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드저널 bold journal Issue 14 : 대안교육 Let Children Grow up 볼드저널
볼드피리어드 편집부 지음 / 볼드피리어드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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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질문
프로젝트의 리뷰를 위한 보고서 작성에 일주일을 올곧이 썼다. 무엇을 했고, 무엇이 부족했으며 ‘다음’에는 무엇을 보완해야 할지에 대한 보고서. 물론 하루 하루 오늘의 일들이 모여서 내일, 내년의 성장에 대한 자양분이 되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고 그래서 필요한 것임을 자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은 하루가 무척이나 아쉽다. 누군가의 보고를 위한 보고서를 쓰는 일이, 물론 내가 하는 일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 일이 나는 재미있는가? 어떤 가치를 담는 일일까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아이가 자라고 이제 제법 자신의 생각을 똑똑히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덜컥 앞으로의 변화들이 걱정이 되었다. 열심히 학교 교육과 학원을 다니고,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또 이름있는 대기업에 입사해서 누군가에게 보고하기 위한 보고서를 쓰면서 하루, 일년을 사는 삶은 녀석에게 행복한 일이 될까? 2019년 현재를 기준으로 약 20년도 훨씬 뒤의 일을 예단하는 것은 말도 안되지만, 그 때 녀석은 하고 싶었던 일을, 가슴이 뛰는 일을 하면서 살고 또 행복해하고 있을까? 녀석에게 있어 가치있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려주어야 하는게 아닐까?


대안교육
볼드 저널의 대안교육을 집어들고 책을 덮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근래 줄곳 생각해 오던 마음의 불안감이 책을 읽는 내내 작은 떨림으로 바뀌는데도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단어는 그렇게 많지 않았고, 그 단어들이 주는 힘이 나에게는 떨림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왜, 지금, 행복, 가치’ 이런 단어들.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을 품은 사람들의 인터뷰에서 울림을 주는 말들이 홍수처럼 나에게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다.

대안학교, 대안교육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그 안에서 대학을 위한 배움이 아닌, 하나의 인격으로써 배움이 필요한 것들에 대한 접근과 그 접근방식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가치관과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물론 와이프는 반응하지 않았다…) 적어도 같은 반의 모든 친구들이 모두가 생각하는 똑같은 정답을 맞추고, 등 수 별로 줄을 서지 않아도 사회구성원으로써 또는 독립된 인격을 가진 주체로서 아이가 자랄 수 있다는 작은 믿음을 발견했달까. 나에게는 충분히 의미있는 독서경험이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아니, 어디로 가고 싶은가?
나는 현재 공교육의 시스템을 잘 알지 못한다. 아예 모른다고 봐야 한다. 변명을 하자면, 아직 우리 아이가 그 시스템 언저리에 머물고 있을 뿐이지 안쪽 깊숙히 들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획일적이기 보다는 그래도 도시 안에서 그나마 뛰어 놀 수 있는 곳을 택했고 그래서, 나와 우리 와이프는 그 시스템 언저리에 가기 위해서 커다란 댓가(비용)를 치르고 있다. 우리가 선택(와이프는 100% 찬성은 아니었지만)하는데 중요한 것은 교육과 놀이였다. 아니 놀이를 통한 교육이기를 바랬다. 유치원을 갈 수 없는 상황 때문이기도 했고, 녀석이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는 많이 움직이고, 뛰어 놀기를 바랬으니까. 

하지만, 녀석은 작년의 4살이 아니었고, 우리의 기대 혹은 바램 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있다. 점점 더 ‘교육’이라는 의미를 우리가 주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생기고 있었다. 어떤 사람으로 키울까? 아니 더 옳은 질문은 ‘녀석이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가 더 맞을거다. 우리는 녀석에게 하나의 길만 보여줘서는 안되고, 수 많은 길을 다 보여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길은 경험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해가 거듭될 수록 그 선택에 있어서 기여도는 점차 녀석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 와이프와 나의 기대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녀석의 기대와 희망으로 살아가는 삶을 지지하고 싶으니까. 

