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기쁨 1 - 음악의 요소들 음악의 기쁨 1
롤랑 마뉘엘 지음, 이세진 옮김 / 북노마드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1권에서 30번의 대담을 통하여 음악이 줄 수 있는 예술적 기쁨의 요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음악의 기쁨은 어디있는 거죠?

언제나 양 극단 사이에 있죠.

한쪽에는 자연의 모사, 다시말해 물리적이고 맹목적인 흉내내기가,

다른 한쪽에는 자연에 대한 망각, 다시말해 음악을 설계도 한장으로 전락시키는 철저한 추상화가 ...(24)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의하여야 할 것은 이 책의 출간연도가 1947년이라는 것이다.

프랑스는 안 그래도 워낙 자국 중심주의가 강한 나라인데다가,

세계대전 직후다보니 독일 음악과 대조되는 측면들이 도드라져 보이기도 한다.

 

시는 멜로디의 기저를 파고들고

멜로디는 말 속에 녹아내리는 것 같죠.

슈베르트의 기적은 음악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모차르트의 기적에 화답했지요.

그 요소란, 강렬하면서도 내밀한 감정이 응축되었다가 짧은 순간 터져나올 때의 전율이죠.(22)

 

주된 해설가 롤랑 마뉘엘은 짖궂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그가 가장 잘 쓰는 용어가 '내밀한' 이란 단어인데,

그러게, 음악을 표현하는 말로는 '내밀한 감정'의 느낌 이상이 있을까?

 

플루트는 관악기에서 소프라노에 해당하죠.

관악기들이 함께 연주될 때 가장 높은 음역대를 담당합니다.

화려하고 급속한 악구, 트릴, 아르페지오, 바르게 반복되는 음표들을 특히 잘 소화해내지만

아주 잔잔하게 노래할 줄도 아는 소프라노랍니다.

고음은 화려하기도 하고 날카롭기도 하죠.

중음 영역은 부드러운 표현력이 넘치고요.

가장 낮은 음들은 부드러우면서도 깊이 뚫고 들어가는 맛이 있습니다.(40)

 

틈틈이 플루트를 배운 지 1년 되었는데, 이런 부분을 읽으면 격한 공감을 느낀다.

이제 겨우 고음을 내는 정도지만, 새소리처럼 부드러운 소리를 내보내는 악기를 들고 있으면

이 탁한 세상에서도 잠시 시름을 이길만 하다.

 

클라리넷의 음색은 부드럽고 순해요.

오보에의 음색은 비음이 섞인 듯 예리하죠.(44)

 

이 책을 읽으면서, 소리를 모르거나 낯선 악기들도 만나게 된다.

또는 전혀 모르는 음악의 제목을 접할 때도 많다.

그런데, 뜻밖에 그런 것들을 찾기는 쉬웠다.

휴대폰으로 금세 검색할 수 있고, 자세한 음향까지 제공되는 걸 보고, 무심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피아노를 '피아노포르테'란 이름으로 부르게 된 연유도 알게 되었다.

 

하프시코드로는 콘트라스트 효과밖에 얻지 못하니까요.

그들은 여리게도 세게도 칠 수 있는 알기를 요구했습니다. 그게 바로 이탈리아어로 피아노와 포르테죠.(127)

 

이게 참 흥미롭다니가요. 기능이 기구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기구가 기능을 만든단 말이죠.(129)

 

음악의 발전은 악기의 발전과 긴한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이야기다.

아니, 필요해서 악기를 발전시킨다기보다, 악기의 발전이 음악의 발전을 리드한단다.

 

박자와 리듬의 싸움에서 뭐가 가장 인상적인가요?

뭔가 들쑤시는 듯한 강박관념이랄까?

규칙성에 대한 강박관념이죠. 늘 똑같게, 등시적으로 장단을 쳐주지만 그건 오로지 솔리스트가 자유롭게 노는 리듬.

거의 즉흥적인 그 리듬을 돋보이게 하려고 존재하죠.

박자는 우리에게 리듬의 존재를 계시해 주고 우리는 그 둘의 관계를 만끽하는 겁니다.(156)

 

규칙적인 박자 사이에서 나름의 리듬감을 느끼며 노는 것이 음악이다.

롤랑 마뉘엘의 설명은 재미있고도 간명하다.

 

삶의 리듬이 빠르다는 표현이 왜 틀렸는지를 깨닫기 바랍니다.

연주 속도가 어떻게 되든 음가들 간의 관계는 변하지 않아요.

바로 이 음가들 간의 관계가 리듬입니다.

속도는 템포죠.

그러니까 우리는 템포를 빠르게 당겨 살아가고 있는 거지. 리듬을 빠르게 한 게 아니에요.(149)

 

우리는 너무 삶의 속도가 빠르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리듬이 빠르다'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일반인은 쉽게 사용하는 말도 전문가의 귀에는 금세 들어오는 모양이다.

 

민요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다.

 

조개가 진주를 품듯이

서민들은 자기들의 노래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죠.

멜로디적인 요소는 학문적 음악에서 빌려왔다든가

작업의 리듬, 노동의 추임새, 일하는 이들의 의성어나 의태어에서 빌려왔을 겁니다.

이 요소가 조개가 받아들인 이물질 같은 역할을 했고

그 이물질을 귀한 분비물이 감싸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겠죠.(183)

 

하다못해 축구를 해도, '출격, 침몰, 낭자군...' 이런 전투 용어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한국의 표현에 비하자면,

참 아름다운 표현들이 많다.

다 적어 두자면 한도 없을 판이다.

문화의 힘일 수도 있겠고, 삶의 결이 그대로 드러난 모양새일 수도 있다.

 

차이콥스키에겐 조형적인 상상력이 있어요.

차이콥스키가 쓴 교향악들도 늘 춤을 부르는 것처럼,

혹은 춤에 화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니까요.

여기에 뿌리깊은 환상 취향, 악기의 음색에 대한 탁월한 이해까지 갖추었죠.(211)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부러웠다.

 

어쩌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면서도,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그러면서 내용이 전문적인 내용으로 가득한데도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

일반인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풀어 설명하면서도, 횡설수설이 거의 없고 초점을 놓치지 않는 줄기를 유지하고 있다.

 

충분히 독서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면서도,

충분히 지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좋은 책이다.

 

 

다만, 한자를 병기하는데 한자에 약한 요즘 편집자들의 실수가 두드러지게 눈에 보인다.

좀더 작은 데서도 관심을 보여주었더라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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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9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부미 2015-01-13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먼저 찾아서 봤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