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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4-07-14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위로받는 느낌이었어요. 제 일간이 경금이라 금이 쫌.. 많은데. ^-^

글샘 2014-07-16 12:14   좋아요 0 | URL
네. 그렇죠.
다른 심리 검사 해석 결과와 다르게, 위로가 되더라구요.
경금이라... ㅋㅋ 친하게 지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