이런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꼬이고 있을 때 즈음에 볼드저널의 대안교육을 통해서 만난 아이들 혹은 아이의 유년 시절을 조금은 다르게 보낸 청년과 성인들의 인터뷰를 읽어내려가면서 어쩌면 무모할만큼 단언해 버렸던 교육에 대한 철학 같은 것들을 정의내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최근 우리의 대화에는 이런 생각들이 공유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좋은 대학, 좋은 기업으로’가 아닌 가치있는 삶
지금 내가 가치있게 살고 있는지는 사실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가치를 녀석에게 알려주는 것 보다 온전히 본인의 생각과 방식으로 단단하게 익기 전까지는 그 가치를 찾는 길에 함께 걷고 싶다. 사람과 세상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생각들. 그렇게 얻어진 좋아하는 것에 대한 탐닉. 그게 꼭 모든 것을 잘해야 하는 공교육의 시스템에 맞추어서 점수 또는 서열로 높고 낮음을 결정짓지 않고, 현재 머무르고 있는 삶 자체가 가치있다고 느끼고 그걸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녀석에게 붙여준 이름처럼, 세상 사람들과 세상을 여행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길 기대하며 더 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그 질문에 대한 많은 길을 함께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함께한다는 것은 나의 불완정성을 인정하는 일이다. 함께한다는 것은 너 역시 완벽하지 않아도 됨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여유롭게 채워주는 일, 하여 서로가 서로를 주체로 세워주는 일, 그것이 바로 또한 함께 사는 일이 아닐까 싶다. 교사도, 학부모도, 아이들도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며 함께 살아가고, 그 가운데 성장해갈 수 있는 곳이 학교라면 참 좋겠다.”
– 심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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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 21세기 분배의 상상력
김만권 지음 / 여문책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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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의 기분 좋은 상상. 우리 대가 아닌 우리 후대를 위한 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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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의 심리학 - 남다른 지능과 감성으로 고통받는 아이들, 개정판 영재의 심리학 시리즈
잔 시오파생 지음, 정미애 옮김 / 와이겔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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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모든 부모에게 미지의 세계다. 둘째나 셋째는 덜 할 수 있겠지만, 첫째의 경우에는 온통 미지의 세계라, 이 사람의 이야기도 맞을 것 같고, 저 사람의 이야기도 맞을 거 같다. 물론 이 역시도 개인차가 존재하는 법이라, 다른 부모의 이야기를 참고해서 우리 아이에게 반영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을 법하다. 우리는 그런 육아와 아이에 대한 물음표가 또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터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었고, 추가적으로 우리가 더 아이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으로 책을 선택해 보기로 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영재’라는 특정 키워드를 빼 놓고 읽으면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부모와 사회가 어떻게 아이를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총론에 가깝게 보인다. 다르게 말하면, 해당 키워드가 들어갔다고 해서 이 책이 유독 특별하게 보이거나, 큰 지침을 가르쳐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해당 분야의 아동 심리 전문가의 다양한 임상 실험 결과를 통해서, 그리고 수 많은 논문을 통해서 일부 증명된 통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된 책이겠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뭐랄까. 내가 읽으면서 받은 이 책 전체의 Tone of Voce의 느낌은 이렇다.

이 분야가 정말 너무나도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전문가의 말이 맞다. 물론 아닐 수도 있어. 그건 애와 상황에 따라 달라.

책의 초반은 어떤 ‘기질’과 특성에 따른 ‘성향’을 나열해 주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동질감을 찾아내기 위한 과정 때문에 공감을 불러 일으켰지만,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영재’라는 키워드를 걷어내면 우리의 모든 아이들에게 해 주어야 하는 어쩌면 당연하고 기본적인 육아에 대한 지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게 만든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영재냐 아니냐를 떠나서 아이를 이해하고, 훈육하는데 있어서 부모 뿐만 아니라, 결국 아이가 속해있는 사회 모두가 아이의 기질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진리만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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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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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보다 책을 읽는 즐거움

근래 어떤 것에 대한 결핍 같은 증세를 보이고 있는 내게 와이프는 하루 정도는 나만의 시간을 갖으면 좋겠다고, 파주 지혜의 숲에 있는 지지향이라는 호텔에 1박을 보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부터 책을 추천해 주는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는데, 사야지 사야지 했던 책 몇 권을 후다닥 구매해서 호텔 방에서 내리 2권을 읽었다. 한권은 떨리는 불편함이었고, 다른 한권은 따뜻한 즐거움이었다. 아마 내리 2권을 읽어내려간 경험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거의 없던 일이었는데, 와이프 덕분에 너무나 좋아하는 책읽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수 년간 책 보다는 짧은 글을 자연스럽게 자주 접하게 되고, 긴 호흡의 글을 쓰는 것 보다는 짧은 글을 쓰는데 익숙해 있었는데, 모처럼 긴 글, 서사 구조를 갖는 책을 읽는다는 즐거움이 몇 시간을 침대에서 움직이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섬에 있는 서점은

아내를 잃고 섬에서 작은 동네 서점을 경영하는 에이제이의 이야기다. 괴팍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성격 묘사가 심한 것 같고,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해야할 것 같은 주인공은 아내를 잃고, 자신에게 중요한 보물과도 같은 책도 잃어버리고, 어찌보면 엎친데 겹친 격으로 생판 모르는 남의 아이까지 떠 맡아서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렇게 아이를 서점에서 혼자 키우면서 섬 사람들과의 교류도 복잡해 지고, 자신이 주장하던 여러가지 삶에 대한 관점과 가치관들이 조금씩 다른 사람을 통해서 영향을 받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책을 읽는 동안 킬킬거리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또 먹먹해지기도 하는 대목들이 많았다. 40대가 되면서 나도 신기하리만큼 감정의 굴곡이 눈에 띄게 굽이치고는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이런 감정은 참 오래간만이어서 고맙게도 읽는 내내 반갑고 즐겁게 읽었다.

타인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책을 통해서 타인의 삶을 간접 경험하게 되고, 또 우리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그 책과 주인공에 대한 몰입도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게 되고, 다시 또 만나서 사랑하게 되고,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만나면서 또 다른 이유와 해답을 갖고 살아가게 되고.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당연히 아이에게서 ‘우리 아이’의 모습을 발견해 내고, 묘한 동질감과 묘한 이질감을 함께 느끼기도 하고. 나와 와이프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그리고, 나와 와이프가 만나게 될 세상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고. 또 어제 오늘 근래 내가 처해 있는 인생에 대한 물음표도 돌아보게 된다. 책 한권이 내가 겪고 있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는 없지만, 나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또 힘을 내어 다시 일어나게 해 주는 응원의 메시지도 듣게 된다.

따뜻한 결말. 그래서 희망.

모든 책과 모든 소설의 결말이 그렇지는 않지만, ‘또 다른 희망’이라는 판에 박힌 말일지라도 이 책의 마지막이 주는 또 다른 맺음과 이어짐도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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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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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불편하다.

고작 2장을 읽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쩌면 아직 온기가 다 차지 않은 파주 지지향의 객실의 온도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소설의 전개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서두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뒤에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장치였겠지만, 다소간 우울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초반 챕터는 오히려 으슬으슬한 떨림에 가까운 추위였다. 2시간 남짓 지나고 책을 다 읽고 난 뒤 지금 내가 묵고 있는 객실의 온도는 27도가 되었고,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초반의 으슬으슬한 떨림은 불편한 두근거림으로 들어 차 있다.

31개월까지의 흔적

30대인 우리 와이프는 이제 31개월 된, 횟수로 네 살 아기를 키우며 살고 있다. 지금에서야 허덕이며 하루 하루를 이겨내 왔던 2년 전의 삶과 지금의 삶은 무척이나 달라졌지만, 그 때의 생활은 내가 함께하고 지켜 보기에도 녹록치 않았다. 경단녀가 될 까봐 전전긍긍하던 때였고, 누구나 겪는다고 치부해 버렸던 산후, 그리고 육아 우울증 같은 상황들도 당시에는 당연하게 여겼고, 도와준다는 말을 최대한 하지 않고, 묵묵히 옆에서 육아 생활의 부산물들을 챙기던 때였다. 직접 모유를 먹이고, 새벽에 깨서 엄마를 찾던 아기를 달래는 것은 대부분 와이프의 일이었다. 지금에서야 아이가 ‘엄마’를 찾으면 엄마가 달려가고, ‘아빠’를 찾으면 아빠가 달려가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나는 자주 투정과 짜증을 함께 부리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러서 와이프는 다시 회사라는 우리의 삶을 그것도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게 만들어 주는 돈을 은행에 꽂아주는 곳을 다시 다니고 있고, 아침에 어린이집에 맡기고 저녁에 집에서 고작 2~3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던 일상의 궤적들도 또 다른 변화를 맞이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와이프는 쉽지 않은 하루를 보낸다. 아이와 관련된 무언가를 늘 찾아 헤메고, 지인과 친인척에게 ‘정답’을 묻고, 그 정답을 아이에게 적용해 보고, 작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매일 매일 사들이면서 나의 눈치를 본다. 입으로는 늘 아이와 가까운 프렌디라고 말하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려고 하는 그나마 근래 사회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아빠의 모습으로 살려고 노력을 하는 나이지만, 70년대에 태어나고, 아들이 최고라고 여기는 엄마의 아들이 되었고, 엄마의 형제들은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여자가 남편을 위해, 아니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조카로 살아왔다. 우리네 부모의 세대가 그랬지만, 적어도 나와 같은 세대 그리고 내 후의 세대들은 여성들이 조금은 더 남자들과 동등한 세상에서 살면 좋겠다고 했던 그런 생각들을 품고 살아간 시간은 막상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오랜 시간은 아니었다. 딸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생각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아니었을거라 라고 생각했던 그 많은 삶의 에피소드들 중에서 나는 어쩌면, 아니 여전히 70년대에 태어난 남자아이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불편함을 마음에 두고 책을 읽어내려갔다.

80년대생, 31개월된 딸의 엄마

지금의 와이프의 생활은 긴 맥락에서 82년생의 김지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엄마이자, 딸이자, 와이프인데, 사회적인 테두리에서는 맡은 또는 맡지 않은 일까지 해내야 하는, 그것도 아주 잘 해내야 하는 불편함과 불합리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직장 생활이라는 패턴을 이미 알고 있지만,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는 이상 목소리를 내어도 깊게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이제 과거 집안 어른들이 키워주거나, 옆집 아줌마가 키워주거나 하는 세상이 아니다.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하나의 생명을 올곧이 함께 키워주어야 하는데, 과거 보다 지금의 엄마들은 세상이 내려 준 너무 넓은 ‘자유도’에서 아이를 키울 수 밖에 없다. 그 넓은 자유도는 인터넷과 같이 문명이자 매체의 발달로 인해서 정보는 많아졌지만, 더 많은 선택지가 생겨버려서 오히려 그 많은 선택지들에 대한 정답에 가지 못해서 생기는 마음의 병들을 앓고 살아간다. 더 자율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고, 더 똑똑하고 지혜로운 아이로 키우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 지켜낼 수 없는 세상이 높은 자유도를 가진 정답의 사회. 그 사회에서 우리는, 와이프는 딸을 키워내고 있다.

몇 주전 와이프는 자부심과 푸념 그 언저리에 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는 어디서나 아이의 밥을 먹일 때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절대 밥을 먹이지 말자고 다짐하고 힘들게 지켜내고 있는데, 얼마 전에 결국 아이가 그렇지 않은 상황들을 발견하고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다른 애들은 유튜브 보면서 밥 먹는데 왜 나는 안돼?’ 단어들은 조금 다르지만, 아이는 남들과 다른 환경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런 ‘다름’에 대한 궁금증을 표현했다고 한다. 와이프는 동영상을 보여주자는 의미는 아니었으나, 이제 그런 선택권이 아이가 무언가를 이해하고 말하고, 주장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했다는 것 같다.

30대의 엄마는 여전히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도 많고, 그만큼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것도, 해 줘야 할 것도 많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 혹은 남편과의 아이를 키우는 철학만으로는 부딪혀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늘 체감하고 있었고, 어쩌면 남들과 다른 아빠라고 굳게 믿고 주장하며 살고 있는 나는, 오히려 엄마가 부딪히고 있는 세상과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가 12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식당에서 ‘맘충 소리 듣지 않으려면 애가 흘린거 다 치우고 가야해’라는 말을 했을 때 버럭 화를 내지도, 그냥 가지도 않고, 와이프와 함께 식당 바닥을 물티슈로 닦아 내며 지냈던 날들이 오버랩되면서 책장을 넘겼지만, ‘그 땐 그랬지’라고 웃으며 넘기고 싶은 날들은 분명 아니었다. 30대의 엄마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일은 출산이었고, 더 큰 일은 육아임을 우리는 결혼이라는 테두리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우습게도 당장 집에 가서 자주 읽어주는 공주 시리즈 책들을 어딘가에 감추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백마 탄 왕자가 악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하는 그래서 82년생 김지영과는 너무나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우리 딸의 아름다운 동화를 읽어주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단순하고 유치한 발상일 수도 있지만, 물론 앞으로의 세대의 김지영들은 그렇게 크지 않을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은 있지만, 그저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닐까. 말해 주고, 생각하게 만들고, 그래서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그런 것들을 지금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그러지 않았고, 우리의 세대가 못했지만, 우리의 후배의 세대들에게는 아들이나 딸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gender로써 아주 당연하게도 자연스럽게 여자로써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우리 세대와 우리의 선배 세대들이, 가정을 꾸리고 있고, 가정을 위해서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빠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해야겠다. 비단 내 딸만을 생각하라는 게 아니라, 내 친구의 딸, 내 조카의 딸이 만나게 될 세상이 82년생 김지영이 만났던 세상은 아니어야하지 않겠다고 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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